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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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외모, 실력, 평판, 그런 그녀와 어울리는 완벽한 남편과의 결혼생활.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점이 없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아나운서, 최선우.

 교외 외딴 집에서 나체에 목이 꺾인 채 발견된 그녀의 기괴한 죽음은, 그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녀의 본질 혹은 그녀에게서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강간-살해를 연상시키는 나체의 시신에서 발견된 정액, 최선우가 마조히스트였다는, 그래서 자신과 거친 카섹*와 SM 플레이를 즐겼다는 용의자 서인하의 주장, 남편과 따로 떨어져 지내며 사건의 담당 검사인 강주희가 남편과 전화로 농담처럼 언급하는 폰*스.

 이 소설에서 ‘섹*’는 어떤 의미일까? 본인의 침대에서까지 품위를 버리지 못하는, 단정하고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아나운서 최선우가 외간남자와 변태적 성향의 섹*를 즐기는 것과 외국에 있는 남편과 두 딸의 아내이자 엄마인 동시에 강력부 여성 검사인 강주희가 남편과 종종 폰*스를 언급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섹*’라는 둘만의 은밀한 행위는 우리의 또 다른 면모를 끄집어내어,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에 충분한 행위이자, 이성의 목소리를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어쩌면 진짜 자신의 모습과 맞닥뜨릴 수 있는 행위이다. 하나의 인격을 그 무엇보다 선명한 대비로 비추기에 이보다 더 좋은 거울은 없을 것이다.

 또한 보여지는 모습과 감추고 싶은, 감추어진 모습의 분리는 사회 속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간극이다. 사회가 규정한,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규정한 모습으로 살아온 최선우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 서인하와 그에 대해 끝까지 부정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그 앞에서 만큼은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야기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검사와 살인자의 치열한 심리전, 해리성 장애를 의심케 하는 서인하의 여러 모습, 최선우의 남편 박무현이 보여주는 그녀의 흔적, 또 다른 연쇄 방화 살인사건과의 연관성 등, 이 모든 주장이 결국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자,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진실을 말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치밀하다.

 중학교 미술 교사인 서인하의 직업, 그의 작품―‘여자’시리즈―과 소설의 제목―소실점―의 의미는 결국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최선우에 대한 서인하의 증언은 그녀의 본질을 묘사하듯 집요하고, 잿빛의 여성 위에 입술, 심장, 음부만을 붉은색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극단적 대비와 최선우와 서인하만이 알아볼 수 있는 비밀로 가득하다.

 또한 모든 그림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빛과 빛이 떨어지는 위치에 의해 생겨나는 그림자―어둠―에 대한 부분은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발견된 사건의 중요한 증거는 최선우와 서인하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동시에 서인하의 의도를 비춘다. 마찬가지로 대학생 시절, 최선우 앞에 선 서인하의 모습을 단 하나의 빛을 향해 서 있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비추어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기도 하며, 여름의 강렬했던 그들의 첫 섹* 역시 어둠과 잠깐의 빛, 그리고 다시 어둠속에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밖에서 들어온 빛은 죽은 최선우의 육체를 비추고, 서인하는 완벽한 소실점을 찾게 된다.

 소설의 제목인 ‘소실점’은 그만이 바라볼 수 있었던 그녀, 그녀를 똑바로 보기 위한 그의 진정한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 찍은 소실점에 그대로 머물며 최선우를 바라보기에 결코 보지 못한 모습을 서인하는 매 순간 새로운 소실점을 찍어 바라보았기에 그녀가 자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새로 찍은 소실점으로 그는 자신의 사랑을 완성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고, 단지 고맙다는 말은 몇 번, 마지막 순간에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그녀에 대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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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말해 스토리콜렉터 52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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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두 소녀, 두 명의 피해자를 낸 살인사건. 왜곡된 진실과 잔학한 살인, 수많은 용의자 속에서 범인을 추적해가는 형사들과 조 올로콜린. 

 마이클 로보텀이 그리는 비극은―이번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비뚤어진 욕망과 각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 죄와 벌, 피해자와 가해자로 가득하다.


 파이퍼 해들리와 나타샤 맥베인, 축제가 끝난 후 실종된 두 소녀는 3년이 지나도록 끝내 찾지 못한다. 하지만 농가에서 벌어진 또 다른 살인 사건은 그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호수에서 발견된 얼어붙은 시체는 나타샤 맥베인임이 확인된다. 

 자식이 사라진 시점에 머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실종된 가족의 삶은 그들의 희망은 언제나 절망으로 바뀌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공포와 의문의 방에 갇힌 채 살아간다. 동시에 조 올로콜린과 빅토리아 나파르스텍 박사와의 미묘한 관계, 별거중인 아내와의 통화 등 일상적 삶을 사는 그와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대비시켜 범인의 행동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든다.

