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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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 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만화책에서였다. 좋아하는 만화책의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가 젤 좋아하는 작가라며 친구에게 소개하면서 이름도 예쁘다고 하는 말에 무슨 내용이길래 하면서 책을 찾아보았다. 그 만화책에서 건진 두 개의 소설이 바로 어스 시 이야기와 반지의 제왕이었다. 게다가 난 당시에 이름만으로 어슐러 k, 르 귄 작가님 남자라고 생각했다. 작은 호기심으로 찾아 읽어봤던 책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신간이 나오면 들뜨게 만드는 작가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크게 다쳐서 정시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서부 해안 연대기와 어둠의 왼손들 짧은 단편들 등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버티고 나아가게 해 준 원동력이라 나에게 어슐러 K 르권의 새로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 즐거운 일이다. 전자책 리더기를 들이고 이미 다 읽었던 작가의 소설들을 열심히 사 모으는 와중에 최근 들어 작가의 논픽션 책들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가의 사생활도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은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로 작가의 집사님 면모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파드를 좋아하게 만드는 작가님의 글에 우리 집고양이를 예쁘다 귀엽다 잘생겼다는 말로 밖에 지인들에게 소개하지 못하는 나의 비루한 말솜씨와 글 솜씨에 미안해지기까지 했던 멋진 책이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근사한 것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낸 그 사색의 깊이가 부러워 견딜 수 없는 책이었다. 소설가의 에세이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나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그녀의 소설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게다가 파드 연대기는 짧지만 흥미진진해서 역시나 날 고양이를 써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읽게 된 책이 바로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였다. 삶과 책에 대한 사색이라니 역시나 저자의 책에 대한 생각과 페미니스트 작가로서의 면모, 재미있는 소설책들을 잔뜩 써낸 작가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받을 수 있는 보물 같은 책이었다. 게다가 책에 대해 폭넓은 지식과 그녀만의 유머러스함이 한대 어우러진 강연 글과 서평들은 짧지만 강력했다. 내가 책이 너무 좋아서 참을 수 없었던 순간을 기억나게 만들어 주었다.



멋진 양장의 표지는 이전 책과 비슷한 질감의 재질로 하드커버에 가름끈까지 있어 책 다운 위풍당당함이 있다. 작가의 소설 특히 판타지 소설들을 읽으면 항상 느껴지는 나무 혹은 숲의 색인 초록으로 된 표지에는 작가가 좋은 책을 소개해 줄 것만 자세로 그려져 있다. 책이 예쁘다며 이전 책들과 어디에 놓을지 책장 위치를 잡고 사진도 좀 찍고 나서 지금 사은품으로 주는 책갈피도 만지작대면서(이 책에는 가름끈이 있어서 딱히 필요하지 않지만 사용하면 귀여우니 적극 활용한다.) 열어본 책은 내용도 알차다.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도톰하고 알찬 책은 르권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물론 이 책으로 작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즐거울 것들이 가득하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1장의 여러 강연 글과 기고문에서 공감은 물론 감명도 받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늘 강연 너무 좋았다며 일기에 한 페이지 가득 찬사를 적어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 가득했다. 인상적인 글들의 강연들을 찾아보니 영상이 있어서 보기도 했는데 자유라는 내셔널 북 파운데이션 메달 수락연설에서는 작가의 시상자로 닐 게이먼이 나와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가 11살 때 처음으로 자신의 돈으로 산 책이 어스시의 마법사였다며 그녀가 자신의 삶과 글쓰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를 하며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녀의 글은 사람을 만든다. 생각을 깨우고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만들어주며 성 역할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소설뿐만 아니라 그녀가 강연하고 써 내려간 글에는 삶이 있고 책이 읽다. 그녀의 삶이 책이고 삶이 글이고 글이 삶이 라는게 느껴진다. 통찰력과 깊이가 독서와 사색에서 온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글을 써 내려갔고 주류라 불리지 않던, 오랫동안 문학에서 배제되었던 장르를 엮어낸 작가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써 내려가는지 그 의미를 알았던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단이 있고 힘이 있다. 위에도 언급한 자유라는 글은 그녀의 글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 글쓰기와 출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당한 몫을 원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어야 할 보상의 이름은 이익이 아니에요. 자유입니다.'


