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평점 :
삶은 빠르게 지나간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지나가는 모든 이들 역시 그렇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고, 방향이 다른 것처럼 보여도 알고보니 같은 곳을 향하고 있고, 모두가 가는 주어진 길을 앞에 두고 굳이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이 있고, 같은 길 위에서 똑바로 가기도 하고 해매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연관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산다고 보이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면식 없는 사람이라도 언제 어디서 엮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러시 라이프는 구성이 독특하다. 인물만 5명이고, 서로 일면식이 없는데도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되어 있다. 한 인물의 시점이 진행되다 그 다음 인물로 넘어가는 릴레이 형식이라 앞으로의 일을 궁금하게 만든다. 시점이 나눠져 있으면 간혹 특정인물에게만 집중되고는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주연급 인물의 시점에서 다루어지는 스토리가 전부 다르다. 또한, 연관성이라는 부분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기대가 되서 인물 모두를 집중하고 보게 된다.
각자의 삶이 모두 다르게 나오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부 공통점이 있어 보였다. 바로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정석적인 길에서 벗어난 인생. 어떻게 보면 갈피못잡고 방황하는 상태라는 생각이다. 돈 때문에 잡혀있는 화가, 하루벌이를 위해 활동하는 도둑, 인생의 갈피를 잃은 화가지망생, 자신의 완벽함이 깨질까봐 두려워하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굳이 설명 안 해도 현실에서 가장 힘든 위치에 있을 실업자. 저마다 추구하는 목적이나 가치관은 달라도 뚜렷한 방향은 없어 보인다.
주연급 인물이 5명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 중, 신인화가인 시나코 부분은 중심 사건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보니 다른 인물들과 비교하면 약간 동떨어진 감이 적지 않다. 아예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평탄한 삶을 보낸 구로사와와 비교해도 분량이 너무 적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보면 느낌상으로는 이래도 주제가 삶인 이상 시나코 부분도 어느 정도의 역할이 있다. 다른 네 명의 시점을 보면 뭔가가 하나씩 부족한 상태다. 반면, 시나코의 경우 부족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이 차이점과 비슷하게도 다른 인물들은 여기저기서 비현실적인 사건 위에서 구르고 있을때 시나코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지낸다. 이런 차이점을 두고 보면 시나코가 등장하는 부분은 모두가 부러워할 삶이라도 결국에는 만족스러운 삶이 될 수 없다는 걸 나타낸 걸지도 모르겠다.
돈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이 돈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돈이 없다고 그 사람의 삶이 멈추기라도 하는가? 삶은 부족한게 있다 여겨도,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많겠지만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삶은 절대 사지 못한다. 돈 역시 삶이 움직이는 여러 흐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삶이라는 주제는 여기저기서 많이 듣고 누구나 하는 말이라 지겹게도 들었다. 누구는 이래라, 이게 성공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 나처럼 되려면, 등등. 내가처한 현실이랑 동 떨어져 있어 공감이 되질 않고, 대부분 노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구로사와가 나오는 소설에서는 주제를 심오하게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도 명쾌하기까지는 좀 그래도 어느정도 해답이 될만한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길하면 대부분 땅을 생각하고는 했다. 길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 걷는 걸 떠올리고는 하니까. 사실 길은 꽤 다양한 형태다. 바다 위에서도, 하늘에서도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목적지로 가는 길이 존재한다. 먼 옛날, 그런 길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뚜렷한 목적지 없이 해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생도 앞날을 알 수가 없으니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망망대해에서 목적지 없이 떠돌지만 결국에는 어딘가에 도착을 하게 되는.
나 역시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길 위에 있을 것이다. 또한 방향도 잘 모른다. 이때문에 조급한 순간도 꽤 많았다.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은 지금에서는 될대로 되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구로사와의 말처럼 인생은 모두가 아마추어일테니까. 어차피 정해진 길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이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많은 건 필요없고, 그냥 반복되는 일상보다는 하루하루 새로운 순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