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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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대야

8월의 어느 밤, 산장에서 돈 문제로 들이닥친 야쿠자와 빚을 진 친구 부부 사이에 낀 채로 있게 된 나. 친구인 토도는 2시간 안에 돈을 구해오겠다며 내 차를 빌려 타고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토도는 돌아오지 않고, 더 이상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은 야쿠자가 친구의 아내 미스즈를 노리는 바람에 지켜야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실상 욕망을 테마로 다룬 내용이나 다름 없다. 욕망으로 인해 인연이 꼬이고, 욕망으로 인해 극한의 상황에 몰리고, 그 극한의 상황 속에 뒤틀린 끔찍한 욕망이 존재하고, 또 다른 곳에서도 판단을 뒤흔드는 욕망이 나오고. 모든 곳에 욕망이 존재하고 욕망과 욕망이 싸우며 서로가 먼저라고 주장한다.

무척이나 기분 나쁘고 절망적인 전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게 이 부분 아니었던가? 그럼 그건 대체 뭐였을까? 그게 사실은 이것이었다니! 참 기가막히고 어이없는 연계를 보며 제목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숨막히는 무더운 여름의 밤 그 자체다. 이 작품 속에 존재한 따뜻함이란 그저 불쾌한 여름 밤의 열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결국에......

겨울의 어느 날, 건강 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은 노인 테츠지. 노인 봉사활동 단체로 위장한 어느 급진파 조직에 들어 갔지만 현상금 때문에 정부 측에 밀고하는 코이치. 시체 정리 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학생 토라노스케. 고령화 문제가 극심해진 세상에서 이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이 도달한 곳은 결국...

인물 3명의 시점을 보여주지만, 코이치 말고는 딱히 심각한 문제에 휘말리지 않다 보니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인지 상당히 의아했다. 노인 복지에 대한 문제? 실업 문제가 극심해진 암울한 미래 사회? 그런데 점차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진실이 계속 나오면서 충격을 받게 된다. 남일 같지 않은 현대 사회의 문제가 심화된 가까운 미래처럼 보이며, 최소한의 희망과 온정마저 짓밟히고 식어버리는 현실을 보게 되서 그렇다.

정보가 통제되고, 국가의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고, 사회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분쟁을 조장하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국가라는 이름 하에 희생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이 현대에 재현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도 고령화 사회에 맞춘 형태로 말이다. 다만 이건 일본에서만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 둬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세대 갈등이 만연한 현대사회 어떤 곳에서도 가능할 법한 최악의 시나리오나 다름 없다.

작중에서 토라노스케는 자신이 좁은 세계에 살고 있었다, 즉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우물이 스스로가 생각하는 우물이 과연 맞을까? 누군가가 우물의 존재를 말하는 것과 스스로가 느낀 우물의 존재가 동일할까? 우물 바깥에 더 큰 우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큼 절망적인 건 없다.

마지막 변명

시청에서 근무하는 나는 쓰레기로 가득한 어느 집에 대한 민원을 받게 된다. 문제의 집은 신흥주택지에 있었고 거기로 가는 도중에 옛날에 살던 동네를 지나게 된다. 죽었다 되살아난 소생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아버지를 잃었던 기억과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던...

처음에는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작품으로 보였는데, 점차 흔히 생각하는 좀비와 뭔가 다른 걸 넘어 이걸 과연 좀비라고 해도 되는 건지 의문스러워졌다. 별로라는 의미가 아니다. 평소 잘 알던 것인데 뭔가 다른 점이 많다 보니 느껴지는 신선한 충격, 또는 위화감이라고 해야겠다.

