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일럼 호러 - 크툴루 신화 연대기 | 러브크래프트 서클 5 러브크래프트 서클 5
헨리 커트너 / 바톤핑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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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 있는 더비 가의 어느 낡은 박공 집. 그 곳은 17세기 세일럼 마녀 재판 당시에 사형 당한 기괴한 노파, 애비게일 프린이 살았던 집이다. 이미 300년이나 흐른 이후인데도 이런저런 악명이 퍼져 있던 이런 집에서 조용히 소설을 쓰기 위해 살던 카슨. 집안을 돌아다니는 쥐 때문에 신경 쓰여 쫓다가 지하실로 향하게 되고 거기서 숨겨져 있던 통로를 발견한다. 그 누구도 존재를 모르고 있던 마녀의 방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세일럼 마녀 재판과 크툴루 신화가 섞인 내용으로 300년의 세월을 넘어온 마녀의 공포를 보여준다. 이전부터 많이 느꼈던 것이지만, 마녀는 서양권에서 쥐와 함께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고전적인 공포 요소 중 하나다. 순화된 이미지로 익살스럽게 묘사된 경우를 많이 접하긴 했지만, 마녀를 소재로 한 유명 공포 작품을 보면 어떤 부분에서 무서운 건지 느껴지긴 한다. 언제 어떻게 말려들었는지 알 수 없는 주술. 무엇을 불러 들일지 알 수 없을 초월적인 세계를 자유 자재로 다룬다는 증거들. 이런 걸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면 그 분위기가 얼마나 기괴하고 꺼림직한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보통 지하의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은 고딕소설에서 많이 나오고, 대개 이 부분에서 결말이 나곤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오히려 무언가에 해당되는 마녀의 방을 발견하고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서 발표된 당시에는 다소 특이하게 보였을 법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이거다. 이미 숨겨진 것이 전부 밝혀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의 메인 공포 요소 중 하나가 마녀다. 즉 초반부터 주인공인 카슨은 물론이고 독자마저 마녀의 주술에 걸려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웬 불청객이 나타나 자꾸 이상한 말만 늘어 놓으며 카슨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암시와 흔적을 계속 보여주며 불길함을 더욱 커지게 만든다. 오직 상식만 통용되는 현실적인 세상에 점차 환상이 침범하며 과거의 전설로 치부 되던 마녀가 점차 실존하는 공포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심지어 카슨이 가지고 있던 회의론적 관점마저 스스로의 믿음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누군가 시키는 대로 내뱉는 건지 알 수 없어질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설마 하던 마녀의 실체와 함께 모습을 들어낸 우주적 존재는 너무 짧게 모습을 들어내고 퇴장하긴 했지만, 이 소설에 진짜 숨겨져 있던 실체로서의 강렬함은 충분하다. 오히려 이것이 제대로 밖으로 나와서 현실이 됐을 세일럼 호러가 어떤 광경일지 상상하는 게 더 무서울 정도다. 게다가 결말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카슨이 이 공포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할 만하다. 이것이 바로 마녀의 진정한 공포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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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매그레 시리즈 20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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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모습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존재한다. 백조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쉴 세 없이 발을 움직이는 걸 떠올릴 수 있지만, 이건 개인의 노력에 해당된다. 하나의 사회로 간다면 그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한다. 조금의 실수 없는 완벽을 위해 계속 움직이지만,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노력인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군가 알더라도 감사가 아닌 무시와 멸시로 돌아올 수 있을 지하 세계다. 이 화려한 조명이 밝히는 무대 위와 어두컴컴한 무대 뒤편 사이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는 다는 법은 없다.

유명 고급 호텔인 마제스틱 호텔의 직원들이 요리를 비롯한 업무 준비를 하는 곳인 지하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일주일 전부터 투숙 중인 유명 미국인 사업가 오스월드 클라크의 아내였다. 시체를 처음 발견한 호텔 커피 준비 실장인 프로스페르 동주가 유력 용의자나 다름 없는 가운데, 매그레 반장은 그에게서 뭔가 호감을 느끼고 일상 속으로 접근해 간다. 그렇게 프로스페르와 그의 동거녀인 샤를로트가 클라크의 아내와 함께 했던 과거가 밝혀지는데...

19권을 끝으로 은퇴하고 경찰을 떠났던 매그레 반장이 다시 돌아왔다. 파리 경찰청 사무실, 리샤르르누아르 가의 자택 같은 익숙한 장소들. 다양한 사건을 함께 했던 눈에 익은 형사들. 모든 게 이전과 그대로라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정확히는 은퇴했다가 복귀했다는 설정은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평소 반장 시절의 일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걸 보면, 은퇴 이전 시간대에 있었던 사건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고 보면 된다. 은퇴했다는 결말은 그대로 남는 동시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매그레 반장을 봐도 어색하지 않으니 꽤 나쁘지 않다.

상류층과 서민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흔하고 흔한 드라마가 떠오를 것이다. 부자 재벌과 결혼해 도망간 여자. 그 여자에게 버림 받은 남자.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재회해 벌어진 사건. 뻔한 결과가 보이는 듯하고, 작중 인물 대부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매그레 반장은 단순하게 결론 짓지 않는다. 주요 인물 하나하나의 삶을 들여다 보며 겉으로 보이는 연결 고리 이외의 다른 관점을 찾아내려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얼마나 편견으로 가득했던 사건인지 알게 된다.

프로스페르 동주는 일상에서 흔히 볼 법한 소시민 그 자체다. 살기 위해 별 수 없이 하게 된 여러 일들을 전전하는 삶에, 결혼해서 아이 하나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다. 한편으로 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크면서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지내는 순수함이 강하다. 이러한 면을 가진 동주이기에 매그레 반장이 관심을 가지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소처럼 어떤 인물이 살아온 드라마를 살펴보는 것이면서도 이번에는 다소 특별하다. 과연 이 사건에서 동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나. 조금이라도 뭔가를 했다면 그건 어디까지인가. 이건 다른 이들처럼 범행을 단정 짓는 게 아니라, 동주의 삶과 행적을 비롯한 존재 그 자체를 단서로서 조사하는 것에 가깝다.

