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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갈까마귀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엘리스 피터스 (지음)/ 북하우스 (펴냄)
'자비는 심판보다 늦게 오지만, 더 멀리 간다'라는 한 줄 평 문장은 평소 내 신념과 닮았다^^ 진심은 끝내 가닿으며 좀 느리지만 결국 통한다. 물론 진심이 상대방 마음까지 이동하는 사이, 소문과 부정적인 시선을 견뎌야 하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어떤 일이 생기면 앞서서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해버리는 성격인데 이런 단점을 애써 포장해 본다. 가식 1도 없이 쓰는 글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내가 받은 책 중 마지막 책이다. 왜 매애하게 12권을 남겨두었을까?
청개구리 심리가 또 발현된 건지 ^^
거꾸로 21번을 가장 먼저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가서 13번을 읽고 이렇게 맘 내키는 대로 읽었다. 이번 독서는 정말 즐거웠다.
내겐 병원 소독약 냄새로 기억되는 1~5권을 떠올리면, 그때는 그냥 스토리 자체만 본 것 같다. 1년 사이, 그 1년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 1년이라는 단어를 쓰고 그다음 단어를 자판에 찍기까지 참 긴 시간이 흘렀다. )
중세 수도원의 고요함 속에 숨겨진 치열한 인간사의 갈등, 그리고 이번 책에서 제시한 '정의'라는 키워드는 그 어떤 범죄보다도 더 무거운 울림을 준다. 어느새 12세기 모드 황후와 스티븐 왕의 갈등, 내전도 치열해진다. 시리즈 전체에서 모드 황후와 스티븐 왕에 대해 언급된다. 영국의 12세기는 어떤가? 역사는 기록하는 자들의 기록이라 생각한다. '누가 펜을 쥐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당대 시대상과 맞지 않는 모드 황후에 대해 곱게 쓸 리 없다ㅎㅎ 심지어 이 책의 작가도 12권에서는 모드 황후에 대해 과한 욕심, 오만하고 표독스러운 인물이라고 묘사하지만 당대 사료를 많이 찾아보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모드 황후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대 귀족들에게 감히 여자인 모드 황후에게 머리를 굽힐 각오를 하는 것은 치욕이었다.
당대 분위기는 순종적이며 순결한 기독교 여성상 강조했다. 여성의 법적 지위는 남성의 부속물(아버지, 남편, 아들의 소유 개념) 이었다. 모드는 실질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정치적으로 싸웠으나, “여자답지 않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통치자라는 개념 자체가 부정적이었고, 모드는 권력에의 의지가 오히려 ‘오만’으로 간주되는 부분 없지 않다 ㅠㅠ
뒤에 20권에 가서야 나오는 이야기지만 모드 황후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국 쥘 수 없는 왕관을 '아들'에게라도 이양시킨다. 모드 본인은 끝내 왕이 되지 못했지만, 아들의 왕위 등극으로 그녀의 정치적 명분이 복원되는데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ㅎㅎ
우리가 아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나 앤 여왕이 나오려면 16세기나 가서야 가능하며 여성이 참정권, 선거권을 쥔 것은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두 분 여왕과 비교해서 할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
12권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여성상에 대한 부분은 등장인물을 통해서도 언급된다. 예를 들면 에일노스 교구신부의 집안일을 돕는 여성이며, 조카 베넷을 보살피는 보호자인 디오타 같은 인물!! 겉보기엔 하층민에 가까운 신도이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여성은 법적 권리를 갖지 못하고 남성의 보호 아래 놓인 존재였으나, 나이 든 여성은 '도덕적 목소리'로서의 위치를 허용 받음. 디오타는 자식도, 남편도 없이 조카를 보호하며 소소한 권위를 지닌 여성상으로 그려진다.
두 번째 여성상은 에일노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거부당한 젊은 미혼모 엘리네드. 이 여자는 여러 남자를 거절하지 못한 죄로 임신했고 그 아이는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었다. 이에 여자 역시 강물에 몸을 던진다.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여기서 다시 책의 본론으로 돌아가, 새로 부임한 에일노스 신부!! 이 분은 어떤 의미에서 캐드펠 수사와 대칭점에 있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성직자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모든 것을 지켰다. 그런데 씁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때로 어떤 의무를 앞세워야 하는지 결정이 필요하다. 신부가 자신이 돌보아야 할 이들의 영혼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점이 캐드펠 수사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저수지에서 비참한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인물 분석에만 100자 이상씩 쓸 수 있는 이 책의 리뷰를 마친다. 매 시리즈마다 다른 사건, 다른 등장인물의 다른 이야기!! 이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캐드펠 수사는 단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만 주력하지 않는다.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직면하고 끌어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제목 '갈까마귀'가 주는 상징성!! 긴 여운과 울림을 주는 기념비적인 소설이다. 이번 세기에 누가 쓴들 엘리스 피터스만큼 쓸 수 있을까?!!!

실제 역사와 소설과의 접점을 살짝 언급해 보면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 찾기에 무척 진심인데)
단순한 살인사건이 실제로는 국가 전체가 요동치는 시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하는 서사!!
국민들이 모드 황후를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정치적인 원인이 있다.
모드가 겪는 불신은 강한 여성 통치자에 대한 시대의 불안과 저항을 담고 있으며,
그녀의 후손인 헨리 2세(모드의 아들)가 결국 플랜태저넷 왕조를 시작하게 된다. 캐드펠 시리즈를 통해 읽는 영국 왕위 계승 전쟁 같은 소재로 독서모임을 해봐도 좋을 듯싶다.
♣ 소설 1권부터 언급되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갈등!! 실제 역사적 배경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무질서의 시대라 불린 1150년. 헨리 1세의 딸 모드 황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황후였고, 헨리 1세가 아들이 죽은 후 그녀를 후계자로 지명한다. 그러자 헨리 1세가 죽자, 조카 스티븐 블루아가 먼저 왕위에 올라 스티븐 왕이 된다. 이에 대해 모드 황후와 그녀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반기를 들면서 장기적인 내전이 벌어진다. 이 내전은 지역 귀족들의 이권 다툼과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며, 일반 백성에게도 큰 고통을 안기는데...
결국 1153년, 스티븐 왕은 모드의 아들 헨리 2세(훗날 플랜태저넷 왕조의 시작)에게 왕위를 넘기기로 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작가는 단지 ‘시대를 빌려온 것’이 아니라, 중세 정치와 종교, 개인적 윤리의 충돌이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소설에 녹여낸다. 전쟁이라는 대혼란 속에서 캐드펠이 보여주는 인간적 선택과 참회는, 어지러운 시대 속 인간은 어떻게 정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소설을 관통하는 큰 주제이기도 하다.
덧: 이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으면 좋겠지만, 순서와 무관하게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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