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독립 : 부엌의 탄생 띵 시리즈 15
김자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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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혜 님의 [식탁 독립: 부엌의 탄생]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5번째 책이다. 정확한 레시피로만 요리하던 저자가 도시 생활을 접고 지리산의 시골 마을로 이사한 후 스스로 세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는 능력치 만렙 도전기라면 너무나도 전투적일까? 하지만 저자의 요리부심 성장기를 읽으며 왜 제목에 ‘식탁 독립’이라는 말을 붙였는지 격하게 공감하게 되었고, 에필로그에 나온 것처럼 가족의 끼니를 책임질 수 밖에 없었던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전 외국에서 머물 때 대학생들과 함께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하나마나한 아쉬움을 털어냈다. 


한식에 특화된 입맛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루 아침에 서양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지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양식을 좋아하고 먹성이 좋다고 해도 김치나 밥 없이 일주일 정도 보내면 거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시름시름 흥미를 잃어간다. 더군다나 입까지 짧은 나에게 한식도 아닌 파스타를 매일 처음보는 그것도 말도 안통하는 학생들과 공용 주방을 사용해서 만들어 먹으라니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명령처럼 들려왔다. 다행히 나의 고뇌를 눈치 챘는지 낮에는 멘사 식당과 저녁에는 공동체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요리무능이라는 전투력 제로의 자세도 문제였지만, 내 방에는 그 어떤 것도 조리에 가까운 기능이 있는 도구가 없었기에 무작정 파스타에 적응해야만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쌀도 파스타 면도 어차피 탄수화물이지만 나의 위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낮에는 멘사에서 준 파스타를 남기기가 일쑤였고, 저녁에는 속이 더부룩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한달이 지날 무렵 엄청난 선물인 작은 전기밥솥이 도착했고, 타국에서 만난 지인분이 컵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 주셨다. 컵라면에 말아 먹는 밥은 삶의 질을 천퍼센트 상승시켰고 파스타에 대한 저주의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혔다. 


궁하면 요령이 생긴다고 없는 도구에 그나마 먹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로 커피포트에 짜파게티를 끓여서 먹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호텔에서는 조리를 전혀 할 수 없기에 여행을 갈 때면 한국에서 보내준 전투식량을 가지고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냄새를 빼며 봉지째 먹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대체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그전까지 나는 그냥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가 다가왔다. 식사 약속이 잡히면 무조건 웹서핑을 시작하는 모습이 그랬다. 한 깨 때우는 것이 아니라 먹는 행위 그 자체에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에 말이다. 아마도 우리를 먹여 살린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알을 보면서 확신했을 것이다. 나는 저 아이를 먹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라고…


“도시에서 유급노동자로 살다가 시골로 내려와 집에 머무는 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생활은 원시로 돌아갔고, 나는 자연스럽게 요리라는 세계에 접속하게 되었다. 하루 세끼는 왜 이리 자주 돌아오는가, 하루는 왜 세끼인가. 아니, 인간은 왜 이리 자주 먹어야 살 수 있는 걸까! 이 책은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세 끼니를 지어 먹게 된 사람의 분투기다. 조리대 앞에 서서 느꼈던 솔직한 마음을 썼다. 무력감과 외로움, 피로와 분노, 그리고 사랑과 자부심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 밥을 짓는 일이란 깊이 침전된 기억들을 휘젓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11)”


“그때나 지금이나 왜 어떤 물건들은 저런 식으로 존재하나?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대로인가? 총량은 변함없이 양상만 조금씩 달라지는 걸까? 이곳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진리가 구현된 현장인가? 왜 이리도 끈질기게 줄기차게 구차한가! 갈피마다 포진되어 있는 하찮은 물건들을 보며 나는 환멸을 느꼈다. 악착같이 따라붙어 추억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며 산뜻한 출발을 방해하는, 만고 쓸데없는 찌꺼기들!

남들이 포장해서 옮긴 뒤 나 대신 은폐해줄 때에는 잘 안 보이던 그것들을 맞닥뜨리는 건 벌거벗는 일과 비슷했다. 부끄러웠다. 어쩌면 ‘맨 아래 서랍’은 우리 모두의 집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직접 열어 대면하는 일 역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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