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트로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Y2K 패션이나 빈티지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이 시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이런 것들이 힙하게 보이겠지만, 이 시대를 거쳐온 사람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 때는 분명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시기를 돌아보면 더 정감가고, 아늑하고 편안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과거를 미화하는 인간의 습성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은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상과 함께 사라져 버린 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100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터넷의 발명과 뒤이은 수많은 IT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과거의 불편한 삶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불편함이 만들어 내는 일상과 낭만도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다.


 저자가 말하는 100가지 유실물은 물체 외에도 행동, 관념까지 포괄한다. 처음에 서문만 읽고는 도대체 뭐가 있는데 100가지나 되나 생각했었는데 목차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길 잃기, 티켓 분실하기, 번호 기억하기, 종이신문, 손으로 쓴 편지, 글씨체, 백과사전 등 생각해 보면 인터넷 이후로 정말 잘 쓰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다. 유실물 하나 하나에 대해 저자의 위트있는 단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같은 대상에 대한 내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100가지 유실물 중 인상 깊었던 3가지를 꼽자면, 1. 지루함, 28. 공연에 몰입하기,  85. 기억이다.


 1. 지루함 -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지루한 시간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멍 때릴 필요가 사라졌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노래를 듣거나,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등등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마트폰이 내게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스스로를 상시 노출시킬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이 부족하다. 몇 년 전부터 멍 때리기 대회가 생겨나고, 명상이나 요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외부의 신호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신호에 집중해서 그 신호를 외부로 발산하는 행위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즘은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고, 나 스스로도 작은 부분에서부터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려고 하는데,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거나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생각보다 쉽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거나, 그 순간과 과정을 좀 더 풍부하게 경험하게 된다. 적당한 지루함은 내 경험과 사고의 폭을 다채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28. 공연에 몰입하기 - 이건 85. 기억과도 연관되긴 하는데, 최근에는 공연뿐만 아니라 어떤 체험을 해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기억도 희미하게 남는다. 무언가 좋고 예쁜 대상을 봐도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로 찍기 바쁘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저장하고 싶어서, 아니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어쩐지 사진을 찍는 만큼 그 순간에 대한 몰입도는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사진 찍는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아델의 말이 인상깊다. "저를 그만 찍으시면 안될까요? 저 여기 있거든요." 나와 세상 사이에 스마트폰을 두고 대상을 내 눈이 아닌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순간, 스마트폰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리시키는 것이 아닐까.


 85. 기억 - 제대로 집중해서 느끼지 못하니 기억도 희미하다. 그 당시의 감정, 생각이 명료하게 남기 보다는 좋았던 거 같은데... 하는 흐릿한 인상으로 남는다. 일상적인 정보는 이제 기억할 필요가 없고,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매일같이 쓰는 포털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지문 인식으로 로그인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비밀번호를 굳이 입력할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외부 저장장치에 내 기억을 통째로 맡겨놓은 기분이다. 저자의 말처럼 요즘은 인터넷 서비스가 친절하게 내가 몇 년 전 오늘 뭘 했는지, 지난달에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도 알려준다. 기억의 주도권을 스마트폰에게 넘긴 상황에서 나는 그럼 뭘 기억하고 있는걸까.  


 물론 인터넷은 우리에게 엄청난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는 했다. 하지만 과거의 불편함이 그저 싫기만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그 불편함에서 오는 추억과 낭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100가지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때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왜 그렇게 생생한지 신기한 일이다. 인터넷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지만 우리가 잃은 것들은 인터넷과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은 아니다. 인터넷의 편리함은 누리면서도 과거의 불편한 낭만을 되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