상류층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며 움직이는 매그레 반장의 행보는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든다. 뭔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옆에 누가 있어도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하고, 별거 아닌 일상 풍경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며 관찰하는 모습 역시 여전하나 묘사에 진지함이 한층 더해져 보인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능청 떠는 유쾌함도 더욱 강해진 느낌이라 몇몇 장면에서는 정말 웃기게 보였다. 이렇듯 이전보다 한층 다채로워진 묘사 때문인지 드라마 부분 역시 내용 자체는 단순하면서 깊이가 느껴진다. 동주와 샤를로트의 비슷하면서 다른 사랑의 아픔. 의외인 면이 많은 미국인 갑부 클라크. 생각 이상으로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주요 마제스틱 호텔 직원들. 누구나 열심히 살아가며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걸로 멋진 드라마 한 편이 나와서 참 대단하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을 보면 이런 생각이 확 든다. 세세한 조사로 밖에 알 수 없던 사실이 꽤 있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상황을 봤을 때 진짜 범인으로 보일 사람은 딱 봐도 코앞에 있지 않던가. 또한 각종 조사 자료가 나오는 부분을 다시 돌아 보면 이 사람이 범인이겠구나 하는 게 확 들어온다. 물론 이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 있긴 하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대충은 짐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일부러 중간 쯤부터 알아볼 만한 복선을 미리 던져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과연 상류층과 서민이 엮인 사건이라는 자극성 속에서 이걸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잘 사는 사람이라 거만하다. 못 사는 사람이라 손버릇이 나쁘다. 논점 파악부터 잘못된 이 사건의 흐름을 보면 이런 걸로는 사람을 판단할 근거가 못 된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존재하긴 한다. 그걸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겉만 보고서 판단하고자 하는 건 엄청난 편견이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을 모독하는 거다. 모두가 부러워할 수준까지는 못 되더라도 자신이 만족할 만한 무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말이다. 이러한 무대를 평생 노력한다 해도 가지지 못한다면 다 그럴 이유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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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빵나무 열매 한바구니 아라한 호러 서클 154
조지 루이스 베케 / 바톤핑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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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 제도의 가장 큰 섬인 사바이 섬의 서쪽 끝에 살고 있던 어느 상인이 수도로 가던 중, 썰물로 인해 수도 인근에 위치한 뮐리니에 정박하게 된다. 거기서 토착민들과 담소를 나누던 상인은 자신이 좋지 못한 곳에 산다며 놀림을 당하자 신붓감을 소개해 주면 땅을 사둔 사푸네로 가서 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느 애꾸눈의 노파가 자신의 딸을 소개해준다고 하는데...

1894년에 출간된 단편집 <암초와 야자수 By Reef and Palm>에 수록된 작품으로 얼핏보면 간단한 반전이 공포 요소의 전부라 시시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찾아보면 작중의 빵나무 열매 바구니가 얼마나 큰 비극을 상징하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에 왕국이 형성되어 있던 사모아 제도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내전을 겪었다고 한다. 모래톱 가까이에 있으면 총에 맞을지 모른다는 부분이나 말리에토아 군대가 언급된다는 점에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생각하면 1886년부터 1894년까지 벌어진 1차 사모아 내전 시기가 배경이라고 본다. 특히 그 시기 중에서 1889년에 몰아친 태풍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망명을 떠났던 사모아의 국왕인 말리에토아 라우페파가 다시 돌아온 이후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보면 주인공인 상인은 사모아의 서쪽에 있는 섬인 사바이 섬에 거주하고, 수도가 위치한 곳은 동쪽에 위치한 우폴루 섬이다. 또, 마누누라는 지명이 언급되는데 이곳은 사바이 섬과 우폴루 섬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내전 당시에는 온갖 이권이 우폴루 섬에 모여 있었기에 대체로 수도인 아피아와 주변 외곽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기에 사바이 섬에서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거나 아니면 여파를 피해갔을 수도 있겠다. 또, 마누누섬은 내전의 패자인 마타아파 이오세포와 그의 지지자들이 도망친 섬이라 하니 당시 사모아 내에서 어떻게 보였을지 대충은 예상이 될 것 같다.

워낙 짧은 내용이다 보니 이러한 배경 설정이 반영되어 있지 않기에 지금에와서 보면 이해 못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 살았던 다른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이 내전과 관련해서 상세히 남긴 글이 있을 정도로 꽤 참혹했을 것으로 보이긴 하다. 이 소설의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전해 들었는지, 아니면 직접 목격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작중의 빵나무 열매 바구니나 손녀딸 같은 일이 그저 창작물에만 나올 법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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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티크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 페가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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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티크

조티크라는 공간을 나타낸 시로 보인다. 뭔가 그렇게 좋지 않은 곳 같은 인상이면서도 묘하게 빠져드는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이 빠져든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단순한 매료라 보기는 어렵다. 엄청나거나 충격적인 광경을 접할 때의 전율. 이 전율에 침식되어 발생하는 현실을 넘어선 미적 감각이나 탐구력. 이렇게 설명해야 되겠다.

대부분의 구절에서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조티크에 있는 무엇이든 간에 조금이라도 빠져들면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 아주 끔찍한 광경이라 할지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보여도 발을 멈출 수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까지는 나오지만 정작 왜 그런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왜, 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마도 그 부분은 독자가 직접 상상해보라고 던져주는 듯하다. 애초에 조티크라는 것이 실존하지 않는데 어떻게 상상하느냐. 그렇다, 이게 바로 미지다. 그 미지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광경과 존재들로 인해 현실 감각이 무너지는 것이 미지의 공포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계관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곳에 가득한 미지의 공포를 짧으면서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 같은 깊이 감으로 표현한 멋진 시다.

