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 -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
N. K. 제미신 외 지음, 조던 필 엮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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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 | 황금가지







첨단과학 인공지능의 시대에 독자들은 새로운 공포를 원한다. 무려 19편의 새로운 감각, 없던 것을 읽는 느낌 그 자체였다.

공포는 언제나 ‘밖’에서 시작된다고 믿어왔다. 문 너머, 어둠 속,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하지만 여기 단편 모음을 읽고 나면 깨닫게 된다. 그 비명은 바깥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평소 좋아하는 N. K. 제미신, 레슬리 은네카 아리마를 비롯한 작가들이 참여한 이 앤솔러지는 전통적인 호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괴물은 분명 존재한지만 그 괴물은 유령이나 악마의 형태보다, 배제된 기억, 왜곡된 역사, 혹은 지워진 목소리로 나타난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미신 작가님의 《건방진 눈빛》에서 묘사되는 눈은 정말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이 분의 장편소설을 여러 차례 읽은 적 있다. 이렇게 잔인한 장면을 묘사하는 분은 아니셨는데 이번 단편에서는 그 극한을 보여준다.





설명되지 않는 공포, 게다가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어서 더 무섭고 더 두렵다. 《라시렌》에서 언급되는 물속의 여자는 누굴까? 마리와 러블리 세 자매, 실종된 마리가 돌아오는데 그것은 진짜 마리일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자 주술사》 자메이카 출신의 여상 작가다. 독특하고 신비로운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안녕, 어둠, 내 오랜 친구여.

자네와 다시 이야기하러 왔네. p266


앤솔러지를 덮으며 신선했던 감각이 살아남는다. 단편의 특성상 이야기들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읽는 내내 길을 잃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단편이라는 형식이 원래 그렇듯, 하나의 세계에 막 적응하려는 순간 이야기는 끝나버리고, 독자는 그 여백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이런 방식이 단편이 주는 실험적인 성향. 매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단편을 사랑한다.





이 작품들은 공포를 완성된 형태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파편처럼 던져놓고, 독자가 그것을 이어 붙이게 만든다.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 설명되지 않는 존재들, 끝내 해소되지 않는 불안. 마치 어디선가 들려온 비명 소리가, 시간이 지나서야 점점 또렷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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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0살 할머니
이인 지음 / 향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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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이 인 지음/ 향기책방 (펴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픈 가족을 돌보고, 그들의 식사를 차리고 의복을 깨끗이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들.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이 수많은 노동이 아무런 대가 없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성만의 의무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모성애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지만, 정작 그 가치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 와서다.





요양원, 사회 보장 제도, 가사 도우미와 육아 도우미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며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동안 누군가가 아무 대가 없이 감당해온 일들이 사실은 얼마나 고된 노동이었는지, 그리고 그 노동이 얼마나 쉽게 평가절하되어왔는지. “여자라서 당연하다”는 말 아래 묻혀 있던 시간들이, 이제는 비용이라는 형태로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 셈이다.






『나의 200살 할머니』를 덮고 나니, 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우리 사회의 돌봄 구조를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유지되던 일상은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했는지, 우리는 왜 그 가치를 뒤늦게야 인정하게 되었는지.





이런 생각은 내 개인적으로 페미니즘과 같은 어떤 이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지탱하던 사람들의 존재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 현장에서의 육체 노동,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어지던 수많은 손길들.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가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성별을 모른채로, 어떻게 이 저자분이 할머니를 돌보게 되었는지 사연이 궁금했던 마음으로 막연하게 출발했다. 덮고나서 인터넷 서점 정보를 보고 알았다.





한때는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던 사람이, 이제는 먹여지고 돌봄을 받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그 변화는 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만 나도 결국 겪을 일이다. 돌봄의 그 대상이 나로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시간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관점에서는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담았다. 식사를 하셨는지 묻고, 이름을 부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야기 책이다. 할머니의 유년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삶을 차곡차곡 담았다. 100살을 넘어 200살을 향해 간다는 설정은 농담처럼 시작되지만, 읽다 보면 그것이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끝을 향해 가는 시간이 얼마나 깊은지 와닿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이 책은 더 이상 특정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할머니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떠난 사람일 수도 있고, 아직 곁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순간보다, 읽은 뒤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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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제5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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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까치글방(펴냄)





군주론은 이미 수많은 역자들에 의해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좀 더 기대감이 높았던 것은 마키아벨리 전공학자가 직접 번역한 한국 최초의 이탈리아어 완전 번역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미 읽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군주론』을 새롭게 확인하는 독서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오래된 고전이지만, 이번 개정5판을 읽으며 가장 먼저 실감되는 것은 텍스트 자체가 새롭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군주론을 집필할 당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상황은 어려웠다. 그는 한때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활약했지만,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되찾으면서 공직에서 쫓겨났고,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까지 당한다. 이후 풀려나긴 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히 잃은 채 시골로 물러나야 했다.




