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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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초급 한국어]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0번째 작품이다. BTS를 비롯한 다른 연예인들의 영향으로 한류의 인기가 어마어마해진 나머지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이 늘어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베트남을 여행갔을 때 현지 가이드로 함께 한 앳띤 여학생이 베트남에서 한국어학과를 나와서 삼성에 취직하는 것이 하나의 드림 중의 하나라는 말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전해주었다. 남한과 북한 국민 통들어 7천만 정도만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어를 다른 사람들이 배우려 한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지만 그만큼 경제력이 올라갔기에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사람치고, 그러니까 거의 전국민이 외국어에 대한 각자 나름대로의 소심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스마트 기기로 간단한 통시통역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아직도 어학원이나 어학기기와 어학교재에 대한 광고는 끊임없이 나온다. 외국어 하나 정도 유창하게 하는 것은 큰 자부심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이고, 국민 전체가 사대주의에 전염된 것처럼 영어를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음메 기죽어 버린다.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그곳에서 자라난 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 모국어를 말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모국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도 매번 철자법이 이게 맞는건지, 띄어쓰기는 맞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철자법과 띄어쓰기가 어느 정도 맞았다고 해도 문맥상 자연스러운지 살펴봐야 한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의 순서를 꼭 맞출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말이 되도록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글쓰기는 그래도 수정이 가능하지만 말하기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없다. 그래서 말이 많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쉽다. 과묵한 관계를 유지하다보면 상대방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하고 싶은 말을 여러번 곱씹다 보면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다. 


언어란 단순히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기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시간 촘촘히 쌓여온 문화의 산물이기에 서로가 나누는 말과 글 속에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들이 배어 있다. 그래서 타국의 언어를 배우다 보면 그 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알게 되고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문지혁’이 이민 작가가 되기 위해 초급 한국어의 강사로 살아가며 겪게 되는 과정들은 결국 철자법과 문법이 엉망이더라도 ‘문지혁’이라는 주인공을 탄생시킨 초급 단어 ‘엄마’로 귀결되었다. 옹알이를 하며 가장 먼저 내뱉은 ‘엄마’라는 말이 이제는 그의 삶에서 영원히 퇴출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초급 한국어의 강사가 아닌 모국어의 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거기는 낮이겠네. 여긴 밤이고, 니가 볼 땐 어제야. 있잖아, 니가 미국에 간 뒤로는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겠어. 내가 늘 과거에 남겨지는 느낌이라서 그랬나 봐. 넌 어느새 저만큼, 미래에 가 있는데. 인생에도 시차라는 게 있을 거고, 오늘 니가 말한 건 우리 사이에 그만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과거의 목소리는 여기까지만 듣는 걸로 해. 어머니한테 잘하고. 안녕.(69)”


“한국에서는 시간은 ‘시간’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세 가지 단어로 구분했다. 아이온(aion), 크로노스(chronos), 그리고 카이로스(kairos). 아이온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무한하고 신성하고 영원한 시간, 그러므로 신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양적이고 균질한 시간, 수동적이고 무관심하며 무의미한 시간, 그러므로 인간의 시간이다. 마지막 카이로스는 질적이고 특별한 시간, 구별되고 이질적이며 의미를 지닌 시간, 말하지만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아이온에 둘러싸인 채 크로노스 속을 살아가는 존재다. 무심하지만 규칙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시간 감옥의 죄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에는 가끔씩 크로노스가 찾아오는데, 이를테면 화살이 날아가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전과 이후가 갈라지고, 한번 일어나면 결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따라서 시간을 묻는 방법을 두 가지여야만 한다. 

1. 크로노스를 물을 때: 지금 몇 시에요?

2. 카이로스를 물을 때: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요? (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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