마법사들의 제국

나트 출신 마법사 믐마트무오르와 소도스마. 그들은 강령술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티나라스 남쪽 사막지역인 킨고르로 추방당한다. 마법사들은 킨고르 지역에 있던 옛 왕국의 시체들을 되살려 호의호식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님보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서서히 기억을 되찾으면서 마법사들에게 복수를 계획하는데...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오컬트 좀비 작품이면서 죽음을 모독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 많다. 좀비의 원류인 아이티 좀비가 상대 정신을 흐리게 만들어 자유를 빼앗는 형태였다는 걸 보면 이 단편도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 같다. 흔히 알려진 시체를 되살려내는 좀비에 원조 아이티 좀비의 본질을 더했다고 보면 되겠다.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고통에 대한 묘사가 꽤 인상적이다. 그저 죽은 자를 함부로 대하는 마법사들의 악행 말고도, 죽음에서 돌아온 자들의 정신 상태가 어떤지 나름 세밀하게 묘사해서 무엇을 어떻게 모독하는지 느껴지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의식이 깨어나는 님보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의 등장은 마치 영웅 같기도 하다. 비록 많은 이들에게 주목 받지 못하고, 인식조차 되지 않으며, 멋진 모습이 아닌 좀비 같은 초라한 몰골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과응보나 다름 없는 결말을 보며 죽지 못한다는 것 만큼 비참한 건 없어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산낙지에 비유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먹기 좋게 잘 손질 됐지만 아무도 먹지 않고 방치된 산낙지. 그것도 영원히 썩지 않은 상태로. 죽는 것 만도 못하게 살아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고문자들의 섬

인간의 몸을 금속질로 만드는 병인 은사병이 조티크 대륙의 남부에 위치한 국가인 요로스를 휩쓸어 파멸을 맞이한다. 요로스의 젊은 왕 풀브라는 은사병을 막아주는 마법 반지 덕에 생존하고,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남쪽 섬 킨트롬으로 향한다. 그런데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우카스트로그 섬으로 떠내려가게 되면서 풀브라는 낙담하게 된다. 이 섬은 외부인을 잡아다 잔혹하게 고문하는 이들이 사는 고문자들의 섬이었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전개를 보여주다 보니 음울한 분위기가 상당히 짙다. 국가가 멸망하기 직전과 그 이후의 상황 속에서 나타난 풀브라에 대한 묘사는 허망함을 넘어 세상에 버려졌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보여준다. 생존자 극소수와 함께 살아 남은 나라의 지도자. 한때 가지고 있던 지위나 명성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황량함. 그럼에도 나아가려는 희망을 비웃고 기만하듯이 계속해서 닥치는 불행. 그야말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정신적으로 말라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심지어 주변의 환경조차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주기에 그야말로 절망의 구렁텅이다.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묘사는 대체로 세세하지 않은 편이다. 적당히 말 못할 것들이라며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다. 하지만 상세하지 않을 뿐이지 구체적인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신체에 상해를 가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정신적인 공격에 해당된다. 피부로 느끼면 매우 소름 돋고 끔찍할 상황에 처하게 하거나, 사람의 내면 속에서 공포를 억지로 끄집어내는 기이한 방식이다. 심지어 주변의 환경조차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주기에 상상조차 하기 싫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끔찍한 상황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결말 지을지 전혀 예상이 돼질 않았는데, 그래도 마지막에는 당한 것만큼 되갚아 주기는 해서 결국 악당은 응징 당한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그 방식이 일말의 희망 없이 선택한 최후의 일격 같은 거라 시원하기 보다는 절망에 절망을 덧씌우는 모양새라 음울함은 그대로다. 절망에는 절망으로 응수하는 모양새를 보며 뭐라 말하기 힘들다.

지하 묘지의 방직공

타순의 왕으로부터 버려진 궁전에 있는 지하 묘지에서 왕가의 시조에 해당되는 미라 잔해물을 갖고 돌아오라는 명을 받은 세 부하. 그 궁전은 온갖 기이한 소문으로 가득한 곳이라 세 부하는 왕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시켰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버려진 궁전의 지하 묘지에 들어간 그들은 점차 놀라게 된다. 각 묘실마다 있어야 할 왕의 미라가 전부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 세계에 대한 미지의 공포와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하는 고립된 밀실을 강조한 내용이다. 제법 원초적인 공포나 다름 없어서 겉보기에는 시시하게 보일 지도 모른다. 일상적으로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다소 멀리 가면 작중에 나오는 지하 묘지도 해당되는 부분이지만 소재 치고는 흔한 인상이라 그렇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보여준 지하의 암흑과 고립된 밀실에서 서서히 죽어간다는 공포가 생생하다. 그 어떤 희망 없이 산 채로 죽어간다는 절망을 걸쭉하게 나타냈다.

제목에서 말하는 방직공이란 기괴함 보다는 기묘함에 가까운 존재에 가까웠다. 뭔가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불길한 인상이 가득한 미지 그 자체라 뭐라 말하기 힘든 인상이다. 죽음으로의 편안한 인도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죽음을 지켜보는 잔혹한 기다림이라 해야 할지. 이게 차라리 기괴한 무언가라면 뭔가 강한 이미지라도 보였을 텐데, 기묘하고 단순한 형성이라 쉽게 이미지로 정리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지하의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고, 그것이 죽음과 관련이 깊은 것이라면 복잡하든 단순하든 깊은 공포를 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울루아의 마법

타순 북쪽 사막에 살고 있던 은둔자 사브몬에게 종손자 아말자인이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온다. 사브몬은 종손자가 왕의 시종으로 일하러 간다는 걸 듣고 온갖 사악함이 가득한 수도 도시의 영향력으로부터 지켜줄 애뮬릿 하나를 쥐어준다. 그렇게 궁전 안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하던 아말자인은 왕실의 외동딸이자 퇴폐적인 걸로 소문난 울루아 공주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불려가게 되는데...

부패한 왕실의 퇴폐적인 공주로 인해 겪는 고난이란 내용만 보면 어디서 비슷한 걸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있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끝을 모를 세기말적인 퇴폐만 있을 뿐이다. 사치와 향략을 넘어 사악한 마법까지 묘사되니 사브몬이 괜히 사악한 수도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작중의 왕실이 <지하묘지의 방직공>에 나온 곳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조티크 세계관의 타순이라는 나라의 실체가 대충 어떤지도 알게 된다.

