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 차이나 - 중국에 포획된 애플과 기술패권의 미래
패트릭 맥기 지음, 이준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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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반투명 아이맥을 처음 봤을 때, 컴퓨터는 죄다 누런 회베이지 육면체인 줄 알았던 당시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이 선보인 특유의 디자인과 혁신적 기술은 단순히 전자기기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애플 인 차이나'는 우리가 흔히 디자인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생각하는 애플을 제조기업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공정을 새로 고안하고, 기능을 완성하기 위해 재료와 생산 방식을 집요하게 탐구했던 애플의 집착은 곧 제조 혁신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까지 자체 생산을 고집하던 애플은 결국 아웃소싱이라는 길을 택하면서도, 단순히 생산을 위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엔지니어를 현장에 파견해 공정을 관리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독창적인 전략을 펼쳤다. 우리가 직접 목격했던 혁신은 이러한 집요한 제조 집착에서 비롯되었다.

주목할 점은 애플이 처음 협력한 대상이 일본과 대만 기업이었다는 사실이다. 기술력과 정밀함에서 두각을 나타낸 일본, 그리고 유연한 생산 네트워크로 성장한 대만, 그리고 거대한 노동력과 시장을 앞세운 중국. 글로벌 생산거점의 이전 과정은 전세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분업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앞선 생산거점과 달리 애플이 중국과 복잡미묘한 관계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정치, 경제 체제의 차이로 설명하기에는 책이 풀어갈 흥미로운 내용들이 궁금하다. 또한 앞으로 제조패권의 향방과 각 국이 펼칠 전략의 실마리도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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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순간 : 유럽 일상 편 - 하루의 틈에서 피어난, 사적인 시간 감각의 순간
임준이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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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친구와 함께 떠난 첫 유럽 여행에서 내가 처음 마주한 도시는 포르투였다. 첫 도시라는 설렘도 있었지만, 포르투는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보여주었다. 도우루 강변에 앉아 끝없이 반짝이던 윤슬을 바라보던 순간, 해질녘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며 마주한 노을, 하나둘 불을 밝히던 아기자기한 건물들, 그리고 도시 곳곳을 장식하던 파란 아줄레주까지, 그 모든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후 여러 도시를 여행했지만, 여전히 포르투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 곳은 없었다. 그래서 내 버킷리스트에는 ‘포르투에서 한 달 살기’가 적혀 있다. 그런 점에서 포르투의 일상을 담은 '감각의 순간: 유럽 일상 편'은 내게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을 미리 엿보는 듯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작가가 기록한 일상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 속에 진짜 여행의 의미가 숨어 있다. 자전거를 타다 남은 흉터를 통해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고, 축제로 활기를 띤 거리에서 느낀 생동감을 담아내며, 방 한구석의 캐리어나 자질구레한 물건조차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모든 장면에서 내가 포르투에서 직접 경험했던 여유와 따스함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여행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듯 스며드는 과정이 글과 사진 속에서 차분하게 전해진다.

아직 가보지 못한 틸부르흐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포르투가 도시 자체의 매력으로 다가왔다면, 틸부르흐에서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빛난다. 친구들과 요리를 나누고, 산책하며 풍경을 공유하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일상의 행복을 보여준다. 낯선 공간이 서서히 삶의 배경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여행과 일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평범한 순간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책을 읽다 보면 포르투와 틸부르흐는 배경으로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그날 그 순간에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했는가이다. 저자가 기록한 일상은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이며, 그 속에서 놓치고 살던 소중한 순간들을 일깨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바라본다면, 책의 모토처럼 ‘오감을 일깨우는 감각의 순간’을 비로소 우리 삶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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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 실패는 없다 - 미국 비밀경호국의 흥망성쇠
캐럴 리오닉 지음, 오상민 옮김 / 책과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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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호, 실패는 없다‘는 미국 대통령을 지켜온 비밀경호국을 긴 호흡으로 추적한 기록이다. 저자는 수많은 관계자의 증언과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조직이 어떻게 탄생하고, 또 어떤 위기와 흔들림을 겪어왔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케네디 암살 사건부터 트럼프 1기에 이르기까지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펼쳐지며 대통령 경호 체계의 발전과 위기, 그 속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드러난다. 책을 읽다 보면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세계적 영향력과 동시에, 그 자리를 지켜온 경호 체계가 얼마나 불완전했는지가 드러난다.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의 암살과 국가적 테러라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반복되며 비밀경호국의 역할이 확대되어 온 과정은, 선거 민주주의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우리들이 익히 하는 사건의 이면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면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로도 풍성하다. 본능을 거슬러 온 몸으로 총탄을 막아낸 요원,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은 이들, 조직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 온 사람들,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인물들까지. 이들의 모습은 얽히고 섥히며 비밀경호국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무엇보다 경호라는 직무가 단순히 위험 관리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실패가 곧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세계임을 실감하게 한다.


