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해리엇 컨스터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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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엇 컨스터블의 '피에타'는 여성 음악가 안나 마리아 델라 피에타의 삶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18세기 베네치아라는 도시 전체를 생생하게 불러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화려한 가면무도회와 연주회, 베네치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운하를 둘러싼 일상의 활기와 함께 그 뒤편에 숨은 빈곤과 타락의 골목까지 눈 앞에 그려진다. 특히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서 피에타 고아원이 묘하게 중립지대처럼 놓여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가난 때문에 버려진 아이들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당시 여성에게는 거의 불가능했던 수준 높은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소설은 안나 마리아의 탄생부터 열일곱 살에 마에스트라 디 코로로 서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녀의 열정은 끝없이 치솟고, 그녀의 재능은 그 꿈을 실현하기에 충분하지만, 동시에 스승의 인정에 집착하며 가스라이팅에 흔들리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음악적 성공을 좇다 소중한 친구들과 멀어져 가는 과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혼자 빛나는 별’이 아니라, 함께 음악을 만드는 동료이자 리더로 성장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결말부였다. 스승의 배신에 무너졌던 안나 마리아가 동료들과 함께 반기를 들며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그녀가 단순한 천재에서 책임 있는 음악감독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 지점에서 독자의 시선을 뒤집는다. 그녀의 스승은 안나 마리아가 피에타에 있었기에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짓밟힌 다른 동료들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녀의 후원자는 안나 마리아가 자신의 수업시간을 빼앗는다며 시기했던 중산층이나 부유층 여자아이에게도 음악은 제한된 탈출구였다는 점을 짚어내면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진실들을 드러낸다. 안나 마리아가 개인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듯, 독자 또한 안나 마리아의 시선에서 벗어나 당대 여성들에 대해 시선을 확장하게 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은 마냥 해피엔딩이 아니다. 스승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안나 마리아보다 더 어리고, 재능있는 제자를 데리고 떠나고, 파올리나와의 관계도 회복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현실감 덕분에 오히려 안나 마리아가 피에타의 음악감독으로 서는 모습이 더 크게 와 닿는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앞서 나가는 혼자가 아니라, 동료 여성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를 지켜내는 존재다. '피에타'는 잊힌 이름을 복원하는 동시에, 예술이란 결국 개인의 영광을 넘어 공동체와 함께할 때 더 큰 울림을 남긴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피에타'의 매력은 단순한 예술가의 일대기를 넘어선다. 저자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여성 음악가들의 이름을 되살리며, 우리가 잊고 있던 질문을 던진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안나 마리아조차 지금은 낯선 이름인데, 그보다 더 많은 여성들은 얼마나 쉽게 잊혔을까? 저자는 소설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공백을 메우며, 잊힌 이름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낸다. '피에타'는 억압과 차별을 넘어선 여성 음악가의 강인한 목소리를 들려주며, 예술과 역사, 여성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면, 우리가 잊고 지낸 또 다른 목소리들에 대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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