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지음, 김래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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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해피북스투유




페르시아, 난민이라는 소재에는 늘 관심이 많았다. 제목과 표지부터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역사와 신화가 켜켜이 쌓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이름과 언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그래서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궁금했다.

슬픔이 어떻게 거짓일 수 있을까....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보다 먼저 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갔다.


“나를 소개하겠다”라고 시작했다가 곧바로 “나를 소개하지 않겠다. 내 목소리로 나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호스로.

이 문장이 좋았다. 작가는 처음부터 독자에게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호스로가 직접 말을 걸어온다.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페르시아라는 낯선 세계가 어떤 곳인지, 자신에게는 어떤 가족과 기억이 있는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난민 소년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 작가이고 그저 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 기분이랄까

호스로에게 페르시아는 단순히 떠나온 나라가 아니다.


그곳에는 신화가 있고, 오래된 도시가 있고, 조상들의 이야기가 있고, 강물과 물고기에 말을 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특히 어린 호스로가 강물을 바라보며 물고기가 『천일야화』 속 이야기처럼 자신에게 말을 걸 것이라고 믿는 장면이 조금은 슬펐다.

아마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아이에게 세계는 아직 현실과 신화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강물은 그냥 강물이 아니라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이고, 조상은 역사 속 인물이면서 동시에 전설 속 인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호스로가 페르시아와 이란, 다스탄을 이야기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다스탄의 땅, 신화의 시대.”

이야기와 전설, 가족의 기억이 뒤섞여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세계를 떠나 미국으로 온 호스로는 이제 자신의 이름부터 설명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한다.

난민이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전쟁, 이주, 국경, 종교, 차별, 가난 같은 단어들.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고,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 한 사람.

이 소설은 그 사실을 호스로의 목소리로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특히 페르시아의 신화와 가족의 이야기가 현재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이 좋았다.


호스로와 시린의 사랑 이야기, 아지즈의 전설, 조상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 시마의 종교와 영국에서의 경험까지.

과거의 이야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호스로가 지금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들여다보는 기억의 조각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민의 삶이 이렇구나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웃음 뒤에 숨어 있던 슬픔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 소설은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농담을 한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며 이야기를 옆길로 새게 만든다.

그런데 바로 그 유머 때문에 오히려 슬픔이 더 선명하다랄까..



어쩌면 이 소설이 독자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것은 연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소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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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 - 애착으로 읽는 중독의 심리학
주세진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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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 」 애착으로 읽는 중독의 심리학

주세진/ 흐름출판



중독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술이나 담배, 스마트폰, 쇼핑, 일, 혹은 특정한 관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독이 뇌를 바꾼다는 말은 알고 있었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중독이 뇌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변화에 관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수많은 임상을 거치고 난 후 중독의 뿌리를 ‘애착’과 ‘관계’에서 찾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중독을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흔히 “그만하면 되잖아”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정말 멈추지 못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한 의지일까.

책을 읽으며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떤 중독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위안이었을 것이다. 불안할 때 나를 달래주고, 외로울 때 잠시 잊게 해주고, 견디기 어려운 감정을 잠깐 내려놓게 해주는 것.

그런데 반복되는 순간 위안은 의존이 되고, 의존은 어느새 선택할 수 있는 이성을 넘어서게 된다.



책에서 말하는 ‘반복이 뇌에 고속도로를 낸다’는 관점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내가 선택했던 행동이 어느 순간 자동적인 반응이 되고, 결국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독은 단순히 ‘나쁜 습관’이라고 부르기에는 훨씬 복잡한 무엇이 있다.

술을 끊고, 관계를 끊고,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만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행동이 내게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무엇을 견디기 위해 그것을 찾았는지, 그 아래에는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 이 부분 정말 와닿았고 마음이 아팠다.)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침묵과 역할, 말해지지 못한 감정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변화가 가족 전체ㅔ게 주는 의미 등등.

우리는 가족 안에서 맡게 된 역할을 때때로 ‘내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참는 사람이고, 나는 원래 책임지는 사람이고, 나는 원래 누구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나의 성격이었을까.


어쩌면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 배운 방식이 너무 오래 반복되면서 내 성격처럼 굳어진 것은 아닐지 의심해보게 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것을 반복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왜 나는 이것을 못 끊는지에 대한 자책 대신에 행동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반복되는 행동과 습관, 그 속에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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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
김희경 지음 / 웨일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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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김희경





작가의 전작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또렷하다.

특히 돌봄은 성별을 넘어 인간의 조건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떠올랐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언젠가는 다시 누군가를 돌보게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왜 돌봄은 오랫동안 여성의 일이었을까.





가정 안에서 여성이 주로 생활하던 시대에는 돌봄이 여성에게 너무나 당연한 의무처럼 주어졌다. 아이를 살피고, 가족의 일정을 기억하고, 병원에 예약하고,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일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었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감당되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그 많은 일에는 이름이 없었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이라고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은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이었다. 돌봄을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일을 먼저 떠올린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를 재우는 일처럼 눈에 보이는 노동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일이 있다.

어디가 아픈지 알아차리고, 어느 병원을 찾아야 할지 검색하고, 예약 가능한 시간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이후의 상황까지 예상하는 일.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비교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들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꼼꼼함’이나 ‘살림을 잘하는 능력’ 정도로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는 노동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무서운 것은 이 노동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엄마니까 하는 일”이고, “당연히 아내가 더 잘 아는 일”이며, “부탁하면 해주는 일”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일을 맡은 사람조차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에서 ‘시키는 것도 또 다른 기획 노동’이라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것 좀 해줘.”

