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백 년째 열다섯 ㅣ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영원히 산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아마도 저주일 것이다. 내가 그대로인 채로 살아가지만 주위 사람들은 늙고 변해가는 현실을 견디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을은 오백 년 전, 죽을 뻔한 순간에 야호족 우두머리 령의 구슬을 받아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이 설정은 환웅과 웅녀의 전설에서 비롯된다. 여우는 여우답게 살길 택했고, 곰은 끝내 버텨내어 웅녀가 되었으며, 호랑이는 중도에 포기했다. 그 후 웅녀는 여우에게 자식을 지켜달라 부탁하며 구슬을 건네었고, 그 힘은 후손에게 이어졌다. 그렇게 야호족은 인간을 지키고, 호랑족은 구슬을 빼앗으려 하며 긴 세월 대립해왔다. 탄탄한 세계관은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가을은 언제나 열다섯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변신을 통해 나이를 달리할 수는 있지만, 실제보다 많은 나이로 둔갑하면 에너지 소모가 커서 오래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늘 열다섯에 머문다.
작품을 읽으며 문득, 신화 속 존재들이 지금 우리 곁에 산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게 되었다. 히어로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듯, 둔갑술로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호랑이나 여우, 혹은 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지내지 않을까. 그런 상상이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구현된다.
『오백 년째 열다섯』은 열다섯에 머무른 채 살아가는 삶, 구슬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그리고 그 속에서 얽히는 인간관계를 다룬다. 야호족과 호랑족은 오백 년마다 싸움을 벌이며, 더 가지려는 자들의 끝없는 욕심은 인간 사회의 탐욕을 떠올리게 한다. 그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불멸, 힘, 관계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신화와 판타지 속에 녹여낸 이 작품은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앞으로 야호족과 호랑족, 그리고 삼계절 자매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후속권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