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재킷 창비청소년문학 127
이현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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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바다는 보기만 해도 청량하고, 평화롭다. 모래사장에 와닿는 파도소리 또한 상쾌하다. 하지만 바다가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검은 바다는 저 깊은 심연에 무엇이 있을지 공포 어린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파도가 모든 걸 집어삼킬 듯 거세게 칠 때도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보며 왜 많은 시인들이 바다를 인생에 비유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라이프 재킷은 6명의 청소년이 망망대해에서 펼쳐내는 이야기이다. 단순 모험담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무겁고, 삶의 무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치기어린 마음에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에 모인 6명의 청소년들. 바다를 사랑해서 온 사람도, 요트를 타보고 싶어서 온 사람도, 고향을 떠나기 전 그리운 마음에 온 사람 등 제각각의 목적으로 모인 6명의 아이들은 모두가 서로 친하지는 않지만 함께 항해를 시작한다.

평화롭게 항해를 즐기며 자유를 맛보던 아이들은 곧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조난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점점 상황은 악화되면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집안이 망한 천우와 신조 남매, 모범생인 노아, 신조를 짝사랑하는 장진,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사는 태호, 자퇴하고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는 류 등 6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사정을 지니고 있지만, 다들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이다. 작중에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심리가 묘사되는데 나의 청소년 시기가 생각나면서 하나하나 공감이 갔다. 이들이 위기 상황에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협력하는 모습들도 현실적이라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결국 살아 돌아온 아이들에게 바다는 이제 어떤 의미일까.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방식도 제각각이다. 장난이었다는 말로 수습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 중 누군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고, 누군가는 또 회피한다. 회피하는 아이의 선택도 이해가 가지만, 그 무거운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 아이는 또 얼마나 안쓰러운지 눈앞에 있다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겪은 일들은 어쩌면 인생의 질곡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난, 예기치 못한 사고와 이별, 난파 등 인생에 밀어닥치는 파도와 같다. 이 파도에 삼켜질 것인지, 이 파도를 넘을 것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살아 남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선택을 보여준 것처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럼에도 파도에 삼켜지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을 읽지 않는 일이었다(271p)’ 우리는 파도를 견뎌내며 성장하고, 더욱 거센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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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셰에라자드 1 : 분노와 새벽
르네 아디에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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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심에 불타는 여자가 복수의 대상인 남자에게 접근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는 익숙하다. 하지만 여기에 그 이름만으로도 이국적인 이야기, 천일야화가 더해진다면?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도 있듯이 더욱 재밌는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을까. ‘새벽의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로맨틱한 변주’라는 소개글에 걸맞게 익숙해서 더 재밌고, 그 와중에 판타지 요소까지 더해져 새로운 매력을 가진 한 편의 이야기이다.


 새벽의 셰에라자드는 매일 신부를 처형하는 칼리프 할리드와 그로 인해 죽은 절친한 친구의 복수를 위해 칼리프의 신부로 자원한 셰에라자드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셰에라자드는 천일야화와 같이 하루밤 사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할리드에게 들려줘 목숨을 구명하고, 그녀의 계획을 실현시키고자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렇게 살아남은 신부가 된 셰에라자드는 미친 살인마라고 생각했던 할리드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그가 숨기고 있던 어두운 진실, 자신의 친구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했던 이유에 다가간다.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셰에라자드와 할리드의 감정선이나 관계의 변화에 대해 작가가 찬찬히 풀어나가기 때문에 복수를 외치던 셰에라자드나 지금까지 비정하게 신부를 죽여오던 할리드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급작스럽거나 뜬금없지 않고 설득력 있게 보여진다. 셰에라자드가 그 과정에서 겪는 혼란에 대해서도 충분히 서술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그 감정을 따라가기도 어렵지 않다.


 이 소설의 강점 중 하나는 셰에라자드와 할리드 외의 등장인물들도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점이다. 할리드를 아끼는 사촌형이자 유머러스한 잘랄, 할 말은 다하는 시녀 데스피나, 셰에라자드의 소꿉친구이자 첫 사랑인 타리크,  딸을 위해 각성한 셰에라자드의 아버지 자한다르, 할리드의 숙적인 파르티아의 술탄 등 모두 각자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며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


