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던 작가와 출판에 대한 이야기
정혜윤 지음 / SISO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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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첫 문장부터 고민의 시작이다. 쉽게 써질 때는 주로 책 내용과 관련된 주제로 생각해 볼 부분을 다루는 편이다. 반면 시작부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는 깊이 있는 내용이라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그리고 읽고도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다. 이해를 못했다기 보다는 어떻게 표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에 가깝다. 감상이 별로라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숨기지 않고 자세히 써놓고도 남았다. 오히려 좋았던 부분을 나타내기 어렵다. 이걸 이렇게 써야 하나,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고민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 책도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시작하게 됐다. 글쓰기 관련 책처럼 보이면서 작가이론처럼 보이기도 하고. 개발서나 전문도서, 에세이 위주의 설명처럼 보이면서도 소설 쪽으로 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내용처럼 보이면서도 꽤 도움이 되는 부분이 적지 않이 있고. 또, 흔하고 뻔한 얘기 없이 흥미로운 점으로 구성되어 있어 믿고 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글쓰는 방향에 대한 내 입장이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난 소설 쪽을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본 글쓰기 책도 대부분 소설 관련된 것이었고. 그렇다보니 흥미롭게 보다가 고민이 생겼던 것이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건 그렇다해도 개발서, 에세이 관련 쓰는 방법만 나오는데 도움이 될까. 결론만 말하자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안내서라는 제목 만큼 다른 글쓰기 책과의 차이점이 많다. 글쓰기 책하면 흔히 강조하는 문장 쓰는 법 같은 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에 앞서 일종의 준비과정을 알려주는 것에 가깝다. 기술이라기 보다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책을 쓰기 앞서 생각해볼 점이 많다는 걸 나타낸다. 도입부인 1, 2부만 봐도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책 하나가 나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렇기에 무작정 잘 쓰기만 한다고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파트마다 편집자로서의 경험한 사례 위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도 쉽다. 또, 중간중간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색이 칠해져 있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기억하기 쉽다.

 전반적으로 책을 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경우에 딱이다. 출판사에 문의해서 일일이 답변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나, 물어보기 힘든 부분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인세 관련 부분이나 출간 과정에서도 작가가 참여하는 부분처럼 다른 글쓰기 책에서는 볼 수 없던 게 많다.

 다만, 개발서나 에세이 위주의 내용이 대부분이라 소설 쪽 입장에서 보면 글쎄다 싶은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이해할 만한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같은 글쓰기라도 분야가 다른 만큼 방법론 역시 다를 수 밖에 없기에 견해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책 자체는 꽤 괜찮다. 국내에서 나온 글쓰기 책 중에서 처음 보는 걸 접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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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장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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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요소가 나오거나 현실적이지 않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게 개연성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나오는 걸 말한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나오면 대체로 호불호가 갈린다. 이런 요소가 굳이 들어가야 되냐는 것부터,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다, 설정이 과하다는 평까지. 특히 추리 쪽이라면 나름 현실성을 갖추어야 하기에 더욱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다. 저 같은 경우야 진짜 어이없는 종류만 아니면 왠만한 건 그냥 보는 스타일이고.

 이 소설은 일본에서 여러 미스터리 관련 문학상을 휩쓴 대작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논쟁이 있을만한 문제작이긴 하다. 일본에서나 국내에서나 호불호에 대한 부분은 상당하다. 약간이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좀 심하게 갈리다 보니 나 같은 스타일에게도 좀 고민이 되긴 하다.

 신코 대학교에 다니며 탐정활동을 하는 아케치와 하무라. 여름방학 기간 동안 특별한 사건을 맡고 싶어하던 중, 영화부에 합숙을 겨냥한 협박메세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건의 기운을 느낀 아케치는 영화부 합숙에 어떻게든 끼어들려 노력한다. 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해 아쉬하던 차에 라이벌 격인 여탐정 겐자키의 도움으로 참가에 성공한다. 합숙장소인 자담장에서 사건을 기다리던 아케치와 하무라는 갑자기 일어난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고 만다. 그리고 이와중에 기괴한 살인사건까지 발생하고 마는데..

