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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
한은형 지음 / 이봄 / 2021년 2월
평점 :
한은형 작가님을 처음 만나건 여행과 관련된 단편소설을 모음집인 '도시와 나'에서였다. 독특한 나라와 내용에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그다음에 나온 북한을 테마로 한 소설집 '안녕, 평양'에서도 역시 이 작가님 나랑 좀 맞는 게 있는데 하는 인상을 받았다. 한동안 이 작가님에 대해서 잊고 있다가 이번에 소설에 관련된 에세이집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를 통해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꼭지 한 꼭지를 읽어나갈 때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다음에 읽고 싶은 책들이 켜켜이 쌓여나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총 24권의 책에서 나오는 29명의 여자들에 대한 소개 중 반 정도는 이미 읽었던 책 들이고 반 정도는 아직 읽지 않았던 책 들임에도 이 책을 덮고 나니 모조리 다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들이 가득했다. 이미 읽었던 소설들은 다시 읽고 싶어 책장 어디에 있나 찾게 만들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거나 혹시 이미 사놓은 책인지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대부분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고전들이 많아서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과 줄거리는 알고 있던 책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읽었던 책 들이고 내가 알던 등장인물을 내가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보며 멋진 부분을 소개해 주는 이 글들을 읽다 보니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급해져 이 책을 읽으면서도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다 자게 만들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나는 멕베스도 다시 꺼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기괴하게 무서웠기에 그 후로 햄릿 말고는 다시 읽지 않았는데 세 마녀의 대화가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 한은형 작가의 마녀에 대한 이야기 흔드는 자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누구나 들어봄 직한 책들을 저자가 읽은 방식대로 저자가 소설 속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받았던 감상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다. 개인적인 취향이 가득해서 내가 알던 그 등장인물이 이런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고 나와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우선 나와는 다르게 읽은 감성에 부럽고 질투가 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설을 읽고 그들에 대해 자신을 투영해 깊이 생각했다는 여유 또한 부러웠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은 이 에세이를 읽고 내가 읽는데 편견이 생겼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니 운이 좋군. 흥미로운 책을 발견한 데에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든 책이었다.
이 책에는 총 28편의 독서 에세이가 실려있다. 그 이야기의 주연들은 책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는 여성 등장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 나 카레리나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엠마 같은 경우는 주인공인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나 베이커, 맥베스의 세 마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로테는 소설이 내세우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들을 써 내려간다. 테스의 인생이 기구해 읽으며 불쾌해 읽다 말았던 나에게 테스에 대해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나는 다시 테스에 대해서 생각하고 테스를 읽을 용기를 내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도 좋아하지 않는데 개츠비가 우습기 때문이다. 작가도 같은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썩 좋아졌다. 물론 나도 작가처럼 데이지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공감적인 내용으로 200여 페이지의 책은 다양한 소설과 등장인물들을 나에게 소개한다. 한 편 한 편 목록을 보면서 흥미로운 것부터 읽었다가. 작가가 자연스럽게 다음 장에 소개할 책들을 연결해서 소개함을 보고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었다. 어린시절 필독도서들의 목록에 있어서 강제로 읽었던 책들중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책들의 목록도 들어있었고 나는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폭풍의 언덕이 기괴하기만 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라는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설명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읽었던 책이던 읽지 않았던 책이던 잊어버렸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모르는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소설들을 소개하고 감상한 것을 담담히 들려준다. 에세이기에 자신의 감정과 마음 경험도 살짝살짝 전해준다. 그 소소한 부분들이 작가의 일기장을 엿본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의 속마음을 전해 듣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처음 들어보는 소설 소개에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급하기도 한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좋은 친구를 소개하는 소개장처럼 도 보일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여기에 나오는 모든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읽었던 책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가볍고 단호한 작가의 목소리에 지금 무슨 소설을 읽어야 할지 갈팡 질팡한 사람들과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 권태감이 느껴진 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소설을 읽어도 좋고 이런 재미있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책도 있다는 소개와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조용히 한 꼭지 한꼭지 아껴가며 읽고 싶어지는 책이고 작가님의 맑고 단정하며 담담한 에세이에 다른 에세이마저 읽고 싶기도 하며 또 다른 책 추천을 받고 싶다. 이번에는 남자 주인공 등을 소개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이 책은 어쨌거나 또 다른 독서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한마디로 책 읽기에 불씨가 되어줄 흥미의 부싯돌 같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고,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이니까. 그렇다면 폭풍우가 치는 워더링 하이츠에서 일렁이는 히스 밭은 캐서린이다. 히스클리프의 마음에서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뒤집어놓는 그 분홍 화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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