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
김희경 지음 / 웨일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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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김희경





작가의 전작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또렷하다.

특히 돌봄은 성별을 넘어 인간의 조건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떠올랐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언젠가는 다시 누군가를 돌보게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왜 돌봄은 오랫동안 여성의 일이었을까.





가정 안에서 여성이 주로 생활하던 시대에는 돌봄이 여성에게 너무나 당연한 의무처럼 주어졌다. 아이를 살피고, 가족의 일정을 기억하고, 병원에 예약하고,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일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었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감당되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그 많은 일에는 이름이 없었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이라고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은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이었다. 돌봄을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일을 먼저 떠올린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를 재우는 일처럼 눈에 보이는 노동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일이 있다.

어디가 아픈지 알아차리고, 어느 병원을 찾아야 할지 검색하고, 예약 가능한 시간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이후의 상황까지 예상하는 일.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비교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들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꼼꼼함’이나 ‘살림을 잘하는 능력’ 정도로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는 노동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무서운 것은 이 노동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엄마니까 하는 일”이고, “당연히 아내가 더 잘 아는 일”이며, “부탁하면 해주는 일”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일을 맡은 사람조차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에서 ‘시키는 것도 또 다른 기획 노동’이라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것 좀 해줘.”

그 말 뒤에는 사실 수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사람,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사람,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 상대가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사람. 결국 한 사람은 실행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기획하고 지시하고 확인하는 사람이 된다.

겉으로 보면 일을 함께하고 있는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노동의 양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가사와 돌봄을 ‘반반’으로 나눈다는 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같은 양의 일을 나누는 것이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가 전체를 기억하고 있는지, 누가 다음 일을 예상하고 있는지, 누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평함은 일을 똑같이 나누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계속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더 깊게 다가왔던 이유는 기획 노동을 단순히 부부 사이의 가사 분담 문제로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의 돌봄을 갑자기 떠안게 된 사람,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장애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돌봄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사회적 문제인지 보인다.




특히 장애인의 삶을 읽으며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대신 결정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은 정말 능력의 차이일까.

어쩌면 사회가 오랫동안 한쪽에게만 기회를 주고, 다른 한쪽에게는 그 일을 대신해줄 사람을 붙여놓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니 ‘돌봄 본능’이라는 말도 조금 불편해졌다.




엄마라서 더 잘 알고, 여자라서 더 세심하고, 아내라서 가족을 더 잘 챙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랫동안 그 일을 맡아왔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일 수 있으니까.

능력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반복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책을 덮고 나서 내 주변의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일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일에는이름이없다

#이상한정상가족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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