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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ㅣ Endless 1
김미진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평점 :
이 작품은 1995년에 출간된 작품인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각자의 사정으로 머나먼 미국에 만나게 된 청춘들이 펼치는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들이라면 공감할법한 내용이라 더더욱 그렇다. 특히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듯 등장인물간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점차 확장되는 서술이 신선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소재는 바로 돈가방. 누군가 고액권 지폐가 가득한 돈가방을 들고 와서 내게 떠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결국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같은 내용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 질문에 대해 각자의 답변을 제시한다.
유학생인 쌍, 윤, 지후, 류, 지니나 입양아인 글라스, 이민자인 쿠키 등 등장인물 대다수는 한국인이다. 미국에 살고 있거나, 미국 국적자라 해도 이들 모두는 어느 정도 이방인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 하나 하나에 마음이 가고, 이들간의 관계도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특히 소설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지후와 글라스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는데, 빨간색을 보지 못하듯이 자신의 감정에만 매몰되었던 지후와 자신의 상처를 꽁꽁 싸맨 글라스의 관계가 결국 파국에 이른 것이 안타까웠다. 글라스에 대한 사랑이 비참하게 끝나면서 예술에 대한 열정도 사라져 지후가 현실에 안주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마지막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지후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불법체류자인 윤도 돈가방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고, 실제로 꽤 큰 돈을 벌 기회가 찾아온다. 본인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감지덕지할 일이지만 윤은 외려 돈가방이란 화두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예술혼을 불태우게 된다. 비록 그 결정으로 쿠키가 떠나지만 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돈가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니와 류. 돈가방에 얽힌 미스터리가 본격적으로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마약과 범죄조직이 얽혀 그간의 스토리 진행과 달리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지지만 현실성 있는 일이라 생뚱맞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조직에 쫓기는 와중에도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류와 그런 류를 저버리지 않는 지니의 모습이 돈보다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 일지 궁금했는데, 작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짜르트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기타를 치면서 록 밴드에서 활동했을거라나. 클래식 음악도 당시에는 현대 음악이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읽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다.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 그는 돈가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돈 앞에서 사랑, 예술, 인간을 선택한 우리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다른 선택을 했을까. 이를 생각해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