울루아의 마법으로 나타나는 온갖 사악한 존재들에 대한 묘사가 참으로 끔찍하다. 단순히 신화에 나올 법한 괴물 정도라면 괜찮았을텐데, 살아 움직이는 시체에 대한 부분이 엄청나다. 부패 정도에 대한 세세한 묘사에 들끓는 벌레에 대한 부분, 시체가 썩는 냄새에 대한 지독함, 이러한 것들이 마구 나타내는 퇴폐적인 움직임. 앞에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썩은 시체를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경우는 아마 다시는 못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묘사들이 두드러져 보이긴 했지만 시작과 결말을 보면 이렇다고 할 수 있겠다. 무너져 가는 세기말의 종말 속에서 현명한 자만이 생존한다는 신화 같은 분위기의 작품. 단지 신에 해당되는 존재나 신성함 따위 없고, 그저 마법과 지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사악한 존재들 만이 있는 특이한 세계지만 말이다.

시체를 먹는 신

병든 부인과 함께 여행 중이던 파리옴은 줄 바-사이르에서 하룻밤만 지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지역 사람들은 병든 부인을 이미 죽은 사람이라 여기고, 관습에 따라 시체를 먹는 신인 모르디기안에게 바치기 위해 신전으로 데리고 가버린다. 파리옴은 모르디기안에 대한 온갖 두려운 소문과 경고를 무시하고 부인을 되찾기 위해 신전으로 향한다. 한편 그 신전에 기거하며 강령술 실험을 하던 마법사 아브논-타는 사제들 몰래 시체 하나를 빼돌려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판타지 설정과 배경을 빼면 수상한 집단에 잡혀간 아내를 구하러 가는 다소 흔한 모험 스릴러로 보일만하다. 그런데 의도는 다르지만 시체를 빼돌린다는 계획은 동일한 두 인물이 접점을 가지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해 진다. 파라옴은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경우고. 아브논-타는 나쁜 의도를 가진 악당에 가깝다. 보통은 선인이 구제를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전개 방식을 떠올릴 것이다. 문제는 시체를 먹는 신인 모르디기안은 아무리 봐도 자비 따위 존재하지 않는 크툴루 같은 존재 같은 인상이다. 이 때문에 둘 중 누가 살아날지, 아니면 둘 다 죽을지 그 무엇도 쉽게 예상하기 어렵게 한다.

시체로 가득 찬 어두운 공간 속에서 점차 기어 나오는 모르기디안은 다소 두루뭉실한 묘사에 비해 제법 섬뜩한 분위기를 가득 채운다. 뚜렷하지 않은 형체라는 점이 오히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살아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여기에 확실히 시체를 먹는 신이라는 이명에 걸 맞는 행보를 보여주기에 그 동안 보아온 초월적인 우주적 존재 같은 신들과 다소 차이가 있기도 했다. 물론 이 차이가 있다고 해서 모르디기안의 성격이 특별하게 다르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름값을 확실히 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무덤 속 괴물

해가 질 무렵 파라드 북문 근처에 도착한 상인들 속의 어느 이야기꾼이 먼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조티크 대륙의 절반을 다스렸던 옷사루 왕과 혜성을 타고 지구에 도착한 외계 괴물인 니오스 코르가이가 서로 협력하며 지냈다고 한다. 이후에 이 둘은 죽어서 같은 무덤에 들어갔고 마법진의 힘으로 시체가 썩지 않은 채로 있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이 무덤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진 바가 없으며 언젠가 사막을 지나는 여행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견하게 된다는 예언만 남았다 하는데...

괴이한 존재가 묻힌 무덤. 듣기만 해도 서늘한 두려움이 생겨난다. 그냥 평범하게 썩지 않은 시체였어도 무서울 마당에 혜성을 타고 온 괴물의 시체라는 점은 오만 상상을 하게 만든다. 대체 어떻게 생긴 괴물일까. 무덤 관련 비슷한 얘기들처럼 갑자기 살아나지는 않을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하니 다행으로 여겨지겠지만, 이런 소설 특성상 어떻게든 그런 장소로 향하게 되기 마련이다.

사막에서 벌어진 위협을 피해 어느 순간 문제의 무덤에 도달해 목격한 건 역시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괴한 존재였다. 외형도 외형이지만 사막에서 없으면 안 될 것인 물 소리를 낸다는 점이 상당히 무서운 부분이다. 사실상 조난 당한 사람들이 헛된 희망을 가지게 만들어 더욱 큰 절망으로 끌어들인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다. 앞서 전설을 이미 들어 놓고도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사람은 생사기로에 놓이면 뭐든지 방심하게 되기 마련이다.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를 마당에 더 큰 위험이 무슨 대수겠는가.

지트라

조티크 동쪽 끝에 위치한 황야인 킨고르의 어느 산맥 구릉에서 산양을 돌보고 있던 소년 지트라.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산양을 끌고 멀리 떨어진 계곡에 갔다가 물이 풍부한 호수와 푸른 들판을 발견한다. 게다가 그곳에 있던 동굴에 들어갔다가 낙원과도 같은 세상을 목격하고 돌아오게 된다. 삼촌인 포르노스는 이걸 듣고 악마의 현혹에 빠져 지옥을 방문하고 돌아온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지트라는 그 지하 세계의 과일을 먹은 영향인지 자신이 어느 나라의 왕이었다는 착각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는데...

지하 세계의 음식을 먹은 탓에 영원히 벗어날 수 없어졌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온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 관련 일화와 비슷하게 보였다. 이 소설에서는 그게 지상의 어느 양치기 소년에게 벌어진 일이고, 사로잡히게 된 곳은 실존하는지 알 수 없을 어느 왕국에 대한 기억이다. 사실상 허상 같은 낙원을 현실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니 얼마나 큰 고통이 뒤따를지 예상하기 어렵다.