 경호 대상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경호의 특성상, 대통령에 대한 요원들의 증언도 상당히 이채롭다. 그 사람이 누구건 대통령인 이상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개인에 대한 매력이나 호감도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책에는 경호원들의 눈으로 본 대통령들의 사적인 모습도 담겨 있어, 고도화된 정치적 홍보 전략을 거친 이미지와는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통령과 대중, 그리고 비밀경호국 사이의 긴장이다. 선거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국민과 거리를 둘 수 없고, 이는 곧 경호 체계와 충돌한다. 또한, 대통령과 비밀경호국, 그리고 비밀경호국과 다른 기관, 일반국민 사이의 관계도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다. 클린턴 대통령 시기, 그의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대통령과의 신뢰도를 지키기 위해 증언을 꺼려하는 비밀경호국과 대통령의 부정을 조사하려는 사법부가 대립했던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대통령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경호 체제가 어떻게 양립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직론적 관점에서도 이 책은 흥미롭다. 비밀경호국의 성장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직적 문화와 오만한 리더십, 정치적 도구화, 예산과 인력 부족 등은 모든 조직이 마주하는 문제이지만 ‘실패가 곧 재앙’인 조직의 특성상 훨씬 더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여러 경호국장들의 리더십을 비교해보는 것도 책의 묘미다.위기에 대처하는 방식, 구성원을 끌어안는 포용력, 상부와의 소통 능력 등을 통해 ‘좋은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곱씹게 한다.


 ‘경호, 실패는 없다’는 비밀경호국이라는 특수한 조직을 통해 미국 현대사의 뒷면을 비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제기되는 물음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권력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리고 그 보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 질문이다.

"비밀경호국의 기법은 결국 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 P191

아는 것에 대해서만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를 넘길 때마다 비밀경호국은 더욱 발전합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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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해리엇 컨스터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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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엇 컨스터블의 '피에타'는 여성 음악가 안나 마리아 델라 피에타의 삶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18세기 베네치아라는 도시 전체를 생생하게 불러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화려한 가면무도회와 연주회, 베네치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운하를 둘러싼 일상의 활기와 함께 그 뒤편에 숨은 빈곤과 타락의 골목까지 눈 앞에 그려진다. 특히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서 피에타 고아원이 묘하게 중립지대처럼 놓여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가난 때문에 버려진 아이들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당시 여성에게는 거의 불가능했던 수준 높은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소설은 안나 마리아의 탄생부터 열일곱 살에 마에스트라 디 코로로 서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녀의 열정은 끝없이 치솟고, 그녀의 재능은 그 꿈을 실현하기에 충분하지만, 동시에 스승의 인정에 집착하며 가스라이팅에 흔들리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음악적 성공을 좇다 소중한 친구들과 멀어져 가는 과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혼자 빛나는 별’이 아니라, 함께 음악을 만드는 동료이자 리더로 성장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결말부였다. 스승의 배신에 무너졌던 안나 마리아가 동료들과 함께 반기를 들며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그녀가 단순한 천재에서 책임 있는 음악감독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 지점에서 독자의 시선을 뒤집는다. 그녀의 스승은 안나 마리아가 피에타에 있었기에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짓밟힌 다른 동료들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녀의 후원자는 안나 마리아가 자신의 수업시간을 빼앗는다며 시기했던 중산층이나 부유층 여자아이에게도 음악은 제한된 탈출구였다는 점을 짚어내면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진실들을 드러낸다. 안나 마리아가 개인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듯, 독자 또한 안나 마리아의 시선에서 벗어나 당대 여성들에 대해 시선을 확장하게 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은 마냥 해피엔딩이 아니다. 스승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안나 마리아보다 더 어리고, 재능있는 제자를 데리고 떠나고, 파올리나와의 관계도 회복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현실감 덕분에 오히려 안나 마리아가 피에타의 음악감독으로 서는 모습이 더 크게 와 닿는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앞서 나가는 혼자가 아니라, 동료 여성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를 지켜내는 존재다. '피에타'는 잊힌 이름을 복원하는 동시에, 예술이란 결국 개인의 영광을 넘어 공동체와 함께할 때 더 큰 울림을 남긴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피에타'의 매력은 단순한 예술가의 일대기를 넘어선다. 저자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여성 음악가들의 이름을 되살리며, 우리가 잊고 있던 질문을 던진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안나 마리아조차 지금은 낯선 이름인데, 그보다 더 많은 여성들은 얼마나 쉽게 잊혔을까? 저자는 소설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공백을 메우며, 잊힌 이름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낸다. '피에타'는 억압과 차별을 넘어선 여성 음악가의 강인한 목소리를 들려주며, 예술과 역사, 여성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면, 우리가 잊고 지낸 또 다른 목소리들에 대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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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지음, 최주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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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라리 젠틸의 '살인 편지'는 두 겹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첫 번째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울려 퍼진 비명 소리를 들은 네 명의 낯선 이들이 우정을 맺으며 전개되는 '소설 속 이야기'다.

 각각의 개성이 강한 이들의 관계는 ‘인간이 타인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한 인물의 어두운 과거와 그 주변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범죄들은 그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켜켜이 쌓아올린다. 뻔하게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는 통속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어도 각자의 서사가 탄탄한 덕에 지루하진 않다. 게다가 결말부의 반전은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이 지닌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소설을 써 내려가는 작가 해나와, 그녀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리오'라는 수신자의 관계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웠던 부분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팬과 작가의 관계로 보였지만, 리오의 피드백이 점점 ‘소설의 방향을 지시하는’ 수위로 올라가면서 ‘관찰자’가 ‘창조자’를 압도하는 묘한 불쾌함을 안겨준다. 피가 낭자하거나 폭력적인 장면 등 잔혹한 묘사가 없는데도 리오의 편지를 읽다보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진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비뚤어진 관심을 받는다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싶어진다.

 책의 디자인도 주목할 만하다. 편지지 모양의 표지, 피 묻은 지문, 실링 스티커까지.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살인 편지'는 글 너머의 감각까지 동원해, 독서라는 행위를 한층 더 입체적인 체험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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