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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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작가의 [당신의 4분 33초]를 읽었다. 제목에 왜 ‘4분 33초’가 붙었을까 궁금했다. 어떤 노래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무엇을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일까? 아니면 인간의 신체기관 중 작동하는 중요한 시간을 나타내는 것일까? 이야기의 서두에 ‘존 케이지’라는 실존 인물의 짤막한 묘사가 나온다. 쇤베르크의 제자로 20세기 전위예술 분야의 뛰어난 인물로 우리나라의 유명한 전위예술가 백남준 님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에 ‘4분 33초’라는 곡이 있는데, 실제로 무대에서 피아니스트는 악보가 있음에도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연주를 시작하지 않느냐고, 이게 무슨 공연이냐고 따졌지만 존 케이지는 피아노 치지만 않았을 뿐 이미 다른 소리들이 다 연주되고 있었다고 말한다. 연주자가 팔을 걷어붙이며 악보를 넘기는 소리, 청중들이 궁금해하며 한 숨을 내쉬는 소리, 누군가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말하는 소리 등 우리의 일상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들이 음악이며 연주라고 존 케이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튼 저자는 존 케이지에 빗대어 이기동이라는 주인공을 만들어 낸다. 이기동은 아주 평범한 학생이다. 아버지는 오래전 집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다시 집을 나간다. 어머니는 아들 이기동이 나중에 의사가 될 것이라 믿고 뒷바라지를 해 준다. 하지만 이기동은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 김밥을 마는 엄마의 도움으로 이기동은 반 일등과 짝이 되고 친구가 된다. 둘은 나란히 재수 학원에 등록하고 그 곳에서 최장기수 5수생 김수미를 만난다. 시간이 흘러 일등과 이기동은 대학에 붙지만 김수미는 여전히 노량진 재수학원에 남는다. 일등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계속 낙방하게 되고 군대에 다녀온 이기동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김수미를 다시 만나게 된다. 수미와 결혼하게 된 이기동은 아버지가 남긴 습작 소설을 바탕으로 단편 소설을 써 등단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 원고 청탁도 들어오지 않고 제대로 된 소설도 쓰지 못한다. 이렇게 무능력한 남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이기동은 엄마의 김밥집 주방에서 일하며 나름의 노력을 해 보지만 소설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다. 누군가 내놓은 지하 독립서점을 인수한 이기동은 자신의 책도 팔리지 않고 손님도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일동의 조언으로 등단하지 못한 이들의 작품을 수소문하여 진열하기 시작한다. 작가로서 주목받지 못한 이들은 하나둘씩 모여들고 서로의 작품을 읽고 나서 조심스럽게 코멘트를 달아준다. 수미는 이기동의 허황된 모습에 실망하여 이혼하게 되지만, 이기동은 낙선자들의 서점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기동과 존 케이지는 어떤 면에서 많이 닮았다. 남들이 인정하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예술과 문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손님이 없는 낙선자들의 서점을 지키는 것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회적 성공과 부와 명성을 얻는 길만이 최고로 여겨지는 배금주의 사상에 물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4분 33초’가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시간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이기동과 존 케이지는 무용한 것들에 더욱 몰입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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