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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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을 읽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존에 없던 것이기에 신비롭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무엇인가에 독창적인 힘을 불어넣는 것이기도 하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그의 소설에 붙은 제목이 주는 힘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너무 한낮의 연애]도 그렇고 이 소설집의 제목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은 한 번 듣고 나면 좀처럼 잊히지 힘든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매력적인 제목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첫 번째 소설집에는 '아이들', '너의 도큐먼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집으로 돌아오는 밤', '당신의 나라에서', '차이니스 위스퍼', '우리 집에 왜 왔니', '장글숲을 헤쳐서 가면', '릴리', '사북(舍北)' 이렇게 10편이 실려 있다. [경애의 마음]을 읽고 저자가 인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첫 번째 소설집에 담긴 단편에도 인천을 배경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경애의 마음]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몰래 다니던 2층 호프집에서 불이나 많은 학생들이 죽은 사건이 나온다. 실제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호프집 주인이 불이나 학생들이 술값을 내지 않고 도망갈까봐 문을 걸어 잠궜다는 말에 광분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글숲을 헤쳐서 가면'에는 역시나 인천에서 유명한 사학재단 비리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금은 거주자 수가 많이 줄었고 다른 지역이 개발되면서 예전과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없지만 소설에 나온 표현대로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열개의 학교가 몰려 있고 도시 학생 중 절반은 거쳐가던 거대한 왕국이었다.(219)"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한 곳에 많은 학교를 모아놓을 수 있었는지 설립초기의 배경부터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배경이나 소재에 실제로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이 나오면 잊고 지냈던 분노와 정의와 같은 낱말들이 떠오른다. 어째서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그러한 사건들을 다시 접하면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시대를 관통하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합당한 벌이 내려지지 않기 때문에 생겨가는 형이상학적 체증 때문일 것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이 되다보니 선과 악에 대한 구별이 모호해지고 언제든 나 또한 그런 피해자가 될지 모르다는 두려움은 일상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혈연, 지연, 학연의 고리가 철퇴를 맞아도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러한 강력한 고리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구차한 일이 되고 주류를 이루는 계급에 편승되지 못하면 낙오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면에서 저자의 소설에 등장한 인생의 나락을 발 밑에 둔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소소히 견디며 구석진 곳에서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맙게 느껴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완전히 폭망하지도 그렇다고 재기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보이는 그런대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공하고 주류를 이루는 이들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사는 삶이 비루해 보일지 몰라도 곳곳에 떨어진 작은 폭탄 파편 같은 위협들이 산재해도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내기에 우리는 공존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 나이 때마다 할 일이 있는데 감상적으로 굴지 마라.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지." 김의 말은 내 뺨을 한대 올려붙이듯 지나갔다. 말투는 따뜻한 것도 차가울 것도 없었지만 센티멘털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무심하게 붙은 듯한 '하루' 이틀'에도 가시 같은 것이 있었다. 그간의 날들과 결별은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해도 크게 좋아질 건 없을 거라는 닳고 닳은 냉소였다. 나는 연민에서 센티멘털까지 말의 온도 차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86)"


""만화가들한테 사람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근육이란 주름이에요. 그게 표정을 만들거든요. 얼굴에는 슬픔의 근육이랑 기쁨의 근육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코의 옆부분에서 입의 가장자리를 지나 턱까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슬픔을 나타내는 근육이에요. 양치할 때 입을 벌리게 하는 근육이기도 하고요. 기쁨의 근육은 광대뼈 밑에 있는데 옆이 아니라 위로 움직여요. 이렇게 위로, 위로." M이 스케치와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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