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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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 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만화책에서였다. 좋아하는 만화책의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가 젤 좋아하는 작가라며 친구에게 소개하면서 이름도 예쁘다고 하는 말에 무슨 내용이길래 하면서 책을 찾아보았다. 그 만화책에서 건진 두 개의 소설이 바로 어스 시 이야기와 반지의 제왕이었다. 게다가 난 당시에 이름만으로 어슐러 k, 르 귄 작가님 남자라고 생각했다. 작은 호기심으로 찾아 읽어봤던 책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신간이 나오면 들뜨게 만드는 작가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크게 다쳐서 정시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서부 해안 연대기와 어둠의 왼손들 짧은 단편들 등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버티고 나아가게 해 준 원동력이라 나에게 어슐러 K 르권의 새로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 즐거운 일이다. 전자책 리더기를 들이고 이미 다 읽었던 작가의 소설들을 열심히 사 모으는 와중에 최근 들어 작가의 논픽션 책들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가의 사생활도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은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로 작가의 집사님 면모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파드를 좋아하게 만드는 작가님의 글에 우리 집고양이를 예쁘다 귀엽다 잘생겼다는 말로 밖에 지인들에게 소개하지 못하는 나의 비루한 말솜씨와 글 솜씨에 미안해지기까지 했던 멋진 책이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근사한 것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낸 그 사색의 깊이가 부러워 견딜 수 없는 책이었다. 소설가의 에세이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나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그녀의 소설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게다가 파드 연대기는 짧지만 흥미진진해서 역시나 날 고양이를 써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읽게 된 책이 바로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였다. 삶과 책에 대한 사색이라니 역시나 저자의 책에 대한 생각과 페미니스트 작가로서의 면모, 재미있는 소설책들을 잔뜩 써낸 작가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받을 수 있는 보물 같은 책이었다. 게다가 책에 대해 폭넓은 지식과 그녀만의 유머러스함이 한대 어우러진 강연 글과 서평들은 짧지만 강력했다. 내가 책이 너무 좋아서 참을 수 없었던 순간을 기억나게 만들어 주었다.



멋진 양장의 표지는 이전 책과 비슷한 질감의 재질로 하드커버에 가름끈까지 있어 책 다운 위풍당당함이 있다. 작가의 소설 특히 판타지 소설들을 읽으면 항상 느껴지는 나무 혹은 숲의 색인 초록으로 된 표지에는 작가가 좋은 책을 소개해 줄 것만 자세로 그려져 있다. 책이 예쁘다며 이전 책들과 어디에 놓을지 책장 위치를 잡고 사진도 좀 찍고 나서 지금 사은품으로 주는 책갈피도 만지작대면서(이 책에는 가름끈이 있어서 딱히 필요하지 않지만 사용하면 귀여우니 적극 활용한다.) 열어본 책은 내용도 알차다.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도톰하고 알찬 책은 르권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물론 이 책으로 작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즐거울 것들이 가득하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1장의 여러 강연 글과 기고문에서 공감은 물론 감명도 받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늘 강연 너무 좋았다며 일기에 한 페이지 가득 찬사를 적어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 가득했다. 인상적인 글들의 강연들을 찾아보니 영상이 있어서 보기도 했는데 자유라는 내셔널 북 파운데이션 메달 수락연설에서는 작가의 시상자로 닐 게이먼이 나와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가 11살 때 처음으로 자신의 돈으로 산 책이 어스시의 마법사였다며 그녀가 자신의 삶과 글쓰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를 하며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녀의 글은 사람을 만든다. 생각을 깨우고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만들어주며 성 역할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소설뿐만 아니라 그녀가 강연하고 써 내려간 글에는 삶이 있고 책이 읽다. 그녀의 삶이 책이고 삶이 글이고 글이 삶이 라는게 느껴진다. 통찰력과 깊이가 독서와 사색에서 온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글을 써 내려갔고 주류라 불리지 않던, 오랫동안 문학에서 배제되었던 장르를 엮어낸 작가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써 내려가는지 그 의미를 알았던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단이 있고 힘이 있다. 위에도 언급한 자유라는 글은 그녀의 글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 글쓰기와 출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당한 몫을 원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어야 할 보상의 이름은 이익이 아니에요. 자유입니다.'


