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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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미의 혼령

귀신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작은 아버지의 지인인 K삼촌이 겪었다는 오후미의 유령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가 집안의 마쓰무라는 시집 간 여동생 오미치가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며 찾아와 크게 놀란다. 이유는 어느 날부터 밤마다 오후미라는 여자의 유령이 나와서 자신과 아이가 불안에 떠는데도 남편이 상대해 주지 않아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마쓰무라는 유령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며 오미치의 남편인 오바타를 찾아가게 되는데...

스토리 구조만 보면 다소 흔한 유령 이야기의 실체를 파악하는 가벼운 추리극이다. 크게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구성이다 보니 너무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하지만 이게 한시치라는 인물이 첫 등장한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겉으로 볼 때 기묘한 사건을 현실적인 사건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컨셉을 어필하고. 한시치가 대체로 어떤 스타일의 인물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적당히 프롤로그로서 보면 되겠다.

석등롱

한시치가 아직 오카핏키 밑의 데사키로 일하던 시절인 19살 무렵에 있던 일이다. 기쿠무라라는 분가게의 딸 오키쿠가 아사쿠사에 있는 관음보살님에게 참배하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실종 다음 날, 오키쿠가 기쿠무라에 나타났다가 그대로 다시 사라졌다. 참배하러 갔을 때 신었던 나막신을 현관에 남긴 채. 그 다음 날에는 기쿠무라의 안주인인 오토라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행방이 묘현한 오키쿠라고 하는데...

한 끝 차이로 괴담과 현실 범죄가 공존하는 분위기라 한시치의 첫 사건이자 발표된 순서 상 두 번째 작품인데도 여러모로 놀랍다. 추리 부분이 한시치만 알아보는 작은 단서와 정보로 해결된 점(사실 이건 <오후미의 유령>에서도 마찬가지다.)이 요즘 시점에서 보면 다소 김이 새지만,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과정을 알려주는 것이 옛날 추리소설에서 많이 나타난 스타일이다 보니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못난 사람은 끝까지 못나게 보이는 법일까. 상당한 악질 범죄를 저지른 범인 치고는 마지막이 참으로 비참하고 구슬퍼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동정을 받을 만한 안타까운 사연 같은 건 전혀 없다. 그저 감당 못할 일을 저질러 놓고 마음 약하게 구는 범인의 모습이 추하게 보일 뿐이다.

수상한 궁녀

한시치는 아는 찻집 주인 오카메로 부터 사건을 의뢰 받는다. 어느 날, 찻집에 번듯한 무사가 방문해 차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돌아간 일이 있었고, 그 이후 딸이 이따금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딸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저택에 불려가 시중 드는 여인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봐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가끔 식 돌아다니다 보니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데...

납치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보이는 사건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사연이 나와서 나름 흥미로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호의와 정체 불명의 무언가가 섞인 기묘함은 공포 같으면서 현실과 또 다른 환상 같은 느낌을 줘서 꽤 좋았고. 예상치 못한 전개로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이 참 독특했다. 사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주라서 급전개로 보일 수도 있으나 지금 시대에도 이것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돈 냄새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 언제나 불한당이 끼어드는 법이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은 체면을 신경 쓰기 바쁜 건 비슷한 모양인가 보다. 무슨 사정인지 잘 설명했으면 편할 일을 괜히 복잡하게 만들어서 괴담 같이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작중의 사연은 신분과 상관 없이 어디에 쉽게 말하기 어려운 집안 사정이라는 점은 감안해야겠다. 이유 모를 선의가 거짓이나 기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다행이기도 하고.

쓰노쿠니야

토키와즈(일본 샤미센 음악의 한 종류로 한국의 판소리와 비슷함.) 여사범 모지하루는 아카사카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으스스한 여자와 마주친 일을 겪는다. 아는 도편수의 말에 따르면 쓰노쿠니야라는 술집에 양녀로 있었다가 쫓겨난 오야스라는 여자의 유령이라고 하는데...

복수를 위해 죽은 이후에 유령으로 찾아와 저주를 내린다는 괴담. 인과응보를 다루는 이야기의 대표적인 유형이라 세계적으로 보면 꽤 많은 편이긴 하다. 이런 저주는 조금씩 쌓여가며 커진 형태라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마저 섬뜩한 재앙 그 자체다. 그렇다 보니 분량 만큼이나 사건의 규모가 상당한 편이다. 직접적인 피해자야 말할 필요도 없고, 그저 관계자라는 이유로 발생한 간접적인 피해도 상당하다.

