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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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었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 바라보다’라는 뜻이 담긴 시선을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은 ‘심시선’이라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이었다. 워낙에 등장인물들이 여러 명 나오다보니 친절하게 맨 앞에 심시선 가계도도 나와 있어 이름이 헷갈리면 맨 앞 장을 열어 다시 확인하며 읽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나라 이름이다보니 금방 적응이 되지만, 외국 이름이 이렇게 여러명 나오면 정말 지친다 지쳐~ 도스토에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조금만 쉬웠더라면, 그리고 친절히 가계도를 그려주었더라면 아마 눈꼽만큼은 읽기가 용이해지지 않았을까나. 아무튼 심시선은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다. 매 챕터의 시작마다 가공의 인물 심시선이 살아생전에 발표한 책과 인터뷰 등을 인용하며 실존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심시선의 유언을 잘 받아들이던 자녀들이 십년 만에 첫 제사를 드리러 하와이에 가게 된다. 

명혜, 명은, 명준, 경아 이렇게 네 명은 심시선의 아들, 딸이다. 이 중 경아는 시선의 재혼으로 만나게 된 딸인데, 흔히 새엄마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딸의 심술이나 계모의 악랄함이 드러나는 전형적인 시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듯이 경아는 새엄마 시선을 진짜 엄마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명혜와 명은 또한 경아를 친동생처럼 아껴준다. 결말에 명혜의 남편 태호가 제사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가장 큰 어른으로서 본 때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명혜가 자신이 가장 큰 어른이라고 말하자, 태호는 내가 세 살 더 많은데 라고 답하고, 명혜는 우리집은 모계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답하자, 태호는 바로 수긍해버리는 참으로 현실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성정을 가진 이들의 모습이다.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가진 가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내 염산 테러 이후 사람이 사람에게 염산을 던지는 세상에 아이를 데려올 수 없다는 화수의 마음과, 하와이에서 만난 체이스가 칠레 해안가의 기름 유출로 새와 펭귄이 기름을 뒤짚어 써서 닦으로 가지 않겠냐는 제안에 집으로 가는 비행을 변경한 지수의 따뜻함과, 새를 사랑하는 마음에 무채색의 옷만 입고 다니며 칠레에 함께 가지 못하자 울어버리는 해림의 고결함이 아마도 시선으로부터 이어진 놀라운 전승이리라.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2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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