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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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를 읽었다. 1년에 한 편씩 신작을 발표하는 기욤 뮈소의 놀라운 필력과 성실함에 다시 한 번 탄복하게 된다. 물론 가독성이 높은 만큼 금방 잊히는 아쉬움이 남지만 해마다 신작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기욤 뮈소의 매력인듯 하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년 작품인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에서도 작가들이 등장하는 소재였는데, 올해도 소설 작가가 주인공인 마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삽입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내용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액자 구성 혹은 격자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플로라 콘웨이라는 이름의 신비주의 컨셉을 가진 작가와 그녀의 딸 캐리의 숨바꼭질로 시작된다. 플로라 콘웨이는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세 작품을 출판하고 프란츠 카프카 상을 받은 유명 작가가 된다. 그녀의 출판과 관련된 일은 모두 편집자인 팡틴이 맡아서 하기에 플로라 콘웨이는 비밀스럽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딸과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중 캐리는 갑자기 사라지게 되고 플로라 콘웨이는 패닉에 빠져 결국은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서는 스릴러와 추리가 예상되었다. 

캐리의 행방을 찾을 실마리 조차 얻지 못한 플로라 콘웨이는 절망스러워하며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망가뜨린 현실을 저주하며 머리에 총구를 들이댄다. 그리고 장면은 갑작스럽게 로맹 오조르스키라는 또 다른 작가가 화자로 등장한다. 로맹은 19개의 베스트셀러는 쓴 유명 작가이지만 현실은 아내 알민이 철투철미하게 준비한 시나리오에 배신 당해 폭언과 정신 이상자로 낙인 찍혀 아들 테오에 대한 양육권도 빼앗긴 비참한 상태이다. 로맹은 어떻게 하면 지금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 테오와의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던 차에 플로라가 총구를 머리에 겨둔 장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로맹. 기욤 뮈소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판타지 요소가 삽입되어 있다. 물리적인 이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로맹이라는 소설가가 플로라가 등장하는 소설을 구상하던 도중 스토리에 깊이 몰입하여 생겨난 환각과도 같은 상상의 모습일 수도 있다. 플로라는 로맹에게 딸 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종용하지만 로맹은 작가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끝내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며 플로라의 청을 거절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로맹은 알민이 테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려고 하자 테오를 볼 수 있게 해다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알민은 로맹의 부탁을 거절하고 기차 파업으로 일정이 엉망이 되자 보드카에 약물을 과다 복용하여 쇼크를 일으키게 된다. 쓰러져 있는 알민을 발견한 로맹은 자신을 쓰레기로 만든 알민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된다면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수 있고 아들 테오의 양육원을 되찾을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다.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가려는 로맹에게 플로라가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알민을 구할 것을 요구한다. 로맹은 알민을 구하기를 거부하지만 플로라의 집요한 요구에 만일 알민을 구하게 된다면 캐리를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플로라의 픽션 세계에서로 돌아가 플로라는 팡틴이 고통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로 자신의 딸을 납치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팡틴을 고문하며 어서 캐리를 숨겨둔 곳을 밝히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팡틴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이미 6개월 전에 캐리가 7층 아파트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낙상하여 죽었음을 알린다.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던 플로라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캐리가 어딘가에 납치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로맹이 자신의 상황을 적용한 플로라가 나오는 소설을 구상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반전이 펼쳐진다. 11년 후의 시간이 흘러 로맹의 아들 테오는 청년으로 성장했고 로맹은 갑작스럽게 심장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로맹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난다. 과연 로맹과 팡틴의 비밀은 무엇일까?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길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는 한술 더 떠 ‘소설은 쾌감을 맛보기 위해 시작해 자신의 악습을 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98)”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한층 더 열정적으로 삶을 받아들이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책들은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헨리 밀러(294)”

“머릿속에서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떠올랐다.
‘동굴에 오래도록 갇혀 있어 왜곡된 관념의 포로가 된 인간은 촛불을 켰을 때 동굴 벽에 그려지는 그림자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플라톤이 묘사한 인간들, 즉 어두운 동굴 깊숙한 곳에 갇혀 사는 포로들처럼 나 역시 내 아파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기만적인 햇빛이 집 안 곳곳에 그려놓은 그림자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 편린, 메아리. 
그래, 그거야. 나는 눈 뜬 장님이었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집 안에 가두고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통제하고 있는 거야. 현실은 내가 늘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와는 분명 다른데, 나는 지금껏 허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야. 이제부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허상의 베일을 벗기고 진실을 바라보아야만 해.(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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