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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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편견인지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어릴 때 크레파스나 색연필에는 '살색'이라는 색깔이 있었다. 그때는 어리기도 했고 그게 진짜 살색이라고 생각해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좀 더 자란 어느날 그게 차별적 용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종마다, 사람마다 살색이 다른데 특정 색깔을 살색으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점점 사회가 발전하는지 차별이나 편견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를 고쳐나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에 대해 지나친 검열이라고 느끼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보다 차별과 편견이 만연했던 과거에는 이를 깨부순다는 것이 지금보다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 흑인민권운동 등을 펼치다 목숨을 잃은 사람만 해도 여럿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럼에도 자신이 옳은 길이라고 믿으며 꿋꿋하게 나아간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좀 더 편견없는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을까.


 친애하는 슐츠씨는 아주 오래된 습관같이 자리한 차별과 편견과 이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 대한 책이다. 크게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사소해 보이는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차별부터 인종이나 젠더에 대한 거대담론회된 차별에 대해, 2부는 이러한 차별에 순응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낸 사람들에 대해 다룬다.


 가제본 서평단을 통해 1부와 2부의 내용 일부를 읽어볼 수 있었다. 1부에서는 여성 옷의 주머니에 담긴 차별과 편견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과거 고정된 성 역할에서 비롯된 의복의 차이가 현대의 의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다못해 실용적이어야 하는 군복에서조차 여군에게는 주머니가 없었다고 하니, 왜 이렇게까지 여성들에게 주머니가 허용되지 않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나 스스로도 주머니가 작거나 없는 옷이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옷을 살 때 크게 고려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인류의 오래된 습관을 끊고 편견을 바꾸는 일은 일상에서 이를 맞닥뜨린 사람들의 개인적 깨달음과 결단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찰스 슐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2부에서는 찰스 슐츠에 대한 2가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 피너츠의 작가라고만 알고 있던 슐츠에 대해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슐츠는 피너츠에 나오는 페퍼민트 패티 등 여자아이들은 스포츠에 열정적으로 즐긴다. 지금은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피너츠가 연재되던 당시에 여자아이들이 운동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색한 일이었다. 보스턴 마라톤에 여성이 뛸 수 없다는 점이 성문화할 필요조차 없는 관습법이었던 것처럼.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고, 슐츠가 피너츠를 통해 여자아이들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주지시키면서 이제는 여자아이들이 스포츠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또 하나, 피너츠에 등장하는 흑인 소년. 이 부분에서는 흑인 부모와 슐츠가 주고받은 편지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달라는 편지에 대한 슐츠의 답장 중 '저는 해결책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당시에 그가 겪었을 딜레마가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에도 콘텐츠에서 화이트워싱 등 인종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는데 1960년대에는 더 조심스럽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슐츠는 프랭클린 암스트롱이라는 흑인 소년을 피너츠에 등장시키고, 또 그 캐릭터가 희화화되어 단순히 소모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의 섬세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왜 이 책 제목이 '친애하는 슐츠씨'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운 수많은 친애하는 '슐츠씨'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가제본으로만 봐도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데 실제 정식 출판본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기대가 된다. 차별이 차별인지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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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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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줄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와 낭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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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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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Y2K 패션이나 빈티지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이 시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이런 것들이 힙하게 보이겠지만, 이 시대를 거쳐온 사람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 때는 분명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시기를 돌아보면 더 정감가고, 아늑하고 편안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과거를 미화하는 인간의 습성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은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상과 함께 사라져 버린 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100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터넷의 발명과 뒤이은 수많은 IT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과거의 불편한 삶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불편함이 만들어 내는 일상과 낭만도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다.


 저자가 말하는 100가지 유실물은 물체 외에도 행동, 관념까지 포괄한다. 처음에 서문만 읽고는 도대체 뭐가 있는데 100가지나 되나 생각했었는데 목차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길 잃기, 티켓 분실하기, 번호 기억하기, 종이신문, 손으로 쓴 편지, 글씨체, 백과사전 등 생각해 보면 인터넷 이후로 정말 잘 쓰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다. 유실물 하나 하나에 대해 저자의 위트있는 단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같은 대상에 대한 내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100가지 유실물 중 인상 깊었던 3가지를 꼽자면, 1. 지루함, 28. 공연에 몰입하기,  85. 기억이다.


