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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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철의 곰만큼."

       "봄철의 곰?" 하고 미도리가 또 얼굴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봄철의 곰이라니?"

 

       "봄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네가 좋아."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2006. 02. 02. THU. PM 10:59

 

        리뷰해서 다시 읽은 책에서 새로운 맛이 나더라.

        그래서 이번엔 고딩땐가? 하여간 오래전에 읽은

       '상실의 시대'를 다시 들었다.

        이건 새로운 맛이 아니라 처음 읽은 느낌이다.ㅡㅡ.

        세상에. 이렇게 완벽하게 머릿속이 깨끗할 수 있는거야?

        이렇게 좋은 구절들이 많은데, 이런 구절이라면 머릿속에

        영원히 남을 법도 한데 처음 읽은 느낌이라니.....;;;

        사실 어렸을 때 읽기에는 약간 이해가 안가는 내용이 더러,

        아니 조금 많이 쓰여 있긴 하다.

        옛날같으면 19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금서가 될법한 내용도

        더러........아니 조금 많이......^^;;

        읽으면서도 내내 '그때는 이게 뭔지 알고 읽었었지??'하고

        의문을 품으며 킥킥 웃었을 정도? 쿡....

 

        여기에서 와나타베는 나에게 홀든콜필드같은 존재였다.

        그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고 레이코에게 홀든콜필드를

        흉내내는 건 아니냐는 대목에서 정말 쓰러질듯이 좋아졌다.

        비록 가장 좋아하는 책이 '위대한 개츠비'이긴 하지만.

        (기대에 부풀어 읽었던 나는 그 책에 대략 실망했었다.)

        또한 와타나베는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농담따윈 하지 않

        는다는 얼굴로 농담을 곧 잘 한다'

        나를 정말 쓰러지게 킬킬대게 한다니까!!!!!!!!!

        

        제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연애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는

        나의 느낌은 삶의 지침서를 읽은 느낌이었다.

        일생을 살아가며, 그것도 감정이 가장 가늘어질데로

        가늘어진 사춘기 시절에 누군가를 잃고 또 잃어가는

        상실의 시대속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지침서.

        이 소설이 12년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놓일 수 있게 된

        이유도 어느 시대든 또 어느 나라에서든 누구나 다 상실의

        아픔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내 안에서 그녀에 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나를 향해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때 내 머리속을 가득 채웠던

        사람이 있을테고 그랬던 그 사람이 지금은 얼굴조차 잘 기

        억나지 않음에 안타까워 하지 않은가?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하루키는 잘 쓰다듬어 주고

        우리는 그에게서 위안과 용기를 동시에 얻는다.

        누군가를 잃어가는 상실의 아픔에서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음을.

 

        인생은 비스킷통 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비스킷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통이다라고. 

 

        이 소설에서는 와타나베는 물론이고 미도리, 나오코에게도

        죽음의 끈과 끈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세상에 남은자들에게

        아픔을 준다.

        마지막에 가서는 나오코 역시 나무에 목을 맴으로써

        와타나베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인상을 풍기지만

        하루키의 메세지는 더욱 단단했다.

       

        나처럼 무력하고 불완전한 여자도 때로는 산다는 게 근사하

        다고 생각하며 산다구.

        정말이야, 그건!

        그러니 와타나베도 더욱 더 행복해져야 해.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해봐.

 

        우리는 살아 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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