[eBook] 석신(石神)의 연못 - 몬스터 연대기 | 아라한 호러 서클 038 아라한 호러 서클 38
에이브러햄 메릿 / 바톤핑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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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마스턴 교수는 화석 연구 때문에 탑승한 뉴기로 향하는 배가 침몰하는 사고를 당해 기니 해안 인근의 어느 섬에 표류 했던 일을 들려준다. 그 섬에는 수 많은 날개로 뒤덮인 석상이 세워져 있는 연못이 있었고, 그 꺼림직한 석상으로 인해 무서운 일을 겪었다는데...

외딴 섬에 있는 원시 문명을 연상시키는 어느 석상. 미지의 공포와 석상이라는 고전적인 공포 요소가 섞인 형태다 보니 너무나 무난한 내용에 가깝긴 하다. 석상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접해서 흔하고, 외딴 섬이라는 부분도 너무 옛날 클리셰라는 느낌을 줘서 그렇다. 다만 그렇다고 석상과 관련된 부분까지 별로라는 건 아니다. 외형도 그렇고 이게 대체 뭔지 궁금하게 만들기에 마지막 끝까지 보게 만든다.

분명 돌로 된 석상의 일부인데 생명체와도 같은 질감을 준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문제의 날개에 대한 묘사만 보면 보호색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숨어 있는 곤충 같은 느낌이다. 피부가 딱딱한 동물이나 거북이 등껍질 같은 걸 떠올려 봐도 암석과 구분이 안 될 정도의 피부나 껍질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냥 커다란 날개 한 쌍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개체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은 모양새라 하니 외형적으로도 꺼림직함이 강하다.

석상의 실체가 밝혀지는 부분은 마치 흡혈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무지막지한 괴물 하나가 아니라 야생 동물 떼에 가깝지만, 원시적인 컨셉의 공포라는 면에서 어울린다. 석상이 아니라 석신이라 지칭 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자연환경과 하나인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숭배 받는 형태나 다름 없어서 그렇다. 신선함에서는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정석적인 공포라는 부분에서는 나쁘지 않게 볼 여지가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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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러브크래프트 서클 25
헨리 커트너 / 바톤핑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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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 부족의 주술사들이 만든 저주 받은 종이자 놀랄만한 음색과 음질에 관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려진 산 하비에르 종. 캘리포니아의 피노스 산맥에서 발굴 됐지만 직후에 부숴버리고 파편마저 다시 비밀리에 파묻어 버린 걸로 알려졌다. 이 발굴과 관련된 자이자 캘리포니아 역사 학회의 간사인 로스는 이 종과 관련해 벌어진 무서운 일에 대해 밝히는데...

사악한 존재를 소환하는 매개체와 관련된 내용은 대체로 전조 현상 선에서 끝나기 마련이다. 무언가 나오려다 중간에 끊기다 보니 애매한 인상만 남는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막상 접하면 시시하지 않다. 직접적인 존재를 들어내지 않아도 끼치는 영향력이 가진 섬뜩함과 파멸 직전의 상황이라는 혼란이야 말로 초월적인 공포에 걸맞는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 하비에르 종은 그걸 아주 잘 나타냈다고 본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영원한 어둠이란 처음부터 너무나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어둠이라 하면 무엇인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 빛이 사라진 순간. 하늘이나 날씨, 공간적인 면에서 보면 상당히 초월적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 그러나 가장 원초적이고 손쉬운 영원한 어둠은 정말 별거 아니다. 생명체는 무엇으로 세상을 보고 빛을 감지하는가. 그것이 없다면 곧 영원한 어둠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작중에서는 영원한 어둠과 관련해서 끔찍한 묘사가 꽤 나온다.

