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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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나는 대학생 때 깨달았다. 그 전에도 내가 뛰어나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노력으로 이를 메꾸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정말 뛰어난 친구들을 보며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함을 느꼈고, 나에 대한 기대를 내려두게 되었다. 적당히 놀고 적당히 듣고 싶은 강의 들으며 적당히 학점 챙기기. 그게 내 목표였다.


 직장인이 되어서 무능하다 욕먹기 싫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운이 좋게도 이런 나를 좋게 봐주시는 상사들을 만났고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는 축에 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었고, 그렇게 스스로를 착취하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작스레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 이후 나는 회사에서 '이만하면 됐다'를 되뇌이면서 일에 과하게 열정을 쏟지 않고 회사와 일정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내게 이 책,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에서 말하는 '그만하면 됐다'는 마인드는 익숙했다. 모두가 잘날 수는 없는 세상, 누군가는 평균을 맞춰줘야 하는 게 아닐까. 냉정하게 말해 내게 주어진 능력으로는 어차피 크게 성공하기 힘드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적당히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저자도 여러 번 말했듯이 누군가에게는 이런 생각이 패배주의적이거나 더 나아가서는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가끔 나도 내가 스스로에게 한계를 그어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아주 맘에 들지는 않아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굳이 내가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나 싶어진다.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성공한 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려고 하지만 이젠 성공한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저자가 말하는 '그만하면 됐다'는 마인드를 잘 장착한 게 아닐까.


 그래도 아직까진 마음 한 켠 어딘가에는 이제는 일어나 뛰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런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면서 스르르 풀려 사라지고, 지금처럼 사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쇼펜하우어, 버지니아 울프, 체홉 등 수많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도 평범함을 예찬하지 않았는가. 이 책은 마치 어디 볕 좋은 카페에 저자와 내가 단둘이 앉아 조용히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들게 했다. 아니면 야심한 밤에 듣는 라디오 사연 같은 느낌? 저자의 문장과 저자가 인용한 문장들이 하나 하나 마음을 울려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한 줄 읽고 밑줄 치고 생각에 잠기고, 또 한 줄 읽고 밑줄 치고 생각에 잠기고. 처음에 인덱스로 표시하다가 감당이 안되어서 그냥 연필 들고 밑줄 쭉쭉 그으며 책을 읽어 나갔다.


 또한 이 책은 내가 놓친 부분을 일깨워 줬는데, 동일한 관점을 타인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 자신에게만 관대하게 대할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만하면 됐다'는 마인드를 적용해야 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이게 참 어려웠다. 같이 일을 하면서 왜 상대방이 나와 같은 수준의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쉽게 일을 안/못하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일쑤였다. 아마 계속 부대껴야 하는 사람들이라 더욱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던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보이는 사실만 보고 타인에 대해서 섣부르게 재단하지 말고,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그들을 바라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적정선에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오히려 그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별 스트레스 없는 사람들을 보면 타인에게 크게 바라는 바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타인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관용이라는 점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만하면 됐다'는 말은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포용을 의미한다. 나와 타인 간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위한 기초이다. 내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 타인에게도 같은 욕구가 있는 게 당연하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완벽을 추구하지 않듯이 타인에게도 완벽하길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우리 모두 각자의 평범한 삶에서 각자가 지닌 특별함과 그 특별함이 주는 찬란함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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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의 길 어원의 힘 -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인문학적 상상력
김성현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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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영단어을 매일 수십개씩 외울 때 온갖 방법을 다 써봤었다. 그냥 외우기, 연상법 써서 외우기, 어원 보면서 외우기 등등. 그중에서 어원 보면서 외우기가 가장 재밌었는데 효율이 높지 않아 결국엔 무작정 외우기를 했지만 어원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어원을 알면 단어도 쉽게 외울 수 있지만, 그
언어권의 문화나 사고체계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둔 단어가 분화되어 다른 의미를 가지고 각자의 길을 가는 점도 재밌지만, 특히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의 경우, 어떤 어원을 따와서 만들었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어원의 역사가 형성되는 한 장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이 책은 어원이 어떻게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지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5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별로 분량이 많지 않아 가볍게 읽기 좋다. 게다가 정말 다양한 단어들을 다루고 있어서 '아 이 단어가 이 단어랑 이렇게 연결된다고?' 싶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영화나 소설을 적절히 활용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가 쉽게 되는 것은 물론, 영화나 소설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진다.

