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 -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최진영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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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은 최진영 “홈 스위트 홈”이고, 우수작은 김기태 “세상 모든 바다”, 박서련 “나, 나, 마들렌”, 서성란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이장욱 “크로캅”, 최은미 “그곳” 등 이다. 해마다 새해를 시작하며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접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집은 유독 재미있었다. 마치 종편과 케이블 채널을 돌리며 다양한 장르의 예능과 드라마와 쇼를 접하게 되는 것처럼,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모두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하나의 단편이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고 다음 단편에 쉽게 집중이 안되곤 했던 예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매 순간 몰입도가 높았고 잘 읽혀서 좋았다. 특히나 대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을 읽고 나서는 어떻게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한 순간에 들었나 놓았나 할 수 있을까란 놀라움과 함께 소설이 주는 여운이 한동안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집에서 사십 대가 되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어진과 상의할 수 있다고, 곤란하고 힘든 일도 함께 겪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사고가 나면 수습하고, 싸우면 화해하고, 고장 나면 고치고, 잃어버리면 같이 찾고, 상대가 악몽에 갇혀 있을 때는 작은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 서로를 천천히 구원하는 일상. 나에게 미래란 내일이었다.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기도와 같은 기대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22)” 


현대인에게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기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내일이면 혹시 집값이 폭락하지 않을까? 금리가 터무니없이 올라 이번달에는 이자를 갚을 수 있을까? 투자한 주식이 반토막나는 것은 아닐까? 안락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현재를 갈아넣었음에도 불안한 마음은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러 가며 터벅터벅 천천히 걷는다면 십중팔구 뒤따라 오는 사람에게 어깨뻥을 맞거나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 중 누군가의 눈흘김을 받기 마련이다. 대체 바빠 죽겠는데, 이 시간에 한량처럼 걷고 있다니 거추장스러워죽겠네 라는 경멸의 시선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끊임없게 만든다. 하지만 주인공 ‘나’는 내일도 오늘처럼 별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도시에서의 혼잡한 생활을 접고 한적한 곳으로 주거지를 옮긴 ‘나’는 얼마 후 암 진단을 받게 되고, 수술과 항암 치료 후 재발, 2차 재발을 거쳐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암 치료를 그만두고 ‘나’는 기억할 수 없는 2살의 나이에 보았던 어릴 때 살던 집을 재현하고자 결심한다. 


어떤 기억들은 통상적인 수준에서 용납될 수 없는 나이때에도 각인되는 것일까? 사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남아 있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들을 역사적 사건의 시기와 맞춰보면 겨우 3살 때의 일이라 혹시나 내가 혼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큰 역동적이 사건과 맞물려 있기에 내가 기억하는 장면과 유사한 일이 벌어진 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기억이 하필이면 나와 가족과도 아무관련 없는 그냥 역사적 사건에 불과한 일이라니 어떤 면에서는 아쉽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패턴을 멈추게 했던 일은 간신히 걸음마를 하던 나에게도 어떤 변화를 감지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화자인 ‘나’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릴 때 살던 집의 형태를 엄마를 통해 확인하게 되고 엄마는 딸의 이야기를 믿지 못한다. 무너져가는 폐가를 사들여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고쳐나가는 과정속에서 항암을 포기한 딸을 바라보는 심란해진 엄마의 얼굴은 어땠을까? 


“아픈 사람이란 말 좀 그만해, 엄마. 나는 나을 수 없을지는 몰라. 하지만 더 행복해질 수는 있어.

그리고 어느 날엔 이런 이야기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쓸 거야.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두라는 뜻이야. 내 몸에 어떤 튜브도 넣지 말고 나를 살리겠다고 나의 가슴을 짓누르지도 말란 뜻이야.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것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34)“


죽음이 두려워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죽음이 찾아오지 않고 기나긴 삶이 이어질까봐 두려워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죽고 싶지는 않은데 걱정이 앞서는 미래라니 참으로 피곤하기만 하다. 이렇게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스트레스로만 다가온다면 도대체 행복은 언제 맛볼 수 있는 것일까? 그 머나먼 미지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 같은 행복의 순간을 화자인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의 행복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마치 선구안 같이 말한다. 이것은 모든 진리를 깨달은 초연한 자의 모습도 아니고, 치료를 그만둔 암 환자의 낙담한 심정에서 내뱉는 한숨의 흔적도 아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다 이해하고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 불가능한 이해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어쩌면 화자인 ‘나’는 폐가를 고치며 이곳에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그 불가해한 영역의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사랑 뿐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안서현 평론가의 해설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우선 치료에만 집중하라는 말을 들으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는데 자신의 시간만 멈추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 다 낫고 나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의 시간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현재를 상실하였으며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는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것은 어쩌면 아픈 몸보다도 이런 상투적인 단절과 유예의 서사일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은 발산한다’라는 한 마디는 병을 앓고 난 ‘내’가 찾아낸 새로운 서사의 지향이다. 질병이 바꾸어 놓은 시간의 감각을 다시 구성하고 남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서사의 구조를 창조하는 일이 필요하다.(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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