그야말로 괴담 그 자체로 보일 만한 내용이나 후반부에서 밝혀진 실체는 엄청나게 추악한 대규모 범죄였다. 요즘 시대에는 씨알도 안 먹히고, 엄청나게 번거로워서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이해가 안 될 만도 하다. 하지만 이게 바로 현재와 과거의 시대적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제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의 것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야 마는 사람의 악독함이란 바로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미카와 만자이

12월의 추운 아침, 가마쿠라 나루터 인근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남자의 품에서 여자아기가 발견된다. 그것도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송곳니가 나 있다는 점에서 항간에서 말하는 도깨비 아이다. 한시치는 죽은 남자가 신년 축하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이조라 추측하고 길거리 공연가들을 조사하는 한편, 아이의 출처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이런 와중에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한탄하는 어느 노점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시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슨 일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한시치가 다시 노점상에게 물어보자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딱히 큰 사건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심각한 전개로 이어져 여러모로 충격을 준다.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중범죄처럼 보이는 부분이 없고, 아기 관련된 기묘한 부분이 핵심인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무게감이 덜하게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하필이면 사건이 벌어진 시간대도 새해가 곧 다가오는 연말연시라 더욱 비극적인 느낌이 강하다.

사소하게 발생한 다툼이 대참사나 다름 없게 번진 걸 보며 세상 일이란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최선이라 생각한 방법은 언제나 성급하게 나오는 법이고, 그건 곧 최악의 수가 되고 만다.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란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변수가 발생하기에, 모든 일이 반드시 잘 풀린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애초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따지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사건의 시작이 되는 다툼부터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우연으로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로 인해 발생한 업보와 죄책감은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의도치 않게 여러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니까.

창 찌르기

어두운 시각에 갑자기 튀어나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창으로 찌르고 달아나는 사건, 일명 창 찌르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오카핏키 시치베는 부하로부터 이상한 보고를 받는다. 늦은 밤, 가마꾼 둘이 빈 가마를 들고 돌아가는 길에 어떤 처녀를 태우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가 달려와 가마 안으로 창 찌르기를 하는 바람에 가마를 버리고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가마꾼이 가마를 안을 확인해 보니 처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고 하는데...

작중의 표면적인 사건은 츠지기리라고 에도 시대에 종종 발생한 길 가던 사람을 이유 없이 칼로 베는 범죄의 일종인데, 요즘에도 가끔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와 똑같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에 기묘한 사건이 동시에 얽히니 그 기괴함은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현실 범죄와 비현실적인 사건이 동시에 겹친 것이니 말이다.

기괴한 사건에 대한 부분이 단순 헤프닝 수준으로 밝혀진 탓에 결국은 창 찌르기가 모든 일의 원인이나 다름 없다. 이런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게 되는 이유에 대한 추측을 보면 굉장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상이다.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런데 범인의 원래 살던 환경과 현재 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충돌하는 부분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요즘 말하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다만 이게 원래부터 인간성이 돼먹지 못한 건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겠지만.

여우와 승려

야나카의 지코지라는 절에서 주지 에이젠이 어느 순간 여우로 변해버렸다는 소문이 난다. 더 정확히는 주지가 동자승과 함께 어느 골동품상을 방문했다가 동자승만 혼자 돌려 보냈는데, 다음 날이 되어도 안 돌아오던 중에 근처의 다른 절에 있는 도랑에서 주지의 옷을 걸친 여우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사건 조사가 끝난 이후, 이웃집 장례식 때문에 야나카에 온 한시치는 여우의 시체가 발견된 도랑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고 있는 동자승을 발견하게 되는데...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분량에 대한 점만 빼면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크게 특별한 면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다. 이런 종류의 괴담은 아무래도 예측하기 너무 뻔하기도 하고. 나름 주목할 부분이라면 에도 시대에도 종교 내부적 갈등이 있었고, 그게 생각 이상으로 과격했다는 점. 그리고 사소한 부분에서 발생한 오해가 생각 이상으로 별거 아닌 것을 이상하게 만든 다는 것이다.

한겨울의 금붕어

하이카이(일본 정형시인 하이쿠의 특정 스타일.) 사범인 기게쓰는 아는 골동품상으로부터 겨울에도 키울 수 있는 금붕어를 팔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게쓰와 여급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다. 그 어떤 단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주변 사람을 조사하던 중, 한시치는 현장을 처음 목격한 골동품상으로부터 금붕어 얘기를 듣게 된다. 예정대로 겨울에도 키울 수 있는 금붕어를 기게쓰를 통해 다른 이에게 팔았지만, 그 다음 날 바로 죽어버려서 난처했다고 하는데...

굉장히 이상한 인간 관계로 인한 파국으로 밝혀져 의외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겉만 보고서 알 수 없는 일은 꽤 있다. 점잖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파렴치한이었다던지, 수상쩍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 어떤 결점 없이 깔끔하게 사는 사람이었다던지. 이런 편견 아닌 편견 때문에 무슨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충격 받을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결국 금붕어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지만 나름대로 이 사건을 상징하는 하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게 대체 뭐라고 그렇게 소란을 피워가며 사람을 죽일 만한 일이었을까. 가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 사소한 부분에서 너무 심각해진 것이다. 이렇듯 금붕어에 대한 문제도 그냥 건강하게 잘 크는 것이었는지 그것만 따졌으면 별 상관 없는 일이다. 겨울에도 키울 수 있는 금붕어냐 아니냐. 이걸 굳이 물고 늘어져 봤자 불필요한 분쟁과 이상한 사람 취급만 돌아올 뿐이다.

