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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괴담 ㅣ 스토리콜렉터 10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2년 11월
평점 :
은거의 집
집에 관한 괴담을 유독 좋아하던 나는 어느 남자의 유소년기 체험담을 듣게 된다. 어린 시절 간사이 지방에 살았던 그는 아버지를 따라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며 내린 한적한 시골의 작은 산 정상에 있는 집에 도착한다. 어떤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그곳에 남자 혼자 남겨지고 아버지는 떠나버린다. 이후로 그는 할머니로부터 들은 기묘한 주의 사항을 지키며 일곱 살 당일까지 생활하게 되는데...
작중에서 말하듯이 집은 공포하면 떠오르는 고전이자, 정석 중의 정석 그 자체나 다름 없는 소재다. 대체로 현재 사는 익숙한 집이거나 아니면 처음 보는 낯선 집이라는 두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이 작품의 경우는 후자인데, 단순히 불길한 소문이 도는 폐가나 주인 없는 집 같은 경우가 아니다 보니 미스터리한 면이 강하다. 이렇다 보니 집 그 자체에 대한 부분도 문제지만, 여기에 왜 오게 됐냐는 의문까지 더해진다.
금기 사항이 언급되는 무서운 이야기는 언제나 금기를 어기면서 무서운 진실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 클리셰나 다름 없다. 처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다 점차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며 긴장이 풀리다 못해 그대로 선을 넘어버린다. 작중에서는 어린 시절이 배경인 만큼 어린아이 다운 심리로 어떻게 금기를 넘는지 흥미진진하면서 긴장감 있게 묘사된다. 이것 역시 집이라는 소재와 마찬가지로 흔한 스토리 전개 방식이다 보니 쉽게 읽기 좋게 한다. 너무 뻔한 전개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무서운 이야기는 구조가 비슷비슷한 법이니까.
앞에서부터 쭉 흔한 소재, 흔한 클리셰 얘기만 늘어 놓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집 관련 무서운 이야기 치고는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뻔한 전개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고 점차 압박해 오는 공포를 보여줬으니까. 가만 생각해 보면 애초에 집 자체는 처음부터 공포와 가까운 곳은 아니다. 그저 바깥에서 무언가가 들어옴과 동시에 곧 그 집 자체가 무서운 장소가 되버리는 것이다.
여담으로 작중에 나오는 집 구조가 다소 특이하다 보니 살짝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는데, 역자 후기에 보충 설명이 추가 되어 있어서 아주 좋았다. 혹시나 집 구조 때문에 읽기 어렵다면 역자 후기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예고화
나는 이전에 서점에서 어떤 책의 표지를 보다가 거기에 실린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 일명 예고화를 처음 접하게 된다. 이후 금방 잊어버리고 10년 넘게 흐른 시점에서 갑자기 예고화와 관련된 내용을 연달아 접하다가 지인으로부터 예고화와 관련된 체험담까지 듣게 된다. 20년 전, 간사이 지방의 어느 초등학교에 부임하게 된 모 신참 교사는 1학년을 맡게 된다. 거기서 만난 한 아이는 딱히 부족한 점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리던 그림이 점차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예고된 죽음이라는 소재는 옛날에 문방구에 팔던 괴담집에서 많이 봤었다. 대체로 예고하는 매개체를 통해 점차 공포를 조성하는 구성이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지만, 예전에는 전화 아니면 그림이 많이 쓰인 편이다. 특히 그림 같은 경우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불길하다 못해 때때로 기괴한 인상을 주는 탓에 꽤 오래 전부터 나타난 방식이다. 이런 소재의 클리셰라고 하면 예고로 지정된 대상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과정이다. 이미 어떤 식으로 죽을지는 파악은 됐다.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라는 점이다. 여기서 공포와 스릴러가 발생하며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도 고전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 역시 흔한 소재다 보니 무난한 작품으로 보였다가 결말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미스터리를 보여줘서 놀라웠다. 그냥 보면 남의 일이나 다름 없던 무서운 일이 점차 스스로에게 닥치는 정석적인 괴담이다. 그런데 몇몇 표현의 차이와 서술되는 정보의 대한 부분을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버린다. 죽음을 예고 받는 다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왜 예고를 받게 되었는가.
예고와 저주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거랑, 대놓고 불행을 조장하는 행위랑 비슷한 점이 어디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렇게 보면 어떨까. 예고는 좋은 의도로 알려주는 불행. 저주는 대놓고 나쁜 의도로 염원하는 불행. 다소 차이는 있어도 불행이 발생할 것이라 말한다는 건 똑같다. 또한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심리적 동요를 발생하게 만든 다는 것까지도. 그렇다는 건, 예고도 저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 옛날에 무언가를 예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하고 나쁘게 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모 시설의 야간 경비
나는 출판사를 통해 알게 된 모 작가로부터 한 때 경비원 일을 하며 겪은 무서운 일을 듣게 된다. 20대 초반에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차기작 집필과 회사 일을 병행하는 것이 부담이 커지던 끝에 퇴사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다가 경비원 모집에 지원하게 된다. 그렇게 반 년 가까이 경비 일을 하던 중, 어느 신흥 종교 단체의 야간 경비를 하게 된다. 담당 구역은 십계원이라는 장소로 기묘한 구조와 기괴한 조형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는데...