그녀의 소설과 모든 글을 관통하는 의미 그녀의 글이 울림이 있고 감동적이며 힘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읽다 보면 그녀가 오랜 시간 글을 써오는 동안 페미니스트 작가라던가 SF나 판타지를 쓴다는 것으로 헛소리를 들어왔다는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이야기를 자아내 준 것에 감사를 품으면서 절대 호락호락한 작가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 판타지에 대하여'라는 강연은 판타지라는 장르가 무시당해왔지만 전혀 그럴 장르가 아님을 우아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지적으로 풀어낸다. 저자의 문학사 강의나 글쓰기 강의가 있다면 달려가서 듣고 싶을 정도로 장르문학을 무시하는 평론가들이 본다며 얼굴이 벌게질 우아한 뒷발차기 같은 글은 작가의 넓은 안목과 통찰에 다시 한번 반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와 삶, 책에 관련된 주제로 한 강연과 기고들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자신이 이 부분에서는 쓴소리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는 게 멋있었다. 출판계의 상황이라던가 본인이 몸담고 있는 출판의 부조리 자본주의에 목메어가는 출판시장을 따끔하게 꾸짖는 모습도 그녀이니까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녀라서 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이 바로 멋짐이고 어른이다.라고 느껴졌다.


' 아무리 겸손한 정신으로 한다 해도 설교는 공격적인 행위인걸요.'라는 내용이 나오는 '스스로를 생각에서 몰아내기'라는 강연 글은 그녀가 작가로써 어디까지 생각하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는 글이 그녀의 글이지 않을까? 하나하나가 다 흥미진진한 강연과 조각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개토론회 전에 그녀가 한 강연은 이다음에 어떤 토론이 있었을지 궁금할 정도로 의미심장하다. 여자들이 아는 것이라니 작가는 작은 불씨를 일으키고 바람을 끌어온다. 사람들은 아마 활활 타올랐을 것이다.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모두 끓어 모아 불태웠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SF 쓰는 방법 배우기'란 글은 매우 짧지만 그녀의 글이 탄생되는 자양분이 된 것을 알 수도 있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보고 싶게도 하며 글을 쓰고 싶게도 만든다. 글 중간중간 작가의 소설들의 제목이 나오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2장은 책 서문과 작가들에 대한 글 모음이다. 이장을 읽다 보면 서문을 읽고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든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의 책들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또 한 그녀의 엄청난 독서량과 지식의 양에 놀라게 된다. 아마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들을 그녀가 소화했기에 우리는 르 권의 멋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책 한 권을 읽고 줄거리 하나 소화하기, 주제를 요약하는 것도 쉽지 않은 나에게 저자의 경향과 유사한 도서로 계보까지 읊어주며 책을 추천해대는 통해 정신이 없었다. 사라마구의 책을 항상 읽을까 말까 고민만 하던 나에게 꼭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사명감을 주고 필립. k. 딕과 H.G웰즈에 대한 애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장이었다. 나는 르 권 작가의 책으로 SF에 입문했다고 할 수 있는데, 르 권 작가의 단편이 들어있는 책들을 찾아보다가 다른 SF 작가를 알게 되고 그들의 장편을 읽어가는 식으로 독서를 해왔다. 그렇게 읽었던 작가들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글을 읽는 건 더 뜻깊기도 했다. 아직도 주변에서는 SF나 판타지를 허황된 이야기로 생각하며 문학작품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들에게 소리 내어서 읽어주고 싶은 글들이기도 했다. 이 장르문학이 얼마나 굉장한지 우리 인류에 중요한 것인지 두 번 세 번 읽어주고 싶은 글들이 가득하다.


3장은 서평 모음집이다. 32편의 서평이 모여있었고. 안타깝게도 아니 다행이기도 단 한 권도 읽었던 책이 없어서 절망과 흥분으로 읽어내려갔다. 10편쯤의 서평을 읽다가 아예 책 제목을 노트에 써놓고 서평을 읽고 나서 읽고 싶은 기분을 별표로 체크해 나갔다. 몇 권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 도서들도 있어서 우선 5권 정도만 추려서 챙겨뒀다. 그녀의 서평은 서평이란 이런 거지라는 만족감이 들 정도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면서 책을 궁금하게도 한다. 게다가 꽤 냉정하다.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은 에두르지 않는다. 딱 잘라 이야기한다. 같은 작가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같은 작가라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게 모든 서평을 읽고 난 감상이다. 게다가 아는 게 많은 작가 덕분에 곁다리로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품들도 생겨나는 서평이었다. 엠시 윌러의 레도잇 외에 카르멘 도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안타깝게도 번역은 안 된 모양이다. 저자도 서평을 쓰면서 자신도 2년간 신간이 나온 줄 몰랐다며 안타까워하는 걸 보니 말 다 했군 이란 생각만 든다.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펼쳐보지 않았던 애트우드의 책을 펼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잘 쓴 서평을 32편이나 읽고도 서평을 제대로 못 쓰는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의 3장이다.