에도가와의 보라잉어

늦은 밤, 우시고메 무료지 문전 마을의 짚신 가게에 누군가 찾아온다. 혼자 있던 안주인 오토쿠가 누구인지 확인해 보니 어떤 여자였는데, 꿈에서 보라색 기모노를 입은 기품 있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이곳에 있으니 와 달라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오토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남편이자 가게주인인 도키치는 요즘 장사가 안 돼서 낚시가 금지된 에도가와 강에서 몰래 보라잉어를 잡아다 팔고 있었고, 지금 부엌에 어제 잡은 잉어 한 마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마치 옛날 이야기의 한 부분 같은 느낌이다. 물고기를 낚았는데 갑자기 말을 해서 살려주면 큰 보상을 해주겠다. 아니면 어떤 동물을 잡았는데 그 동물의 배우자가 사람으로 나타나 돌려 보내 달라고 부탁하거나. 그저 옛 설화나 전설이었다면 기묘한 이야기 중 하나겠지만, 이 소설 속 사건으로 나온 이상 그렇게 훈훈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고 마는 사람들이 꼭 있다. 여기서는 보라잉어 하나로 엮인 복잡한 관계가 엎치락 뒤치락 하는 형국인데, 겨우 이거였다는 진상이 많아서 어이없게 보일 만하다.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했다면 타이밍 맞게 적당히 손을 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사서 파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결국 막을 수 없나 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지 않은가. 마음이 급해지면 침착하지 못해서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는 모양이다.

외눈박이 요괴

새를 파는 가게인 노지마야에 어느 무사가 방문해 귀한 매추라기를 구매하고서 내일 아침에 모처에 가지고 가야 하니 오늘 밤 중으로 배달해 달라고 한다. 그렇게 밤 중에 가게 주인 기에몬은 안내인과 함께 무사의 집에 도착한다. 무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은 낡은 집이라 여기며 한참을 기다리던 중, 어느 소년이 들어와 방에 걸린 족자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기에몬은 보다 못해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가 기절하고 만다. 소년의 얼굴이 외눈박이였기 때문이다...

제법 무서운 이야기와 강도 사건이 얽힌 것 치고는 해결 과정이 너무나 싱겁다. 단서 하나로 유추해서 줄줄이 엮여 나왔다 해도 너무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보여줬다는 인상이 강하다. 유독 분량이 짧다 보니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이게 딱 적당한 말이라고 본다. 괜히 불필요한 사족을 덧붙였다가 나름 완벽 범죄의 덜미를 잡혔으니 말이다. 그냥 범죄라면 몰라도 괴담까지 같이 있어서 더욱 번거로워 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있겠다. 하나를 계획하는데도 준비가 많이 필요한데, 두 개면 어떻겠는가.

단발뱀의 저주

에도에 콜레라가 유행한 탓에 단발뱀 전설로 인해 한산했던 고비나타의 스이도초에 위치한 히카와 신사에도 참배객이 몰린 때였다. 인근에 있는 담배가게의 모녀와 여급이 히카와 신사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단발뱀과 마주치고 만다. 다행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후 팔손이나무 잎을 달아두면 좋다는 소문이 돌아 담배가게에서도 똑같이 했는데, 바로 다음 날에 팔손이나무 잎에 글자가 적힌 듯이 벌레가 먹어 있었다. 딸이 죽는다고...

전염병이 도는 배경 속에서 벌어진 저주 관련 사건이다 보니 제법 흉흉한 괴담처럼 보였다. 어두운 밤의 길거리에서 무언가와 마주쳤다는 이야기조차 이 당시에 충분히 공포였을텐데, 매일매일이 죽음의 연속이던 전염병 유행 시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변사, 살인, 병사, 범죄.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얽혀 다소 부풀려진 범죄였지만 어째 가해자들이 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해서 묘하다. 그냥 인과응보를 당했다고 보면 되겠지만,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라는 점도 그렇고 소문으로 돌던 저주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사실은 저주가 실제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발뱀이 자신을 사칭한 이들에게 진짜 벌을 내린 거라고 말이다.

