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이주혜 지음 / 에트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주혜 작가의 [눈물을 심어본 적이 있는 당신에게]를 읽었다. 얼마 전 읽었던 저자의 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에서도 느꼈지만,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한 번에 외워지지 않고 몇 번을 곱씹어 봐야 어느 정도 입에 붙는. 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열게 되면 저자의 독특한 세계가 순식간에 눈에 들어와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나 이번 산문집은 저자가 마흔이 넘어서야 작가로서의 활동을 했다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로 뛰어난 통찰력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대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어야, 아니 문학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해야 이런 감상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들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노라면 가끔씩 한 편의 단행본을 출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드러날 때가 있는데, 독자로서는 빠르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 정도면 다 읽게 되는 그 책 한 권을 위해서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송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너무나도 쉽게 그들의 노력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느 소설의 대화에서 ’요즘 대체 책이란 걸 읽는 사람들이 있기나 하느냐’는 자조적인 한탄을 읽을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렇기 때문에 읽고 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기에 일상을 작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저작을 더욱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작가의 사후에도 언젠가 남겨진 책을 읽을 누군가가 그 작가의 생각을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잣대에 맞춰 자기 정신의 크기를 가늠하길 거부했던 앨리스. 오로지 모든 것에 다 맞는 하나의 크기를 가진 그의 정신은 고통 속에서도 끝내 펜을 내려놓지 않고 삶과 죽음을 사유했고 사후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사상을 전하고 있다.(114)”


<1부 눈물은 떨어지지만 동시에 심어진다>에서는 저자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언급된다. 뒤늦게 전업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된 일부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음과 아들을 낳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던 어머니와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작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숙명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고백한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혈육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투사가 불가능할 수도 있고, 부모이기 때문에 죽음과도 같은 상흔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은 몹시도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 개인의 역사의 순수한 기록이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투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공감할 수 있는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공통된 영적인 영역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가 겪게 되는 상실의 슬픔과 덧난 상처들을 통속적인 위로의 말과 감성팔이처럼 억지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굴하지 않도록 아주 아주 공을 들인 섬세한 손길로 독자를 어루만지며 저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부 언어가 없는 곳에 빛을 비추는 사람>에서는 세계 각지의 유명한 소설에 대한 짧은 줄거리와 저자의 일생을 견주며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내용이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인 가부장적 남성주의 세계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여성의 존재와 문화, 계급, 젠더의 차별로 희생양이 된 이들을 소재로 한 문학에 대해서 언급한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언급한 문학작품들 중에 읽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아니 나는 그동안 대체 무슨 책을 읽었던 말인가’란 생각과 동시에 ‘아니 대체 세상에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말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에 서너편의 영화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책 읽기를 좋아해도 하루에 서너권의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매일 매일 엄청난 양의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니 세상의 모든 작가들의 책을 섭렵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래도 외국 작가들의 책을 그동안 너무 등한시했구라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덕분에 신간이 나올 때 제목만 눈여겨 봤었던 작가들의 책 제목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특히나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다른 책에서는 보기 힘든 저자의 일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작품은 곧 그 작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결국 저자가 소설의 간단한 줄거리에 이어 작가의 생애를 덧붙여 설명한 것은 허구의 일종인 소설이 결코 우리 삶과 동떨어진 허황된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개개인이 영원히 공동체의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야기의 힘 때문이고, 그 이야기는 문학이라는 옷을 입고 작가의 사후에도 영원히 지속되며 누군가의 삶이 전복될 사상을 전해주니, 문학이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눈물을 심어본 적이 있는 당신에게, 깨진 거울을 겁내는 우리에게 나는 오늘 화환처럼 무지개를 걸어주고 싶다. 산다는 게 다 그렇다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내느라 오늘도 모진 애를 쓰고 있으므로, 어린 날의 낙하는 크느라 그런 거라지만 오늘 우리는 끝내 추락하지 않기 위해, 기어이 생존자가 되기 위해 낚시바늘 몇 개를 아래턱에 매달고도 숨을 쉬고 있지 않은가.(45)”


“돌봄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시혜가 아니다. 아래에서 위로 치받고 올라가는 버거운 저항이어서도 안 된다. 당연하게 서로 의존해야 하고 의존한 ‘덩어리’로 자립해야 한다. 돌봄을 경시하는 태도는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에 내맡기는 살벌한 정글 수준으로 문명을 퇴보시키겠다는 것과 같다. 돌봄은 모든 인간의 존재 조건이어야 한다. 그 당연한 전제를 이야기하는 글을 읽고 쓰고 알리는 것부터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미약한 시작이 커다란 원을 만들어 활기차게 순환할 때까지.(189)”


#이주혜 #눈물을심어본적있는당신에게 #에트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