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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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상영 작가의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었다. 종영을 앞둔 <갯마을 차차차>에서는 주인공 커플의 사랑이 이루어져 가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그에 못지 않게 조연들의 인생사도 꽤나 인상적이다. 그 중에 바닷가 시골 마을의 통장과 동장이 이혼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고 그들 사이에 초희라는 제3자가 얽힌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이혼한 마당에 첫사랑 초희에게 직진하는 장동장은 보기좋게 초희에게 까이게 되는데, 그 이유를 짐직케 하는 대사가 지나간다. 그리고 여통장을 바라보는 초희의 눈빛은 사사롭지 않고 여통장의 집에서 하숙을 하는 초희를 찾아온 그녀의 엄마는 "초희야, 제발 정신 좀 차려. 대체 왜 이래"라며 "너 한 번 더 이러면 오빠가 정신병원에 처박아버린다고 그랬다"고 말한다. 초희는 "엄마, 나 안 미쳤어. 멀쩡하다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어떻게 병이냐"며 "엄마 잘못 아니다. 그리고 내 잘못도 아니"라고 눈물을 흘린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위해서 자격이 필요하다면 그러한 자격은 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며, 누가 그 자격의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서 누구나 마땅히 평등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는 그 당연한 평등함이 적용되는 경우가 더욱 희박한 것 같다. 배움을 통해서 알게 된 삶의 진리들은 막상 현실 세계 안에서 조율되는 온갖 더럽고 비루한 논리에 쉽게 무릎을 꿇고 만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퀴어소년으로 도윤도를 사랑하고 그를 향한 시선을 멈출 수 없지만, 반대로 동갑임에도 '나'를 따르고 형이라 부르며 오랜 시간 좋아해온 동네 친구 태리를 외면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까봐 두려워 태리의 사랑을 멸시한다. 


주인공 '나'가 도윤도와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이어가는 공간으로 싸이월드가 나온다. 윤도와 함께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그곳에서는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윤도가 붙여준 별명인 해리인 '나'는 학급반장을 하며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교우관계도 원만한 편이지만, 윤도는 점점 포악해져가고 일진 아이들과 어울리며 공부에는 무관심한 학생이 되어간다. 같은 반이지만 윤도를 마주할 수 없는 해리에게 윤도네 엄마가 운영하는 막창가게 컨테이너는 그들만의 아지트가 된다. 윤도의 외면과 해리의 끊임없는 구애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특별한 자격을 갖춘 이들만 가능한 것처럼 서서히 그들의 내면을 부서트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도, 메타버스의 시대라는 말도 뭔가 우리에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급변하는 세태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차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채찍질을 당하는 느낌이다. 자꾸만 새롭고 더 좋은 것을 내놓으라고 종용받는 느낌이다. 그렇게 고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사실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때때로 찾아드는 우울감을 처치할 수 없어 술을 마시고 TV를 보고 쇼핑을 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쉴세없이 몰아치는 일상의 반복됨에 내 안에 침잠된 우울함을 살펴볼 틈이 없어진다. '1차원이 되고 싶어'라는 제목은 점 하나와 다른 점 하나가 연결되는 단순한 도식처럼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온전히 내 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이 담긴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전력으로 달려들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 삶은 충분한 게 아닐까.


"너는 살면서 제일 두려운 게 뭐야?

나는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마다 천장의 네 귀퉁이에 서린 그림자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고통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얼마나 많은 밤동안 이 천장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막막해진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

네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지금도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너를 생각해. 숨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너의 질량과 그 무게가 주던 위안을 기억해.(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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