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멜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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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수록작에는 김멜라 ‘이응 이응’,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김기태 ‘보편 교양’, 김남숙 ‘파주’, 김지연 ‘반려빚’, 성해나 ‘혼모노’, 전지영 ‘언캐니 벨리’ 이렇게 일곱 작품이다.  젊은작가상 이라는 취지에 걸맞는 것처럼 수상작가들의 이름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자소개란을 살펴보니 다른 작품집의 단편에서 만난적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아직 장편소설에서 만난적이 없기에 낯선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일곱 편의 작품들이 각각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니 어찌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란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김기태 작가의 ‘보편 교양’에서는 입시 준비와는 전혀 무관하게 여겨지는 고전읽기 수업을 하는 곽이라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한때 인문학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적도 있었으나 과학과 기술의 표면적인 가치 창출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문학의 자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속화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고전문학이라니, 궁금하면 웹상의 어느 블로그에 잘 갈무리된 내용을 쓱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세태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 학생이 등장한다. 문득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때에 본고사를 위한 특별 수업에서 한국의 단편 소설을 읽고 리뷰를 써오는 것을 과제로 내주곤 했었다. 정규 수업이 아니었기에 과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수업을 듣던 상당수의 학생들이 서울의 괜찮은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였기에 논술 고득점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되었다. 매주 리뷰를 돌아가며 발표하곤 했는데, 몇 주가 지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제 제출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독후감을 써오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나는 꽤나 자주 리뷰 발표를 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책을 읽고 줄거리를 갈무리하고 느낌을 쓰는 것을 즐겨했던 것  같다. 


김남숙 작가의 ‘파주’를 읽으면서 혹시나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잠깐 동안 심각해졌다. 취사병 시절 현철을 구타하고 못살게 굴었던 정호의 뻔뻔함은 대중적 분노를 자아내지만 정호의 치사한 변명 중에 하나인 자신은 현철이 당한 것보다 심하면 심했던 덜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완전히 100프로 뻥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염치가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타인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인정하며 부끄러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염치가 없는 사람들은 비슷한 아주 두터운 낯짝을 보여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왜 이제와서 이러는 거냐고? 나만 그러게 아니고 다들 그러지 않느냐고? 니가 나를 그렇게 만든 원인제공자라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와 정당한 처벌이다. 하지만 염치가 없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회피하고 싶은 겁쟁이가 대부분이라 또 다른 폭력을 선택하다. 돈이든 권력이든 무엇을 이용해서라도 과저에 저질렀던 잘못을 다시 반복한다. 가해자였던 정호의 애인이 현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것은 어쩌면 이미 염치가 소멸된 정호라는 인간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을 예견했기 때문은 아닐까.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어린 나이에 신내림을 받은 후 30년 동안 박수무당으로 살아온 주인공이 더 이상 접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 자신이 모시던 할머니신이 앞집으로 자리를 잡은 과거의 앳된 자신과 같은 어린 학생에게 옮겨간 것을 알게 된 이후의 이야기이다. TV에서 예전에 연예인으로 얼굴을 알린 이들이 한동안 자취를 감춘 후 신내림을 받아 용한 무당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곤 한다. 이미 대중적으로 많은 이들이 알고 이들이 굿을 하거나 점괘를 맞추는 모습 뿐만 아니라 갑자기 무속인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들려준다. 무병이라고도 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세는 신내림을 받아야만 말끔히 사라진다고 하니 샤머니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받음이라고 귀결짓지만, 미신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믿기 힘든 이상한 현상 중의 하나로 치부해버린다. 최근에 영화 ’파묘‘를 봐서 그런지 소설 속에 그려지는 굿하는 장면이 어렴풋이 그려지며 가짜 중의 진짜가 되기 위해 피갑칠을 하고도 서슬퍼런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혼모노 라는 진짜는 과연 누가 판명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감정과 노동 사이, 어딘가에 절여진 듯한 이 미진하고 축축한 기운 가운데 ‘낙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정현의 자기소개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무능을 적시한다. 쾌락을 얻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쾌락뿐이라는 무능이다. 기만적인 쾌락이 정치를 대체하고 마는 이 상실에는 어떤 우울증적 고갈, 즉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불모가 숨어 있다. 레드콤보 한 마리의 화끈한 맛, 유튜브와 왓챠 등 OTT의 짜릿한 콘텐츠와 영구적인 릴스의 미로 속에서 우리의 패배감과 무기력은 짧고 강력한 경험에 밀려 무한히 지연된다.(238)”


“신분이나 계급, 인종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오로지 개인의 능력만을 평가 준거로 삼겠다는 능력주의는 언뜻 계층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는, 차별로부터 거리를 둔 공평한 체제로 보인다. 그러나, 노력한 자가 그 대가로 능력을 얻고 이를 인정받아 차등적으로 대우받게 된다는 이 접근법은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은폐한다. 편향적으로 축적된 부와 권력이 세습되므로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하기 어려우며(유전 등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요소를 제외하여도) 누구나 노력하여 재능을 얻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노력은 능력과 직결되지 않는다.(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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