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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0살 할머니
이인 지음 / 향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이 인 지음/ 향기책방 (펴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픈 가족을 돌보고, 그들의 식사를 차리고 의복을 깨끗이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들.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이 수많은 노동이 아무런 대가 없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성만의 의무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모성애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지만, 정작 그 가치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 와서다.
요양원, 사회 보장 제도, 가사 도우미와 육아 도우미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며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동안 누군가가 아무 대가 없이 감당해온 일들이 사실은 얼마나 고된 노동이었는지, 그리고 그 노동이 얼마나 쉽게 평가절하되어왔는지. “여자라서 당연하다”는 말 아래 묻혀 있던 시간들이, 이제는 비용이라는 형태로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 셈이다.
『나의 200살 할머니』를 덮고 나니, 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우리 사회의 돌봄 구조를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유지되던 일상은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했는지, 우리는 왜 그 가치를 뒤늦게야 인정하게 되었는지.
이런 생각은 내 개인적으로 페미니즘과 같은 어떤 이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지탱하던 사람들의 존재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 현장에서의 육체 노동,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어지던 수많은 손길들.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가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성별을 모른채로, 어떻게 이 저자분이 할머니를 돌보게 되었는지 사연이 궁금했던 마음으로 막연하게 출발했다. 덮고나서 인터넷 서점 정보를 보고 알았다.
한때는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던 사람이, 이제는 먹여지고 돌봄을 받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그 변화는 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만 나도 결국 겪을 일이다. 돌봄의 그 대상이 나로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시간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관점에서는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담았다. 식사를 하셨는지 묻고, 이름을 부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야기 책이다. 할머니의 유년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삶을 차곡차곡 담았다. 100살을 넘어 200살을 향해 간다는 설정은 농담처럼 시작되지만, 읽다 보면 그것이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끝을 향해 가는 시간이 얼마나 깊은지 와닿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이 책은 더 이상 특정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할머니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떠난 사람일 수도 있고, 아직 곁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순간보다, 읽은 뒤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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