내용 하나 하나 새롭고 흥미로웠지만 특히나 재밌게 읽은 부분은 마법과 기계의 관계를 어원으로 풀어낸 부분이었다. 아서 클라크의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이 기억났다. 어원을 이미 알고서 이런 말을 한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단어의 조합이 워낙 신선해서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각 장의 제목을 보면서 이 단어들이 무슨 관계일지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단어들이 지닌 어원과 구조를 보며 그 단어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며 이게 저자가 말한 어휘의 길임을 느꼈다. 유구하게 이어져 온 어휘의 길이 미래에는 또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길이 이어지는 기반에 있는 어원의 힘이 강력하다는 점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독서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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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제국의 탄생 - 무명의 언더독에서 세계 최대 콘텐츠 플랫폼으로 성장한 유튜브의 20년 비하인드 히스토리
마크 버겐 지음, 신솔잎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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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유튜브제국의탄생 #마크버겐 #현대지성 #유튜브 #IT #경제경영 #책추천

어떤 기업에 대해 이 정도로 심도있게 파본 적이 있던가. 차고에서의 시작부터 구글의 인수, 바이오컴과의 소송, MCN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대두, 주류 미디어 기업과의 경쟁과 협력, 페이스북, 넷플리스 등 신생 기업들에 대한 견제, 비즈니스 모델의 발전 등 정말 한 기업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실을 조사한 저자도 대단하고, 이 모든 일이 한 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오피스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밌겠다 싶은 지점들도 있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유튜브의 관계였다. 영상을 보는 시청자로서, 유튜브와 시청자의 관계는 생각해 봤어도 크리에이터의 입장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있어야 유튜브가 존재할 수 있듯 유튜브와 크리에이터와의 관계가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 보는 것은 유튜브의 성장과정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유튜브가 각종 음모론과 선전•선동, 비방의 장으로 활용되면서 직원들이 느꼈을 당황스러움과 좌절감에 공감이 갔다. 물론 유튜브는 그저 플랫폼일 뿐이고, 플랫폼에서 일어나는 일은 플레이어의 문제이지 플랫폼의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설령 그렇게 생각해도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서비스가 악용되는 걸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안전 앞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비단 유튜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심사숙고해야 하는 문제이다.

매순간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영상을 일일히 스크리닝할 수 없어서 알고리즘을 만들었지만 그 알고리즘이 적절하냐는 논쟁이 촉발되고, 급기야는 알고리즘을 규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유튜브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책을 읽기 전에는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문제적 영상들에 대해 왜 유튜브가 규제하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속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이대로라면 유튜브에는 극단주의자들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단지 크리에이터와 그들의 시청자를 탓하기에는 유튜브의 역할도 크다. 운동장을 제공하는 것으로 손을 떼기엔 시간이 지나면 그 운동장은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떠나게 될테니까.