바로 그 유배와도 같은 고립의 시간 속에서 『군주론』이 쓰였다.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밤이 되면 옷을 갈아입고 고전 속 인물들과 대화하듯 글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메디치 가문에 헌정된 책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정치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현실제안서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군주의 유형을 나누는 방식이다. 세습 군주와 신생 군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통치해야 하며, 특히 새롭게 권력을 잡은 군주는 훨씬 더 많은 위험과 저항에 직면한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얻은 만큼,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때로는 잔혹한 선택도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는 도덕적인 판단보다는 그것이 효과적인지를 묻는 듯하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 인간에 대한 전제다. 그는 인간을 쉽게 변하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두려움과 욕망에 지배되는 존재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미움을 사는 것과는 구분해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공포를 통치의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선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번 판본의 핵심은 뭘까?

한 번 번역되고 끝난 책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개역을 거치며 다듬어진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역자 후기에서 드러나듯, 이 번역은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이탈리아어 원전을 기준으로 다시 읽고, 다시 옮기고, 다시 검토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되었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해석이자 비평 아닐까?




무엇보다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고전 특유의 무게감을 유지하면서도 과하게 권위적이지 않은 디자인이라, 읽기 전부터 한 번 더 손이 가게 만든다. 오래된 텍스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번역한 기획 의도와도 잘 맞아보인다.




재독한 군주론 역시 질문이 늘어난다. 권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또 인간은 얼마나 쉽게 변하는가. 그런 불편한 질문들을 남긴 채 책을 덮게 된다. 그럼에도 다시 펼쳐보게 되는 이유는, 이 책이 말하는 현실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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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문법 - 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리고 언어의 숭고한 힘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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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 리 저 | 김수진 역 | 까치(까치글방)








유럽 지성의 방향을 바꾼 사람!!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누구인가? 책은 피코의 출생과 유년시절로 시작된다. 단테의 시곡 첫 구절을 거꾸로 암송했던 아이는 자라 고작 스물네 살에 900개의 논제를 던지며 모든 지식을 하나로 묶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의 어머니가 대단한 인물이었다. 딸들에게도 라틴어를 가르쳤던 분이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은 학문적 밀도로 가득 차 있고, 삽화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곧바로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의미를 붙잡으려 매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런 경험이 이 책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감을 잡기 위한 동시대 유명 인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미켈란젤로 (1475–1564), 보티첼리 (1445–1510)가 있다.

대략 모나리자, 천지창조가 만들어지던 바로 그 시대, 대략 500~600년 전을 떠올리면 된다.



피코가 살았던 시기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사상을 연결하며 하나의 진리를 꿈꿨다.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넘쳐나는 언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렇다면 피코가 말한 ‘천사들의 문법’은 어쩌면 어떤 초월적 언어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는 언어의 가능성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피코의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그의 스승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안젤로 폴리치아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 관계를 넘어선 강한 정서적 결속으로 묘사되는데,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다소 동성애적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한 관계의 규정이라기보다,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서로의 언어와 사유에 깊이 매혹되며 형성했던 지적 친밀성으로 볼 수 있다.







말과 사유를 매개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 속에서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관계. 어쩌면 피코가 믿었던 ‘언어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은, 가장 가까운 이 관계 속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코의 짧은 생애에 이렇게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은 인물은 적지 않다.

스승이자 르네상스 플라톤주의의 중심 인물이었던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인간과 신, 그리고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연결하려는 사유를 피코에게 심어주었고, 그 사유는 이후 ‘모든 지식의 통합’이라는 피코의 야심으로 확장된다. 또한 메디치 가문의 후원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는 단순한 정치적 보호자를 넘어, 다양한 사상과 예술이 공존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제공한 인물이었다. 피코가 자유롭게 사유하고 실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후원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던 교회 권력, 특히 교황 인노첸시오 8세와의 긴장은 또 다른 방식의 ‘영향’이었다. 그의 900개 논제가 단죄되는 과정은, 피코의 사유가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는 혼자서 세계를 통합하려 천재가 아니다. 읽기 전에 나도 오해했던 부분이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너머에서는 개별 대상들이 모든 물질의 공통된 본질에 의해 통합되는데, 이런 상태는 숭고한 말을 통해 주변 세계와 분리된 느낌이 흐려질 때 경험하게 된다.”