스스로가 왕이라는 자각이 너무나 올곧게 묘사되는 탓에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던 건지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원래 왕족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양치기 지트라로 살아왔던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작중에서 지트라가 당하는 취급을 보면 철저한 농락이나 다름 없다. 헛된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고 여기는 세상의 비웃음. 눈앞에 현실과 뇌리 속에 박혀 있는 기억에 대한 괴리감으로 인해 썩어가는 지트라의 내면. 모든 것이 잿빛인 세상에서 부르짖는 이상향이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양치기와 어느 왕국의 왕에 대한 기억을 오가며 알게 된 진실은 큰 충격을 준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낙원에 도달해도 그게 낙원인지 자각하는 이는 없다고. 그렇기에 낙원을 보고서도 낙원에 대한 증명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 작품의 지트라가 딱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처지였다. 무엇이 진짜 현실이고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무한의 공허 속을 떠도는 거나 마찬가지다. 낙원이라 생각해 도착한 곳은 낙원이 아니었고, 떠나온 곳이 낙원이라 생각해 돌아가니 또 낙원이 아니었다. 이 끝을 모를 저주 속에 갇힌 모습을 보며 삶의 만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검은 신상

조티크 대륙에서 위대한 마법사 중 하나로 알려진 나미르하. 사실 그는 고아로 태어나 구걸을 하며 지내던 거지였고, 고향에서의 비참한 생활에 분노해 사막으로 나갔다가 마법사 오우팔록을 만나 마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제 나미르하는 복수를 다짐하며 고향이자 새로운 왕이 즉위한 이후로 향락과 불경함으로 가득해진 움마오스로 돌아오게 된다. 마법사가 돌아온 당일, 움마오스 중앙에 있는 공터에 낯선 건축물이 생겨나고 그곳이 나미르하의 거처라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악인으로 성장한 피해자와 여전히 악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해자 간에 벌어지는 일을 다룬 거라 뭐라 말하기 힘들다. 결국은 똑같은 사람 간에 벌어지는 복수극이나 다름 없어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서 그렇다. 심지어 작중에서 지옥의 왕인 타사이돈 마저 무의미한 짓이고 말릴 정도니까. 다만 지옥의 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악마로서 따진 셈법일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나쁜 놈들끼리 싸워봐야 지옥에는 별 도움이 안 될 테니 말이다.

악에 바친 복수귀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묘사된다. 나미르하가 어릴 적에 당한 사건의 핵심인 말을 이용해 벌이는 온갖 사악한 짓은 규모가 남다르다. 말이란 동물이 얌전한 모습만 많이 봐서 그런지, 이렇게까지 무섭게 묘사될 수 있는지 상상도 못했다. 끊임 없이 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 많은 말들이 뛰어다니며 발생한 발굽 소리와 이후에 남은 흔적들. 이 말들로 인해 세상이 멸망하는 광경에, 나미르하의 불경한 마법으로 벌어지는 끔찍한 연회까지 해서 지상에 도래한 지옥이란 바로 이런 것이란 걸 보여준다.

그렇지만 복수란 역시 스스로도 파멸에 이르게 된다고 하던가. 나미르하 본인마저 결국 이 휘몰아치는 지옥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승자도, 패자도 남지 않는 완전한 파멸인 셈이다. 사방이 죽음으로 가득해 보이는 조티크 대륙 다운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에우보란 왕의 항해

우스타임의 9대 왕인 에우보란은 경범죄로 잡혀온 어느 부랑자가 강령술사라는 걸 알고 사형 선고를 내린다. 그러자 강령술사는 에우보란 왕의 왕관에 장식되어 있던 박제된 새를 살려냈고, 그 새는 왕관을 매단 채로 고향 섬까지 날아가 버린다. 왕권의 상징이자 행운의 부적이나 다름 없던 왕관이었기에 에우보란 왕은 새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어떤 인물이 먼 여행을 떠난다는 건 위대하고 장엄한 목적이 담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에우보란 왕의 경우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고 본다. 왕관이 사라진 일은 본인의 잘못이나 다름 없는데, 신화 속에서 볼 법한 신탁을 통해 여정을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항해 초반의 모습도 다소 무례하게 보일 행동만 보여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기에 더 그렇다. 그럼에도 온갖 사악한 존재들에 맞서 나아가는 에우보란 왕의 용기에 대한 부분 만큼은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왕으로서의 위엄이 아니라 목표를 쟁취하고자 하는 강렬한 집념에서 비롯된 것에 가깝게 보이지만 말이다.

목표로 한 지점에 도착한 끝에 에우보란 왕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잔혹한 진실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 동안 겪어온 고난은 어딘지 모르게 그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업보 같은 걸로 보이기도 했다.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는 그가 저지른 가혹한 법 집행에 대한 비유고. 새들의 나라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온 휴이넘처럼 인간 그 자체로서의 비판이고. 마지막에 알게 된 진실 역시 항해를 떠나지 않았으면 평생 모르고 지냈을 저주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신탁부터 사실상 좋은 의미가 아니었던 셈이고, 위대한 모험이 아니라 사실상 벌을 받으러 가는 과정이나 다름 없어진다. 다행이라면 에우보란 왕에게 현실을 받아들일 이성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도달하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가져 버리는 경우가 많은 걸 떠올리면 그나마 나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만족이라는 그릇의 크기를 자각하면 더 이상 불행은 아니게 되니까.