 1편은 호라산과 할리드를 향한 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와중에 수도 레이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면서 끝난다. 1편에서는 판타지적 요소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2편에서 본격적으로 마법이 다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셰에라자드가 지닌 잠재력이 어떻게 발현될지와 마법의 양탄자가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셰에라자드와 할리드가 어떤 역경을 딛고 일어나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잘랄과 데스피나, 자한다르와 타리크는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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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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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 과거 → 태초로 역행하는 지구의 역사,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는 인간의 역사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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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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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멸종은 자연사에서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한 생명이 사라져야 새로운 생명이 등장할 수 있다. 현생인류조차도 이러한 과정을 밟아와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 책의 제목인 “찬란한 멸종”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책은 멸종의 시각에서 지구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인류가 멸망한 미래부터 시작해 구석기인과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6번의 대멸종을 거슬러 올라 진화의 과정을 거쳐 45억년 전 태초에 존재했던 생명의 시작까지. 미래에서 시작해 과거로 가다 보면 이렇게 길고 긴 과정을 거쳐 현대에 이른 인류 문명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인간 중심적인 서술 방식과 달리 인공지능이나 범고래, 산호, 공룡 등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는 지구의 역사는 신선하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볼 때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은 5초 전이라고 한다. 수십억년간의 진화와 대멸종의 과정을 거쳐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수차례의 찬란한 멸종의 과정을 거쳐 인간의 시간이 도래했고, 인간 문명은 짧은 시간 안에 번성하며 그 시간을 누리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인 만큼, 인간도 언젠가는 멸종할 것이다. 다만 모두가 그게 근시일 내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뿐. 사실 멸종이라는 단어는 공룡의 멸종과 같이 아주 옛날의 일이거나, 아득한 먼 미래의 일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파괴적인 단어라서 당장 현실로 닥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최근의 기후변화는 인간의 멸종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을 피부에 와 닿게 한다. 책이나 TV로만 보던 불타는 아마존이나 작은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을 볼 때 느끼지 못했던 위기감이 매일같이 울리는 폭염 경보와 호우 경보 앞에서는 예리하게 느껴진다. 그간 있었던 멸종과 지금의 차이점은 이번의 멸종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점이다.


 인류의 멸망이 지구의 멸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없는 지구에는 또 다른 생명체가 등장해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지구와 공존할 것이다. 그 시간이 자연스럽게 도래할 때까지 인간도 충분히 공존의 시간을 즐긴 뒤에 찬란한 멸종을 맞이할지, 아니면 마지막을 앞당겨서 스스로 파멸할 것인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간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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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Endless 1
김미진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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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1995년에 출간된 작품인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각자의 사정으로 머나먼 미국에 만나게 된 청춘들이 펼치는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들이라면 공감할법한 내용이라 더더욱 그렇다. 특히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듯 등장인물간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점차 확장되는 서술이 신선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소재는 바로 돈가방. 누군가 고액권 지폐가 가득한 돈가방을 들고 와서 내게 떠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결국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같은 내용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 질문에 대해 각자의 답변을 제시한다.


 유학생인 쌍, 윤, 지후, 류, 지니나 입양아인 글라스, 이민자인 쿠키 등 등장인물 대다수는 한국인이다. 미국에 살고 있거나, 미국 국적자라 해도 이들 모두는 어느 정도 이방인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 하나 하나에 마음이 가고, 이들간의 관계도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특히 소설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지후와 글라스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는데, 빨간색을 보지 못하듯이 자신의 감정에만 매몰되었던 지후와 자신의 상처를 꽁꽁 싸맨 글라스의 관계가 결국 파국에 이른 것이 안타까웠다. 글라스에 대한 사랑이 비참하게 끝나면서 예술에 대한 열정도 사라져 지후가 현실에 안주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마지막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지후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불법체류자인 윤도 돈가방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고, 실제로 꽤 큰 돈을 벌 기회가 찾아온다. 본인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감지덕지할 일이지만 윤은 외려 돈가방이란 화두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예술혼을 불태우게 된다. 비록 그 결정으로 쿠키가 떠나지만 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돈가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니와 류. 돈가방에 얽힌 미스터리가 본격적으로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마약과 범죄조직이 얽혀 그간의 스토리 진행과 달리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지지만 현실성 있는 일이라 생뚱맞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조직에 쫓기는 와중에도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류와 그런 류를 저버리지 않는 지니의 모습이 돈보다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 일지 궁금했는데, 작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짜르트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기타를 치면서 록 밴드에서 활동했을거라나. 클래식 음악도 당시에는 현대 음악이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읽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다.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 그는 돈가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돈 앞에서 사랑, 예술, 인간을 선택한 우리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다른 선택을 했을까. 이를 생각해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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