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신으로 머리칼이 잘린 채 발견되는
스물 다섯 명의 어린 소녀들과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려는
한 악마적 천재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이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시대에는
우리 현대인들로서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길에서는 똥 냄새가, 뒷마당에서는 지린내가, 계단에서는
나무 썩는 냄새와 쥐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엌에서는 상한 양배추와 양고기 냄새가 퍼져 나왔고,
환기가 안 된 거실에서는 곰팡내가 났다.
침실에는 땀에 절은 시트와 눅눅해진 이불 냄새와 함께
요강에서 나는 코를 얼얼하게 할 정도의 오줌 냄새가 배어
있었다. 거리에는 굴뚝에서 퍼져 나온 유황 냄새와 무두질
작업장의 부식용 양잿물 냄새, 그리고 도살장에서 흘러 나온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사람들한테서는 땀 냄새와 함께
빨지 않은 옷에서 악취가 풍겨왔다.
게다가 충치로 인해 구취가 심했고 트림을 할 때는 위에서
썩은 양파즙 냄새가 올라왔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한테서는 오래된 치즈와 상항 우유
그리고 상처 곪은 냄새가 났다.
- 향수<어느 살인마의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 06. 08. 13. SUN. PM 12:06
이렇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나를 한시도 놓아주지 않았다.
이건 정말이다.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니깐!!!
다른 읽고 있는 책이 있어서 그냥 배송왔길래 몇 장 들춰
본 것 뿐이었는데 읽고 있던 책은 어디에다 내팽겨치고
이 책을 우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여기에 등장하는 향수만큼이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읽고 있는 내내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에
흠뻑 젖어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아가면서.
이 양장본 책에 아주 조그만한 미니북이 딸려 왔길래 지하철에
서 지루해하는 동생에게 이거 딱 1장만 읽어보라고
(난 휴가나온 동생도 내팽겨치고 향수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권했더니 투덜투덜하며 받아쥐던 동생도
한장을 읽고나니 조용.............해 졌다.ㅡㅡ;;;
동생까지 그런 증상(?) 보이니까 약간 불안해지기도 하고.-,.-
더러운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생선 자판대에서 태어나
그럼에도 자기 자신은 정작 냄새를 갖지 않고 태어난 그는
모든 세상을 냄새로 탐지하며 익혀나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역을 향기로 점차 넓혀 나간다.
우리 대부분은 거의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후각.
벙어리보다 장님보다 귀먹어리보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
에게는 그다지. 아니 결코!! 동정을 보내지 않으리라.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냄새가 자신의 형제와 함께 그들 사이에 나타날 때
그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법이다.
최상의 향기를 찾는 그르누이. 그 향을 얻기 위해 막 피어오
르는 소녀들을 살인까지 마다않는 그르누이.
그러나... 그 어떤 향기롭고 남을 유혹시키는 향수를 갖었어도
정작 자신의 향기가 없는 그는 불행했다.
향수로 전 세계를 사로잡는 힘이 그에게 있었지만
그는 거지와 창녀와 탈영병과 노숙자들이 모인 소굴에서
살해되어 먹히는 쪽을 택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기존의 인간냄새를 제외하고도 사람마
다 그 사람의 독특한 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상대방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독특한 향을 파악하는 거라고
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인공적인 향으로 무장해버리면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냄새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단순화시키면 그 냄새는 대체로 땀과 기름, 그리고 시큼한
치즈가 섞인 것 같은 냄새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그 냄새를 지니고 있었고,
사람마다 기본적인 그 냄새에다 보다 세밀한 어떤 냄새를
추가로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개인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체취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개인적 분위기, 한사람 한사람을
구분해 주는, 바꿀 수 없는 암호인 이 체취를 냄새 맡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독특한 냄새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물론,
유행하는 인공적인 냄새로
자신만의 고유한 냄새를 감추기에 급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