그 말 뒤에는 사실 수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사람,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사람,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 상대가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사람. 결국 한 사람은 실행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기획하고 지시하고 확인하는 사람이 된다.

겉으로 보면 일을 함께하고 있는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노동의 양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가사와 돌봄을 ‘반반’으로 나눈다는 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같은 양의 일을 나누는 것이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가 전체를 기억하고 있는지, 누가 다음 일을 예상하고 있는지, 누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평함은 일을 똑같이 나누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계속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더 깊게 다가왔던 이유는 기획 노동을 단순히 부부 사이의 가사 분담 문제로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의 돌봄을 갑자기 떠안게 된 사람,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장애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돌봄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사회적 문제인지 보인다.




특히 장애인의 삶을 읽으며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대신 결정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은 정말 능력의 차이일까.

어쩌면 사회가 오랫동안 한쪽에게만 기회를 주고, 다른 한쪽에게는 그 일을 대신해줄 사람을 붙여놓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니 ‘돌봄 본능’이라는 말도 조금 불편해졌다.




엄마라서 더 잘 알고, 여자라서 더 세심하고, 아내라서 가족을 더 잘 챙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랫동안 그 일을 맡아왔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일 수 있으니까.

능력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반복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책을 덮고 나서 내 주변의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일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일에는이름이없다

#이상한정상가족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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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 4분의 3의 슬픔
폴커 주어만 지음, 김시형 옮김 / 삐삐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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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13과 4분의 3의 슬픔』





사춘기를 떠올리면 무엇이 먼저 생각날까.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그 시절을 생각하면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별것 아닌 말에 상처받고,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13과 4분의 3의 슬픔』의 주인공 레온에게 사춘기는 조금 다르게 찾아온다.

슬픔으로 찾아온다.

별일이 없는데도 눈물이 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는다.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이 감정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그 마음을 읽고 있자니 사춘기의 우울이라는 것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막막한 감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라면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왜 힘든지,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언어가 충분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이유 없이 찾아오는 슬픔이 훨씬 두렵게 느껴질 것이다. 나역시 그랬으니까...

레온이 자신의 슬픔을 코코아가 가득 담긴 잔에 비유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미 잔이 넘칠 만큼 가득 차 있는데 아주 작은 충격 하나만 더해져도 흘러넘치는 상태.

이 비유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가 작은 일에 지나치게 힘들어하면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얼마나 많은 것이 차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사소한 일이 마지막 한 방울일 뿐인데, 당사자에게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넘쳐버릴 수 있다는 비유가 문학적이면서도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슬픔은 단순히 ‘우울한 아이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레온이 도덕 시간의 발표를 위해 학교 근처 십자가의 주인을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수행평가를 위한 일이었지만, 루벤과 함께 그 흔적을 따라가면서 두 소년은 점점 자신들이 몰랐던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죽은 사람을 알아가려고 시작한 일이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여정이 된다는 점이 좋았다.

죽음은 멀리 있는 특별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죽음에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있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제목의 ‘13과 4분의 3’이라는 숫자도 그래서 재미있게 다가왔다.




열네 살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어린아이로만 머물 수도 없는 애매한 시기.

어른과 아이 사이에 걸쳐 있는 그 불완전한 나이만큼이나 레온의 마음도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못한 채 흔들린다.

그리고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소년의 성과 관계에 관한 시선이었다.

레온은 친구들의 행동을 보면서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왜 여자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다니는데 남자아이들은 그러지 않을까.

친구와의 스킨십은 어디까지가 우정이고 어디부터 다른 감정일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퀴어일지도 모른다는 고민 역시 무겁지만 또 한 편으로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사춘기는 원래 그런 시기이니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친구와 연인의 차이는 무엇인지, 다른 사람의 시선은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시기.

어른에게는 이미 답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질문들이 아이에게는 처음 만나는 거대한 세계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을 사랑한다. 성인 독자에게도 누구나 사춘기 시절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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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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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뇌가 만든 천재들』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흐름출판 (펴냄)




사람들은 천재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을까.

특히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런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사람들 가운데에는 유난히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한 사람도 있었다. 때로는 극심한 고통이나 불안, 불면과 싸우면서 작품을 만들어낸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천재는 뭔가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은 ‘다름’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책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천재를 특별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마다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물론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각자의 뇌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조금씩 다르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누군가는 멜로디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가사를 기억한다. 같은 그림을 보아도 어떤 사람은 색을 먼저 보고 어떤 사람은 형태를 본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냄새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특별함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다르게 들어온 세계를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천재성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 부분이다.



책의 흥미로운 점은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사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도 언급되고 책소개글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얼굴만 봐도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 외에도 조현병,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적·신경학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도 살펴보고, 기억과 감각, 공감각, 꿈과 예술의 관계도 언급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경계하게 된 것은 오히려 ‘질환이 있으니 천재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질환은 질환이고, 예술적 재능은 예술적 재능이 아닐까 싶어서...

어떤 사람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 때문에 삶이 무너질 수도 있고,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해석하면서 그것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나는 바로 그 과정이 흥미로웠다.



고통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바라보는 방식이 특별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창작에는 감각뿐 아니라 관심과 관찰, 기억, 훈련과 표현이 함께 필요하다.

책의 후반부에서 인공지능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 의미 있게 다가왔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시대에 우리는 인간의 창의성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으로 창의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능력만으로 충분할까.

그렇다면 인간과 AI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한 사람의 작품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들어간다.

기억이 들어가고, 관계가 들어가고, 실패와 상실이 들어가고, 자신만 알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경험도 들어간다.


그래서 똑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완전히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는 같은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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