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미술관 - 마침내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이 된다 아무튼 시리즈 80
이유리 지음 / 제철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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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눌린 듯 마음이 답답할 때, 나는 미술관으로 향한다. 전시장을 천천히 걷다 보면 막혀 있던 숨이 트이고, 복잡하던 생각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나에게 미술관은 그런 공간이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작품과 공간이 건네는 위로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크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미술관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에게 《아무튼, 미술관》은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책이었다. 전문가의 해설이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완벽히 알지 못해도 괜찮다. 자주 보고, 오래 바라보고, 조금씩 탐색하다 보면 나만의 안목과 취향이 자라난다. 그 과정 자체가 미술을 즐기는 기쁨이라는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굿즈 숍에서 작품의 여운을 기념품으로 데려오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 역시 가장 마음에 남은 작품의 마그넷이나 엽서를 사 오는 편이다. 집 냉장고에 붙은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바다와 항구, 어린아이, 꽃을 든 여인, 그리고 멋진 구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푸른 바다의 색감과 아이의 사랑스러움은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을 붙든다. 그렇게 하나둘 모은 자석과 엽서를 바라보며, 나만의 작은 미술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을 즐겨 찾는 나에게 이 책은 무척 반가운 주제였다. ‘아무튼’ 시리즈가 벌써 80권이나 나와 있다니, 또 어떤 주제가 나를 설레게 할지 궁금해진다. 다음에 도서관에 가면 천천히 둘러보며, 또 하나의 마음을 빼앗길 책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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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구르는 속도 - 제4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5년 고양시 올해의 책 사계절 아동문고 113
김성운 지음, 김성라 그림 / 사계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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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환해지는 동화를 만났다. 《행운이 구르는 속도》는 장애를 가진 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결국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말해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하늘이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학교에서는 활동보조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급식 시간에는 친구가 식판을 들어준다. 집 역시 하늘이의 생활에 맞게 1층으로 옮겼다. 불편함은 분명 존재하지만, 농담을 잘하는 엄마와 다정한 아빠, 편견 없이 대해주는 친구들, 언제나 제 편에 서주는 소꿉친구 덕분에 하늘이의 일상은 따뜻하다.

하늘이는 가끔 친구들의 도움이 진심인지, 혹시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 그런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를 자신의 전부로 여기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하늘이의 일부’일 뿐이다. 다만 세상이 휠체어로 살아가기엔 아직 불편할 뿐이다. 저상버스가 고장 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경사로를 힘겹게 올라야 한다. 작은 일상 하나에도 제약이 따르지만, 하늘이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소풍 날 버스 문제로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마음을 풀어낸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하루의 빛깔이 달라진다는 걸 하늘이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읽는 내내 나는 그 긍정의 힘이 참 좋았다.

이야기에는 이라크에서 온 마람 언니가 등장한다. 한 달간 2층에 머무는 그녀는 사실 램프의 요정이고, 하늘이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나는 당연히 “걷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이 나올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하늘이는 소풍 날이 맑기를 바라거나, 친구들보다 센 주먹을 갖고 싶다는 소원을 고민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깨달았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처럼 되고 싶어 할 것’이라는 편견을 나 역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 생각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이 책은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기 위해 쓰인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다정하게 건네는 작품이다. 잘 다듬어진 문장과 따뜻한 시선 덕분에 책을 덮은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았다. 다른 사계절 어린이문학상 수상작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질 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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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겨울에 다시 내가
강민채 지음 / 모모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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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헤어진 연인이 머지않아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 흥미로운 가설에 이끌려 책을 펼쳤다. 나였다면 어떻게든 살리려 애썼을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도 슬픈데, 5년을 함께한 연인이라면 그 마음은 더 간절하지 않을까.

친했던 친구의 유품인 노트북이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키며 미래의 기사를 검색할 수 있게 되고, 열음은 그 속에서 한봄의 죽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살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은 ‘구해야 한다’는 목표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두 사람의 서사를 천천히 풀어가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 또한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이야기의 결을 풍성하게 만든다.

로맨스이지만, 나는 특히 열음의 삶에 더 마음이 갔다.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채 하루 12시간을 온전히 쏟아붓는 작가의 삶. 마음과 몸을 다해 버텨내는 그의 모습에서 사회에 처음 발을 디뎠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보호자 없이 냉혹한 현실 속으로 내던져졌던 시간, 그 안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던 마음이 떠올라 조용히 응원하게 되었다.

열음은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친구까지 잃으며 깊은 상실을 겪는다. 그럼에도 삶을 놓지 않고 묵묵히 살아낸다. 한봄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힘든 시간을 견디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닮았다고 느꼈고, 그 결이 닿아 연인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으로 세상을 뒤집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상식적인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해나간다. 거창하지 않지만 진심 어린 선택들. 그래서 더 현실에 가까웠고, 내 삶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몰입도 또한 높았다. 한 번 손에 들자 끝까지 놓을 수 없을 만큼 빠져들었다. 누적 조회수 1천만 회를 기록한 작가의 신작이라 더 재밌었다.

이 책은 겨울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거창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그래서 나 역시 이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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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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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 도장깨기로 선택한 책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읽으면서 점점 지쳐갔다. 작가가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조금은 우울하고 많이 가라앉는 내용 위주라 마지막 전까지 참고 읽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너무 침체되는 책이나 영상은 보지 않는 선택을 한다. 읽거나 보고나서 마음이 너무 가라앉으면 그 감정을 떨쳐내면서 힘이 드는 과정이 불편하다.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주제로 글감이 떠올랐고 그대로 글을 써보고 있다. 내가 몇년간 고민만 하던 일을 실천에 옮기게 해준 책이니 참고 다 읽어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 내가 아쉽다. 산문은 작가와 마음이 맞아야 편하게 읽히는 터라 내 취향 하나를 더 안 것으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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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작별
김화진 외 지음 / 책깃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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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친했던 동갑내기 친척과의 멀어짐을 그린 ‘우연한 작별’, 죽은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VR 서비스 ‘에버 어게인’, 엄마의 납골당으로 향하는 자매의 이야기 ‘휴일‘, 튜터와 함께 시험을 치르는 미래 고등학교를 그린 ’너에게 맞는 속도’, AI보다 뛰어난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는 ’에이저‘, 온라인에서 학교와 직장을 대신하는 세계를 담은 ‘페페’까지. 단편집 《우연한 작별》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작별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이 작품들이 특별한 이유는 ‘작별’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비추기 때문이다. 떠나는 사람,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는 사람, 남겨진 사람, 현재의 나와 결별하는 사람까지. 누군가는 원치 않는 이별 앞에 서 있고, 누군가는 스스로 선택한 작별을 감당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 감정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조차 결국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익숙함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은 언제나 두렵고 어렵다. 작별은 단순히 끝나는 일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다음으로 건너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흔들리면서도 각자의 속도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 단편집은 작별을 과장하지도, 비극으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말해준다. 누구에게나 작별의 순간은 오고,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것을 통과해 간다고. 애틋하게 안녕을 건네고 난 뒤,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걸어갈 수 있다고.

이 책을 덮고 나니, 나 역시 언젠가 맞이할 또 다른 작별 앞에서 조금은 덜 두려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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