4장은 굉장히 짧다. 어떤 작가의 일주일 기록이란 부제로 작가가 정말 아무 집안일이나 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글을 쓰거나 독서만 할 수 있는 헤지브룩 코티지에 초대받아서 지내는 동안의 일기를 쓴 내용이다. 정말 소소하고 별거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역시 작가.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내가 그곳에서 지내면서 일기를 쓴다면 오늘은 뭘 했고 뭘 했고 뭘 먹었고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다. 이런 것만 쓸 것 같은데(물론 지금도 일기에 그런 내용만 써대고 있다.) 토끼의 모습 도마뱀의 움직임을 이렇게 세세하게 묘사하다가도 별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훅 날려버리는 일기에 매료되었다. 일기만 읽었는데 작가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책도 읽고 토끼도 보고 온 것 같다. 일기는 일정을 다 써야 직성이 풀리는 이의 일기를 변화시켜줄 멋진 일기 교본이었다.


다 읽고 나면 아쉽다. 물론 작가가 소개해 주는 책을 읽으러 가야 해서 바빠지고 가끔 언급되는 작가의 작품들이 생각나서 책장을 뒤지게 된다. 500여 페이지의 얇지 않은 이 책이 관통하는 이야깃거리는 책과 삶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나의 편협된 독서와 부족한 글쓰기와 좁은 시야를 반성하게 할 만큼 저자의 넓고 깊은 지식과 독서량이 독자를 더 깊은 책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게 만들고 책 고르는 것도 도와준다. 서평의 모범을 보여주어 글쓰기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된다. 르귄 이란 작가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며 선물 같은 책이다. 그녀 특유의 분위기가 흐른다. 이전 에세이 모음보다 책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모은 책이라서 그런지 작가의 생각이 더 또렷이 보이는 것도 같다. 담대하기도 하고 단호하기도 하며 유머러스하고 비판적이다. 힘 있는 작가의 내가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되지, 아니 이런 이야기는 내가 해야지 하는 당당함과 책임감도 느껴진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이들은 확고한 신념과 취향 폭넓은 상식과 지식을 바탕으로 같은 책을 보면서도 더 멀리, 넓게, 깊게 보는 그 지혜로움과 탁월함에 반해서 그녀의 주 종목인 소설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그녀의 책을 맛본 이들에겐 아까도 언급했지만 멋진 선물이다. 닐 게이먼이 수상식에서 그녀를 소개하면 말했다. 자신은 그녀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키웠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아직도 배울게 많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바이다. 그녀는 이 배움이 책에서 시작된다고 이 책에 있는 글들로 넌지시 아니 확실히 말해준다. 독서를 해야 할 수백가지 이유중 하나로 써먹기 좋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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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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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임지에서 100대 판타지목록을 발표했다. 고전으로 불리우는 반지의 제왕과 어스시 이야기등 이미 유명한 책들 말고도 처음보는 책들이 많아서 꼭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올 해 들어 처음 으로 읽은것이 바로 이 책 키르케 이다. 매들린 밀러 작가의 두번째 책으로 첫 번째 책 '아킬레우스의 노래'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으로 삼아 그럴듯 했지만 두번 째 책 키르케는 제목만으로 의아했다. 아킬레우스나 제우스 만큼 유명하지도 않았고 내 기억속에 오디세이아에 잠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를 돼지로 만든 사악한 마녀였다. 500여페이지가 되는 키르케의 이야기라니 무슨이야기일지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너무나 짧게 아쉬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고전이라 불리는 이야기들이지만 서양이라 불리는 유럽과 미국의 역사와 언어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주변에 일상처럼 사용되는 개념과 상표들에 스며들어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이름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이며 현재 유럽이라 부르는 대륙어 어원도 이 신화 속에서 나온다. 아킬레스건 이란 치명적인 약점이란 관용구가 일리아스에 나오는 등장인물로부터 나오는 건 모르더라도 그 의미는 다들 알고 평소에도 사용하고 있다. 