야간 경비원이 겪은 체험담이라는 형식의 무서운 이야기. 이것 역시 익숙할 것이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장소를 둘러봐야 하는 일. 이보다 공포와 가까운 직업은 없을 것이다.
경비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 될 수밖에 없어서 잘못 했으면 지루해지고도 남았다. 그런데 이 반복되는 장소라는 특징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감탄했다. 십계원이라는 시설의 괴이한 구조도 그렇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무서운 일도 그렇고. 그곳에 계속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포를 조성한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십계원이라는 시설을 정말 잘 구상했다고 본다. 그런 기괴한 조형물로 가득한 공간이라면 낮에 봐도 섬뜩한데, 밤이라면 얼마나 다른 세상으로 보일까.
십계원이 불교의 십계(十界)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보니 여러 생각을 해보게 한다. 원래의 의미는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나눈 10가지의 경지다. 그런데 작중에서 신흥종교는 이전에 있던 종교에서 모티브만 가져와서 또 다른 해석이나 교리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 과연 십계원의 십계는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그저 단순히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심령스폿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말 그대로 십계에 나타나 있는 의미를 그대로 재현한 현상이라도 일어난 걸까. 참고로 불교의 육도윤회는 죽은 이후에 생전의 업보에 따라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며 죽어간다는 의미다. 만약 여기서 해석이 변질되어 죽은 이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상태가 된다면? 죽지 않고 살아서 육도윤회를 경험하게 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상태일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부르러 오는 것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들려주었던 유령의 집에 대한 얘기를 떠올리게 만든 어느 여성의 체험담을 듣게 된다. 그녀는 어느 해 여름에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본가를 방문하게 된다. 할머니는 오봉 때마다 법사를 하는 어느 지인의 집을 방문했었는데, 건강 문제로 이번에는 그녀가 대신 다녀와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에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었다. 그 집에 오래 머무르지 말라고...
앞에서 먼저 언급된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나온 밖에서 부르는 괴이와 어느 집을 방문한 여성의 이야기가 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아했다. 밖에서 부른다. 어느 집을 방문한다. 어딘가를 방문한다는 것만 빼면 실내와 외부라는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데 점차 두 이야기가 전혀 관련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방문은 또 다른 방문을 부르게 되는 법이다. 방문한 곳에서 어떤 인연이 생긴다면 말이다.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냥 보면 현대에 흔해진 괴담 같지만, 사실 옛날부터 내려온 거라 나름 역사가 길다. 그저 밖에서 누가 부른다는 것이 초인종으로 바뀐 정도라고 봐야겠다. 어떻게 보면 직접적인 부름과 간접적인 부름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문을 열어 본다는 부분은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일도 없으면 다행이지만 대체로 무슨 일이 생길 확률 더 높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도 여전히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라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겠다. 목표가 된 대상이 딱 정해져 있다면 남의 일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일이라고 여겨지면 말이 다르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재앙이니 자연스레 초인종과 현관 밖의 낯선 방문자에 대한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낯선 방문자에 대한 괴담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시작해서 점차 영향력을 크게 만들어 버리는 전개가 대단했다. 문제의 방문자에 대한 정보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공포란 원래 그런 거라 어쩔 수 없다. 정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에 무서운 것이니까. 이건 현실에서도 꽤 자주 겪어 볼 수 있는 상황이라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중괴담
나는 편집자 시절에 작업을 의뢰한 적이 있었던 북디자이너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잡지에 연재 중인 연작 괴기 단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그로부터 30년 전에 겪은 체험담을 듣게 된다. 디자인을 의뢰 받은 책의 교정지를 들고 산책을 하던 그는 늘 들리던 정자로 향했다. 거기에서 어떤 노인을 만나고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함께 있게 됐다. 가족에 대해 말하던 노인은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비 오는 날의 무서운 이야기. 이건 공포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심심풀이 정도로 여기는 정도라 이것 자체 만으로 어디가 무섭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하다. 하지만 이걸 알아둬야 한다. 이야기 자체에는 힘이 있다. 그냥 이야기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단 한 명이라도 듣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펴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게 현실적든, 비현실적이든 말이다. 괜히 100가지 무서운 이야기(햐쿠모노가타리)나 학교 괴담 같은 것이 영향력이 있는 게 아니다.
어릴 적에 들었던 국내 전래 동화인 이야기 주머니가 이 단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차이점이라면 이야기 주머니 속의 이야기들은 일종의 괴이한 존재로서 묘사됐다면, 이 작품 속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 그 자체다. 단순히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고라면 대비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에 나오는 장소를 피하면 그만일지.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아야 할지. 아니면 그 어떤 가능성도 일어나지 않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할지. 처음부터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상으로 이야기의 유동성은 상상 그 이상이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이전에 작가가 괴담을 직접 체험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걸 생각하면 조금 묘해지는 부분이긴 하다. 체험하지 않고 듣기만 해도 결국은 무서운 일을 당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단순히 듣는다고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것도 일종의 주술, 또는 저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냥 재미로 하는 이야기라면 몰라도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다소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언급된 100가지 무서운 이야기(햐쿠모노가타리)가 딱 이런 경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에서 말했듯이 이야기는 유동성이 강하다. 그렇기에 금방 다른 곳으로 넘기기 쉽다. 작가가 직업이라면 그것도 참 쉬운 일일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