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집 스토리콜렉터 33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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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이야기 안에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그 연관성에 대해 주목할 수밖에 없다. 창작물 사이에서는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괴담 같은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연관성이 되어 버린다. 이 유사성 만으로도 이미 섬뜩함을 준다. 단순 우연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 예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람이 알 수 없는 불가해한 무언가가 작용하기라도 했다는 말일까? 눈에 확 띄는 유사성이라면 그나마 신기하다고 여기며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유사성이라면 어떤 느낌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없는 것 같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무언가. 이건 괴담에 나오는 괴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애독자였다고 하는 편집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자주 만나게 된다. 주로 나의 작품에 대해 얘기만 하다 보니 금방 대화 소재가 줄어들더니, 곧바로 괴담에 대해 넘어간다. 괴담마저 할 얘기가 떨어질 무렵, 편집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서로 다른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느냐고. 하나는 고모님이 가지고 있던 대학노트에 적힌 어느 주부의 일기.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의 장서 속에서 발견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가 적힌 속기원고.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과연 기이한 연관성이 있었는데...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는 듯한 작풍과 실제로 존재한 듯한 기록을 보여주는 형식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봤던 스타일이다. 창작이지만 실화 같이 보이게 강조하는 의도라고 하는데, 유독 이 작품은 그런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건 아무래도 연관성 문제 때문일 거라고 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창작물이라는 인식하고 보면 단순 장치나 작풍 스타일로 보여져서 별거 아니게 생각될 만하다. 그렇기에 연관성 문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실제성을 더욱 강조할 필요성이 있던 것이다. 실화 만큼이나 이상한 것과의 연관성이 생기면 기묘함과 흥미를 발생 시키는 건 없으니까.

어머니의 일기 ― 저편에서 온다

교토에 살다가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온 일가족. 볕이 잘 드는 새집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둡다는 느낌이 있다. 점차 집 안 여기저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시선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아이가 혼자 노는 걸로 알았지만, 알고 보니 어딘가를 향해 말을 하고 있던 것인데...

이사 온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 정석적인 괴담의 소재 거리 중 하나다. 다만 여기서 나오는 집은 오래된 집이 아니라 새로 지은 집이다. 그렇다 보니 집 자체의 문제보다는 위치, 또는 땅 자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이면 없애고 다시 지으면 그만이겠지만, 땅이라면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 땅을 갈아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서 거기서 무엇을 하던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날 수밖에 없겠다.

집 안의 아주 사소하게 어두운 부분과 명확한 경계를 알기 어려운 울타리라는 것에서 다가오는 긴장감이 묘하다. 대놓고 무섭거나 불길한 거라면 어떻게든 피할 방법을 찾겠는데, 뭔가 애매한 선이 있으면 쉽게 방심하고 만다. 그냥 방치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적당히 막아 놓으면 안전하다는 안일함이 생기는 것이다. 이 불안정한 안전과 미묘한 공포가 줄타기를 하며 발생하는 긴장감이란. 마치 꺼림직한 것이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다가오는 충격은 꽤 크게 다가온다. 아무 것도 몰랐던 경우와 뭔가 있는 걸 알고 있지만 당장 위험하지는 않다고 여긴 경우의 차이는 상상 그 이상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에 일어날 법한 또 다른 형태의 아동 방임 문제와 자극성에만 집중하는 언론의 모습이 부각된 괴담 같기도 하다. 대놓고 아이를 방치하면 사회적으로 욕을 먹으니까 겉으로만 안 그렇게 보이게 하는 방식. 이게 한 끝 차이로 선의와 악의가 갈리다 보니 실제로 이런 일을 당하거나 목격하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중의 시간대가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는 탓에 저출산이 심해진 요즘에도 가능할 일인지는 살짝 의문이긴 하다. 언론의 문제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정도로 보인다. 사건의 핵심을 안 보고 그저 추측성 보도와 욕해야 될 사람만 부각하는 모습 말이다.