그녀의 소설과 모든 글을 관통하는 의미 그녀의 글이 울림이 있고 감동적이며 힘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읽다 보면 그녀가 오랜 시간 글을 써오는 동안 페미니스트 작가라던가 SF나 판타지를 쓴다는 것으로 헛소리를 들어왔다는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이야기를 자아내 준 것에 감사를 품으면서 절대 호락호락한 작가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 판타지에 대하여'라는 강연은 판타지라는 장르가 무시당해왔지만 전혀 그럴 장르가 아님을 우아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지적으로 풀어낸다. 저자의 문학사 강의나 글쓰기 강의가 있다면 달려가서 듣고 싶을 정도로 장르문학을 무시하는 평론가들이 본다며 얼굴이 벌게질 우아한 뒷발차기 같은 글은 작가의 넓은 안목과 통찰에 다시 한번 반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와 삶, 책에 관련된 주제로 한 강연과 기고들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자신이 이 부분에서는 쓴소리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는 게 멋있었다. 출판계의 상황이라던가 본인이 몸담고 있는 출판의 부조리 자본주의에 목메어가는 출판시장을 따끔하게 꾸짖는 모습도 그녀이니까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녀라서 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이 바로 멋짐이고 어른이다.라고 느껴졌다.


' 아무리 겸손한 정신으로 한다 해도 설교는 공격적인 행위인걸요.'라는 내용이 나오는 '스스로를 생각에서 몰아내기'라는 강연 글은 그녀가 작가로써 어디까지 생각하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는 글이 그녀의 글이지 않을까? 하나하나가 다 흥미진진한 강연과 조각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개토론회 전에 그녀가 한 강연은 이다음에 어떤 토론이 있었을지 궁금할 정도로 의미심장하다. 여자들이 아는 것이라니 작가는 작은 불씨를 일으키고 바람을 끌어온다. 사람들은 아마 활활 타올랐을 것이다.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모두 끓어 모아 불태웠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SF 쓰는 방법 배우기'란 글은 매우 짧지만 그녀의 글이 탄생되는 자양분이 된 것을 알 수도 있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보고 싶게도 하며 글을 쓰고 싶게도 만든다. 글 중간중간 작가의 소설들의 제목이 나오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2장은 책 서문과 작가들에 대한 글 모음이다. 이장을 읽다 보면 서문을 읽고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든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의 책들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또 한 그녀의 엄청난 독서량과 지식의 양에 놀라게 된다. 아마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들을 그녀가 소화했기에 우리는 르 권의 멋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책 한 권을 읽고 줄거리 하나 소화하기, 주제를 요약하는 것도 쉽지 않은 나에게 저자의 경향과 유사한 도서로 계보까지 읊어주며 책을 추천해대는 통해 정신이 없었다. 사라마구의 책을 항상 읽을까 말까 고민만 하던 나에게 꼭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사명감을 주고 필립. k. 딕과 H.G웰즈에 대한 애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장이었다. 나는 르 권 작가의 책으로 SF에 입문했다고 할 수 있는데, 르 권 작가의 단편이 들어있는 책들을 찾아보다가 다른 SF 작가를 알게 되고 그들의 장편을 읽어가는 식으로 독서를 해왔다. 그렇게 읽었던 작가들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글을 읽는 건 더 뜻깊기도 했다. 아직도 주변에서는 SF나 판타지를 허황된 이야기로 생각하며 문학작품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들에게 소리 내어서 읽어주고 싶은 글들이기도 했다. 이 장르문학이 얼마나 굉장한지 우리 인류에 중요한 것인지 두 번 세 번 읽어주고 싶은 글들이 가득하다.


