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라는 위로 - 불안과 두려움을 지난 화가들이 건네는 100개의 명화
이다(윤성희) 지음 / 빅피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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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를 갔을 때, 프라도와 티센 보르네미사, 소로야 미술관을 갔었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관람동선을 어떻게 짤지 열심히 공부하고 갔다. 다들 정말 멋진 작품이었는데, 정작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작품이다. 티센 보르네미사에서 본 카미유 피사로의 '오후의 생토노레 거리, 비의 효과'. 사실 휙 지나가다가 순간 멈춰서서는 그림을 보는데 비 내음이 코끝을 스치면서 습한 공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왁자지껄한 거리의 소음이 들리는 등 북적이는 미술관과 분리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그 그림 앞에서 서성이며 발을 떼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이 주는 평온한 느낌에 취했던 것 같다. 여행을 와서도 시간을 쪼개 바쁘게 다니는 와중이라 더더욱 그런 평온함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이 책에 있는 그림들에서도 그때 느꼈던 평온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아는 그림들도 있었지만, 아는 작가의 새로운 그림이나 모르는 작가의 그림들을 보며 세상에 좋은 그림이 많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할머니 화가로 유명한 그랜마 모지스의 '시럽 만들기'. 추운 겨울인데도 밖에 나와 시럽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마을 잔치같은 분위기라 소복히 쌓인 눈과 마른 나뭇가지에서까지 따스함이 느껴진다.



 뭉크의 '태양'은 다른 책에서 처음 접한 작품인데, 너무 맘에 들어서 아트 포스터도 사서 벽에 붙여뒀다. 음울하고 기괴한 '절규'로만 알던 뭉크였는데 이토록 밝고 희망찬 그림을 그렸다니! 생에 대한 의자가 태양이 내뿜는 빛처럼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외에도 뭉크의 다양한 작품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별이 빛나는 밤에'는 뭉크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과 색채가 잘 어우러져서 어딘가 다른 행성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예르, 비의 효과'는 앞서 말한 카미유 피사로의 '오후의 생토노레 거리, 비의 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비오는 날 바라봐도 좋고, 아니면 찌는 듯이 더운 날 이 그림을 보며 잠시 대리물멍(?)을 하며 비오는 날의 흥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도 좋을 것 같다. 인상파답게 물방울이 그리는 궤적이나 물웅덩이에 비친 나무를 생생하게 그려낸 점 등도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펠릭스 발로통이다. 그 역시 개인사가 평탄치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남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국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과감한 색채를 사용해서 구현해 낸 석양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이 작품 외에도 발로통이 그린 다른 석양이 이 책에 실려 있어서 서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색채 톤은 비슷한데, 어떤 작품은 좀 더 역동적이거나, 웅장한 느낌을 준다. 석양이라는 하나의 자연현상을 가지고도 이렇게 다채롭게 그림을 그려냈다는 점이 대단하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사실 좀 슬픈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의 등장에 다들 놀란 눈치이다. 이게 반가워서 놀랐다기 보다는 예기치 않은 방문에 대해 놀란 느낌인데 다들 남자를 낯설게 여기는 듯하다. 과연 남자는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오랜만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라 한참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모네, 르누아르, 고흐, 세잔, 클림트, 무하, 마티스 등의 많은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글보다 그림의 비중이 훨씬 높고, 글도 굉장히 간결해서 오히려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같은 그림을 봐도 느끼는 감정은 전부 다를 것이고, 같은 사람이어도 때에 따라 그림에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느 날은 대상이, 다른 날은 배경이, 또 다른 날은 그림의 기법이 눈에 들어오는 등 하나의 그림도 볼 때마다 다른 부분에 집중하게 되어 매번 새로운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이 책은 한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자주 자주 펼쳐볼 책이다. 1페이지부터 읽을 필요도 없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쳐서 그림을 보면 되니 오늘은 어떤 그림일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위로를 이 책에서 얻게 되길. 화가들이 화폭에 펼쳐 놓은 그들의 감정이 우리가 하루를 버텨낼 힘이 되길 바란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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