소년의 이야기 ― 이차원의 저택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이시베 호타. 목수 일만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아버지와 학교 공부 역시 중요하다는 할아버지 사이에 끼여 둘 다 잘 하려고 열심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게 하려는 입장이라 점차 서운함이 커지고 있다. 이런 탓에 반항심이 생긴 건지 친구들과 늦게 까지 숲에서 놀다가, 마을에서 소문으로 돌던 와레온나라는 괴물에게 쫓기게 된다. 그러다 근처의 좋지 않은 소문이 돌던 신케이 저택으로 도망쳐 오게 되는데...

스토리 구조만 보면 괴이한 존재와 마주친 아이의 생존기다. 제법 단순해 보이는 내용이나 꽤 스릴 넘치는 전개와 묘사로 긴장감이 끊기지 않는다. 우중충한 빛과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이 섞인 해질 무렵의 음산한 분위기. 와레온나라는 괴이 그 자체의 존재감. 다소 예측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변수와 반전으로 인한 소름. 사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추격전이나 도주 장면을 글로 나타내다 보면 그저 상대와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지고, 어떻게 따돌려야 하는 문제만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잘못하면 금방 지루해지기 쉽다. 적당히 끊거나 긴장감이 유지되도록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하는데, 이 작품은 한결 같은 무서운 분위기를 잘 끌고 가서 빨려 들어가듯이 계속 보게 된다.

후반부에 와레온나와 별개로 기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신케이 저택은 공간 그 자체 만으로도 압박감을 줘서 인상적이다. 외관과 내부가 멀쩡한데 의미를 알 수 없는 가구나 물품들이 있고,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지지 않아 서늘함이 맴돈다. 현실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이 부분이 다소 짧고 더 자세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다 보니 결말이 허무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괴담 하나만으로 완결이 나는 단편이었다면 모를까, 전체적인 연계성을 알아보기 위한 하나의 조각이기 때문에 큰 단점이 되는 건 아니다.


학생의 체험 ― 유령 하이츠

약 이십 몇 년 전, 어느 연립 주택에 살았던 사람이 겪은 이야기다. 당시 학생이었고, 입시 실패로 지방으로 내려가 대학에 다니게 됐다. 문제의 연립주택의 이름은 카도누마 하이츠로 집세를 비롯해 모든 것이 싸다는 점에 혹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집 크기에 비해 거주자가 상당히 적어 보이는 분위기에, 가끔 식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신경이 쓰이게 된다...

대놓고 수상쩍은 집에 대한 괴담이다. 아마 이상하게 집세가 싸다는 점에서부터 감을 잡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통 멀쩡한 외관을 하고 시세에 비해 집값이 싼 경우라면 이런 의미니까. 무슨 일이 생겼던 곳. 어떤 사연이 있는 곳.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는 곳.

현대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주거 방식이 흔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소음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소음의 출처가 대응이 불가능한 곳에서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심하면 항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다가 말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소음 문제는 단순히 불편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기도 한다. 혹시나 위협을 가할지 모를 존재라면 반드시 확인을 해둬야 한다. 자기 방어와 이후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다. 웃기는 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무서운 일을 당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된다는 거다.

이러한 소음의 딜레마 외에도 이 괴담에서 무서운 점이라면 괴이의 주관적 판단이다. 무서운 일이 발생하는데도 그럴 만한 규칙이 있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이건 안 된다, 이건 하면 안 된다, 이건 괜찮다,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런데 이 규칙이라는 것이 언제나 일정하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면 골치 아파진다. 그러니까 규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만 그걸 판단하는 괴이가 애매하게 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옛날 이야기에 간혹 이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죽을 사람이 아닌데도 착각해서 잡아가는 저승사자라던가. 신체 특징만 보고 사람을 찾다가 전혀 관련 없는 이에게 붙는 귀신이라던가. 사람이라면 뭔가 잘못 본 거라고 설명할 기회라도 있겠지만, 괴이는 대부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이렇다 보니 무서운 이야기 중에서 이런 경우가 제일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셋째 딸의 원고 ― 미츠코의 집을 방문하고서

타 지방에 있는 친척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다가 거기서 신흥 종교의 교주까지 되버린 어머니 미츠코. 그런 어머니로부터 코우시 님의 의식에 참여하라고 부름을 받은 셋째 딸 사오리. 어머니를 찾으러 간 가족이 한 명, 한 명 돌아오지 않다가 마지막 남은 남동생 마저 몰래 데려간 상황이다. 결국 남동생을 찾아온다는 이유로 가보게 된다. 그런데 막상 문제의 집에 도착하니 그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전혀 없었는데...