좀비로 인한 멸망이나 생존이 아닌 사회문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런 부분은 예전부터 종종 나오던 소재긴 하다. 좀비로 인해 멸망까지 갔다가 해결책을 발견해서 다시 복구 되기 시작한 사회의 혼란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히 나누어져 있지만 따지기 어려운 책임. 좀비에 대한 인권 문제. 그 밖에도 다양한 법률적 문제나 사회적 갈등을 나타난다. 하지만 소재가 비슷하다 해도 이 작가 특유의 매우 복잡한 감정과 점차 흘러나오는 불쾌한 묘사는 그 어디에서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좀비는 그저 살아 움직이는 시체가 아니다. 소생이라는 말 그대로 되살아난 사람이다. 여기에 흔하게 알려진 좀비의 특성이 적용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대체로 이런 점을 이용해 사회 비판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많다. 여기서도 사회 비판 같은 요소로 보이는 부분이 꽤 있지만, 과연 이게 메인인지 혼란스럽게 하는 진실이 점차 밝혀진다. 사실상 좀비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 식욕에 대해 강조하는 내용이나 다름 없다. 이성 없는 식욕은 그저 괴물이라 여기고 처치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이성 있는 식욕이라면 어떻게 될까? 무슨 방식으로든 식욕을 정당화 하기 위해 수를 쓸 것이다. 특히 이게 가장 무서운 점이다. 특정 집단이 다수가 되면 그들의 주장이 곧 상식이 된다는 것. 비정상적인 행동이 상식이 되고,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서 작용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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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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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지난 날의 추억, 철 없던 시절의 무모함, 무엇 하나 두렵지 않던 시절의 모험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은 얼룩이 되면 잊고 지내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 생긴다. 현재의 자신이 노력해온 모든 업적과 일상을 뒤흔들지 모를 나비효과로 말이다. 애초에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으냐 따지려 해도 이미 멀리와도 너무 멀리와버린지 오래다.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결국 당사자들의 몫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출장 일정을 끝낸 매그레는 거기서 수상한 사내를 목격하고 재미 삼아 뒤쫓게 된다. 국제 사기꾼이라 추측한 나머지 중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내의 가방을 바꿔치기까지 한다. 그런데 독일 브레멘의 허름한 숙소에 도착한 사내는 가방을 도둑맞은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자리에서 권총 자살을 해버린다. 당혹감에 빠진 매그레는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해 가방을 조사해본다. 하지만 프랑스인이라는 사실과 허름한 옷이 전부였다. 그것도 사내의 옷 사이즈와 맞지 않는 남의 옷이었다...

시작부터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상태로 진행되는 사건이라 그 어떤 예측도 하기 어렵다. 보통은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보이는 점이나, 관련 인물이 제시되는 등의 배경을 어느 정도 제시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는 시작부터 갑자기 사건을 툭 던져 놓는 형태다. 애초에 무슨 범죄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사건과 연관되어 보이는 장소가 여러 국가에 걸쳐 광범위한 것도 그렇고, 관련 인물도 경우에 따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사실상 배경을 알아내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되다 보니 그야말로 엄청난 미스터리 자체다.

이렇게 사건의 판이 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이상하게 연관되어 가는 인물들, 점차 들어 나는 공통된 장소, 과거로 얽힌 인연들,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위협. 대체 무엇이 이렇게 긴박한 스릴러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뭔가 엄청난 음모와 거대한 범죄가 얽힌 걸로 보이지만, 그런 건 매그레 반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일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냥 소중하다 못해 지켜야 할 무게와 책임이 뒤따르는 삶 그 자체다.

젊은 시절의 객기와 야망. 어떤 의미로는 철 없는 시절이라 해도 되는 이 시기는 어느 시대나 비슷할 것이다. 방탕함을 그저 즐기고,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그걸 어떻게든 들키지 않게 숨기려 하고. 누구는 이걸 극복해서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걸 개척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여전히 그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침몰해 버린다. 그것도 혼자 죽지 않으려 하면서.