특정한 상황에서 울리는 종은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는 하는데, 성 하비에르 종 만큼 기괴함을 주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어봤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울림이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지. 맑거나 웅장하면 듣기 좋은 음색이겠지만, 지하로부터 전해지는 듯한 땅울림이자 엄청난 무게감을 가진 기분 나쁜 진동이라면 대체 어떤 소리일까. 이 종소리가 완전한 형태로 울리지 않았는데도 벌어진 참사를 보면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단 번에 느낄 수 있다.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결말은 종의 존재감을 계속 강조한다. 마치 종의 울림처럼 한 번 시작되면 그 잔향이 오래 남는다고 말이다. 인위적인 영원한 어둠이 아니라 일시적인 영원한 어둠도 존재하기에 그 잔향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영향력을 들어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끝나지 않은 공포란 불안을 단순 기분 탓이 아닌 눈에 보이는 현실로 보여줬기에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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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림자의 미사 Mystr 컬렉션 185
아나톨 프랑스 / 위즈덤커넥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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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아 성당의 교회지기가 막 장례식을 치른 무덤 파는 일을 하던 자신의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해준다. 캐서린 퐁텐이라는 어느 노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매일 아침 6시에 성당 미사에 참석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12월, 평소처럼 6시 미사에 참석한 노부인은 놀라고 만다. 전부 처음 보는 사람들만 있었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은 젊은 시절에 일찍 죽어버린 옛 애인이었는데...

1892년에 출간된 단편집 〈마더 오브 펄 L'Étui de nacre〉에 수록된 작품이다. 옛날에 이 소설과 비슷한 내용의 무서운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보니 꽤 놀랐다. 새벽에 열리는 미사. 죽은 사람들 사이에 유일하게 살아 있는 한 사람. 여기까지는 비슷했지만 결말은 완전 다르다. 그 이야기는 단순 괴담에 가까운 결말을 보여줬고,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아마 그 무서운 이야기의 원본이 이 소설이지 않았을까 싶다.

공포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이 어째서 떠돌아 다니고, 가까운 이의 앞에 계속 나타나는가. 이걸 섬뜩함이 아닌 담담함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라 진짜 미사를 진행하듯이 엄숙하다. 이해할 수 없는 괴현상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저지르게 되는 잘못이자 원한이다. 사랑해서 저지르게 된 이러한 죄를 속죄하는 방법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직업적으로 죽음과 가까운 것이 아니라면 그건 곧 죽음이 가까워 졌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기에 캐서린 퐁텐의 경험은 의미심장하게 볼 여지가 많다. 한순간의 주마등 같은 것일지, 아니면 인생의 말년에 이루어진 환상과도 같은 염원일지. 결말을 보면 무엇이 먼저였을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걸 따져봐야 의미가 있을까 싶다. 어쨌든 캐서린 퐁텐은 살아서 죄를 속죄하고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간직한 사랑하던 이와 다시 만나게 됐으니 말이다.

무엇에 대한 죄이고, 무엇을 속죄해야 한다는 것인지 정확히 설명하자면 미련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놓아 줘야 할 순간에 확실하게 보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이를 두고 죄라 말하는 것이고, 캐서린 퐁텐의 마지막 순간은 그걸 확실하게 놓음으로서 속죄를 하게 된 셈이다. 교회지기가 마지막에 말하는 것도 이를 의미하는 걸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미련 없는 완전한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털어버림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는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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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매그레 시리즈 21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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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할 사정을 가진 이들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돈다. 사실을 밝히면 몰려올 눈치와 비난 때문에 평소의 일상을 가장해서 만들어낸 또 다른 일상인 셈이다. 이런 이들이 그나마 안식처로 삼는 곳이 바로 벤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멈춰 있을 곳이자,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교류의 장소다.

마냥 외롭고 쓸쓸한 세계로 보일 수 있지만 이건 생각 해봐야 한다. 이 벤치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세상이라는 것. 그 다른 관점을 통해 어떤 기회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지만 괜찮겠다 싶으면 무작정 붙잡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어디로 향하고, 어떤 결말로 막을 내릴지 알 수 없는 채로.

파리 생마르탱 대로의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칼에 찔린 시체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매그레 반장. 피해자는 루이 투레라는 창고 관리인. 구두와 넥타이는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와 다른 것이었고, 한창 회사에 있을 시간에 외진 골목에서 발견됐다는 점, 여기에 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서 반장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회사를 찾아가 보니 이미 폐업 한지 3년이나 지난 후였고,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루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듣게 되는데...