사라진 두 여자

고가네이의 벚꽃을 보러 길을 나선 한시치와 부하들은 이왕 멀리 온 김에 근처의 가까운 역참이 있는 후추까지 가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거기에서 못된 아버지 때문에 자살하게 된 딸과 연인인 에도 포목점 아들의 유령이 나온다는 집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이후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되어 한시치는 에도의 술도매상 마님이 후추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특정 장소에서 연달아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유력 용의자가 금방 좁혀질 것으로 보였지만, 생각 이상으로 얽힌 인물이 많아서 놀랍다. 아무래도 사건 장소가 유명 관광지라는 점에서 의도치 않게 겹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파가 많은 곳에서는 아는 사람끼리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알게 되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이런 점을 이용해 은근슬쩍 일을 저지를 만하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지독한 사람끼리 연결될 수도 있는 걸까. 사건 관계자 대부분이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누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소수의 몇 명은 진짜 피해자라고 할 만한 부당한 피해를 당했기에 아예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나쁜 사람들끼리 모의 했다가 더 지독한 사람이 뒤통수를 쳐서 버려진 것을 과연 피해자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정도가 다를 뿐이지 똑같은 사람끼리 만났기에 벌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중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 역시 죽어도 혼자 죽지 않겠다는 원망이 담겨 있어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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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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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란 표현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내는 아이디어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나폴리탄 괴담이다. 핵심에 해당되는 부분이 빠진 채로 이야기가 끝나다 보니 그 찜찜한 맥거핀에서 오는 꺼림 직함이 매력인 괴담이다. 그 만큼 창작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여기서 파생된 매뉴얼, 규칙 괴담을 보면 또 그렇게 보이지 않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그저 쉽다. 이게 바로 방심이자 발전 없이 매너리즘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일정 규격이 잡히고 그 안에서 계속 똑같은 형태로 돌기만 하니 새로운 작품이 나와도 그게 그거라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스타일이 나왔다고 거기에만 주목하기 보다는 거기서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걸 성공시킨다면 그 아이디어는 잠깐의 유행이나 심심풀이가 아니라 확고한 스타일로 자리 잡는 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한 형태의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던 내용이라 초반 내용은 많이 익숙하다. 이미 접해본 경우가 꽤 많다 보니 이 책이 출간됐다고 들었을 때 기대가 많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면으로 주목 받은 스타일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내용을 그대로 재탕한 초반 말고는 또 다른 도면과 사건을 다루는 옴니버스 스타일로 이어진 도면 괴담 단편집. 그런데 막상 읽어본 내용은 전혀 다른 구성이었다. 맨 처음 시작된 도면으로부터 쭉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다.

출판사의 아는 지인이 구매 예정인 집의 이상한 점을 알아보기 위해 평면도를 받아온 나. 건축회사에 다니는 지인인 구리하라와 함께 수상쩍은 점을 알게 되고, 다소 섬뜩한 추측까지 나오며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의심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지인의 집 구매가 취소 되면서 집에 대한 의구심은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얼마 뒤, 문제의 이상한 집에 대해 쓴 기사를 보고 어떤 여자가 찾아온다. 자신의 남편이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살해 당한 것 같다면서...

내용 전개상 평면도의 중요도가 높은 편이라 책으로 이걸 어떻게 나타낼지 궁금했는데, 중요 포인트마다 평면도 그림을 잘 배치해서 몰입하기 좋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처음 보여준 것 외의 다양한 평면도를 제시해 더욱 흥미롭게 하고. 상세한 포인트를 짚을 때도 그에 맞는 그림이 잘 제시되어 있어 금방 이해하기 쉽다. 단순히 그림으로 분량을 때우는 것이 아니고, 평면도라는 소재의 일관성을 지키며 스토리를 확장시킨 부분에서 꽤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괴담에서 점차 미스터리처럼 진행되긴 하지만, 공포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며 결말을 내기에 아주 좋게 봤다. 현실적인 면과 오컬트를 넘나들며 어느 한 쪽 만으로 설명되지 않은 복합성 있는 공포가 참 특이했다. 이게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토리 안에서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자연스러운 연결을 보여줘서 감탄했다. 작중에서 벌어진 사건이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가진 다는 것도 나름 주목할 점이다. 가족,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하면 특정 집안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사회적으로 보면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뉴스를 보면 가끔 나오는 일명 작은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사고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가족과 집안도 사회는 사회니까.

이 작품이 평면도에 대한 해석을 통해 나온 섬뜩함으로 주목 받다 보니 리얼리티 있는 현실성을 바라는 경우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질 만도 하다. 엄청난 현실 범죄 스토리라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오컬트가 얽힌 흔한 무서운 이야기였다고. 하지만 이건 알아둬야 한다. 괴담이나 공포에 완전한 현실성을 따지는 건 애초에 무리다. 공포란 상상의 영역을 통해 더욱 넓혀가는 것인데, 지나치게 현실성을 따지면 확장성이 떨어져 오히려 재미 없어진다. 또한 묘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 괴담의 정석이라 완벽한 결말을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현실성에 대해서는 호불호의 영역일 뿐, 완성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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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개 매그레 시리즈 5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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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모를 위협은 공포 그 자체다. 뚜렷한 인과관계나 동기를 알 수 없으니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게 언제 끝날지 몰라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이유를 찾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사실과 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기 급하다. 불길한 상징이나 존재라 불리며 멸시 받는 것들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진짜 아무런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이 있을까? 어떤 일이든 원인과 결과가 있다. 단순하게 공포만 부각되며 객관성이 결여되다 보니 그 만큼 밝혀지지 않은 사연의 깊이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늦은 밤 항구도시 콩카르노에서 카페를 나선 포도주 도매상 모스타구엔이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서는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빈집에 누군가 있었던 흔적이 전부. 범행 동기 역시 알 수 없는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 주변을 배회하는 누런 개만 눈에 띌 뿐이다. 이후로 모스타구엔과 친분이 있던 지역 유명인사 한 명, 한 명이 피습을 당하고, 그 현장에 언제나 누런 개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불길한 존재로 취급하게 되는데...