 1. 지루함 -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지루한 시간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멍 때릴 필요가 사라졌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노래를 듣거나,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등등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마트폰이 내게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스스로를 상시 노출시킬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이 부족하다. 몇 년 전부터 멍 때리기 대회가 생겨나고, 명상이나 요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외부의 신호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신호에 집중해서 그 신호를 외부로 발산하는 행위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즘은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고, 나 스스로도 작은 부분에서부터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려고 하는데,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거나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생각보다 쉽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거나, 그 순간과 과정을 좀 더 풍부하게 경험하게 된다. 적당한 지루함은 내 경험과 사고의 폭을 다채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28. 공연에 몰입하기 - 이건 85. 기억과도 연관되긴 하는데, 최근에는 공연뿐만 아니라 어떤 체험을 해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기억도 희미하게 남는다. 무언가 좋고 예쁜 대상을 봐도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로 찍기 바쁘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저장하고 싶어서, 아니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어쩐지 사진을 찍는 만큼 그 순간에 대한 몰입도는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사진 찍는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아델의 말이 인상깊다. "저를 그만 찍으시면 안될까요? 저 여기 있거든요." 나와 세상 사이에 스마트폰을 두고 대상을 내 눈이 아닌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순간, 스마트폰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리시키는 것이 아닐까.


 85. 기억 - 제대로 집중해서 느끼지 못하니 기억도 희미하다. 그 당시의 감정, 생각이 명료하게 남기 보다는 좋았던 거 같은데... 하는 흐릿한 인상으로 남는다. 일상적인 정보는 이제 기억할 필요가 없고,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매일같이 쓰는 포털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지문 인식으로 로그인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비밀번호를 굳이 입력할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외부 저장장치에 내 기억을 통째로 맡겨놓은 기분이다. 저자의 말처럼 요즘은 인터넷 서비스가 친절하게 내가 몇 년 전 오늘 뭘 했는지, 지난달에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도 알려준다. 기억의 주도권을 스마트폰에게 넘긴 상황에서 나는 그럼 뭘 기억하고 있는걸까.  


 물론 인터넷은 우리에게 엄청난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는 했다. 하지만 과거의 불편함이 그저 싫기만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그 불편함에서 오는 추억과 낭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100가지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때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왜 그렇게 생생한지 신기한 일이다. 인터넷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지만 우리가 잃은 것들은 인터넷과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은 아니다. 인터넷의 편리함은 누리면서도 과거의 불편한 낭만을 되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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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라는 위로 - 불안과 두려움을 지난 화가들이 건네는 100개의 명화
이다(윤성희) 지음 / 빅피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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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를 갔을 때, 프라도와 티센 보르네미사, 소로야 미술관을 갔었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관람동선을 어떻게 짤지 열심히 공부하고 갔다. 다들 정말 멋진 작품이었는데, 정작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작품이다. 티센 보르네미사에서 본 카미유 피사로의 '오후의 생토노레 거리, 비의 효과'. 사실 휙 지나가다가 순간 멈춰서서는 그림을 보는데 비 내음이 코끝을 스치면서 습한 공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왁자지껄한 거리의 소음이 들리는 등 북적이는 미술관과 분리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그 그림 앞에서 서성이며 발을 떼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이 주는 평온한 느낌에 취했던 것 같다. 여행을 와서도 시간을 쪼개 바쁘게 다니는 와중이라 더더욱 그런 평온함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이 책에 있는 그림들에서도 그때 느꼈던 평온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아는 그림들도 있었지만, 아는 작가의 새로운 그림이나 모르는 작가의 그림들을 보며 세상에 좋은 그림이 많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할머니 화가로 유명한 그랜마 모지스의 '시럽 만들기'. 추운 겨울인데도 밖에 나와 시럽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마을 잔치같은 분위기라 소복히 쌓인 눈과 마른 나뭇가지에서까지 따스함이 느껴진다.