실직한 사실을 숨기고 평소처럼 출근해 시간을 보내는 가장. 너무나 익숙한 광경인 한편으로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결국은 무시 당하는 가장의 비애라는 흔해 빠진 이야기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모든 이야기는 끝까지 보고서 판단해야 한다. 이게 단순 실직자에 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다루는 것인지 말이다.

루이 투레라는 가장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와 밖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평가가 상반되는 부분은 참 마음 아픈 부분이다. 사회에서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대접 받지만, 집에 가면 그저 남들과 비교 당하며 무시 받는 게 전부인 공처가. 여기에 실직까지 겹친 상황이니 안타깝다는 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그에게 숨겨진 이면이 있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여기게 된다. 중요 단서로 구두가 언급되기에 더 그렇다. 구두란 직장인과 가장을 상징하는 물건에 해당된다고 본다. 바쁜 하루를 함께 하며 힘겹고 고된 나날을 상징하는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반자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와 장소에 따라 구두가 바뀐다는 점은 이런 의미로 볼 수가 있다. 서로 다른 세계를 나누는 경계선. 이게 어떤 세계로 향하는 구두인지 알아내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사건의 결말이 다소 급하게 처리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동안 여러 사람을 불러다 조사했는데도 별거 나오지 않았다가 갑자기 범인을 특정해서 끝내버리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그레 반장과 함께 살펴본 주요 인물들을 중에서 이것만 확인하면 가장 의심스러운 게 누구인지 금방 나오긴 한다. 루이 투레가 살아가던 두 세계 중간의 회색 지대가 어디고, 누가 제일 사적인 곳에 가까이에 근접해 있는지. 그럼 지금까지 해온 조사들은 전부 무엇이었나. 그건 사람의 이면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피해자인 루이 투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건 관계자들에게는 평소의 모습과 다른 그림자가 존재했다. 실패라는 현실을 가리고자 만든 환상과도 같은 평온한 일상. 작중에서 매그레 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실패하고 절망한 자들이 눈에 먼저 띄었지만 차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인상 깊어졌다고. 이런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저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 안에서 진짜 삶을 사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어떻게든 실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매일 매일 환상을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이는 얼마나 될까.

환상이라는 이름을 보면 현실적인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정당하지 못한 방법 밖에 없다. 절박함 속에서 여유와 행복을 얻기 위해 반드시 남에게 피해를 줘야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이런 식으로 돌고 돌다가 이번 사건처럼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엮일 수도 있다고 하니 참 웃기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를 탓하기도 참 그렇다. 더 이상 다른 선택 없이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현실이었을 테고. 각자가 원하는 행복과 요구 받는 행복이 다르기에 생겨난 비극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한 시대를 거슬러 내려와도 여전히 변함 없는 벤치란 공간은 셀 수 없을 많은 드라마와 함께한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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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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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핵전쟁의 여파로 인한 전염병으로 흡혈귀가 창궐해 멸망한 세상.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로 믿고 살아가는 로버트 네빌은 밤마다 들려오는 흡혈귀들의 소음과 끔찍함 그 자체인 외로움을 버티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흡혈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데...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원작 소설은 처음이다. 듣기로는 영화로 제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탓에 많이 알고 있는 2007년에 나온 영화가 나오기 까지 2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한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을까 했는데, 원작을 읽어보니 그 이유가 대충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음울함. 이 둘이 공존하는 모양새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잘못하면 재미없게 현실적이거나, 재미없게 비현실적일 수도 있으니까.