이렇게 되면 가진 자들이 더욱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금전적으로 많이 가졌든. 그게 아니더라도 사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행복을 가졌든 말이다. 물론 작중에서 문제가 되는 핵심 사건은 단순히 웃고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니다. 이유나 과정이 어떻게 됐든 벌어진 죄에 대한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무도 모르고 흔적과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이 범죄를 전부 파해쳐야 하는가. 이걸 굳이 들춰서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가해자에 대한 선처로 보일 만도 하나, 이게 현대에 자주 일어나는 감형 문제나 관대한 사법에 대한 문제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인생의 희비가 갈린 젊은이들,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애나 다름 없는 이들이 서로 얽힌 안타까운 드라마다. 단 하나의 진실이냐. 여러 사람의 일상을 그대로 두느냐. 그렇기에 매그레 반장 역시 기분이 썩 좋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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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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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수 없으면 얼마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단순히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거나, 코앞에서 큰 돈을 보내버린 상황 같은 걸 금방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걸 놓쳤더라도 남아 있는 행복이 있다면 그저 아까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최소한의 행복도 없는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을 바꿀 기회가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이 정도는 돼야 재수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 날, 상세르의 어느 호텔에서 방문 판매 사원 에밀 갈레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어떤 범행 동기도 생각해 볼 수 없는 가운데, 매그레는 범인보다 피해자인 에밀 갈레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갈레는 이 호텔에 가명을 쓴 채로 있었고, 심지어 방문 판매 회사로부터는 이미 직원이 아니라는 확인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 추리소설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과정을 다룬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이 사실상 핵심이나 다름 없다. 범인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다는 건 아니다. 단지 수사하면 할 수록 피해자 때문에 범인이 특정 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라서 살해 당할 동기가 생겼는가. 그렇지만 그럴싸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대체 왜 죽은 건가. 이런 탓에 우선 순위가 범인보다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세기 초중반에 여전히 남아 있던 귀족 집안, 이른바 왕당파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내용이나 다름 없다. 여전히 집안의 품위 같은 것에 신경 쓰는 가식적인 면이 많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이 공존한다. 그걸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에밀 갈레의 집안이다. 평범한 남자와 귀족 집안의 여자가 결혼해서 받게 되는 취급. 그런 취급 때문에 발생하는 집안 내의 미묘한 감정 싸움.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재벌 가문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 같은 거랑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저 돈에 치이고 치여서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침울한 현실 그 자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신분제가 유명무실해진 근현대라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면 뭐든 되는 세상에서 높은 신분이라고 반드시 좋은 대접을 받는 건 아니다. 그저 기회를 발견해서 그걸 노리고 파고든 사람이 모든 걸 가지는 세상이다. 이런 풍토에서 세상물정 모르거나, 끼리끼리 뭉쳐 있는 귀족들이란 아주 그럴 싸한 먹잇감이나 다름 없다. 뭐, 귀족이니까 푼돈 살짝 뜯겨봐야 별일 아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 역시 사람은 사람이다. 모두가 부자라는 법은 없고, 언제나 넉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 재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겹친다면, 그야말로 불행으로 가득한 드라마 그 자체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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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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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심플하면서도 해당 작품의 테마를 적절하게 나타내며 다음 권과 연계되는 이미지를 포함하는 표지부터 눈길을 끌었다. 매그레 반장이라는 캐릭터의 유명세와 다른 작품에 영향을 끼쳐 나온 파생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부분 역시 관심이 갔다. 많이 들어봤을 미국 드라마 주인공인 형사 콜롬보와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메구레 반장(국내명 골롬보 반장)이 바로 매그레 반장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처음 들어본 시리즈인데도 망설임 없이 읽게 됐다. 그런데 꽤 시간이 흐른 탓에 제대로 이해하며 본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사실상 처음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제형사경찰기구에서 수배 중인 범죄자, 라트비아인 피에르트가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했다는 전보를 받은 매그레 반장. 곧장 역 앞에 나가 피에르트를 찾아보다가 인상착의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을 목격한다. 그런데 역 안에서 소란이 발생한 것을 알아채고 서둘러 가보니 정차한 열차 안에서 총에 맞은 시체를 발견한다. 문제는 그 시체를 찬찬히 살펴보니 매그레 반장이 찾던 피에르트와 인상착의가 똑같았다는 점인데...

처음부터 범죄자로 보이는 인물이 제시되지만, 이 인물이 대체 어떤 사람이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라 매그레 반장의 수사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보기에 따라 범죄수사 같으면서 라트비아인 피에르트라고 추정되는 인물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드라마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잔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순 범죄자가 아니라 국제적 규모의 수배자라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과 힘겨운 수사과정이 뒤따르며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가 나타나고는 한다. 이 진지하다는 부분에서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국제 범죄라는 배경 때문에 따라오는 부가요소에 지나지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메인은 범인에 해당되는 인물의 드라마다.

