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이야기
김솔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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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 작가의 [부다페스트 이야기]를 읽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가면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국회의사당과 어부의 요새가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특히나 해가 지고 난 다음의 야경은 어쩌면 유럽 최고라고 할만큼 사진을 찍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 소설은 어부의 요새 부근에 위치한 세인트버나드 국제 학교에서 매년 9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가 열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이 부다페스트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른 도시의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치부를 어떻게 과장하는지, 과연 인간은 각자가 선택한 직업을 통해서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물음을 던진다.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는 다양한 직업군의 일일 교사를 선정하여 자신들의 직업 체험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일일 교사로 선정된 이들은 행사 이후에 많은 면에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에 너도 나도 일일 교사가 되고자 시도를 했다. 

일일 교사로 선정된 이들의 직업은 군인, 요리사, 의사, 엔지니어, 여행가, 패션 디자이너, 공무원, 건축가, 영화배우, 첼리스트, 종군기자, 축구 감독, 보험 판매원, 변호사, 부자 등이다. 이들은 일일 교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선정되는 과정 속에서 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정황이 묘사되고 이어서 일일 교사들의 강의가 펼쳐진다. 이야기의 구성은 원래 학교에서 그럴듯한 내용만 편집된 일일 교사들의 체험담 책이 출판되는데, 이 책의 화자는 편집된 체험담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와 숨겨진 내용들도 낱낱이 밝히는 르포와 같이 익명의 이름으로 출판된다. 일일 교사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경험한 놀랍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학생들에게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전한다. 하지만 익명의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들이 어떤 추악한 과거를 숨기고 있는지,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에 일일 교사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단지 지루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일 교사들의 이야기 말미에 로마니와 관련된 사실들을 적시한다. 로마니는 부다페스트 외곽에서 거주하던 집시들을 말한다. 유럽 어느 나라에 가던지 집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집시들은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직업을 구하지 않고 구걸로 삶을 연명해간다. 집시들의 역사적 배경은 따로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근래에 표면상으로 드러난 집시들은 그저 관광객들의 푼돈을 구걸하거나 지갑을 노리는 도둑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던 로마니들을 부다페스트 외곽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다른 곳으로 추방하게 되는 사건을 등장시킨다. 매 챕터마다 등장하는 로마니와 일일 교사들의 관계는 결국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소외된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 왔는지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단지 부다페스트라는 한정된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전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의 이기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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