멸망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혼자. 간혹 상상하게 되는 상황인데, 이걸 실제로 겪으면 얼마나 끔찍한지 로버트 네빌을 통해 깊이 있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과거로 인해 몰려오는 슬픔. 대화 상대 없이 계속되는 생활. 밤마다 들려오는 흡혈귀 무리들의 소란 속에서 더욱 체감 되는 외로움과 욕구 불만. 이 때문에 로버트 네빌은 감정적 동요가 너무 심해 쉽게 욱하며 돌발 행동이 잦다. 아무리 신체적으로는 건강해도 정신적으로 망가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흡혈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는 전설과 미신에 대한 면이 아니라 현대적 해석을 하는 부분은 꽤 흥미롭다. 하나하나 뜯어보며 의학적인 분석을 통해 여러 현상들에 설명함으로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게 지금의 좀비 바이러스의 현실성을 설명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흡혈귀에 대한 고찰은 병리학에 가까운 해석에 문화적인 영향까지 더해져 상당히 세세하게 다룬다. 이게 단순 설정으로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나중에 밝혀지는 중요 복선까지 이어지기에 작가가 상당히 공들인 부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2007년의 영화가 원작 내용에 있던 요소를 어떤 식으로 반영해서 각색했는지 보여서 대단했다. 분명 동일하게 등장하는 요소가 있으나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로버트 네빌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과 좌절, 분노는 거의 비슷한 분위기라 그렇다. 흡혈귀에 대한 설정 역시 겉으로는 완전히 달라 보여도 결말에 밝혀지는 진실은 비슷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라 원작 고증이 잘 된 편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보통 전설이라 하면 멋지고 위대한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같은 단어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경우가 존재한다. 칭송 받아 마땅한 영웅 전설이 있는 가하면, 괴물 같은 존재가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 역시 전설이다. 빛과 어둠의 차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 사소한 차이로 상식과 정상인의 개념이 뒤집어지기에 언제나 확증 편향에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누가 알겠는가. 자신이 믿던 사실이 실제로는 정신병이나 다름 없는 망상이고, 진짜 현실은 완전히 다르게 돌아가고 있을지.

던지기 놀이

어느 유원지의 게임 부스에 들어간 양복 차림의 남자. 거기서는 탁구공 3개를 던져서 어항에 집어 넣으면 상품을 주는 게임이 진행 중이다. 아무도 어항에 공 넣기를 성공하지 못하던 중, 양복을 입은 남자는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어항에 공 3개를 전부 집어 넣는다. 하지만 양복 입은 남자는 상품에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돈을 내고 공 던지기 게임을 하는데...

별거 아닌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뭔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 늘어나는 묘한 내용이다. 놀라운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우연이겠지만, 그게 계속된다면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재능이 뛰어난 경우? 아니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라고 봐야 할까?

결말이 허무하고 어이없을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양복 입은 남자가 마지막에 얻은 상품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어쩐지 결말의 마지막 장면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여서 그렇다. 한 가지 더, 이 마지막에 얻은 상품 이후에도 아직 남은 상품은 더 있었다. 그렇다면 양복 입은 남자가 마지막에 얻은 상품이 다른 거였다면 어떤 결말이 나왔을까? 또, 남은 상품마저 다 얻고도 공 던지기를 계속했다면?

이런 여러 가정을 하다 보면 이 던지기 놀이가 어디로 향했을지 더욱 더 무서워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눈에 보여지는 공포보다 이러한 가정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공포를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장례식

장의사를 찾아온 어느 50대 남자. 아내의 장례식 때문에 찾아왔다고 하면서 무뚝뚝하게 서류에 사인을 하는데...

간단한 내용 안에서 마지막에 반전으로 무서운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내용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한 형식의 괴담, 무서운 이야기가 꽤 있다 보니 지금에 와서 보면 크게 신선하지 않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작중의 남자가 어떤 심리 상태로 장의사를 찾아왔던 건지 궁금하긴 하다. 그냥 모든 걸 준비하고 냉정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갈등 하며 초조하게 있던걸까.

죽음의 사냥꾼

아멜리아는 희귀품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죽음의 사냥꾼이라는 이름이 붙은 흉측한 인형을 구매한다. 그 인형은 어느 부족에서 만든 것으로 황금 사슬로 사냥꾼의 영령을 봉인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아멜리아가 엄마와 전화로 말다툼을 하고서 인형을 무심코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봉인이 풀려버리게 되는데...

수상쩍은 인형이 나온다는 점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일지 금방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처럼 사냥꾼 답게 매서운 방식으로 압박해오기에 상당한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처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인형은 아무 말 없이 집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하다고 본다. 원래 사냥꾼이란 조용하고 신속하게 사냥감을 노린다고 하니 말이다.