영어권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관용어로 쓰인다는 건 기원전 쓰인 문학과 신화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고전이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단편적인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해서 이윤기 작가님의 그리스 로마 시리즈를 다 읽었지만 각 신들의 에피소드 별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키르케는 읽는 내내 신선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읽은 이들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키르케는 타이탄 신인 헬리오스의 여러 자식들 중 하나로 비천하고 주목받지 않는 하급 여신이다. 보통 님프라 불리는 인간도 아니지만 신이라고 하기엔 큰 영향력이 없는 그저 아름다움으로 신들에 기쁨을 주는 하급 여신.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자신의 형제자매들에게도 사랑받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그녀는 스스로를 낮게 여기지만 호기심이 강했다. 인간이 궁금했고 착하고 순진하지만 심성이 따뜻했다. 인간에게 불을 내준 죄로 가혹한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 삼촌을 돕고 싶어 해 물을 가져다주면서도 자신이 한 일에 벌을 받을까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키르케 였던 그녀. 그녀는 점차 신들의 세상을 알고 인간들에게도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처음으로 사랑이라고 할까 호감을 가졌던 인간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인지도 모르던 힘을 사용해 불멸의 신으로 만들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보답받지 못한다. 그에 따른 좌절과 질투로 그가 사랑한 님프를 괴물로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지만 고운 심성과 나약함 아직 여물지 못한 키르케에게 상처가 된다.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깨닫고도 아이아이에 섬에 유배당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진정한 마녀로 거듭난다. 유약하게 사랑을 바라고 아버지와 가족들의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선택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로 여신으로 존재하게 되는 키르케. 헤르메스와 만나고 그녀를 무시하면서도 인정하는 동생 파시파에 때문에 명장 다이달로스도 만나게 된다. 파시파에의 만나러 가는 길에 자신이 만들어낸 스킬라를 만나 마음이 깎이고, 파시파에의 아들인 미노타우로스의 출산을 돕게 되면서 또 다른 눈이 뜨인다.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다이달로스에게 배틀 선물을 받는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는 그를 붙잡지 않는다. 다시 아이아이에로 돌아와 마녀로 살아가지만 그녀의 삶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애정을 갈구하던 아버지의 쓸모로 괴롭혀지고 자신이 사랑했던 동생 아이에테스의 딸인 메디이와와 이아손이 자신의 섬에 찾아와 정화를 해주지만 그녀는 메데이아에 의해 자신의 처지를 더 직시하게 된다. 또한 아이에테스가 변했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며 자신이 나아갈 길 자신이 그동안 원했던 것들도 돌아보게 된다. 진정한 마녀로 변화하게 되는 것도 인간들에 의해서였다. 그녀는 그저 인간들 인간 남자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싶어 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호의를 호의로 두지 않는다. 결국 마녀라는 이름을 얻고 섬에 오는 욕심 많은 인간들을 돼지로 바꾸어버린다. 그러던 중 오디세우스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오디세우스와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되고 그 아들을 키우면서 또다시 변화하게 되는 키르케 결국 자신의 아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받아들인다. 또한 또 다른 사랑을 얻어낸다.


이미 그리스 로마신화와 오디세이아를 읽은 이들에게는 내가 써낸 키르케의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 수가 없지만 아예 처음 읽는 이들에게는 큰 스포가 될 수도 있어서 자세히 쓰지는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게 되는 독자들이 나 말고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키르케는 처음 읽을 때는 그 이야기의 흡인력과 놀라움 즐거움에 매료된다. 특히 내가 보면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은 내가 단편적