간결하면서도 세세한 듯한 배경 묘사도 꽤 인상적이다. 항구도시인 페캉의 비바람치는 길거리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선착장 모습은 우중충하면서 쓸쓸한 분위기가 강하다. 누추하게 보이면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깊게 배어 있는 듯한 인상을 가진 파리 어느 한 구석은 또 어떻고. 다소 화려해 보이는 마제스틱 호텔이나 부유층 주거지에 대한 묘사에 비하면 사람 사는 냄새라는 것이 확 느껴진다. 가식이나 거만함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환경으로 나타낸다면 딱 이럴 것이다.

사건 배경 때문에 꽤 규모가 큰 사건으로 보이나 실상을 보면 굉장히 소박하기 그지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냉혹한 뒷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를 사람 사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이야기가 벌어진 환경이 뒷세계였기에 엄청난 부조화가 발생하고 만다. 원하던 소망은 작지만 그걸 위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너무나도 컸다. 잠깐의 눈속임은 쉬울지도 모르나 세상 전부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빈틈이 있기 마련이고, 거기로 새어 나오는 모습은 그저 약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해도 막다른 곳에 몰리게 되어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드라마다.

주인공이자 경찰, 그리고 탐정역할이나 다름없는 매그레 반장의 스타일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직하게 관련 인물과 단서를 쫓아가며 사건의 배경을 알아내는 것. 대체로 추리소설하면 범인(Who)과 범행과정(How)에만 집중하고 다소 대충 다루기도 하는 왜(Why), 라는 부분에 집중한다고 보면 된다. 뭐, 이렇게 말한다고 앞의 범인과 범행과정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범인은 범인대로 흥미가 생기게 만들고, 범행과정은 겉으로는 별거 없이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의 추리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있기에 문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걸 실행하기까지의 드라마가 극적이라 크게 복잡한 트릭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이게 매그레 반장이라는 추리소설 시리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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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괴담 스토리콜렉터 10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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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의 집

집에 관한 괴담을 유독 좋아하던 나는 어느 남자의 유소년기 체험담을 듣게 된다. 어린 시절 간사이 지방에 살았던 그는 아버지를 따라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며 내린 한적한 시골의 작은 산 정상에 있는 집에 도착한다. 어떤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그곳에 남자 혼자 남겨지고 아버지는 떠나버린다. 이후로 그는 할머니로부터 들은 기묘한 주의 사항을 지키며 일곱 살 당일까지 생활하게 되는데...

작중에서 말하듯이 집은 공포하면 떠오르는 고전이자, 정석 중의 정석 그 자체나 다름 없는 소재다. 대체로 현재 사는 익숙한 집이거나 아니면 처음 보는 낯선 집이라는 두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이 작품의 경우는 후자인데, 단순히 불길한 소문이 도는 폐가나 주인 없는 집 같은 경우가 아니다 보니 미스터리한 면이 강하다. 이렇다 보니 집 그 자체에 대한 부분도 문제지만, 여기에 왜 오게 됐냐는 의문까지 더해진다.

금기 사항이 언급되는 무서운 이야기는 언제나 금기를 어기면서 무서운 진실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 클리셰나 다름 없다. 처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다 점차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며 긴장이 풀리다 못해 그대로 선을 넘어버린다. 작중에서는 어린 시절이 배경인 만큼 어린아이 다운 심리로 어떻게 금기를 넘는지 흥미진진하면서 긴장감 있게 묘사된다. 이것 역시 집이라는 소재와 마찬가지로 흔한 스토리 전개 방식이다 보니 쉽게 읽기 좋게 한다. 너무 뻔한 전개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무서운 이야기는 구조가 비슷비슷한 법이니까.

앞에서부터 쭉 흔한 소재, 흔한 클리셰 얘기만 늘어 놓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집 관련 무서운 이야기 치고는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뻔한 전개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고 점차 압박해 오는 공포를 보여줬으니까. 가만 생각해 보면 애초에 집 자체는 처음부터 공포와 가까운 곳은 아니다. 그저 바깥에서 무언가가 들어옴과 동시에 곧 그 집 자체가 무서운 장소가 되버리는 것이다.