결말에서 나타나는 반전은 원시적인 주술에서 나온 부산물을 함부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초자연적인 영역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는 또 다른 공포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녀의 전쟁

어느 전쟁터 한복판. 적군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장교는 일곱 명의 소녀들을 전장에 투입 시킨다. 그 소녀들은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녀들이었는데...

어린 마녀. 마법을 쓰는 소녀. 현대에는 이런 단어들이 귀여운 캐릭터로서 각종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 꿈과 희망을 담은 아름다운 스토리를 보여주며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분위기와 정반대다. 서양 전설에서 나오는 사악한 마녀의 어린 시절 같은 분위기라 마법을 이용해 잔혹한 학살을 벌인다. 마치 어린 아이의 놀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서 순수악 그 자체나 다름 없다.

어린 마녀들이 벌이는 마법 묘사도 압권이지만, 무엇보다 섬뜩하게 보였던 것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전쟁터의 모습이다. 공허함으로 가득 찬 잿빛 세상.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죽어가며 껍데기 밖에 안 남은 병사들. 처절한 죽음의 공포. 작가가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큰 고난과 역경을 겪었을지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루피 댄스

3차 세계 대전이 휩쓸고 간 세상. 페기는 어쩌다 사귀게 된 질 나쁜 친구들과 함께 루피 댄스를 보러 세인트루이스의 클럽을 찾는다. 그 루피 댄스란 시체를 이용한 기괴한 쇼였는데...

세기말 분위기에 젖은 방탕한 젊은이들의 삶과 퇴폐적인 즐길 거리에 대한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배경 설정부터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엄청난 재앙이 휩쓸고 간 세상이라고 계속 강조하기에 암울한 분위기가 크다. 이런 세상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과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기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좋은 건지 충분히 고민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단순한 도덕과 비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에 대한 방황 끝에 도달하게 된 허무함과 불안에 대한 도피다.

루피 댄스는 퇴폐의 정점이나 다름 없기에 그걸 보고서 받을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생각보다 단순하면서 너무나 잘 이해가 되는 움직임 묘사에, 이게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것인지 밝혀지는 점까지 해서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한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는 죽음마저 유희 거리가 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현실적인 좀비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흔히 아는 좀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긴 하나 오컬트니, 바이러스니 하는 것보다는 가장 단순하게 설명되는 방식이긴 하니까.

엄마의 방

할머니에게 혼나고 방에 가둬진 나.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엄마의 방에 들어가 하얀 실크 드레스를 꺼내 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옆집의 메리 제인이라는 친구랑 같이...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번 읽어봤던 내용이다. 이 작품 속의 핵심 공포는 엄마의 방, 특히 그 안에 있는 하얀 실크 드레스다. 이게 대체 뭐가 문제인지 살펴보다가 작중 아이의 시점이 너무나 순수함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주목하게 됐다.

아이의 순수함이란 때로는 본질을 왜곡해서 볼 때가 있다. 실제로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자신에게는 이렇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 속의 아이가 말하는 엄마와 실크 드레스란 대체 무엇일까. 이 부분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결말이 나타내는 의미와 할머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역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일 수록 나쁜 것에 쉽게 빠져드는 것일까.

매드 하우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문학 강사 크리스. 하지만 그는 글 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라 여겼고, 이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방해한 탓이라며 매일매일 분노를 쏟아낸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결국 아내와 별거까지 하게 되지만, 오히려 글 쓸 시간이 많아졌다며 좋아한다. 그런데 집안의 물건들이 자신을 적대하며 자꾸만 어딘가 다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작가를 목표로 한 이들에게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면이 많아 보였다.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썼다. 얼마나 흔하게 많이 쓰는 핑계 거리인가. 지나치게 남 탓만 하기 쉬운 걸 넘어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갉아먹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남 탓이 과도하게 지나치면 사람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나타낸 것 같다. 아니, 주변에 끼칠 영향에 대한 문제라고 해야겠다. 부정적인 감정은 다른 곳에 퍼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건 사람 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해당될지 모른다. 온갖 나쁜 마음과 분노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마구 쌓여 점차 구체화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변한 사물은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칠까? 별거 아닌 물건 때문에 다치는 일이 종종 생기는 걸 떠올리면 꽤 끔찍하지 않을까 한다. 한편으로는 작중에서 벌어진 일이 마냥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다. 작중 내내 보여진 크리스의 상태를 보면 비현실을 가장한 현실로서 스스로를 갉아먹었다고 볼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니 말이다.

