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배우며 생각한 것들 - 33년 차 저널리스트, 우아하고도 단단하게 인생을 건너다
신예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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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리 저널리스트의 [발레를 배우며 생각한 것들]을 읽었다. 부제는 “33년 차 저널리스트, 우아하고도 단단하게 인생을 건너다”이다. 어릴 때는 운동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운동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뛰어노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도 기구종목에서는 나름 운동신경이 기민한 편이라 적당히 즐길 수 있었다. 한 때 농구에 미쳐 있을 때에는 주일날 아침에도 혼자 학교 운동장에 가서 슛과 드리블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근래에 이르러 가장 많이 듣는 충고나 조언 중의 하나가 적절한 운동을 하라는 말이다. 하도 오랜시간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보니 등은 점점 굽어지고 거북목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책에 집중이 안 될 정도로 목이 뻐근해서 목디스크 예방 유튜브를 찾아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되지 않아 언제 그런 스트레칭을 찾아서 유심히 살펴봤냐는 듯이 구부정한 자세로 회귀하고 말았다. 


그런데 발레라니, 그것도 33년 동안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거의 워커홀릭 수준으로 살아온 저자가 50대 중반에 이르러 발레를 시작했다니 정말 놀라운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30년 전의 50대와 현재의 50대는 정말 많이 다른 것 같다. 거의 전 세대가 10살 이상 젊게 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70대에 이르러도 할아버지, 할머니 같지 않게 보이고 30대에 결혼을 안해도 더 이상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육체적인 건강이 보장된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정서적으로도 나이를 조금 늦게 먹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평균 수명이 길어져 100세 시대라는 말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문제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첫 번째로 가진 직업에서 물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흐릿해지고 더 나은 조건을 위해서 이직을 원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되었음에도 50대에 이르기까지 해왔던 직업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자영업이나 전문직의 몇 직업군에 해당되지 않고는 대부분의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50대 이후의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몇십년 동안 한 직종에 일하다보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겨서 감히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아우라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익숙해진 일에서 만큼은 아는 척, 잘난 척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직업에 완전히 최적화된 사람이라도 직종을 바꾸게 되면 그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20대 때의 열정과 체력도 없는 상태라 무언가를 배우며 익숙해지기 위해 반복된 연습을 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한 도전이 두렵거나 귀찮게 느껴질 경우 첫 번째 직업에서 물러난 이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이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인생 제2막을 준비하는 것은 경제적인 여건에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함과 동시에 적어도 30년 이상 남은 여생의 행복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고민이다. 


세상에 어려운 일들이 무척이나 많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몸을 단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몸은 신기하게도 육체적 고통을 반복적으로 견뎌낼 때 더욱 강인해지는 것 같다. 심지어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딴 선수들도 은퇴 이후에는 살집이 늘어난 몸과 더불어 운동이 지긋지긋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하니, 자신의 몸을 날렵하고 활기있게 유지하는 것은 보통의 노력과 결심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가만히 앉아서 하는 기도조차도 근육이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 한 달 동안의 침묵 피정 기간에 하루에 평균 5-7시간 동안 성당 의자에 앉아서 묵상을 해야만 했다.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고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열흘 쯤 지나니 허리부터 엉덩이뼈까지 근육통이 심해져서 쉬는 시간이면 무조건 침대에 누워 앓는 소리를 내곤 했다. 유학 중에는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하루에 평균 1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논문을 마무리 할 때에는 어깨부터 손까지 저려오는 고통이 심해서 마음은 한 시가 급한데도 어쩔 수 없이 누워만 있기도 했었다. 


저자의 글에 나온 발레의 동작 하나 하나를 상상해보니 안 쓰던 근육에 심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의 고통이 떠올랐다. 운동이나 노동을 안하다가 어느날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고 난 다음 날 계단을 오르내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 날이 며칠 지속되면 내가 아무리 건강해진다고 해도 당장 운동을 때려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다. 어찌보면 저자가 발레를 1년이나 지속하며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인생 제2막의 첫 번째 요소가 아닐까 싶다. 


#신예리 #발레를배우며생각한것들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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