 생각보다 가벼운 분위기에 서술방식도 대체로 가벼워서 읽어나가기 쉬운 편이다. 주요 인물과 설정이 만화스러운 느낌이 강해서 삽화 없는 라이트노벨처럼 보일 정도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운 감이 없잖이 있었지만 이런 종류를 많이 접하지 않은 탓인지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다는 생각이다. 물론 지나치게 가벼운 건 선호하지 않지만. 또한 작중에 나타나는 주요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있는 듯한 인물이나, 만화에 나올 법한 미소녀나 추리광 같은 설정이 좀 과해서 거슬리긴 했다.

 초반의 가벼운 분위기가 무색하게 중반부부터 일어나는 상상도 못할 재앙에 살인사건까지 진행되면 나름 진지해져서 분위기를 잘 잡았다고 본다. 독특한 클로즈드 서클 시도 치고는 꽤 스케일이 있어 좀 놀라기도 했고. 다만, 클로즈드 서클에서는 누가 어떤 이유로 죽을지 몰라 서로 의심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누가 죽을지 미리 알 수 있어 긴장감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 긴장감의 부재를 예상치 못한 재앙으로 채운듯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재앙에 대한 설정을 여기서 끝내냐 더 보충할 후속작이 나오냐의 문제다. 작중에서는 정확한 윤곽 없이 부분부분 흔적만 나와 있다. 결말에 가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고. 이걸 조금 더 설명할 필요성을 작가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냥 클로즈드 서클을 만들기 위한 요소 밖에 되지 않게 된다. 즉, 작위적인 요소 그 이상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추리적인 부분은 나름 특수한 상황을 이용한 기발한 트릭이 나오긴 했다. 어떻게 보면 트릭이라 보기도 뭐한 잔재주에 불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사례를 본 적이 있어서 내 나름대로는 나쁘지 않게 본 편이다. 특수한 상황을 이용한 트릭이라는 점에 끌린 것도 있고. 하지만 추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좀 개연성 없어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고작 이런 것때문에, 라는 생각이 들정도인데다 그 인물의 캐릭터성까지 붕괴될 할 정도라 그냥 더욱 확실한 증거를 만들기위한 설정이라는 생각이다.

 직접 읽어보고 논란이 되는 이유를 나름 짚어보며 내린 결론은 일단 별 생각없이 읽기 좋은 한편의 오락물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하지만 나름 짚어낸 단점부분을 보고 진짜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많을 테니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겠다. 내가 괜찮게 읽었다고 다른 분들도 똑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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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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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예로부터 엄청난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방의 산이나 바다에는 전설이나 괴담이 존재한다. 특히 육지에 많이 솟아있는 산은 그 크기만큼이나 압도적인 존재감과 산 속에서만 느껴지는 시간감각과 공간감 때문인지 여러문화권에서 전설과 민담이 얽힌 괴이한 곳이 되고는 한다. 현대에 와서도 그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산짐승의 공격이 있을 수도, 길을 잃을 수도, 또 시간감각 차이 때문에 내려올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점까지.

 까마득하고 어두컴컴한 산중은 흡사 이계라 봐도 무방하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방황하다보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과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다. 그 존재의 눈에 산 속을 해매는 이방인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비웃음이 나올정도로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산 속에 파묻어 버릴 희생양 정도로 봤을지도. 이런 상상만으로도 산 속의 괴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일지 어느 정도 실감이 날 것이다.

 하도에 있는 삼산에서 전통 참배식을 하던 중 겪은 괴이체험과 이중 밀실에서 발생한 증발 사건이 담긴 원고를 받은 도조 겐야. 작년 히메쿠비 산에 가던 중 계획을 바꿔 방문한 구마도 인근이라는 걸 알고 다시 방문하게 된다. 산림지주인 가지토리 가의 당주에게 다시 도움을 청한 도조 겐야는 흉산이라 불리는 부름산에 대한 전설을 예의주시하면서 밀실 증발 사건이 발생한 가옥을 찾아간다. 그런데 가옥은 원고에 나타난 것과 똑같이 밀실 상태였고 안에서는 머리가 불탄 시체가 발견된다...