지역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굉장히 소란스럽게 진행되는 사건이라 혼자 관점을 다르게 보는 매그레 반장이 유독 눈에 띄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분위기만 보면 극악무도한 대사건이 벌어진 걸로 보일 만하다. 누런 개라는 부분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고 수상쩍은 요소가 있어 보이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거창한 것들은 매그레 반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다. 제 아무리 침착하지 못하고 성급한 상황이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사람 사는 이야기.

매그레 반장 시리즈 역시 엄연히 추리소설임에도 작중에서 추리를 경계하라는 듯이 말하는 부분이 나와서 여러모로 묘하게 보였다. 그냥 보면 생각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나친 억측을 조심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작중의 대부분은 억측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소문이 진짜인 것처럼 떠돌고, 몰려든 신문 기자들의 취재 경쟁까지 합쳐져 더욱 과열되어간다. 이건 지금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객관성은 전부 무시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며 자극성만 부추기는 추리가 남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타지역에 파견 나와 있는 상황이다 보니 오래 같이 일한 베테랑이 아닌 신참 형사와 같이 다녀서 나타나는 방식의 차이도 꽤 재미있는 부분이다. 매그레 반장은 하던 특유의 방식 그대로. 반면 신참 형사 르루아는 당연하면서도 정석적인 수사방식을 고수하면서 반장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딱히 옛날 사람과 요즘 사람의 대립 같이 불편한 구도는 아니다. 서로의 방식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라 보통 경찰과 매그레 반장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는 연출이라 보면 되겠다.

뚜렷한 실체 없이 퍼져나가던 공포 속에서 밝혀진 진실은 추잡한 범죄에 휘말려 삶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드라마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그만인 불한당들은 아무렇지 않게 큰소리 치며 살아가는 현실. 이런 와중에 한때의 유흥으로 끝난 걸로 알고 있던 과거의 사건 당사자가 다시 돌아온다면 가장 두려워할 사람은 누구인가. 사실상 비겁한 겁쟁이들로 인해 벌어진 하나의 촌극이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참으로 비열한 사건이라 그런지 권선징악 하나 만큼은 제대로다. 다소 공정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매그레 반장은 해피 엔딩을 보고 싶어 했고, 이건 독자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무엇보다 작중의 드라마는 결말을 향해 꺼져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니 매그레 반장은 보고 싶었을 것이다. 불행하게 중단 됐다가 다시 시작되는 드라마의 첫 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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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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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복잡해 보이는 사건. 그 어떤 가능성도 부정 되는 전대미문의 완벽 범죄. 미스터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진상을 보면 너무 과장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별거 아닌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는 편이다. 과연 이걸 만족 시키는 미스터리란 존재하는 걸까? 있다면 과연 어떤 식일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매우 어려워 보이던 것이 별거 아닌 경우가 있다면, 별거 아닌 것이 매우 어렵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 작품의 메인 트릭은 추리 관련 작품을 많이 본 경우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름이 아니라 유명 추리만화인 <소년 탐정 김전일> 초창기 연재분에서 이 소설의 트릭을 도용한 건으로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단한 트릭의 원조인 소설은 어떤 내용일지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꽤 늦어진 지금에야 읽게 됐다.

점성술을 맹신한 화가 우메자와 헤이키치는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동기를 가지고 자신의 딸들을 토막살인 한다는 아조트 계획을 기록으로 남긴다. 문제는 실제로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헤이키치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 이후였다. 게다가 헤이키치 살해와 아조트 살인 중간에 벌어진 수상한 강도 살해 사건까지 더해 총 3개의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관련 인물들에게는 전부 알리바이가 존재했고, 그 어떤 가능성 모두가 부정 당한 채 오랫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이 이야기를 사건 관련자의 가족으로부터 듣게 된 점성술사 미타라이 기요시는 사건 해결에 도전하게 되는데...

이미 벌어지고 나서 시간이 꽤 흐른 미제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라 그런지 시작부터 꽤 빠르게 사건에 대한 검토로 들어간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추리와 부정을 연이어 보여주며 만만치 않은 사건임을 보여준다.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는 해석. 점성술, 연금술 같은 상징성 같이 꽤 어려운 내용까지 나와서 사건의 복잡함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스토리 구조만 보면 쓸 때 없이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작중에서 벌어진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한 자세한 조사 자료와 해석이자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이 꽤 길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단서를 찾아 해매는 과정인 중간 부분은 불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마지막 해결과 해석에 대한 부분은 핵심 트릭을 빼면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이 작품 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유명세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걸 먼저 생각해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저 책 분량만 늘리려고 장황하게 했는가, 아니면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장황하게 만들었는가.

