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 위스키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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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을 읽었다. 벌써 출판된지 20년이 되었지만 오히려 하루키의 젊고 왕성한 필력을 느낄 수 있어서 최근 출판된 소설과는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그의 음악과 여행과 술에 대한 사랑은 그의 작품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그가 그렇게 전세계를 여행하는 방랑가의 삶을 살면서도 규칙적인 습관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 인간을 더욱 잘 이해하려는 그만의 노력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행이 불가능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위스키 탐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작품을 읽으며 수년 전 방문했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가 눈앞에 선연히 펼쳐지는 듯 하다. 에딘버러의 어느 펍에서 먹었던 너무나 신선했던 피쉬앤칩스와 호가든 생맥주가, 코크의 어느 음식점에서 먹었던 램쉥크가, 더블린의 기네스 팩토리를 견학하고 마셨던 기네스가 오래전 기억임에도 마치 그날을 떠올리기 위해 하루키가 전해준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진다. 하루키처럼 술을 즐기지 못하지만 그가 전해준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의 알싸함과 감칠맛이 느껴지는 고유한 향을 언젠가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하루키가 책의 제목을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이라고 정한 이유는, 우리가 언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어떤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언어는 우리 삶을 매도하고 곤두박칠 치도록 내버려두어 혹독한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하루키가 아일랜드의 어느 펍에서 만난 노신사처럼 낡고 오래된 양복을 차려입고 마치 출근하듯이 펍에 들러 바텐더에게 아무 말 없이 동전을 건네며 받은 위스키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것처럼, 그저 위스키 한 잔을 건네고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마시며 위스키에 담긴 진심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거짓과 위선이 자리할 공간은 전혀 없을테니 말이다. 


“레시피란 요컨대 삶의 방식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과도 같은 것이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44)” 


“모두들 아일레이 위스키의 특별한 맛에 관해 이런저런 자잘한 분석을 하지. 보리의 품질이 어떻다느니, 물맛이 어떻다느니, 이탄의 냄새가 어떻다느니 하고 분명 이 섬에서는 질 좋은 보리가 나지. 물맛도 훌륭해. 이탄도 풍부하고 향이 좋아.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설명할 수 없어. 그 매력을 해명할 수가 없는 거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지, 무라카미 씨, 가장 나중에 오는 건 사람이야.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만드는 거야. 섬사람들의 퍼스낼리티와 생활양식이 이 맛을 만들어내는 거지. 그게 가장 중요해.(72)”


“아일랜드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내미는 것은 감동이나 경탄보다는 오히려 위안과 진정에 가까운 것이다. 세상에는 입을 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말문이 트이면 온화한 어조로 몹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는데(그리 많지는 않지만), 아일랜드는 그런 느낌이 드는 나라다.(78)”


“그럴 때면, 여행이란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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