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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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 님의 [쇳밥일지]를 읽었다. 부제는 "청년공, 펜을 들다"이다. 신간을 둘러보다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더니 주문하고 책을 받은 날,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강력 추천 도서라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읽는 내내 여러번의 감동과 놀라움과 슬픔이 밀려왔고 한 마디로 이분 진짜 고생 많이하셨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아니 청년공이 이렇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건가 라는 부러움마저 느껴졌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작가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작가가 너무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면 작은 책 하나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되는 것을 꿈 꿀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등단한 작가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살펴보면 자신으로 이름 석자가 새겨진 책을 한 권 내기 위해서 아주 오랜시간 준비해 왔으며, 그에 걸맞은 교육을 받았으며, 때로는 생계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글쓰기를 포하기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꽤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글쓰기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탑재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저자를 폄하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의 기자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보낸 유년시절은 정말 기구하다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을 만큼 불행했다. 감히 그 고통의 시간을 헤아리는 것 조차 죄송할 만큼 저자가 보낸 시간을 나는 조금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견뎌내는 시간 동안 아마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아무리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더라도 이건 출발점부터가 너무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저자의 글에 쓰인 몇 몇 단어들의 배치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고까지 칭송하고 픈 너무나도 적당한 표현이었다. 언젠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상황에 맞는 단어는 비슷한 뜻을 가진 수많은 단어들 중에 딱 하나 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저자가 바로 그렇게 딱 하나 밖에 없는 상황에 맞는 단어를 선택하는 귀중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분명 책의 내용이 저자가 겪은 실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편의 성장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였다면 젊은이들이 이렇게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면 안된다는 경계심에 그쳤겠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엄연히 지금도 지속중인 우리 사회의 밑낯이었다. 제대 후 몇개월 동안 노동 현장에서 일해본 게 전부인 나로서는 최저 시급을 겨우 웃도는 월급에 청춘을 저당잡힌 채 미래를 그려볼 수 없는 현장에서 떠날 수 없는 이들의 현실을 그동안 모른척 살아왔다. 입으로는 '그래 많이 힘들겠다, 불공평한 처우는 빨리 개선되어야 할 텐데'라고 흰소리만 내뱉을 뿐 나는 그냥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 내 일신을 돌보는 것에만 집중했다. 사실 다 읽고 나서도 수박 겉핧기 식으로 조금이만 노동 현장을 엿보았다고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조금더 마음을 기울여 노동자들의 소식을 살펴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같은 편린된 일종의 무식자들이 이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의 말미에 포터 아저씨가 저자에게 해 준 말이 바로 우리시대에 필요한 해답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니 칼럼은 전부 챙겨 보거든. 근데 그 왜, 우리 판때기에서만 쓰느 말들이 있잖냐? 그 상스러운 걸 칼럼에다 그대로 다 실을 순 없잖어. 그렇다고 먹물들 말로 쓰면 맛이 안 살고. 그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란 말이지. 노조 아재들이 이게 안 돼. 맨날 머리띠 매고 메가폰 잡고 소리만 치잖아. 간절한 건 이해하겠는데 촌스러워. 그림이 너무 구리잖아. 우리가 그리 욕해도 결국 가진 놈들은 먹물이잖냐? 그 먹물들이 원하는 양식미라는게 또 따로 있을 거 아니냐. 우리 얘기를 먹물들 언어로 번역해야 해. 좀 아니꼬워도 세상은 그렇게 바꾸는 거지. 넌 그게 되더라. 그래서 니가 중요한 거야. 쇳밥 얘기를 먹물들 알아먹게 쓸 수 있으니까.(283-284)"


"나는 강사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빌려 튀어나온 세상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교육과 대학 서열화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소산물인 돈이 만들어낸 결과물, 평등과 이해는 돈이 되지 않는다. 돈이 안 되니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연히 자신의 욕망 외 다른 가치를 모른 채 어른이 된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는 이런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강사 같은 이들은 삶에 순위를 매겨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고, 실패한 이들에게 냉소를 퍼부어왔다. 공부 안 한 너희들이 잘못했어.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하는 건 당연한 거야. 열심히 살아온 자신은 응당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배워왔을 터.(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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