푸툼의 수도원장

호아라프 왕의 병사인 궁병 조발과 창병 쿠샤라는 10년 동안 함께한 오랜 친구다. 이들은 요로스 서쪽의 황폐한 땅인 이즈드렐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목격됐다는 말이 사실인지 증명하기 위해 파견을 나가게 된다. 그렇게 어느 유목민 마을에서 루발사라는 여인을 발견해 데리고서 궁전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나타난 안개 같은 짙은 어둠에 둘러싸이는 바람에 방향을 잃고 무작정 나아가게 된다. 해질 무렵이 되자 어둠은 사라지고, 어느 골짜기에 있는 수도원 앞에 도착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조티크와 관련된 이야기 대부분이 죽음과 파멸에 대해 얘기하던 것과 다른 전개를 보여줘서 의외였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수도원. 사악한 악당 그 자체나 다름 없는 수도원장. 실체를 밝히는 단서로 향하는 과정과 악을 쓰러뜨리는 전개까지. 그 어떤 반전이나 거짓, 기만, 농락 같은 것이 전혀 없는 한편의 영웅 신화 같다. 재미있는 점은 조발과 쿠샤라라는 영웅 상의 인물이 둘이나 있는데, 사소한 차이로 역할이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상 못한 건 영웅이 언제나 모든 걸 가지게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저주나 후폭풍 같은 게 아니라,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는 위트에 해당된다. 마지막까지 큰 다툼이나 비극 없이 밝은 분위기를 조성해서 너무나 의외다.

나트의 강령술

지라의 유목민 왕자 야다르는 납치된 약혼자를 찾기 위해 조티크 대륙을 떠돌고 있다. 겨우 질락 확제의 배를 타고 요로스로 가고 있다는 단서를 발견해 서둘러 뒤따라간다. 그런데 야다르가 탄 배가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에 휩쓸려 사악한 마법사들의 섬인 나트로 흘러가는 조류를 타고 마는데...

이전에 다른 책에 실려 있었을 때 먼저 접한 단편이긴 하다. 하지만 그 책이 좀비 관련 앤솔러지라서 좀비와 관련해서 많이 썼기에 이번에는 조티크 세계관의 관점으로서 써본다.

나트라는 지명은 이전 작품 곳곳에서 언급된 편이다. 강령술 역시 불경한 마법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나트하면 그렇게 질색을 하는지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어진다. 흘러 들어가는 조류부터 심상치 않고, 한낮임에도 어둠이 가득한 인상을 주는 섬 외형까지. 딱 봐도 첫 인상부터 좋지 않은 곳이다. 여기에 평범한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거주민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꺼림 직함 그 자체다.

사방에 죽음이 도사린 환경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존재는 어색하기만 하다. 시체들의 지배자가 아니면 그저 언젠가 죽어서 빈껍데기만 남은 살아 있는 시체가 될 자일 뿐이다. 게다가 야다르 왕자는 사연이 많은 인물이라 이 상황은 더욱 더 절망적이다. 오랜 목표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된 거나 마찬가지고. 시체로 가득한 섬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나날을 보내게 됐으니 말이다.

죽음에 대한 모독의 끝에서 벌어진 대참사는 살아 있는 자였기에 벌어지게 된 비극이나 다름 없다. 죽은 자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는 반면, 살아 있는 자는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 없이 잘못을 저지른다. 뒤늦게 괜한 짓이었다는 걸 깨달아도 살아 있는 나날 동안 그 여파를 그대로 받아야만 한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나 다름 없기에 죽은 자를 부러워 하게 되고, 비로소 그 동안 저지른 모독에 대한 죄값을 치르게 되는 셈이다. 남겨진 죽은 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비극으로 보이겠지만,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지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죽은 자들에게는 많은 게 필요 없다. 최소한의 만족만 있다면 그게 곧 행복이다.

일라로타의 죽음

타순의 여왕인 잔틀리카를 모시던 시녀인 일라로타가 갑자기 죽어서 장례식이 열린다. 여왕의 애인인 툴로스 경은 일라로타가 죽은 사실을 전혀 듣지 못했기에 충격을 받는다. 사실 일라로타는 전 애인이었고, 툴로스 경은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었다. 잔틀리카 여왕은 애인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신에 매료되어 가까이 다가간 툴로스 경은 들릴 리가 없는 일라로타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치고는 괴이함이 가득해서 충격이 크다. 보통 이런 작품에서 악녀가 벌을 받고, 진짜 사랑이 이루어지는 전개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조티크에는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악인이 존재하면 그걸 뛰어넘는 더한 무언가가 나오고 만다. 그 무언가는 본래 의도와 전혀 다른 파멸을 가져오며 목격한 모든 이를 광기로 몰아 넣는다.

결국 이 사랑 이야기의 승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악에 바치다 못해 온갖 사악한 힘에 빠져 만들어진 끔찍한 괴물만 있을 뿐이다. 툴로스 경의 행적이 낭만으로 가득했기에 더욱 처참하다.

아돔파의 정원

동쪽에 있는 큰 섬인 소타르의 왕인 아돔파는 특별한 정원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내부가 공개되지 않았고, 오직 정원을 관리하는 궁정마법사인 드웨룰라스만 출입이 가능했다. 온갖 소문이 무성한 그 정원의 실체란 인간의 신체가 뒤섞인 지옥에 있을 법한 식물들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매우 기괴하고 끔찍한 여흥에 가까운 행위나 다름 없어서 할 말을 잃게 한다. 문제의 정원에 대한 묘사는 이런 지옥도가 또 없을 정도다. 다양한 인간의 신체 부위가 달려 있는 식물. 이 식물들이 자라나는 환경. 이러한 식물을 만드는 과정. 진짜 지옥에서 식물이 자란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뒤틀린 취향이 만들어낸 왜곡된 마음이었을까. 아돔파는 스스로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기어 들어가 그 취향에 걸 맞는 파멸을 맞이한다. 살아 움직이는 식물이 이렇게 징그러운 것이었던가. 아니, 지옥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지옥의 식물이기에 모든 것이 괴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물 역시 생명이다. 비정상적인 요소들이 가득해지면 동물 못지 않은 괴물이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마지막 상형문자

푸대접을 받으며 떠돌던 점성술사 누샤인은 질락의 수도인 움마오스에 머물게 된다. 거기서 점괘가 잘 들어맞았는지 금세 이름을 알리게 되며 처음으로 돈을 많이 번다. 그러던 어느 날 밤하늘을 보다가 처음 보는 별을 발견하게 되고, 그 별로 인해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는 걸 확신한다. 바뀐 점괘에 따르면 자신은 곧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며, 세 안내자가 나타나 정해진 목적지로 인도하게 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목적지가 행운을 가져다 줄지, 불행으로 향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건데...