으로 알고 있던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에피소드가 키르 케라는 하급 여신 생각지도 못했던 주인공에 의해서 서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헬리오스의 흰 소,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와 올림포스 신들과 타이탄 신들의 권력싸움, 라비린토스의 미노타우로스, 미노스왕이 그녀의 서사로 이어진다. 메데이와 이아손도 그녀에 의해 정화된다. 스킬라도 그녀에 의한 작품이다. 헤르메스와 관계로 올림푸스 신들의 이야기가 엮이며, 오디세우스와의 관계를 통해서 일리아스의 영웅들이 언급된다. 키르케를 읽으면서 그리스 로마신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내용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다시 쓰이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내 머릿속에서 그 연대기들을, 흥망성쇠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인간의 역사의 흐름으로 써 내려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와 다른 하나의 여신 키르케의 탄생과 삶으로 신화와 역사가 아울러지는 환상의 서사시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로 흥미로웠던 건 키르케 그녀 자체였다. 강력하고 거대한 신들 사이에서 나약하며 인간에 가까운 목소리를 가진 아무도 존재를 인식하지 않던 키르케의 성장과 자아 자존감을 찾아가는 여정이 안타깝고 슬프고 아름다웠다. 내가 여자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서양에서도 아직 여성이라는 면에서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불공평함을 신화와 이야기에서 더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 시절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불편한 모습은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그 불편한 부분을 드러내는 모습이 명확하고 세련되었고 합당했다. 보면서 나도 같이 불편했고 그런 이들에게 벌주고 해코지하는 키르케의 모습이 통쾌하기도 했다. 사랑인 줄도 모르던 사랑, 과시하기 위한 만남, 알면서도 포기하게 되는 사랑, 자존심과 자존감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주게 되는 사랑 키르케는 많은 이들을 만나서 사랑을 배우고 증오도 배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나약한 님프로 아버지의 신전에 조용히 남아서 무력하고 하릴없이 지내던 키르케는 성장했다. 마녀로써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능력과 판단 능력도 생겼다. 두려운 대상이던 신들에게도 도전하고 부당한 것들을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게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쟁취해나며 부당하다. 이것 아니라며 목소리를 낸다. 누군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던 키르케는 마지막에는 행동하는 키르케로 변모한다. 사랑할 것을 선택하고 자신이 행한 일에 책임지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행동한다. 그녀는 성장했고 나아갔고 변화했으며 달라졌다.

이런 키르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전을 차용한 판타지 소설 속에서 나는 성장하는 소녀를 보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여성을 보았다. 수동적으로 사랑받기를 마음으로 갈구하던 이가 적극적으로 쟁취하고 나아가는 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얻는다. 내가 하는 일에 하고자 하는 일에 여신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일개 인간 주제에 긴 세월을 허송했다 죽지 않는 신이 후회하는데 눈 깜짝할 새를 사는 인간이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나에게 삶에 지혜를 주고,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수 천 년 전의 신화 속의 그녀는 현대를 살아가는 나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보여준다.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에 감탄하면서 읽고 또 읽어 두 번 반을 읽었다. 두 번째 읽으니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이야기가 더 보고 싶어 다른 책을 뒤적이고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를 더 세세히 알고 싶어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렇지만 가장 보고 싶은 건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고 이미 좋아한다고 잘 안다고 하는 이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보여주는 큰 용기의 신화 마녀란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자신의 힘을 가진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마녀의 기원 키르 케라 면 마녀라는 말도 나쁜 호칭은 아닌 게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와 교훈 여성 주인공 서사의 멋진 성장소설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이것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세상을 변화시킬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란 세상은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보고 세상을 보는 관점과 생각하는 것들이 달라졌기에 수많은 이들이 보고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꼭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이 소중하고 많이 읽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자매품 아킬레우스의 노래도 추천한다.


그때 내 안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길 하나가 내 발치에서갑작스럽고 선명하게 열렸던 그 옜날, 내가 바법을 처음 배우던 시절 같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몸부림치고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이 얘기했던 것처럼 내 안에는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창백한 생명체가 시커먼 심연 속에서 내는 속상임이 들린 듯했다. - P466

