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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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작가의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을 읽었다.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장례식장을 그 누구보다 많이 가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많이 조문을 하며 고인을 향해 절을 하고 기도를 드려도 상주를 마주했을 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어쩔 때는 그 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조문을 가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조문을 마치면 바닥에 놓인 네모진 상 앞에 앉자마자(요즘은 식탁으로 많이 바뀌고 있지만) 일하시는 분들이 음식을 일회용 접시에 담아 내어준다. 식사를 하겠다면 육개장에 밥 그리고 편육, 김치, 오징어, 견과류나 멸치 볶음, 떡 등이 올라온다. 식탁에는 일회용 숟가락과 젓가락, 종이컵과 티슈가 놓여 있고, 음료수와 물도 놓여 있곤 한다. 에너지 드링크가 놓여 있기도 하고 간혹 술도 미리 가져다 주기도 한다. 


몇년 전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불과 20여년 전에 각자 살던 집에서 상을 치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노란색 근조 등을 달아놓고 아파트에서도 집 앞에 천막을 치고 밤을 세워가며 장례를 치뤘다는 이야기에 학생들은 놀람도 거부도 아닌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대부분은 아예 관심도 없어보였다. 그런데 그런 때가 진짜 바로 얼마 전이었다. 밤을 세워가며 사람들이 떠들고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치며 소란을 피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란 근조등을 보며 다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누구의 가족이라도 나의 귀중한 이틀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내공이 있었다. 그렇게 아파트 앞에서 천막을 치고 누군가의 장례를 도와줄 때 음식을 날라주는 일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의 주인공이 재희와 마리는 장례식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장례식장 알바는 일하는 시간이 고정되어 있다거나 예고할 수 없다. 사람이 죽는 일은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마리는 알바를 마치고 나면 동인천까지 가는 전철이 끊겨서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밤을 지세곤 한다. 화자인 ‘나’ 재희는 마리와 가까워지며 마리가 혼자 밤을 세지 않도록 함께 있어준다. 오래된 스쿠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장례식장을 알바를 지속하는 그들의 삶을 위로받는다. 얼핏보면 아무런 미래에 대한 계획없이 무작정 시간을 보내는 10대도 아닌 20대 청년들의 방황기 같지만, 실제로 그들은 삶을 놓지 않으려고 부단히 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소설은 지금 청년들의 실업과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알바를 전전하는 심각한 상황을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녹아내며 또한 재희와 마리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아마도 분명히 자기 주변의 멀쩡한 청년 두 명이 부정기적인 장례식장 알바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젊은 사람이 왜 그런 일을 해? 혹은 제대로된 직장을 잡아야지.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안되지. 라는 부정적인 말을 들을지 모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수없이 갈 수 밖에 없는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도움을 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음을 슬퍼할 기운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그 누군가가 묵묵히 음식을 날라주고 치워주기에 우리는 우아하게 조문도 하고 눈물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슬픔에 휩싸인 상주가 음료수나 밥을 챙기는 상황은 얼마나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가족은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격렬히 응원해주는 것이 가까운 사람들의 몫이다. 장례때 일어하는 주변 일을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다면 약소한 부의금으로나마 상주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다. 


재희가 장례식장을 떠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자신과 목조르는 장난을 하다가 실수로 누나를 죽인 것은 아닐까란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하얀 뱀을 보며 자신에게 스스로 벌을 내린 삶을 살던 재희는 마리와와 만남을 통해 누나의 사인을 직접 확인할 용기를 얻게 되고 누나는 소아암으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재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마리와 함께 상조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쉼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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