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지나간 애인이
나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침묵 속에서 용서를 기다리는 일이 두렵다
애인은 내가 커다란 소란을 부려야만 안아 주었다
피아노를 쳤다 음이 높아질수록 오른쪽으로 기우는 문테
연못까지 기울었다가도 다시 올곧아지는 너의 등을 보며
내가 해친 너의 속성을 깨닫는다 누워 있는 벽
철사를 두드리면 늘어나는 애인의 가슴
덮개를 당기면 인기척이 들린다
너는 어디서건 음계처럼 앉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를 마주하고
부서진 혼례를 마주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은 앞을 보라고 했다 눈을 뜨면 언제나
보일러가 꺼진 방에서
이상한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건반 위에 두고 간 유리알들을 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