바다솟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마지막 햇살처럼 신의 광휘가 내 안에서 빛을 발한다.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뀌지도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업지 않은가.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 P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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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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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두 알던 그리스로마 신화를 이렇게 새롭게 흥미진진하게 엮어내다니 세계100대 판타지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다. 여성서사의 소설로도 추천하며, 성장소설로도 추천한다. 물론 재미는 밑에 깔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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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
한은형 지음 / 이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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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작가님을 처음 만나건 여행과 관련된 단편소설을 모음집인 '도시와 나'에서였다. 독특한 나라와 내용에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그다음에 나온 북한을 테마로 한 소설집 '안녕, 평양'에서도 역시 이 작가님 나랑 좀 맞는 게 있는데 하는 인상을 받았다. 한동안 이 작가님에 대해서 잊고 있다가 이번에 소설에 관련된 에세이집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를 통해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꼭지 한 꼭지를 읽어나갈 때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다음에 읽고 싶은 책들이 켜켜이 쌓여나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총 24권의 책에서 나오는 29명의 여자들에 대한 소개 중 반 정도는 이미 읽었던 책 들이고 반 정도는 아직 읽지 않았던 책 들임에도 이 책을 덮고 나니 모조리 다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들이 가득했다. 이미 읽었던 소설들은 다시 읽고 싶어 책장 어디에 있나 찾게 만들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거나 혹시 이미 사놓은 책인지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대부분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고전들이 많아서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과 줄거리는 알고 있던 책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읽었던 책 들이고 내가 알던 등장인물을 내가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보며 멋진 부분을 소개해 주는 이 글들을 읽다 보니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급해져 이 책을 읽으면서도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다 자게 만들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나는 멕베스도 다시 꺼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기괴하게 무서웠기에 그 후로 햄릿 말고는 다시 읽지 않았는데 세 마녀의 대화가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 한은형 작가의 마녀에 대한 이야기 흔드는 자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누구나 들어봄 직한 책들을 저자가 읽은 방식대로 저자가 소설 속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받았던 감상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다. 개인적인 취향이 가득해서 내가 알던 그 등장인물이 이런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고 나와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우선 나와는 다르게 읽은 감성에 부럽고 질투가 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설을 읽고 그들에 대해 자신을 투영해 깊이 생각했다는 여유 또한 부러웠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은 이 에세이를 읽고 내가 읽는데 편견이 생겼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니 운이 좋군. 흥미로운 책을 발견한 데에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든 책이었다.


이 책에는 총 28편의 독서 에세이가 실려있다. 그 이야기의 주연들은 책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는 여성 등장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 나 카레리나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엠마 같은 경우는 주인공인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나 베이커, 맥베스의 세 마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로테는 소설이 내세우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들을 써 내려간다. 테스의 인생이 기구해 읽으며 불쾌해 읽다 말았던 나에게 테스에 대해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나는 다시 테스에 대해서 생각하고 테스를 읽을 용기를 내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도 좋아하지 않는데 개츠비가 우습기 때문이다. 작가도 같은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썩 좋아졌다. 물론 나도 작가처럼 데이지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공감적인 내용으로 200여 페이지의 책은 다양한 소설과 등장인물들을 나에게 소개한다. 한 편 한 편 목록을 보면서 흥미로운 것부터 읽었다가. 작가가 자연스럽게 다음 장에 소개할 책들을 연결해서 소개함을 보고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었다. 어린시절 필독도서들의 목록에 있어서 강제로 읽었던 책들중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책들의 목록도 들어있었고 나는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폭풍의 언덕이 기괴하기만 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라는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설명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읽었던 책이던 읽지 않았던 책이던 잊어버렸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모르는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소설들을 소개하고 감상한 것을 담담히 들려준다. 에세이기에 자신의 감정과 마음 경험도 살짝살짝 전해준다. 그 소소한 부분들이 작가의 일기장을 엿본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의 속마음을 전해 듣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처음 들어보는 소설 소개에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급하기도 한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좋은 친구를 소개하는 소개장처럼 도 보일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여기에 나오는 모든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읽었던 책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가볍고 단호한 작가의 목소리에 지금 무슨 소설을 읽어야 할지 갈팡 질팡한 사람들과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 권태감이 느껴진 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소설을 읽어도 좋고 이런 재미있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책도 있다는 소개와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조용히 한 꼭지 한꼭지 아껴가며 읽고 싶어지는 책이고 작가님의 맑고 단정하며 담담한 에세이에 다른 에세이마저 읽고 싶기도 하며 또 다른 책 추천을 받고 싶다. 이번에는 남자 주인공 등을 소개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이 책은 어쨌거나 또 다른 독서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한마디로 책 읽기에 불씨가 되어줄 흥미의 부싯돌 같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고,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이니까. 그렇다면 폭풍우가 치는 워더링 하이츠에서 일렁이는 히스 밭은 캐서린이다. 히스클리프의 마음에서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뒤집어놓는 그 분홍 화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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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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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되면 나 자신도 일을 잘 하게 되거나 일하는 게 재미있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같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옆에서 일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도 배울 것이 있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여태 여러 일을 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난 일은 많지는 않았지만 함께 하면 정말 그다음의 내 커리어는 달라졌다. 