이 소설의 주연인 미타라이와 이시오카의 관계를 보면 영락 없는 홈즈와 왓슨이다. 그런데 정작 사건 수사를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주는 건 왓슨 포지션인 이시오카고, 정작 홈즈 포지션인 미타라이는 주인공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스토리 상에서 너무 동 떨어져 있다. 탐정의 멋진 활약상을 기대하는 경우라면 미타라이를 보고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대체 뭔가 싶은 인상을 넘어, 그저 마지막에 정답지만 보여주는 이름만 주인공인 조연 내지 단역으로 보일 만도 하니까. 하지만 이게 과연 작가가 대충 만든 설정이라 이럴까?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홈즈와 왓슨이라는 정석이자 진부한 구도를 작가 만의 스타일로 재정립 시킨 것이 아닌 가 한다. 왓슨 포지션이 그저 독자의 입장을 대변한 걸 넘어 표면적인 가능성과 해석의 극한을 끌어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후에 나올 해답의 충격을 극대화 시킨다고 본다. 반면 홈즈 포지션은 사건 개요와 작은 힌트 하나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사건도 별다른 노력 없이 해결이 가능하다고 어필하며 희대의 천재라는 걸 보여준다.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에서 다루는 건 미제사건이다 보니 더욱 노력할 필요가 없게 나타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간다면 모를까, 시원시원한 과정이 없어서 답답하고 해결이 뜬금없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면 별다른 재미를 못 느낄 만하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과정과 진실을 보면서 불가능 범죄라는 것이 진짜로 치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핵심을 보지 못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사건 안에는 이런 저런 요소가 많고, 그 중에는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사람이 벌였는지 의심될 정도로 자극적인 면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범죄 사건을 접하면 이 자극성에 제일 먼저 휘둘리게 된다는 점이다. 단순 흥미를 넘어 사건의 본질을 자극적인 부분에 맞춰 해석하게 되버리는 것이다. 이 점성술 살인사건 역시 그렇다. 온갖 오컬트 요소와 상징성, 잔인성, 음모론이 판치는 형국이지만, 진상을 보면 그저 현실적인 범죄다. 이 현실성을 가려버리는 건 다름이 아니라 곁가지를 계속 쌓아 올리는 대중의 시선이다.

과연 신본격 미스터리라는 흐름을 이끌어낸 역할을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문제 풀이가 전부라는 걸로 보일 수 있으면서, 예리하게 맹점을 지적해 치고 들어가며 선사한 놀라움은 큰 충격을 줄 만 했을 것이다. 비록 발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뒤늦게 재평가 된 경우지만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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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집 스토리콜렉터 33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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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이야기 안에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그 연관성에 대해 주목할 수밖에 없다. 창작물 사이에서는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괴담 같은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연관성이 되어 버린다. 이 유사성 만으로도 이미 섬뜩함을 준다. 단순 우연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 예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람이 알 수 없는 불가해한 무언가가 작용하기라도 했다는 말일까? 눈에 확 띄는 유사성이라면 그나마 신기하다고 여기며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유사성이라면 어떤 느낌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없는 것 같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무언가. 이건 괴담에 나오는 괴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애독자였다고 하는 편집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자주 만나게 된다. 주로 나의 작품에 대해 얘기만 하다 보니 금방 대화 소재가 줄어들더니, 곧바로 괴담에 대해 넘어간다. 괴담마저 할 얘기가 떨어질 무렵, 편집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서로 다른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느냐고. 하나는 고모님이 가지고 있던 대학노트에 적힌 어느 주부의 일기.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의 장서 속에서 발견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가 적힌 속기원고.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과연 기이한 연관성이 있었는데...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는 듯한 작풍과 실제로 존재한 듯한 기록을 보여주는 형식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봤던 스타일이다. 창작이지만 실화 같이 보이게 강조하는 의도라고 하는데, 유독 이 작품은 그런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건 아무래도 연관성 문제 때문일 거라고 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창작물이라는 인식하고 보면 단순 장치나 작풍 스타일로 보여져서 별거 아니게 생각될 만하다. 그렇기에 연관성 문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실제성을 더욱 강조할 필요성이 있던 것이다. 실화 만큼이나 이상한 것과의 연관성이 생기면 기묘함과 흥미를 발생 시키는 건 없으니까.

어머니의 일기 ― 저편에서 온다

교토에 살다가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온 일가족. 볕이 잘 드는 새집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둡다는 느낌이 있다. 점차 집 안 여기저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시선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아이가 혼자 노는 걸로 알았지만, 알고 보니 어딘가를 향해 말을 하고 있던 것인데...

이사 온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 정석적인 괴담의 소재 거리 중 하나다. 다만 여기서 나오는 집은 오래된 집이 아니라 새로 지은 집이다. 그렇다 보니 집 자체의 문제보다는 위치, 또는 땅 자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이면 없애고 다시 지으면 그만이겠지만, 땅이라면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 땅을 갈아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서 거기서 무엇을 하던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날 수밖에 없겠다.