수상한 종교로 시작한 것 치고는 집에 대한 부분이 더 돋보이는 내용이다. 물론 종교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문구가 곳곳에 나타나고, 모든 것은 집에서부터 시작된 거라는 언급이 있기에 딱히 서로 다른 건 아니다. 종교 문제가 곧 집에 대한 문제고. 집에 대한 문제가 곧 종교 문제인 것이다. 이와 별개로 사람이 많아 보이던 집이 텅 비어 있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또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코우시님이라 언급되는 존재와 문제의 종교에서 정한 규칙을 보며 느껴지는 건 단순한 두려움으로 인한 믿음에 가깝다. 신의 천벌, 기적 같은 경이로움이 아니다. 그저 미신 같은 저주가 실제로 벌어져서 느끼는 당혹감과 충격이다. 이런 점 때문에 대체 작중의 종교는 어떤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코우시님이란 대체 어떤 존재, 혹은 괴이인지 두렵기까지 하다. 작중에 묘사된 부분만 봐도 충분히 무서운데, 대체 어떠한 면에서 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을지. 신비로움과 초월적인 공포는 정말 한 끝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의 기록 ― 어느 쿠루이메에 대하여

조모의 먼 친척에 해당되는 추고쿠 지방의 모 가문에 쿠루이메라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갑자기 산에서 실종됐다가 돌아온 딸이 낳은 아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평범한 아이 같지 않은 얼굴에 거동도 이상해 주위에서는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그러던 와중에 그 아이가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언하던 말이 실제로 벌어지면서 더더욱 꺼림 직한 시선을 받게 되는데...

집이란 공간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 메인이 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언급되던 괴이의 근원을 다룬 내용이나 다름 없다. 스토리 구조 역시 그에 걸맞게 어딘가 이상하다 못해 불길한 아이의 탄생과 그 일화를 다룬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늘 일방적인 피해자와 가해자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언제나 똑같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위한 근거를 나타내면서 괴이의 원한을 강조하려는 형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괴이가 누가 봐도 꺼림 직한 느낌이 강하다 보니 안타까운 부분이 있으면서도 결국은 기이한 괴담 같은 이야기가 되버릴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예언을 하는 자는 많은 이들이 불길하게 여겼다고 안다. 그냥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경고해서 도움을 주는 거라면 모를까, 사적인 감정이 담긴 저주로서 재앙을 내리지 않을까라는 인식이 종종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많은 이들에게는 꿈과 같은 능력이기도 하다. 말 한 마디로 원하는 걸 다 이룰 수 있다니. 그러나 이 괴담에 나타난 모습만 보면 마냥 좋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때로는 타인에게 이용 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탓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타인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저주이자 곧 불행이나 다름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히 불행한 어떤 이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괴담이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불행이라고 했지만, 이 불행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이걸로 혼자만 불행해진다면 사연이겠지만, 더 많은 이들을 같이 끌어들이는 불행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했다면. 그건 진정 괴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괴담을 토대로 진행된 미스터리 탐구는 현실적인 추리와는 또 다른 방식의 추리를 보여준다. 보기에 따라 명확한 증거나 근거가 부족한 알맹이 없는 추리라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구조 자체는 꽤 나쁘지 않다고 본다. 서술 방식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하는 부분이나,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가 단서가 되어 대략적인 추측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며 놀라웠다.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이러한 추리가 가능하다니. 무엇보다 실체가 불분명한 괴이인 만큼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더 그럴싸하다는 것이 체감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추리에서 범인에 해당되는 결론이 다소 김빠지게 정리되서 흠으로 보일 만 하나 이건 작가가 추구하는 호러미스터리의 결론 내리는 방식이다 보니 그러려니 할 만하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공포가 메인이라 현실적인 해석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현실적인 해석이 된다면 그건 곧 괴이가 아니게 되니까. 한편으로는 이 작품 이후에 나온 속편들은 어떻게 이어질지도 궁금해진다. 시리즈 이름이 유령저택 3부작이라고 했으니 아마 다른 집이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도, 이 작품에 나온 무언가가 또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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