이런 경험은 정말 자주 있지 않아서 더 소중했는데

이번에 읽은 이다혜 기자님이 7명의 일 잘하는 여자들의 인터뷰를 모은 이번 책은 책을 읽으면서 일 잘하는 사람을 옆에서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얇은 잡지 한 권을 읽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고, 기자님의 적절한 질문으로 인터뷰 글은 재미도 있었지만 내가 이분들을 만났더라도 궁금했을 것들을 물어봐 주어서 지루한 부분 하나 없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는 조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쉽기까지 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직 여성들의 이야기였지만 역시나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들을 볼 수 있었고 다 다른 분야에서 무엇 때문에 그들이 특별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는 인터뷰여서 나를 돌아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윤가은 감독님의 이야기에서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과 남들이 안된다고 한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꿈꾸던 것을 해낸 감독님의 여정이 눈부셨다. 학창 시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주변 어른들이 말려서 하지 못했던 나에게 읽다가 눈물이 나서 잠시 읽는 걸 멈추게 했던 인터뷰는 차분하지만 강단 있는 감독님이란 느낌이 들었다. 제목만 들어보고 보지 못했던 이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적성이 안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인터뷰였다.


양효진 선수의 인터뷰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잘하고 싶다는 열망과 잘하기 위해서 노력한 모습 정말 오랫동안 한 길만 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경쟁이 심한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힘과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서 인상적이었다. 운동이나 예술 분야는 정말 재능이 있는 그리고 그 재능 이상의 노력이 있어야 성골할까 말까 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 노력의 정도를 이해시켜주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인터뷰였다.


전주연 바리스타의 이야기는 처음에 보면서 이름은 기억이 안 났지만 여성이자 지방(부산)의 한 바리스타가 월드 챔피언을 했다는 기사는 본 적 있다. 기자님이 말 한대로 이분은 정말 바리스타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했었어도 뭔가 해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주연 바리스타 말대로 주변의 여건도 있어야겠고 도움도 있어야겠지만 한 가지를 끈기 있게 하는 건 물론 그 산업 저변을 발전시키고자 마음먹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세랑 작가님의 인터뷰는 이 작가님의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유연한 그녀의 글쓰기와 넓은 시야를 보는 대범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자신의 단점이라고 하는 부분이 장점이 될 수 있는 분야로 진출하려는 생각은 열리지 않은 사람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다시 본래의 장소로 올 실력을 갖추는 것도 그리고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는 이야기에 요즘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작은 해답을 얻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좋은 인터뷰였다.


엄윤미 기업인의 인터뷰에서는 부러운 마음도 많이 생겼다. 그분이 말한 운이 있겠지만 좋은 직장에서 배울 수 있는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그 길이 부러웠고 그분이 성장해 나갔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 노력에도 감탄했다. 대기업을 나올 수 있었던 마음가짐 일에 대한 비전이 부럽고 인상적이었다.


이상희 교수님의 인터뷰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인터뷰였다고 본다. 그 험난함과 희생 알 수 없음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고인류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멸망하는 것이 또 하나의 길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수정 교수님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것이 이타적인 직업관이었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잘 일하고 있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자신의 커리어와는 달리 자신이 한가해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을 담담히 말하는 모습에서 정말 일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보였다. 돈으로 직업을 택하고 선택하게 되는 세상에서 이단적으로 보이지만 듬직해 보여서 인상적이었다.




우선 이 책 서문에 인터뷰에 시간을 정하고 이 인터뷰를 하는 이들에게 적당한 비용을 지급했다는 이다혜 기자님의 이야기에서부터 이 인터뷰집이 인상적이었다. 기사를 써주는 것에 돈을 내야 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진실됨을 느낄 수 있었고, 기자님이 준비를 많이 했다는 생각을 하고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인터뷰들의 내용들이 알찼다.

게다가 인터뷰 중간중간 있는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다. 그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드는 것과 그녀들이 살아온 인생이 느껴지는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뷰 중간중간 있는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다. 그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드는 것과 그녀들이 살아온 인생이 느껴지는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이직을 하거나 코로나 등으로 쉬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 새로운 비전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또한 자신이 일하는 방향과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는 주제나 생각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서문에서 밝힌 대로 STEM 직업군 쪽의 일을 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일 잘하는 사람은 뭔가가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방식을 보면 뭔가 배울 수 있다. 일이 막히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어느 분야에서 막히고 있는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여성 구직자에게 너무 권하고 싶다!

인간이 ‘우리가 없어지면 이세상이 끝나는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자만은 없다고 봐요. - P197

안 좋은 길로 들어섰다가도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많아야 선진국이거든요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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