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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문법 - 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리고 언어의 숭고한 힘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6년 4월
평점 :

에드워드 윌슨 리 저 | 김수진 역 | 까치(까치글방)
유럽 지성의 방향을 바꾼 사람!!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누구인가? 책은 피코의 출생과 유년시절로 시작된다. 단테의 시곡 첫 구절을 거꾸로 암송했던 아이는 자라 고작 스물네 살에 900개의 논제를 던지며 모든 지식을 하나로 묶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의 어머니가 대단한 인물이었다. 딸들에게도 라틴어를 가르쳤던 분이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은 학문적 밀도로 가득 차 있고, 삽화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곧바로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의미를 붙잡으려 매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런 경험이 이 책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감을 잡기 위한 동시대 유명 인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미켈란젤로 (1475–1564), 보티첼리 (1445–1510)가 있다.
대략 모나리자, 천지창조가 만들어지던 바로 그 시대, 대략 500~600년 전을 떠올리면 된다.
피코가 살았던 시기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사상을 연결하며 하나의 진리를 꿈꿨다.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넘쳐나는 언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렇다면 피코가 말한 ‘천사들의 문법’은 어쩌면 어떤 초월적 언어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는 언어의 가능성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피코의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그의 스승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안젤로 폴리치아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 관계를 넘어선 강한 정서적 결속으로 묘사되는데,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다소 동성애적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한 관계의 규정이라기보다,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서로의 언어와 사유에 깊이 매혹되며 형성했던 지적 친밀성으로 볼 수 있다.
말과 사유를 매개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 속에서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관계. 어쩌면 피코가 믿었던 ‘언어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은, 가장 가까운 이 관계 속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코의 짧은 생애에 이렇게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은 인물은 적지 않다.
스승이자 르네상스 플라톤주의의 중심 인물이었던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인간과 신, 그리고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연결하려는 사유를 피코에게 심어주었고, 그 사유는 이후 ‘모든 지식의 통합’이라는 피코의 야심으로 확장된다. 또한 메디치 가문의 후원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는 단순한 정치적 보호자를 넘어, 다양한 사상과 예술이 공존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제공한 인물이었다. 피코가 자유롭게 사유하고 실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후원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던 교회 권력, 특히 교황 인노첸시오 8세와의 긴장은 또 다른 방식의 ‘영향’이었다. 그의 900개 논제가 단죄되는 과정은, 피코의 사유가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는 혼자서 세계를 통합하려 천재가 아니다. 읽기 전에 나도 오해했던 부분이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너머에서는 개별 대상들이 모든 물질의 공통된 본질에 의해 통합되는데, 이런 상태는 숭고한 말을 통해 주변 세계와 분리된 느낌이 흐려질 때 경험하게 된다.”
역자 후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 문장은 이 책을 끝까지 밀고 가게 만드는 힘이었다. 에드워드 윌슨 리가 전하는 이 사유는 단순한 철학적 문장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인식 자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있다.
책은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지적 격변 속에서 피코가 왜 ‘언어’에 집착했는지를 따라간다. 그는 히브리어, 라틴어, 아랍 철학, 신비주의 전통까지 넘나들며 모든 지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언어에서 찾으려 했다. 그에게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더 높은 존재로 끌어올리는 매개체였다.
피코의 사유는 그의 시대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 이후 유럽 사상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를 통해 정립된 르네상스 플라톤주의를 한층 확장하며, 서로 다른 전통을 하나의 진리로 묶으려는 그의 시도는 근대 인문주의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다. 특히 인간을 고정된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존재로 본 그의 관점은 이후 인간 중심 사유와 개인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가로지르는 통합적 사고는 오늘날 비교철학이나 융합적 사유의 선구적 모델로 다시 읽히고 있다.
그의 철학을 다시 읽는 이유는, 그가 제시한 답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던진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사상, 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분열하는 시대에 그는 이미 모든 지식이 하나의 진리를 향해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했다. 특히 언어가 인간을 설득하는 것을 넘어 변화시키고, 나아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이라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미디어와 담론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결국 피코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통합된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말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 존재인지 스스로 묻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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