장례식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을 찾아온 애스퍼라는 사내. 에스퍼는 장례식에 쓸 관으로 가장 커다랗고 최고급인 관을 요구한다. 순조롭게 계약서 작성에 들어가고 돌아가신 이의 이름을 듣게 되자 실크라인은 당황하게 된다. 다름 아닌 자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애스퍼 본인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장례식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반전이 있을까 했다. 이번에도 역시 장례를 치르는 대상으로부터 발생한 일인데,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 그 자체나 다름 없다. 생각해 보면 다소 의아해 보이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죽은 존재나 다름 없는 이들의 장례식이라니. 뭔가 특별한 이벤트 같아 보이면서도 보통 사람의 장례식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서 묘하게 보인다. 이 작가만의 스타일인 현실과 비현실의 결합을 여기서 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나 상황이 재미있어 보이겠지, 장의사 실크라인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온갖 괴물들로 가득한 장례식을 준비해야 된다고 하는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맨정신으로 버티겠는가. 하지만 역시 돈이 걸린 문제라면 어떤 공포라도 이겨낼 수 있는 모양이다. 결말은 그걸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어서 일종의 블랙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둠의 주술

딸 페트리시아의 전화를 받고 급히 집을 나선 제닝스 박사. 약혼자인 피터 랭의 상태가 설명할 수 없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제닝스 박사와 마주한 랭은 석 달 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주장하고,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마주친 줄루족 주술사가 내린 저주라고 한다. 의학적인 조치가 통하지 않자 결국 인류학자인 하월 박사를 부르게 되는데...

의학적으로 규명 불가능한 병. 예로부터 이런 부분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기괴함을 동반하기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 작품은 그러한 본능적인 공포에 대해 다룬다고 본다.

현대 도시에서 벌어지는 원시적인 주술 의식은 그 분위기 만으로도 공포를 일으킨다. 분명 도움을 주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이성적으로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작중 인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부분이다. 당혹스러운 부분이 많지만 분야가 다른 전문가라고 여기며 이해하려는 제닝스 박사. 분명 도움을 청한 건 자신임에도 점차 악의적인 시선으로 보고야 마는 페트리시아.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광경을 통해 표출되는 생리적 혐오감이란 바로 이런 거다.

확실하게 말해두겠지만 이 작품은 문화적 차별을 공포로서 정당화 하는 게 절대 아니다. 이로운 일이라 해도 막상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되는 경우가 존재하고. 이걸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도 지우기 힘든 본능이라는 이름의 공포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이걸 감내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길을 건네는 이가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전화벨소리

밀만은 밤 중에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고통 받고 있다. 분명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만 그건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것이고 실제로는 아무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것이다. 이명 소리라 생각해 다양한 치료를 받아도 아무런 효과가 없던 중, 팔머 박사로부터 현실의 전화기가 아닌 머릿속에 존재하는 전화를 받아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밀만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로 시도해봤다가 어떤 남자의 목소리와 연결되는데...

존재하지 않는 전화벨 소리의 정체에 대한 탐구로 진행되며 점차 산으로 가는 듯하게 나타나다 보니 뭔가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흔해 빠진 망상에 지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럼에도 밀만이 이 상황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진심이다. 그가 처한 환경과 과거를 보면 전화벨 소리 너머에서 이런 게 나타날 만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상당하다. 마냥 황당무계한 상황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진짜 무언가와 연결된 전화벨 소리일까. 아니면 내면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무의식일까. 이 전화벨 소리의 정체가 확실히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보나, 비현실적으로 보나 전부 맞는 말이라 그렇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가진 이성의 끈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들리지 않던 전화벨이 울린다는 건 이성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위험 신호고, 그걸 받는 순간 이성 너머의 무언가와 연결됐다는 의미라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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