집 안의 아주 사소하게 어두운 부분과 명확한 경계를 알기 어려운 울타리라는 것에서 다가오는 긴장감이 묘하다. 대놓고 무섭거나 불길한 거라면 어떻게든 피할 방법을 찾겠는데, 뭔가 애매한 선이 있으면 쉽게 방심하고 만다. 그냥 방치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적당히 막아 놓으면 안전하다는 안일함이 생기는 것이다. 이 불안정한 안전과 미묘한 공포가 줄타기를 하며 발생하는 긴장감이란. 마치 꺼림직한 것이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다가오는 충격은 꽤 크게 다가온다. 아무 것도 몰랐던 경우와 뭔가 있는 걸 알고 있지만 당장 위험하지는 않다고 여긴 경우의 차이는 상상 그 이상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에 일어날 법한 또 다른 형태의 아동 방임 문제와 자극성에만 집중하는 언론의 모습이 부각된 괴담 같기도 하다. 대놓고 아이를 방치하면 사회적으로 욕을 먹으니까 겉으로만 안 그렇게 보이게 하는 방식. 이게 한 끝 차이로 선의와 악의가 갈리다 보니 실제로 이런 일을 당하거나 목격하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중의 시간대가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는 탓에 저출산이 심해진 요즘에도 가능할 일인지는 살짝 의문이긴 하다. 언론의 문제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정도로 보인다. 사건의 핵심을 안 보고 그저 추측성 보도와 욕해야 될 사람만 부각하는 모습 말이다.


소년의 이야기 ― 이차원의 저택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이시베 호타. 목수 일만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아버지와 학교 공부 역시 중요하다는 할아버지 사이에 끼여 둘 다 잘 하려고 열심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게 하려는 입장이라 점차 서운함이 커지고 있다. 이런 탓에 반항심이 생긴 건지 친구들과 늦게 까지 숲에서 놀다가, 마을에서 소문으로 돌던 와레온나라는 괴물에게 쫓기게 된다. 그러다 근처의 좋지 않은 소문이 돌던 신케이 저택으로 도망쳐 오게 되는데...

스토리 구조만 보면 괴이한 존재와 마주친 아이의 생존기다. 제법 단순해 보이는 내용이나 꽤 스릴 넘치는 전개와 묘사로 긴장감이 끊기지 않는다. 우중충한 빛과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이 섞인 해질 무렵의 음산한 분위기. 와레온나라는 괴이 그 자체의 존재감. 다소 예측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변수와 반전으로 인한 소름. 사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추격전이나 도주 장면을 글로 나타내다 보면 그저 상대와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지고, 어떻게 따돌려야 하는 문제만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잘못하면 금방 지루해지기 쉽다. 적당히 끊거나 긴장감이 유지되도록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하는데, 이 작품은 한결 같은 무서운 분위기를 잘 끌고 가서 빨려 들어가듯이 계속 보게 된다.

후반부에 와레온나와 별개로 기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신케이 저택은 공간 그 자체 만으로도 압박감을 줘서 인상적이다. 외관과 내부가 멀쩡한데 의미를 알 수 없는 가구나 물품들이 있고,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지지 않아 서늘함이 맴돈다. 현실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이 부분이 다소 짧고 더 자세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다 보니 결말이 허무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괴담 하나만으로 완결이 나는 단편이었다면 모를까, 전체적인 연계성을 알아보기 위한 하나의 조각이기 때문에 큰 단점이 되는 건 아니다.


학생의 체험 ― 유령 하이츠

약 이십 몇 년 전, 어느 연립 주택에 살았던 사람이 겪은 이야기다. 당시 학생이었고, 입시 실패로 지방으로 내려가 대학에 다니게 됐다. 문제의 연립주택의 이름은 카도누마 하이츠로 집세를 비롯해 모든 것이 싸다는 점에 혹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집 크기에 비해 거주자가 상당히 적어 보이는 분위기에, 가끔 식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신경이 쓰이게 된다...

대놓고 수상쩍은 집에 대한 괴담이다. 아마 이상하게 집세가 싸다는 점에서부터 감을 잡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통 멀쩡한 외관을 하고 시세에 비해 집값이 싼 경우라면 이런 의미니까. 무슨 일이 생겼던 곳. 어떤 사연이 있는 곳.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는 곳.

현대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주거 방식이 흔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소음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소음의 출처가 대응이 불가능한 곳에서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심하면 항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다가 말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소음 문제는 단순히 불편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기도 한다. 혹시나 위협을 가할지 모를 존재라면 반드시 확인을 해둬야 한다. 자기 방어와 이후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다. 웃기는 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무서운 일을 당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된다는 거다.

