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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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님의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부제는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이다. 배달 음식이라고 하면 의례히 짜장면과 같은 중국 음식을 떠올렸다. 은색의 철가방을 싣고 도로를 활주하는 배달노동자를 볼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린 어느 중국집의 배달원이라는 말은 배달노동자가 더 이상 하나의 음식점에 귀속되지 않는 마치 프리랜서와 같은 위치로 변경되었다. 책에서도 수없이 언급되는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는 우리의 스마트폰 속에 공통된 앱 카테고리에 담겨 있다. 끼니때가 되면 별 생각없이 주문 앱을 만지작 거리다가 땡기는 음식 후기를 살펴보고 배달비까지 헤아려본 후에 결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팬데믹 이전에는 배달 앱을 사용해 본적이 거의 없었는데, 거리두기가 심화되면서 배달 앱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음식을 고르고 주문을 하고 나면 조리 중이라는 단계 다음에 픽업 그리고 배달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음에 신기해하곤 했다. 특히나 배달노동자의 위치가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앱 지도 상의 오토바이가 엉뚱한 위치로 가면 갑자기 기분이 상하면서 음식맛이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고 배달노동자가 길을 헤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푸념을 하기도 했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배달노동자가 조심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운전을 하다가 요리조리 시야를 방해하거나 갑자기 끼어드는 배달노동자의 오토바이를 볼 때면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짜장면 한 그릇도 무료로 배달을 해주던 때에는 배달료를 따로 지불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배달 앱 초창기에는 배달비가 어느 정도 지정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정말 그때 그때 다른 것 같다. 팬데믹 상황이 악화될수록 거리를 달리는 배달노동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배달비 또한 같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배달노동자에게도 생계가 달린 일이기에 이왕 배달료가 오른다면 그들의 수입이 올라 과속이나 신호위반과도 같은 운전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마치 대부분의 배달 앱 사용자와 배달노동자를 호갱으로 여기는 것처럼 배달료가 상승한다는 것은 음식점 사장님도 배달노동자에게도 이득이 아닌 의문의 승자가 있다는 기사를 읽고 플랫폼 사업의 심각함게 눈을 뜨게 되었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특히나 스마트폰과 SNS의 범람과 더불어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이 우리 삶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는 무수한 개인정보들이 들어가 있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노출된 개인정보들은 어딘가에서 무분별하게 이용되고 있어 별 생각없이 클릭한 상품을 줄기차게 나의 스마트폰으로 노출시킨다. 어찌보면 알고리즘은 AI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으로 마치 선택장애가 있는 나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AI의 알고리즘을 이용한 서비스는 의외로 많다. 우리나라의 전국민적인 채팅창인 카카오톡은 일상생활의 전방위적인 부분에서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극심한 불편함을 느끼도록 잠식해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능을 통해서 노동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AI의 지배를 받으며 노동을 영위하는 동안 그 서비스를 이용하던 사람들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카카오톡 택시가 시작되었을 때,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비용도 지불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카카오 택시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각종 수수료가 포함된 다양해진 등급은 오히려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켰고 택시 기사님들 또한 알고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달노동자 또한 각종 배달앱을 켜고 AI가 지정해주는 배달콜을 받을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배달을 원하지 않는 곳을 거부할 경우 한 동안 콜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1시간에 적어도 2개 이상의 배달을 완료해야만 최저임금이 준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압박을 가중시켜 AI의 콜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배달노동자들이 왜 그렇게 신호위반과 과속을 일삼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배달 오토바이가 인도를 오가고 골목에서 갑작스럽게 튀어 나올 때 신체의 위협을 받는 일반 시민들은 그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에 무턱대고 화를 내거나 욕을 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말하듯이 배달노동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난폭하게 오토바이를 모니까 그런 사고가 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는 것처럼, AI의 통제를 받는 배달노동자가 처한 노동현장의 악순환은 쉽게 해결될 수 없다. 오토바이는 다른 교통 수단에 비해서 너무나도 사고에 취약하다. 가만히 서 있다 넘어지기만 해도 골절을 입을 수 있는데, 자동차와 비견한 속도로 달리다 사고가 날 경우에는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플랫폼 구조는 배달노동자의 안위를 보장하기는 커녕 마치 악덕업주처럼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알아서 제 몸을 챙기라는 사고다. 플랫폼이라는 것은 거대한 프로그램으로 사람이 일일이 계산하고 통제할 필요가 없는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형태이지만, 결국 배달노동자에게 명령을 시키는 플랫폼을 만들고 조정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가. 그 플랫폼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가는 형태의 사업들이 점점 더 많이 양산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결국 하나의 소모품으로 전락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배달플랫폼기업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배달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달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였다면 배달플랫폼기업이 일감이 없어 노동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할 경우 휴업수당을 지금해야 하고, 대기하라고 지시하려 해도 최저임금 이상을 지불해야 해서 매출 하락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이 때문에 배달플랫폼 기업도 인력 구조조정과 노무관리를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은 노사 갈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배달플랫폼기업들은 해고로 인한 갈등도, 임금 삭감으로 인한 노사 갈등도 피할 수 있다. AI 알고리즘이 배달노동자들에게 일감을 주지 않고 ,배달료를 낮추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AI 알고리즘이 휘두르는 플랫폼기업식 구조 조정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구조조정의 결과는 언제 일을 시작할 수 없는 긴 대기 시간, 즉 초단기 실업시간의 확대와 장시간 노동이다. 하루 10시간 노동으로 하루 20만원을 벌었던 노동자는 이제 12-15시간씩 길바닥에서 대기하거나 일해야 한다. 실업과 취업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배달료가 올라가는 짧은 피크 시간대의 배달과 간간이 주어지는 미션 수행을 위해 무리한 운행을 감수해야 한다. AI 알고리즘은 배달을 빨리 배송하는 데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개별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소득 보장과 안전 운행에는 관심이 없다.(186-187)"


"우리는 SPC 공장에 있는 소스 조리기가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줄 몰랐고, 거기에 사람이 끼면 죽을 정도로 위험하지 몰랐다. 석탄발전소를 청소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사람이 혼자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우리가 매일 보고 운전하는 도로 위도 마찬가지다. 내가 네 바퀴로 안전하게 지나가는 도로 위의 맨홀 뚜껑이 두 바퀴로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충격적인 일이다.(25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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