역자 후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 문장은 이 책을 끝까지 밀고 가게 만드는 힘이었다. 에드워드 윌슨 리가 전하는 이 사유는 단순한 철학적 문장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인식 자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있다.






책은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지적 격변 속에서 피코가 왜 ‘언어’에 집착했는지를 따라간다. 그는 히브리어, 라틴어, 아랍 철학, 신비주의 전통까지 넘나들며 모든 지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언어에서 찾으려 했다. 그에게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더 높은 존재로 끌어올리는 매개체였다.






피코의 사유는 그의 시대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 이후 유럽 사상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를 통해 정립된 르네상스 플라톤주의를 한층 확장하며, 서로 다른 전통을 하나의 진리로 묶으려는 그의 시도는 근대 인문주의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다. 특히 인간을 고정된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존재로 본 그의 관점은 이후 인간 중심 사유와 개인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가로지르는 통합적 사고는 오늘날 비교철학이나 융합적 사유의 선구적 모델로 다시 읽히고 있다.





그의 철학을 다시 읽는 이유는, 그가 제시한 답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던진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사상, 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분열하는 시대에 그는 이미 모든 지식이 하나의 진리를 향해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했다. 특히 언어가 인간을 설득하는 것을 넘어 변화시키고, 나아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이라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미디어와 담론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결국 피코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통합된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말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 존재인지 스스로 묻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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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탈인간
신은영 지음 / 자상한시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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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렌탈 인간 』 결핍을 외주화하는 시대, 나는 여전히 나로 남아 있는가






신은영 장편소설/ 자상한시간 (펴냄)






인간은 인간에게만 너그럽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인간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p10




필요한 사람을 빌려 쓴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어릴 때 한 번쯤 해 본 상상이다. 예를 들면 숙제하기 싫을 때, 시험 전날 긴장될 때.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나대신 힘들거나 하기 싫을 일을 시킬 누군가가 필요하긴 했다.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는 작가는 인문학 에세이를 한 권 출간했고 이번에 이 소설이 첫 장편소설이신듯싶다.






인간은 어디까지 대체 가능한가.

이 작품에서 ‘렌탈’은 단순한 노동 대행이 아니다.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아내, 일을 대신하는 직원, 나 대신 살아주는 존재까지 등장한다.

편리함은 점점 확장되고, 그에 따라 인간의 역할은 점점 축소된다.

렌터카, 렌털 정수기 나아가 렌털 인간의 시대... 처음엔 독특하다고 느꼈는데 발음해 볼수록, 기발하다. 같은 제목의 소설을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소설 초반을 장악하는 정서, 인간 소외 현상은 내 학창 시절에도 중요한 화두였다. 그때는 막연한 사회 문제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훨씬 더 구체적인 형태로 다가온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교해진 느낌으로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이다.






사춘기 자녀와 무관심한 남편,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는 연령대의 주부 일상이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런 장면이 꽤 많았다. 신생아실 유리 벽처럼 서로의 앞에 세워져 있던 벽이 이제야 느껴졌다. 익숙한 외로움이 짙게 깔렸다는 문장은 몇 번 읽어봐도 철학적이다. 그게 익숙한 외로움일까? 만나고 헤어짐, 엄마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한 번의 만남 그리고 영원한 이별....






노력으로 얻어내기보다 대여로 욕망을 충족하려 하다니. p33

누군가 대신해 준다면 훨씬 효율적이고, 훨씬 편해 보인다. 게다가 렌털 인간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유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 모호하다.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지점이 있다. 아니면 이런 일을 과연 맡겨도 되는 일인가라는 질문들. 만약 나에게 렌탈 인간이 '대여'된다면 나라도 그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책을 넘기다 보면 마침내 나는 꼭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다소 불편한 질문에 도착하다.

선뜻 '네'라고 답하지 못하는 건 뭘까?

설마, 나는 누군가의 대체재인가? 나는 주체로써 살고 있는가? 그래서 철학이 집요하다. 그것도 정말 간. 절. 히!!!






소설의 세계가 완전히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일부를 ‘아웃소싱’하며 살아간다. 배달, 돌봄, 공동주택 아파트 관리, 감정 노동, 심지어 관계까지도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은 대부분 외부 업체에 맡긴다. 소설은 시대적 흐름을 한 발 더 밀어붙여 존재 자체를 외주화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남긴다.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결핍을 채우며 살아가는 존재인가, 아니면 대신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존재인지 소설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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