 노랫말을 연상시키는 연쇄살인이 나와서 얼핏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생각나게 한다. 차이점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경우 노랫말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는 기괴한 분위기만 살렸다면, <산마처럼 비웃는 것>은 이 노랫말과 똑같은 살인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더해진다. 왜 굳이 여기에 집착해야 할까, 왜 이해할 수 없는 번거로운 짓을 했을까. 어떤 행동이 일어나기까지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당위성에 대한 부분도 여러모로 무섭게 보인다. 물론 이 노래형식의 연쇄살인이 은근히 많이 쓰였다는 걸 생각하면 신선함이 약간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산에서 시작해서 산으로 끝나는 형태다. 잘린머리에서는 괴이한 존재가 돌아다니는 인상이라면, 산마는 산이 현실세계를 집어삼키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구마도 촌락과 흉산인 부름산의 분위기가 완전 다른 세상인듯한 분위기다. 살인사건 역시 현실과 괴이가 섞인듯한 인상이다. 그럴싸한 동기나 용의자가 있어도 정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점만 늘어나 현실이 허상이고, 허상이 곧 현실이 되기까지 한다. 클로즈드 서클로 고립된 장소도 아닌 그냥 산중에 둘러싸인 마을에 지나지 않기에 사람 아닌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잘린머리에서는 간접적으로 밖에 나오지 않던 도조 겐야가 제대로 활약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본격 미스터리인데도 탐정보다는 괴이 탐구가로 불리길 원하면서도, 괴이한 현상을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과 현실에서의 이미지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재미있게도 탐정이라는 논리적인 분야와 괴이라는 비논리적인 분야는 보다시피 상극이다. 이 상극인 두 분야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게 바로 도조 겐야의 추리 스타일이다. 그렇기에 현실의 사건 범인도, 현실적인 논점으로도 해석이 불가능한 괴이도 전부 밝혀낸다.

 결말을 보면 살짝 앞에서 작가가 반칙을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인물인 것도 둘째 치고, 앞에서 제시한 공정성에도 위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글자 몇 자 차이로 해석이 달라지기도 해서 그럭저럭 넘어갈 수는 있다. 서술트릭이란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을 노리니까. 또 살짝 아쉬운 게 있다면 구마도 지역 지도가 없다는 점이다. 잘린머리 때는 히메카미 촌의 지도가 같이 있어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기에 더 아쉽게 느껴졌다. 굳이 지도를 넣지 않아도 이해하기 쉬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산간 지형을 나타내기 까다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나온 괴이인 산마도 꽤 무서웠다. 산마 전설부터 산마의 비웃음과 함께 실종된 사건까지. 정녕 산에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산마가 사람을 잡아가는 세계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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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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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빠르게 지나간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지나가는 모든 이들 역시 그렇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고, 방향이 다른 것처럼 보여도 알고보니 같은 곳을 향하고 있고, 모두가 가는 주어진 길을 앞에 두고 굳이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이 있고, 같은 길 위에서 똑바로 가기도 하고 해매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연관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산다고 보이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면식 없는 사람이라도 언제 어디서 엮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러시 라이프는 구성이 독특하다. 인물만 5명이고, 서로 일면식이 없는데도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되어 있다. 한 인물의 시점이 진행되다 그 다음 인물로 넘어가는 릴레이 형식이라 앞으로의 일을 궁금하게 만든다. 시점이 나눠져 있으면 간혹 특정인물에게만 집중되고는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주연급 인물의 시점에서 다루어지는 스토리가 전부 다르다. 또한, 연관성이라는 부분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기대가 되서 인물 모두를 집중하고 보게 된다.

 각자의 삶이 모두 다르게 나오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부 공통점이 있어 보였다. 바로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정석적인 길에서 벗어난 인생. 어떻게 보면 갈피못잡고 방황하는 상태라는 생각이다. 돈 때문에 잡혀있는 화가, 하루벌이를 위해 활동하는 도둑, 인생의 갈피를 잃은 화가지망생, 자신의 완벽함이 깨질까봐 두려워하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굳이 설명 안 해도 현실에서 가장 힘든 위치에 있을 실업자. 저마다 추구하는 목적이나 가치관은 달라도 뚜렷한 방향은 없어 보인다.

