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지하철, 한국말을 떠듬떠듬하는 동남아 아주머니 두 분이 한성대 입구에서 내려야 하는 듯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리려 한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로 내렸을 것이다. 잠시만요 라는 말을 하면 참 예의가 바른 거고 아니어도 비집고 어떻게든 내렸겠지.
이분들, 못내렸다. 아주 느린 한국말로 잠시만요, 내릴게요를 너무 수줍게 말하던 탓이었는지, 아님 크지 않은 키로 앞의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 게 부담이었는지. 결국 한성대 입구에서 열렸던 문은 닫히고 문이 닫히는 걸 아쉽게 본 두 분은 자기나라의 말로 두어마디를 나누고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열차는 다음역을 향해 출발.
열린 문이 닫히는 걸 바라보며 못나간 그 순간, 그 둘의 모습이 괜히 짠했다. 이 역시 그들을 나와 다른 존재로 여기는 내 알량한 모습이 반영되었기에 혼자 짠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눈 말은 아 여기 아닌거 같은데? 라고 말한 것일수도 있지만, 어이되었건 심각한 오해력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30센티도 안되는, 그러니까 한명만 제치고 나갔더라면 내릴 수 있었던 것을 못내렸으니, 그게 괜히 안타까웠던 거지.
그냥 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로는 아마 앞으로 10여년 뒤에는 입사 지원서에 석자 넉자 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이름들이 심심치 않게 접수될테고, 내가 만약 그 때에도 일을 하고 있다면 내 후배로도 그 긴 이름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그 무엇이든. 어쩌면.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같은 상황에선, 흔히 피로 세운 민주주의, 자유 평등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로 내세우는 선진국이라는 나라일수록 더 심했던 점을 생각하면, 우리도 그렇게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러니까 그 30센티가 참 애잔했다는 거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문이 닫히는 그 광경이, 이들에게 적용될 사회의 선이 되는 건 아닌지 싶은 그런 마음이 든다는 소리다. 마치 100여미터를 눈앞에두고 다시 물속으로 돌아와 차가운 주검으로, 사랑의 심정을 두 팔과 다리에 싣고 그 힘, 전하지 못한채 바다에 묻게 되었던 한 영화의 장면을 보았을 때처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앞으로 인구통계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지금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남아 등의 유색인종을 통계에 가정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결국 생산성이라는 아주 원초적인 단어는 그들이 아니라면 도무지 방법을 못찾게 될테고(기계화 따위 이야기 하지말자) 아무리 차별을 하고 배제를 시켜도 오히려 우리는 점차 그들에게 의존하는 비율은 상당수 높아지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고용하는 것이고, 그들이 살도록 배려해주는 것이라, 고, 생색낼 건 뻔할테지만, 지금처럼이라면. 나도 겨우 글로 생색내고 있잖는가.
어쨌거나, 아침의 출근길 순간의 광경은 생각보다 많은 걸 내게 던져주었다. 꼭 동남아 사람들로 상정하지 않아도 주위에 그렇게 소외받는 조세희의 난장이들은 아직도 너무나 많다는 뻔한 사실을, 가난한 자는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것이라는 신의 말씀마저도.
아, 물론, 그 아주머니들은 다음역인 혜화역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내렸다. 아마 내릴 역을 착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뭐랄까 외국인들 사이에서 괜히 부끄러웠을수도 있고. 어쨌거나 다행히 내릴 역에서 열린 문을 통해 내리는 모습을 본 나로서는 다행인 광경이었다. 이 역시 표정과 몸짓만으로 행동을 추리한 나의 오해라면 오해일지 몰라도.
여튼, 그렇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게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