3장은 서평 모음집이다. 32편의 서평이 모여있었고. 안타깝게도 아니 다행이기도 단 한 권도 읽었던 책이 없어서 절망과 흥분으로 읽어내려갔다. 10편쯤의 서평을 읽다가 아예 책 제목을 노트에 써놓고 서평을 읽고 나서 읽고 싶은 기분을 별표로 체크해 나갔다. 몇 권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 도서들도 있어서 우선 5권 정도만 추려서 챙겨뒀다. 그녀의 서평은 서평이란 이런 거지라는 만족감이 들 정도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면서 책을 궁금하게도 한다. 게다가 꽤 냉정하다.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은 에두르지 않는다. 딱 잘라 이야기한다. 같은 작가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같은 작가라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게 모든 서평을 읽고 난 감상이다. 게다가 아는 게 많은 작가 덕분에 곁다리로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품들도 생겨나는 서평이었다. 엠시 윌러의 레도잇 외에 카르멘 도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안타깝게도 번역은 안 된 모양이다. 저자도 서평을 쓰면서 자신도 2년간 신간이 나온 줄 몰랐다며 안타까워하는 걸 보니 말 다 했군 이란 생각만 든다.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펼쳐보지 않았던 애트우드의 책을 펼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잘 쓴 서평을 32편이나 읽고도 서평을 제대로 못 쓰는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의 3장이다.


4장은 굉장히 짧다. 어떤 작가의 일주일 기록이란 부제로 작가가 정말 아무 집안일이나 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글을 쓰거나 독서만 할 수 있는 헤지브룩 코티지에 초대받아서 지내는 동안의 일기를 쓴 내용이다. 정말 소소하고 별거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역시 작가.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내가 그곳에서 지내면서 일기를 쓴다면 오늘은 뭘 했고 뭘 했고 뭘 먹었고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다. 이런 것만 쓸 것 같은데(물론 지금도 일기에 그런 내용만 써대고 있다.) 토끼의 모습 도마뱀의 움직임을 이렇게 세세하게 묘사하다가도 별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훅 날려버리는 일기에 매료되었다. 일기만 읽었는데 작가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책도 읽고 토끼도 보고 온 것 같다. 일기는 일정을 다 써야 직성이 풀리는 이의 일기를 변화시켜줄 멋진 일기 교본이었다.


다 읽고 나면 아쉽다. 물론 작가가 소개해 주는 책을 읽으러 가야 해서 바빠지고 가끔 언급되는 작가의 작품들이 생각나서 책장을 뒤지게 된다. 500여 페이지의 얇지 않은 이 책이 관통하는 이야깃거리는 책과 삶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나의 편협된 독서와 부족한 글쓰기와 좁은 시야를 반성하게 할 만큼 저자의 넓고 깊은 지식과 독서량이 독자를 더 깊은 책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게 만들고 책 고르는 것도 도와준다. 서평의 모범을 보여주어 글쓰기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된다. 르귄 이란 작가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며 선물 같은 책이다. 그녀 특유의 분위기가 흐른다. 이전 에세이 모음보다 책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모은 책이라서 그런지 작가의 생각이 더 또렷이 보이는 것도 같다. 담대하기도 하고 단호하기도 하며 유머러스하고 비판적이다. 힘 있는 작가의 내가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되지, 아니 이런 이야기는 내가 해야지 하는 당당함과 책임감도 느껴진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이들은 확고한 신념과 취향 폭넓은 상식과 지식을 바탕으로 같은 책을 보면서도 더 멀리, 넓게, 깊게 보는 그 지혜로움과 탁월함에 반해서 그녀의 주 종목인 소설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그녀의 책을 맛본 이들에겐 아까도 언급했지만 멋진 선물이다. 닐 게이먼이 수상식에서 그녀를 소개하면 말했다. 자신은 그녀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키웠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아직도 배울게 많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바이다. 그녀는 이 배움이 책에서 시작된다고 이 책에 있는 글들로 넌지시 아니 확실히 말해준다. 독서를 해야 할 수백가지 이유중 하나로 써먹기 좋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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