 주연급 인물이 5명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 중, 신인화가인 시나코 부분은 중심 사건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보니 다른 인물들과 비교하면 약간 동떨어진 감이 적지 않다. 아예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평탄한 삶을 보낸 구로사와와 비교해도 분량이 너무 적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보면 느낌상으로는 이래도 주제가 삶인 이상 시나코 부분도 어느 정도의 역할이 있다. 다른 네 명의 시점을 보면 뭔가가 하나씩 부족한 상태다. 반면, 시나코의 경우 부족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이 차이점과 비슷하게도 다른 인물들은 여기저기서 비현실적인 사건 위에서 구르고 있을때 시나코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지낸다. 이런 차이점을 두고 보면 시나코가 등장하는 부분은 모두가 부러워할 삶이라도 결국에는 만족스러운 삶이 될 수 없다는 걸 나타낸 걸지도 모르겠다.

 돈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이 돈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돈이 없다고 그 사람의 삶이 멈추기라도 하는가? 삶은 부족한게 있다 여겨도,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많겠지만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삶은 절대 사지 못한다. 돈 역시 삶이 움직이는 여러 흐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삶이라는 주제는 여기저기서 많이 듣고 누구나 하는 말이라 지겹게도 들었다. 누구는 이래라, 이게 성공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 나처럼 되려면, 등등. 내가처한 현실이랑 동 떨어져 있어 공감이 되질 않고, 대부분 노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구로사와가 나오는 소설에서는 주제를 심오하게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도 명쾌하기까지는 좀 그래도 어느정도 해답이 될만한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길하면 대부분 땅을 생각하고는 했다. 길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 걷는 걸 떠올리고는 하니까. 사실 길은 꽤 다양한 형태다. 바다 위에서도, 하늘에서도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목적지로 가는 길이 존재한다. 먼 옛날, 그런 길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뚜렷한 목적지 없이 해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생도 앞날을 알 수가 없으니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망망대해에서 목적지 없이 떠돌지만 결국에는 어딘가에 도착을 하게 되는.

 나 역시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길 위에 있을 것이다. 또한 방향도 잘 모른다. 이때문에 조급한 순간도 꽤 많았다.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은 지금에서는 될대로 되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구로사와의 말처럼 인생은 모두가 아마추어일테니까. 어차피 정해진 길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이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많은 건 필요없고, 그냥 반복되는 일상보다는 하루하루 새로운 순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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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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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많이 생각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이겨내고, 무슨 일이 생기든 해결해주었다. 언제 어디든 함께 다니다 보니 나와 상당히 가까웠다고 느낀다.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좋기만 했지만 지금와서 보면 혼자서 견디기 벅차다는 게 확연히 보인다. 그럼에도 엄마는 강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밤의 동물원은 총기난사범이 돌아다니는 동물원에서 엄마 조앤과 아들 링컨이 생존하는 내용이다. 상당히 충격적이고 긴장감 넘칠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라 상당히 기대를 많이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많이 다른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꽤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긴박한 배경설정에 비해 대체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편이다. 스릴러영화에서 주연급 인물들이 적이랑 맞서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을때, 주변에 숨어있는 지나가는 엑스트라의 상황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히어로 역할의 인물이 나타나 구출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엄마는 구조될 역할이 아닌 아이를 지키는 역할이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히어로처럼 되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를 지키는 헌신은 그 어떤 슈퍼파워보다도 강력할 것이다.

 대체로 움직임이 없는 장면이 상당히 많고, 심리적인 부분이 많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섬세하고 자세히 나타나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또한 위급한 상황임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아이의 행동 역시 엄마라면 이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스릴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면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체로 한 장소에 머무는 장면이 상당히 오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면전환이 거의 없이 심리적 서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속도감 있는 장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꽤 적은 분량이다. 소설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혹시나 속도감 있는 스릴러로 생각하고 읽을 생각이라면 이 부분을 확실히 봐두어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낭패라고 여기게 될지도 모르니까.

 엄마는 아이 앞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현재 상태에서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 아니면 다시는 없을 지나간 과거. 하나를 하며 다음을 생각하는 모습. 이런 묘사를 보며 많은 게 느껴졌다. 엄마가 얼마나 바빴을지, 그리고 지금와서는 어떤 생각을 할지. 나를 보며 지나간 나날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하고 있을지.

 평소에도 같이 잘 지내는 엄마지만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면 더 잘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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