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사랑 해야 한다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生 - 에밀 아자르
-2006. 03. 11. SAT. PM 7:54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모모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모모는 문득 하밀 할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는 그 말을.
그리고 모모는 깨닫는다.
손에 쥔 달걀 하나,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로자 아주머니를 죽인 것은
생이지만 그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도 바로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生이라는 사실 또한. - 조경란(소설가)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모모는 엉덩이로 벌어먹는 여자의 아들이다.
모모의 아버지가 모모의 엄마를 죽인 덕에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는 일을 하는 로자 아주머니에게
맡겨지게 된다.
실수로 낳은 버려진 아이들.
로자 아줌마는 그 모든 아이들의 엄마였다.
게다가 로자 아주머니는 젊은 시절 역시 엉덩이로 벌어먹었던 여자로
지금은 자기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계단을 오를 때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늙은 유태인 여자에 불과했다.
나이가 더 들자 결국은 몹쓸 병에 걸려 때때로 정신이 나가기도 하는 불쌍한 여자.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모모는 누구보다 로자 아주머니를 사랑한다.
'생'은 매몰차게 모모를 내리치지만
모모는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생'을 끌어안으려 했다.
죽어서 썪어가는 로자 아주머니 곁에서
아줌마가 좋아하는 향수를 병째 부어주고 푸르스름하게 변해가는
그녀의 얼굴에 화장을 덧칠해 주며
모모는 나름대로 '인생'이라는 것을 안아보려 했다.
누구나 '자기 앞의 생'을 거역할 수 없는 거니까.
나를 쓰러뜨리는 것도 '생'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엄마 아빠의 웃음과 거울 속의 웃는 내 눈 역시
'생'이 선사하는 따뜻한 선물이므로.
로자 아줌마는 사람은 꿈을 많이 꿔야 빨리 자란다고 했는데,
보로라는 사람의 주먹이 그렇게 큰 걸 보면,
그의 주먹은 쉴새없이 꿈을 꾸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