 뭉크의 '태양'은 다른 책에서 처음 접한 작품인데, 너무 맘에 들어서 아트 포스터도 사서 벽에 붙여뒀다. 음울하고 기괴한 '절규'로만 알던 뭉크였는데 이토록 밝고 희망찬 그림을 그렸다니! 생에 대한 의자가 태양이 내뿜는 빛처럼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외에도 뭉크의 다양한 작품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별이 빛나는 밤에'는 뭉크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과 색채가 잘 어우러져서 어딘가 다른 행성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예르, 비의 효과'는 앞서 말한 카미유 피사로의 '오후의 생토노레 거리, 비의 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비오는 날 바라봐도 좋고, 아니면 찌는 듯이 더운 날 이 그림을 보며 잠시 대리물멍(?)을 하며 비오는 날의 흥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도 좋을 것 같다. 인상파답게 물방울이 그리는 궤적이나 물웅덩이에 비친 나무를 생생하게 그려낸 점 등도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펠릭스 발로통이다. 그 역시 개인사가 평탄치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남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국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과감한 색채를 사용해서 구현해 낸 석양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이 작품 외에도 발로통이 그린 다른 석양이 이 책에 실려 있어서 서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색채 톤은 비슷한데, 어떤 작품은 좀 더 역동적이거나, 웅장한 느낌을 준다. 석양이라는 하나의 자연현상을 가지고도 이렇게 다채롭게 그림을 그려냈다는 점이 대단하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사실 좀 슬픈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의 등장에 다들 놀란 눈치이다. 이게 반가워서 놀랐다기 보다는 예기치 않은 방문에 대해 놀란 느낌인데 다들 남자를 낯설게 여기는 듯하다. 과연 남자는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오랜만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라 한참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모네, 르누아르, 고흐, 세잔, 클림트, 무하, 마티스 등의 많은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글보다 그림의 비중이 훨씬 높고, 글도 굉장히 간결해서 오히려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같은 그림을 봐도 느끼는 감정은 전부 다를 것이고, 같은 사람이어도 때에 따라 그림에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느 날은 대상이, 다른 날은 배경이, 또 다른 날은 그림의 기법이 눈에 들어오는 등 하나의 그림도 볼 때마다 다른 부분에 집중하게 되어 매번 새로운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이 책은 한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자주 자주 펼쳐볼 책이다. 1페이지부터 읽을 필요도 없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쳐서 그림을 보면 되니 오늘은 어떤 그림일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위로를 이 책에서 얻게 되길. 화가들이 화폭에 펼쳐 놓은 그들의 감정이 우리가 하루를 버텨낼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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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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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나는 대학생 때 깨달았다. 그 전에도 내가 뛰어나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노력으로 이를 메꾸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정말 뛰어난 친구들을 보며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함을 느꼈고, 나에 대한 기대를 내려두게 되었다. 적당히 놀고 적당히 듣고 싶은 강의 들으며 적당히 학점 챙기기. 그게 내 목표였다.


 직장인이 되어서 무능하다 욕먹기 싫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운이 좋게도 이런 나를 좋게 봐주시는 상사들을 만났고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는 축에 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었고, 그렇게 스스로를 착취하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작스레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 이후 나는 회사에서 '이만하면 됐다'를 되뇌이면서 일에 과하게 열정을 쏟지 않고 회사와 일정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내게 이 책,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에서 말하는 '그만하면 됐다'는 마인드는 익숙했다. 모두가 잘날 수는 없는 세상, 누군가는 평균을 맞춰줘야 하는 게 아닐까. 냉정하게 말해 내게 주어진 능력으로는 어차피 크게 성공하기 힘드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적당히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저자도 여러 번 말했듯이 누군가에게는 이런 생각이 패배주의적이거나 더 나아가서는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가끔 나도 내가 스스로에게 한계를 그어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아주 맘에 들지는 않아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굳이 내가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나 싶어진다.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성공한 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려고 하지만 이젠 성공한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저자가 말하는 '그만하면 됐다'는 마인드를 잘 장착한 게 아닐까.


 그래도 아직까진 마음 한 켠 어딘가에는 이제는 일어나 뛰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런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면서 스르르 풀려 사라지고, 지금처럼 사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쇼펜하우어, 버지니아 울프, 체홉 등 수많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도 평범함을 예찬하지 않았는가. 이 책은 마치 어디 볕 좋은 카페에 저자와 내가 단둘이 앉아 조용히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들게 했다. 아니면 야심한 밤에 듣는 라디오 사연 같은 느낌? 저자의 문장과 저자가 인용한 문장들이 하나 하나 마음을 울려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한 줄 읽고 밑줄 치고 생각에 잠기고, 또 한 줄 읽고 밑줄 치고 생각에 잠기고. 처음에 인덱스로 표시하다가 감당이 안되어서 그냥 연필 들고 밑줄 쭉쭉 그으며 책을 읽어 나갔다.


 또한 이 책은 내가 놓친 부분을 일깨워 줬는데, 동일한 관점을 타인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 자신에게만 관대하게 대할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만하면 됐다'는 마인드를 적용해야 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이게 참 어려웠다. 같이 일을 하면서 왜 상대방이 나와 같은 수준의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쉽게 일을 안/못하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일쑤였다. 아마 계속 부대껴야 하는 사람들이라 더욱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던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보이는 사실만 보고 타인에 대해서 섣부르게 재단하지 말고,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그들을 바라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적정선에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오히려 그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별 스트레스 없는 사람들을 보면 타인에게 크게 바라는 바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타인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관용이라는 점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만하면 됐다'는 말은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포용을 의미한다. 나와 타인 간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위한 기초이다. 내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 타인에게도 같은 욕구가 있는 게 당연하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완벽을 추구하지 않듯이 타인에게도 완벽하길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우리 모두 각자의 평범한 삶에서 각자가 지닌 특별함과 그 특별함이 주는 찬란함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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