갑작스러운 초월적인 존재의 계시는 불안이 먼저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나 잃을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한창 행운이 찾아온 시기라면 방해가 되는 걸 넘어 저주나 다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인간이 피하고 싶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찾아와 정해진 운명대로 이끌고 가버리기에 한치의 오차가 없는 확정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누샤인이 떠나게 된 여정은 기묘한 환상과도 같다. 연결될 리가 없는 길이 이어지고, 끊임 없이 도중에 포기하게 만들 요소가 나와도 어떻게든 계속 나아가게 만든다. 어리석다면 어리석다고 할 법한 행동에도 별다른 영향이 없기에 보면 볼 수록 의문이 생기게 한다. 그저 어딘가로 향하기만 하는 이 전개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샤인을 기다리고 있는 건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의미 없이 스토리를 계속 이어가는 것만 같아도 분명 정해진 무언가가 있다고 하니 누샤인과 끝까지 가볼 수밖에 없어진다.

마지막에 알게 되는 진실을 보면 이게 과연 불합리한 일인지 어쩔 수 없는 운명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세상의 모든 건 기록으로서 남게 되긴 한다. 다만 뭐가 먼저냐고 한다면 조금 애매해진다. 기록이 있기에 존재가 증명되는 건지. 아니면 존재했기에 기록이 남는 건지. 더 나아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떻게든 나아간 행적이 존재하기에 기록이 남는 걸까. 아니면 기록이 있기에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는 걸까. 운명이 이런 것이라면 적어도 아무 때나 불려나가지만 않았으면 한다. 누샤인처럼 한창 인생에서 빛을 볼 시기에 문자로 남게 되어 버린다면 정말 억울할 테니까.

게의 지배자

영약 제조사로 유명한 미오르 루미빅스의 제자인 나는 스승의 라이벌인 사르칸드가 보물 지도를 입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행 준비를 시작한다. 그 지도는 유명 해적인 옴보르가 월신의 신전에 훔쳐낸 보물들이 숨겨진 곳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보물이 숨겨진 곳은 조티크 대륙 서쪽에 위치한 <게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이리보스라는 섬으로 사르칸드 보다 먼저 보물을 차지 위해 스승과 함께 서둘러 출항을 하게 되는데...

보물을 두고 경쟁하는 두 마법사의 대결을 다루면서 짙은 바다 냄새가 나는 공포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또 다시 나트 출신 마법사의 사악함이 강조되기에 정말 조티크 세계관에서 손꼽히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래서인지 <푸툼의 수도원장>처럼 끔찍한 반전이나 후폭풍 없이 완벽한 권선징악에 가까운 모험극을 보여준다.

제목처럼 메인으로 다루는 공포 요소는 게다. 처음 봤을 때는 문어 같은 두족류나 다른 징그러운 해양 생물에 비해 별거 아니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게 역시 다소 섬뜩한 면을 가진 생물이다. 사체를 주식으로 먹는 습성 때문에 바다에서 익사한 시체를 발견했더니 게가 잔뜩 달라 붙어서 뜯어 먹고 있었다는 목격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게에 대한 묘사 역시 비슷하나 살아 있는 사람까지 먹는 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온갖 시체 관련 이야기와 묘사가 가득한 조티크에 가장 어울리는 바다 생물이나 다름 없다.

모르틸라

움브리에 사는 시인 파무르자는 연애시를 써서 얻은 명성과 부로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제자이자 쾌락주의자로 유명한 발자인은 어느 순간 스승이 벌이는 파티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파무르자는 제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동경하게 된 것 같다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도시 밖에 있는 공동묘지에 라미아가 살고 있고, 그게 오래 전에 죽은 공주 모르틸라의 영혼이니 한 번 만나보라고 하는데...

현실을 초월한 만족감에 한 번 빠져들게 되면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한다. 끝을 모를 공허함 속에서 비현실적인 쾌락 만을 추구하지만, 어디를 가던 원하는 걸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발길이 향하게 되는 곳은 현실과 거리가 먼 죽음의 세계지만, 거기서도 원하는 걸 찾게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왜냐하면 비현실적인 존재는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에게나 나타나지, 정작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이들에게는 코빼기도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다.

놀랍게도 그 동안 여러 작품에서 나왔던 기괴한 존재가 전혀 나오지 않은 내용이기에 더욱 더 처량하게 보인다. 그가 바라는 건 사악한 힘에서 비롯된 파멸 같은 것에 가까운데, 이 작품은 현실 그 자체만 보여주며 기만하는 모양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빠져 농락 당하는 건 봤어도, 오히려 모든 것이 현실적인 일에 불과해서 고통 받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울 정도다. 결국 비극적인 말로를 맞은 발자인에게 펼쳐진 세상 역시 농락의 연속이라는 의심이 생기니 대체 어디가 현실인지 조차 의문이 들게 된다. 아니면 이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에 손을 대버린 이들이 겪게 될 운명일까.

죽은 자가 부정을 저지르리라

요로스의 왕비인 소멜리스는 음유시인인 갈레오르가 부르는 여신 일리롯에 대한 노래를 듣게 된다. 사랑과 연애를 관장하는 친절한 신이라며 정열적인 연주하는 음유 시인에 대해 왕비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왕인 스마라가드가 질투심이 생긴 나머지 독이든 술을 마시게 해서 갈레오르는 죽게 된다. 이후에 갈레오르는 왕의 협박으로 요로스를 떠나게 된 마법사 나타나스나의 주술로 되살아 나고, 왕비에게 사랑 받을 때까지 구애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는데...

이 작품만 유일하게 희곡으로 작성되어 있어서 상당히 의외였다. 작가가 시를 잘 쓰는 편이었고, 소설로 넘어와서도 나름 유명했다는 건 알았지만, 희곡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어서 더 그랬다. 희곡 치고는 무대로 구현하기 어려운 묘사가 많은 편인데, 이에 대해 자세히 찾아보니 공연될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고 한다.