여담으로 작중에 나오는 집 구조가 다소 특이하다 보니 살짝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는데, 역자 후기에 보충 설명이 추가 되어 있어서 아주 좋았다. 혹시나 집 구조 때문에 읽기 어렵다면 역자 후기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예고화

나는 이전에 서점에서 어떤 책의 표지를 보다가 거기에 실린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 일명 예고화를 처음 접하게 된다. 이후 금방 잊어버리고 10년 넘게 흐른 시점에서 갑자기 예고화와 관련된 내용을 연달아 접하다가 지인으로부터 예고화와 관련된 체험담까지 듣게 된다. 20년 전, 간사이 지방의 어느 초등학교에 부임하게 된 모 신참 교사는 1학년을 맡게 된다. 거기서 만난 한 아이는 딱히 부족한 점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리던 그림이 점차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예고된 죽음이라는 소재는 옛날에 문방구에 팔던 괴담집에서 많이 봤었다. 대체로 예고하는 매개체를 통해 점차 공포를 조성하는 구성이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지만, 예전에는 전화 아니면 그림이 많이 쓰인 편이다. 특히 그림 같은 경우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불길하다 못해 때때로 기괴한 인상을 주는 탓에 꽤 오래 전부터 나타난 방식이다. 이런 소재의 클리셰라고 하면 예고로 지정된 대상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과정이다. 이미 어떤 식으로 죽을지는 파악은 됐다.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라는 점이다. 여기서 공포와 스릴러가 발생하며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도 고전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 역시 흔한 소재다 보니 무난한 작품으로 보였다가 결말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미스터리를 보여줘서 놀라웠다. 그냥 보면 남의 일이나 다름 없던 무서운 일이 점차 스스로에게 닥치는 정석적인 괴담이다. 그런데 몇몇 표현의 차이와 서술되는 정보의 대한 부분을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버린다. 죽음을 예고 받는 다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왜 예고를 받게 되었는가.

예고와 저주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거랑, 대놓고 불행을 조장하는 행위랑 비슷한 점이 어디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렇게 보면 어떨까. 예고는 좋은 의도로 알려주는 불행. 저주는 대놓고 나쁜 의도로 염원하는 불행. 다소 차이는 있어도 불행이 발생할 것이라 말한다는 건 똑같다. 또한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심리적 동요를 발생하게 만든 다는 것까지도. 그렇다는 건, 예고도 저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 옛날에 무언가를 예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하고 나쁘게 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모 시설의 야간 경비

나는 출판사를 통해 알게 된 모 작가로부터 한 때 경비원 일을 하며 겪은 무서운 일을 듣게 된다. 20대 초반에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차기작 집필과 회사 일을 병행하는 것이 부담이 커지던 끝에 퇴사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다가 경비원 모집에 지원하게 된다. 그렇게 반 년 가까이 경비 일을 하던 중, 어느 신흥 종교 단체의 야간 경비를 하게 된다. 담당 구역은 십계원이라는 장소로 기묘한 구조와 기괴한 조형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는데...

야간 경비원이 겪은 체험담이라는 형식의 무서운 이야기. 이것 역시 익숙할 것이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장소를 둘러봐야 하는 일. 이보다 공포와 가까운 직업은 없을 것이다.

경비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 될 수밖에 없어서 잘못 했으면 지루해지고도 남았다. 그런데 이 반복되는 장소라는 특징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감탄했다. 십계원이라는 시설의 괴이한 구조도 그렇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무서운 일도 그렇고. 그곳에 계속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포를 조성한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십계원이라는 시설을 정말 잘 구상했다고 본다. 그런 기괴한 조형물로 가득한 공간이라면 낮에 봐도 섬뜩한데, 밤이라면 얼마나 다른 세상으로 보일까.

