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질 말들의 이야기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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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작가의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질 말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첫머리를 읽을 때만 해도 요즘 많이 사용되는 신조어와 유행어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많겠구나라는 기대와 더불어 나도 줄임말을 많이 알게되어서 시대에 뒤떨어지지 말아야지라는 단순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유행어와 신조어가 생겨난 배경과 이런 말들을 사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을 보니 점점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대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는 존버, 금수저 흙수저, 플렉스, 취준생, 홧김비용, 가성비와 가심비, 비혼, 국룰, 뉴트로, 스불재, 밈, 워라밸, 인싸와 아싸, 사회적 거리두기, 손절, 많관부, 가짜뉴스, 뇌피셜, 틀딱, 맘충, 노키즈존, 휴거 엘사 빌거, 민식이법 놀이, 한남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들도 많았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고, 전혀 알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처음 보는 말들도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이내 뜻을 알고 나니 씁쓸함이 밀려왔다. 유행어와 신조어는 어쩌면 생존기간이 짧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사라 없어질 말이기도 하다. 지금 젊은 세대를 칭하는 MZ가 사용하는 말도 얼마 되지 않아서 사라지거나 촌스러운 말이 될 것이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릴 때 썼던 말이 그랬듯이 말이다. 한때는 아재개그가 잘 통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라고 아재개그가 엄청난 반전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그런 식의 개그가 없었다면 그것 또한 신선함을 주었기 때문에 유행한 것이다. 책에는 없지만 지금은 소위 뭔가 놀랄만한 일을 듣거나 접했을 때 '대박'이라는 말을 너무나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대박이라는 말을 대체할 단어, 지금의 나의 놀란 감정을 대신할 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대박을 연신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듯 애 어린 할 것 없이 모두가 대박을 외친다. 이렇게 단어와 말의 다양성을 감퇴시키는 유행어는 그렇다 하더라도 책에 나온 유행어와 신조어들 중에 우리사회의 심각함을 드러내는 말들이 꽤나 많았다. 


존버, 금수저 흙수저, 플렉스, 홧김비용은 쳅터의 제목에 나온 것처럼 자본주의 시대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돈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가는 우리의 현실은 기존의 가치들을 붕괴시키고 모든 가치 척도의 기준을 돈으로 환원시키며, 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들을 실패자로 내몰고 있다. 특히나 인터넷의 발달로 유명인들의 삶을 손쉽게 엿볼 수 있는 SNS가 있기에, 그들이 누리는 여유와 낭만을 맹목적으로 쫓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휴거, 엘사, 빌거에 담긴 뜻이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유명 메이커의 아파트인지, 아니면 임대 주택인지를 구별하며 원색적인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의 폭력은 우리사회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책에서 예로 든 유행어와 신조어 가운데 공통적인 문제점이자 이 시대의 큰 화두로 떠오른 주제가 있으니 바로 '차별'이다. 저자도 가장 마음 아파하며 심각함을 제시한 단어들은 틀딱, 맘충, 노키즈존 같은 말이다. 노인과 여성과 아이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이 말들은 한 마디로 약자에 대한 군림의 뜻을 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비하의 뜻이 담긴 말들의 강도가 세지는 것 같다. 틀니가 딱딱거리는 소리를 담거나 '벌레 충'자를 덧붙이는 것은 새롭게 생겨난 신조어에 강렬함을 부과함과 동시에 한 번 들으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선사한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비상식적인 생각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의문을 갖지만 결론은 슬프게도 그들이 그런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것은 자신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공감의 생겨날 가능성을 아예 지워버린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들의 유형을 아웃사이더라는 하나의 범주로 명명하며 '아웃사이더 열풍'을 불러온 영국의 소설가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에서 아웃사이더를 이렇게 정의한다. 아무도 병에 걸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 '아웃사이더'의 근본 문제는 일상의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이며, 그 일상의 세계가 무언가 지루하고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는 데 있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이 톱밥을 계란이나 베이컨이라고 믿으면서 먹고 있는 것처럼(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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