유튜브가 언더독에서 세계 최대의 영상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급격한 성장으로 인한 성장통은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통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앞으로 유튜브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까. 급변하는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 언제든지 유튜브를 위협하는 언더독이 등장할 수도 있다. 앞으로 유튜브의 귀추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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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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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시 게이하트를 읽으면서 그녀의 짧은 삶이 덧없어 보이면서도, 그래도 나름 뜨겁게 살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뤘지만 삶이 공허한 중년의 음악가와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음악가의 사랑은 진부한 플롯이다. 하지만 윌라 캐더의 섬세한 감정 표현 덕분에 흡입력 있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 잠시나마 삶의 활기를 되찾고, 여자는 남자를 존경하며 삶의 깊이를 더해간다. 둘의 관계는 남녀간의 에로스라기 보단 청춘의 열정이 자아내는 동경과 그러한 청춘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에 가까워서 두 사람의 로맨스는 감정의 큰 진폭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그들은 영영 헤어지게 되고, 루시는 절망한다. 시카고를 도망치듯 떠난 그녀는 고향에서 예전의 생기를 잃은 채 어딘가 고장난 사람처럼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로 끝장내 버린 해리 고든과의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하지만 해리는 그녀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여기서 잠깐 의문이 든 게 루시는 왜 굳이 해리와 다시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걸까하는 점이다. 루시에게 해리는 속물적이지만 그만큼 안정된 삶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루시가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자신에게 깊은 호감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무참히 끝내버린 행동은 분명 미숙했다. 물론 그 이후 해리의 행동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세바스찬이 떠난 이후 해리와의 친분을 되살리고 싶어서 여러 노력을 한다. 세바스찬을 알기 전, 그래서 평범하지만 대신 상처입을 일도 없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였을까? 너무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그녀는 안정을 표상하는 해리와의 관계를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으로 세바스찬을 만나고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다시 음악으로 삶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 세바스찬과의 사랑은 한 남자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는 삶에 대한 찬미와 애정이었다. 루시는 이제 삶 그 자체를 연인으로 삼아 세바스찬을 추억하며 자신의 인생을 풍성하게 살아갈 참이었다. 그녀는 '젊고 튼튼했으며 세상이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루시가 뜨거운 열정을 되찾은 순간 차가운 얼음 아래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 작품의 묘미는 루시가 떠난 이후의 이야기인 3부이다. 작가 스스로도 3부가 가장 훌륭하다 평했다고 한다. 아스라히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루시를 담담히 추억하는 사람들. 특히 루시를 사랑했지만 서로 이해하진 못했던 해리 고든이 루시에 대한 기억을 곱씹는 부분을 보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루시가 세바스찬을 잃고 고통받았듯이 해리도 루시를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스스로를 종신형을 받았다 자조한다. 게이하트 가족의 집 앞에 그녀가 남긴 달아나려는 듯한 발자국을 바라보며 그는 살아있는 동안 루시를 회상하고 또 회상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상실과 기억이라고 볼 수 있다. 1부는 친한 동료를 하나하나 잃으며 그들에 대한 기억 속에 침잠하는 세바스찬, 2부는 세바스찬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고 그에 대한 기억으로 삶의 의지를 되찾는 루시, 3부는 루시가 떠난 뒤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곱씹는 해리. 살면서 누구나 가까운 사람의 상실을 겪지만 그에 대한 기억으로 삶은 이어진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의 이번 컨셉은 날씨와 생활이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이 되는 시카고는 겨울에 춥기로 유명한 도시다. 하지만 루시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려 추위를 즐기고, 이겨내며 뜨겁게 타오른다. 날씨와 대비되어 루시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더욱 돋보인다. 이번에 출판된 다른 작품들은 날씨와 어떤 관계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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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 빛과 물질의 탐구가 마침내 도달한 세계
그레고리 J. 그버 지음, 김희봉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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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선물받은 과학키트 중에 작은 프리즘이 있었는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게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한참 바라본 기억이 있다. 나중에 그 7가지 색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영역일 뿐이고, 자외선이나 적외선과 같이 볼 수는 없지만 존재하는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빛을 인간이 최초로 활용해서 만든 도구가 거울이라고 한다. 거울 외에도 렌즈도 역사 초기부터 사용했다고 하니 빛을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문제에 있어 그 기원이 꽤 오래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광학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저자는 광학의 목적지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술의 개발로 상정하고 투명망토로 대표되는 보이지 않음의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짚어본다.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숨기는 것은 인류에게 오래된 욕망이었고, SF나 판타지 소설 중에서도 투명인간은 심심찮게 다뤄지는 소재이다. 저자는 각 장마다 이러한 소설의 일부를 발췌해서 실었는데 짧은 분량임에도 흥미를 돋구는 내용들도 있었다. 책 뒤에 별도 부록으로도 저자가 보이지 않음에 관련된 소설들을 정리해 두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찾아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만 국내에 번역된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다시 광학으로 돌아와서, 광학이 이렇게나 많은 학문과 연관이 있는지 몰랐다. 전자기학,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통계학, 분광학, 의학까지! 빛이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해 빛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결국 빛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탐구와 승리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 참여한 정말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다. 이름을 들어본 유명 과학자부터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된 과학자까지 이들은 길게는 수십년간 연구에 매진하고 서로의 가설을 지지하고 비판하며 광학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과학, 인류문명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부단히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새삼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왜 보이지 않음을 기술로 구현하는데 이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저자가 보이지 않음이 보호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순간 스스로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또한 이 연구가 빛 외에도 전자기파, 지진파 등 다른 유형의 파동에 대한 연구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광학의 발전에도 아직까지 완벽한 의미의 투명망토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전세계 곳곳에서 투명망토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저자도 섣불리 몇 년 안에 완벽한 투명망토가 개발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투명망토가 완전한 허구,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투명망토가 개발되더라도 상용화되기 까지는 한참 걸리겠지만, 그래도 투명망토가 우리의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지 궁금하다. 보이지 않음을 소재로 한 SF나 판타지는 보통 투명인간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위해를 가하는 식의 공포나 스릴러가 많은데, 좋은 목적으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투명망토가 생기면 어떤 일을 할 지 잠시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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