 조티크 특유의 음침한 묘사를 제외하면 꽤 낭만적이긴 하다. 비록 타인의 지시로 되살아난 것임에도 진실된 사랑을 보여주는 갈레오르나, 이미 죽은 시체임에도 사랑으로 아끼는 왕비의 모습은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묘한 그림이다. 그냥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 보면 뭔가 끔찍하게 보일 모습이면서, 당사자들의 시점에서는 그 무엇도 두려워할 것 없는 사랑 그 자체라 이게 다크 판타지 감성의 로맨스인가 싶기도 하다. <일라로타의 죽음>이 워낙 큰 충격을 줘서 이것도 혹시나 했는데, 적어도 이 작품에서의 사랑은 진짜인 모양이다.

뭔가 중간에 끊긴 거나 다름없는 결말이라 뭔가 애매한 인상 같으면서, 온갖 상상을 일으키기에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결말은 파멸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누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조성해서 당연하게 예상될 결말처럼 보이나, 그걸 확실하게 단언하지 않음으로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암시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파멸이 희극으로 향할지, 비극으로 향할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결말이 아닌 가능성의 결말에서는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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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괴 3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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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넘쳐 나는 곳.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 곳. 산이 육지의 바다라 불리는 이유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위협.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목격.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세계. 지금은 몰라도 옛날이라면 안과 밖의 구분조차 없었기에 더 실감 났을 것이다. 이제 이 산의 괴이를 다룬 책의 마지막에는 무엇이 더 있을까.

1권 부터 3권까지 쭉 보다 보면 비슷한 얘기가 계속 나오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새롭다는 인상이 들고는 한다. 똑같은 얘기라도 서로 다르게 말하거나, 또 다른 사례가 추가되는 등, 이야기가 끊임 없이 계속 나와서 그렇다. 이번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일상과 가까운 괴이 현상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다가왔다는 징조라던가, 집 안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초자연적 현상, 귀신 이야기 등. 어떻게 보면 흔한 괴담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어쨌든 산과 가까이에 사는 이들이 겪은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혼슈, 시코쿠, 큐슈는 많이 다루다가 홋카이도 지방에 대해 처음으로 다루어서 여러모로 관심이 갔다. 아무래도 전통적인 일본 본토와는 문화가 다른 경향이 있다 보니 그랬다. 이곳에서의 산괴는 역시나 특별히 이상하지 않는 걸 넘어 괴이라는 인식 조차 없는 편이다. 산은 신의 영역이니 그곳에서 만나는 존재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보니 섬뜩한 일이 종종 있나 보다. 여우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건 좀 특이한 부분이긴 하다.

여우, 너구리가 늘 나오던 와중에 이번에 유독 자주 나오는 동물은 뱀이다.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거대 뱀을 목격한 일이다. 소방 호스 정도의 굵기를 가졌다는 증언이 많은 편으로 무언가를 집어삼켰는지 몸통 부분이 크게 부풀어 오른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런 경우는 일본에서 유명한 미지의 생물인 츠치노코와도 유사하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나 이에 대한 얘기는 잠깐만 다루는 정도다. 아무래도 츠치노코 관련해서 방송매체를 많이 타다 보니 미신이나 다름 없다는 인식이 많아진 탓에 그런 모양이다. 비슷한걸 봤다 해도 또 헛소리한다는 비난을 받을 바에 조용히 있는 것이 더 좋을 테니까.

곰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일본 산간지방에서 곰 관련 사건사고가 꽤 발생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왜 곰에 대한 얘기가 지금까지 없었는지 의문이 들 만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곰은 산에서 겪을 괴이한 사건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당할 법한 자연 재해 그 자체다. 여우나 너구리 같은 이야기에 비하면 실제 사건 같은 얘기에 해당됐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곰 그 자체로 인한 일은 드물고, 곰 주변에서 발생한 일에 가까운 건 많다. 곰은 조연이나 엑스트라일 뿐, 진짜 괴이한 일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상과 가까운 괴이라고 해서 그 동안 나온 기이한 일들과 특별하게 다르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저 깊은 산 속에서 목격될 법한 기이한 일이 민가와 더욱 가까운 곳이나 산과 관련이 없는 경우, 또는 집안에서 발생했다는 정도다. 이게 흔히 아는 괴담과 뭐가 다르냐고 하겠지만, 산과 관련이 있기에 뭔가 특별하게 보인다. 유령 같은 무언가 나오더라도 가까운 사람이라면 친근한 인상을 주고, 낯선 무언가라면 현실인지 헛것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이런 느낌이 드는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꽤 있다. 어느 기업 회장이 느닷없이 차를 몰고 나와 산으로 들어갔다가 구조된 일이라던가. 촬영을 나왔던 방송국 관계자가 뭔지 알 수 없는 무서운 일을 겪었다던가. 산속에서 마주친 어떤 사람이 잠시 후에 같은 장소에서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된 일이라던가. 섬뜩한 방이 존재한 산속의 어느 폐가 체험담이라던가.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전부 섬뜩함이 있기에 어느 쪽이 더 낮다고 여기기도 어렵다.

끝으로 마지막 후기에 해당하는 글을 보면 이 작업이 상당히 힘든 과정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래 이러한 옛날 이야기, 민담, 설화, 체험담 같은 건 너무 이야기가 비슷하거나, 시답지 않게 가벼운 경우가 꽤 된다. 게다가 요즘 같은 현대에 미신이라 치부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특히 앞서 언급된 츠치노코 건을 떠올리면 이상한 취급 받을 일을 염려할 만도 하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산의 괴이를 찾아 나서는 건 솔직함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러 무섭게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부풀리고 잔혹하게 자극적인 요소를 더하는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자연스레 무의식 속에서 구성해 나온 사람 사는 이야기 같은 체험담.

이게 저자가 생각하는 산의 괴이다. 어디까지 진짜였든 가짜였든 상관 없다. 그러한 일을 겪은 사실 만으로 다양한 가정을 해보며 산이란 공간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래서 직접적인 기록으로 남지 않는 설화의 가치가 큰 것이다. 실제 체험담 만큼이나 그 시대나 공간을 설명해줄 다른 증거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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