이러한 소음의 딜레마 외에도 이 괴담에서 무서운 점이라면 괴이의 주관적 판단이다. 무서운 일이 발생하는데도 그럴 만한 규칙이 있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이건 안 된다, 이건 하면 안 된다, 이건 괜찮다,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런데 이 규칙이라는 것이 언제나 일정하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면 골치 아파진다. 그러니까 규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만 그걸 판단하는 괴이가 애매하게 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옛날 이야기에 간혹 이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죽을 사람이 아닌데도 착각해서 잡아가는 저승사자라던가. 신체 특징만 보고 사람을 찾다가 전혀 관련 없는 이에게 붙는 귀신이라던가. 사람이라면 뭔가 잘못 본 거라고 설명할 기회라도 있겠지만, 괴이는 대부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이렇다 보니 무서운 이야기 중에서 이런 경우가 제일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셋째 딸의 원고 ― 미츠코의 집을 방문하고서

타 지방에 있는 친척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다가 거기서 신흥 종교의 교주까지 되버린 어머니 미츠코. 그런 어머니로부터 코우시 님의 의식에 참여하라고 부름을 받은 셋째 딸 사오리. 어머니를 찾으러 간 가족이 한 명, 한 명 돌아오지 않다가 마지막 남은 남동생 마저 몰래 데려간 상황이다. 결국 남동생을 찾아온다는 이유로 가보게 된다. 그런데 막상 문제의 집에 도착하니 그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전혀 없었는데...

수상한 종교로 시작한 것 치고는 집에 대한 부분이 더 돋보이는 내용이다. 물론 종교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문구가 곳곳에 나타나고, 모든 것은 집에서부터 시작된 거라는 언급이 있기에 딱히 서로 다른 건 아니다. 종교 문제가 곧 집에 대한 문제고. 집에 대한 문제가 곧 종교 문제인 것이다. 이와 별개로 사람이 많아 보이던 집이 텅 비어 있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또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코우시님이라 언급되는 존재와 문제의 종교에서 정한 규칙을 보며 느껴지는 건 단순한 두려움으로 인한 믿음에 가깝다. 신의 천벌, 기적 같은 경이로움이 아니다. 그저 미신 같은 저주가 실제로 벌어져서 느끼는 당혹감과 충격이다. 이런 점 때문에 대체 작중의 종교는 어떤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코우시님이란 대체 어떤 존재, 혹은 괴이인지 두렵기까지 하다. 작중에 묘사된 부분만 봐도 충분히 무서운데, 대체 어떠한 면에서 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을지. 신비로움과 초월적인 공포는 정말 한 끝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의 기록 ― 어느 쿠루이메에 대하여

조모의 먼 친척에 해당되는 추고쿠 지방의 모 가문에 쿠루이메라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갑자기 산에서 실종됐다가 돌아온 딸이 낳은 아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평범한 아이 같지 않은 얼굴에 거동도 이상해 주위에서는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그러던 와중에 그 아이가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언하던 말이 실제로 벌어지면서 더더욱 꺼림 직한 시선을 받게 되는데...

집이란 공간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 메인이 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언급되던 괴이의 근원을 다룬 내용이나 다름 없다. 스토리 구조 역시 그에 걸맞게 어딘가 이상하다 못해 불길한 아이의 탄생과 그 일화를 다룬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늘 일방적인 피해자와 가해자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언제나 똑같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위한 근거를 나타내면서 괴이의 원한을 강조하려는 형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괴이가 누가 봐도 꺼림 직한 느낌이 강하다 보니 안타까운 부분이 있으면서도 결국은 기이한 괴담 같은 이야기가 되버릴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예언을 하는 자는 많은 이들이 불길하게 여겼다고 안다. 그냥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경고해서 도움을 주는 거라면 모를까, 사적인 감정이 담긴 저주로서 재앙을 내리지 않을까라는 인식이 종종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많은 이들에게는 꿈과 같은 능력이기도 하다. 말 한 마디로 원하는 걸 다 이룰 수 있다니. 그러나 이 괴담에 나타난 모습만 보면 마냥 좋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때로는 타인에게 이용 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탓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타인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저주이자 곧 불행이나 다름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히 불행한 어떤 이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괴담이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불행이라고 했지만, 이 불행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이걸로 혼자만 불행해진다면 사연이겠지만, 더 많은 이들을 같이 끌어들이는 불행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했다면. 그건 진정 괴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괴담을 토대로 진행된 미스터리 탐구는 현실적인 추리와는 또 다른 방식의 추리를 보여준다. 보기에 따라 명확한 증거나 근거가 부족한 알맹이 없는 추리라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구조 자체는 꽤 나쁘지 않다고 본다. 서술 방식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하는 부분이나,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가 단서가 되어 대략적인 추측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며 놀라웠다.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이러한 추리가 가능하다니. 무엇보다 실체가 불분명한 괴이인 만큼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더 그럴싸하다는 것이 체감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추리에서 범인에 해당되는 결론이 다소 김빠지게 정리되서 흠으로 보일 만 하나 이건 작가가 추구하는 호러미스터리의 결론 내리는 방식이다 보니 그러려니 할 만하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공포가 메인이라 현실적인 해석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현실적인 해석이 된다면 그건 곧 괴이가 아니게 되니까. 한편으로는 이 작품 이후에 나온 속편들은 어떻게 이어질지도 궁금해진다. 시리즈 이름이 유령저택 3부작이라고 했으니 아마 다른 집이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도, 이 작품에 나온 무언가가 또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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