십계원이 불교의 십계(十界)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보니 여러 생각을 해보게 한다. 원래의 의미는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나눈 10가지의 경지다. 그런데 작중에서 신흥종교는 이전에 있던 종교에서 모티브만 가져와서 또 다른 해석이나 교리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 과연 십계원의 십계는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그저 단순히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심령스폿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말 그대로 십계에 나타나 있는 의미를 그대로 재현한 현상이라도 일어난 걸까. 참고로 불교의 육도윤회는 죽은 이후에 생전의 업보에 따라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며 죽어간다는 의미다. 만약 여기서 해석이 변질되어 죽은 이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상태가 된다면? 죽지 않고 살아서 육도윤회를 경험하게 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상태일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부르러 오는 것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들려주었던 유령의 집에 대한 얘기를 떠올리게 만든 어느 여성의 체험담을 듣게 된다. 그녀는 어느 해 여름에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본가를 방문하게 된다. 할머니는 오봉 때마다 법사를 하는 어느 지인의 집을 방문했었는데, 건강 문제로 이번에는 그녀가 대신 다녀와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에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었다. 그 집에 오래 머무르지 말라고...

앞에서 먼저 언급된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나온 밖에서 부르는 괴이와 어느 집을 방문한 여성의 이야기가 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아했다. 밖에서 부른다. 어느 집을 방문한다. 어딘가를 방문한다는 것만 빼면 실내와 외부라는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데 점차 두 이야기가 전혀 관련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방문은 또 다른 방문을 부르게 되는 법이다. 방문한 곳에서 어떤 인연이 생긴다면 말이다.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냥 보면 현대에 흔해진 괴담 같지만, 사실 옛날부터 내려온 거라 나름 역사가 길다. 그저 밖에서 누가 부른다는 것이 초인종으로 바뀐 정도라고 봐야겠다. 어떻게 보면 직접적인 부름과 간접적인 부름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문을 열어 본다는 부분은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일도 없으면 다행이지만 대체로 무슨 일이 생길 확률 더 높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도 여전히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라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겠다. 목표가 된 대상이 딱 정해져 있다면 남의 일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일이라고 여겨지면 말이 다르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재앙이니 자연스레 초인종과 현관 밖의 낯선 방문자에 대한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낯선 방문자에 대한 괴담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시작해서 점차 영향력을 크게 만들어 버리는 전개가 대단했다. 문제의 방문자에 대한 정보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공포란 원래 그런 거라 어쩔 수 없다. 정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에 무서운 것이니까. 이건 현실에서도 꽤 자주 겪어 볼 수 있는 상황이라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중괴담

나는 편집자 시절에 작업을 의뢰한 적이 있었던 북디자이너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잡지에 연재 중인 연작 괴기 단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그로부터 30년 전에 겪은 체험담을 듣게 된다. 디자인을 의뢰 받은 책의 교정지를 들고 산책을 하던 그는 늘 들리던 정자로 향했다. 거기에서 어떤 노인을 만나고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함께 있게 됐다. 가족에 대해 말하던 노인은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비 오는 날의 무서운 이야기. 이건 공포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심심풀이 정도로 여기는 정도라 이것 자체 만으로 어디가 무섭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하다. 하지만 이걸 알아둬야 한다. 이야기 자체에는 힘이 있다. 그냥 이야기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단 한 명이라도 듣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펴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게 현실적든, 비현실적이든 말이다. 괜히 100가지 무서운 이야기(햐쿠모노가타리)나 학교 괴담 같은 것이 영향력이 있는 게 아니다.

어릴 적에 들었던 국내 전래 동화인 이야기 주머니가 이 단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차이점이라면 이야기 주머니 속의 이야기들은 일종의 괴이한 존재로서 묘사됐다면, 이 작품 속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 그 자체다. 단순히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고라면 대비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에 나오는 장소를 피하면 그만일지.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아야 할지. 아니면 그 어떤 가능성도 일어나지 않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할지. 처음부터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상으로 이야기의 유동성은 상상 그 이상이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이전에 작가가 괴담을 직접 체험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걸 생각하면 조금 묘해지는 부분이긴 하다. 체험하지 않고 듣기만 해도 결국은 무서운 일을 당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단순히 듣는다고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것도 일종의 주술, 또는 저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냥 재미로 하는 이야기라면 몰라도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다소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언급된 100가지 무서운 이야기(햐쿠모노가타리)가 딱 이런 경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에서 말했듯이 이야기는 유동성이 강하다. 그렇기에 금방 다른 곳으로 넘기기 쉽다. 작가가 직업이라면 그것도 참 쉬운 일일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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