 ―부모와의 갈등, 우정, 위험을 모르는 욕망의 표출,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피어나는 질투와 이기심 등―탁월한 10대 소녀들의 심리묘사와―도발적인 나타샤 맥베인의 행동, 그녀의 남자관계 등―그들을 둘러싼 사건들은 용의자로 지목된 모두가 두 소녀를 납치, 감금하기에 충분한 동기를 품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10대 소녀들의 가출, 유력한 용의자인 조현병 환자, 나타샤 맥베인에 대한 욕망으로 한 명은 불구―칼럼 로치―가, 다른 한 명은 수감자―에이든 포스터―가 된 사건, 멍청하고 위험한 10대 남자들, 그녀와 삼촌과의 관계, 학교에서의 장난과 퇴학,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다분한 남성 등 얽히고설킨 관계의 수많은 상황을 창조한 로보텀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범인으로 설정하면서 엄청난 반전을 선보인다. 또한 용의자로 지목된 그들 모두가 얼마나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는지, 범인이 되기에 충분한 동기가 있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반전은 더욱 충격으로 다가온다.

 또한 사건을 추적해나가며 과거, 기드온 타일러가 자신의 딸 찰리를 납치했을 때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는 조 올로콜린, 파이퍼 해들리를 구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비극을 만들 수밖에 없는 조 올로콜린의 선택은 대단히 인간적이고 연약한 존재인 동시에 그 누구보다 노련하고 강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파이퍼 해들리와 나타샤 맥베인의 납치와 감금, 폭행의 나날들. 그리고 그들을 추적하는 희망과 좌절의 과정 속에서 비극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는지, 사소한 행동과 작은 욕망이 비뚤어졌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조 올로콜린을 응원하는 자신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은 파이퍼 해들리다. 그리고 나는 3년 전 여름방학의 마지막 토요일에 행방불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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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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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이 있을까? 

 치매 노인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외치고 싶은 말,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바로 이 문장일 것이다. 치매에 걸린 사람을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는 제도, 시설, 세태에 대한 분노, 단순히 ‘치매’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정든 집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을 시모무라 에미코, 무라세 다카오 등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들은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만듦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난처한 상황에 놓인 노인 한 명,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치매 걸린 노인 오바 노부요를 만나 시작된 ‘요리아이’ 노인요양시설의 건립. 그들의 무모한 계획은 오직 ‘치매에 걸려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설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된다.


 기상부터 취침까지, 누군가 정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관리를 받는 생활은 누구라도 싫어할 것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생활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노인, 그리고 노인에게 필요한 제도를 위한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후원자들의 따뜻한 마음은 무모한 계획과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기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를 시종일관 밝고 유쾌함으로 바꾸어 놓는다. 돈도, 정치력도 없는 그들은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낙천적인 노래를 흥얼거리며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잼을 만들어 팔며, 카페를 운영하고, 바자회를 여는 등 일상을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보낸다.


 폭소에 이는 폭소. 장내를 뒤흔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특별 노인요양시설은 일상에서부터 떨어진 공간이 아닌, 숲 같은 장소에 지어지고 관리와 감독에서는 자유롭고 지배나 속박과는 거리가 먼 시설이다.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세계와 특별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뒤섞일 수 있는 환경, 이것이 ‘요리아이’의 철학이자 우리가 꿈꾸는 요양시설의 모습이다. 차가운 리놀륨 바닥에 하얀 실내화를 신고 걸어 다니는,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 같은 분위기가 아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전망 좋은 창문과 나무 냄새가 나는 자연의 분위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직원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는 노인들.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이 아닌 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요리아이’ 직원들. 그 둘의 세계는 일상을 공유하며 언제나 따뜻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은 요양시설에 들어간 순간, 마치 사회에서 모습이 사라지듯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요양시설이라는 말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는 이유는 사회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유폐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는 ‘치매’라는 질병은 누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가족―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병에 걸리기 전부터 요양시설은 ‘제2의 고향’이라는 만트라를 외는 노인들. 그들을 서서히 잠식시키는 ‘치매’라는 단 하나의 질병은 더 이상 그들을 과거의 평범한 나날을 꿈꿀 수 없게 하며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정신적, 신체적, 경제적으로―미래만을 내놓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지원의 절대적 부족, 현재의 간병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 이 모든 것을 ‘요리아이’의 그들은 밝고 따뜻하고 낙천적으로 그린다. 현실 속에서 바라본 동화 같은 그들의 일상.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로 ‘요리아이’를 설명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모두의 생명

‘요리아이의 숲’을 방문하며

-다니카와 슌타로

여기는 다양한 생명들의 거처

꽃을 피우는 생명, 하늘을 나는 생명

명상을 즐기는 생명, 사납게 포효하는 생명

바닥을 더듬는 생명, 비수를 쏘아대는 생명

기력을 다하여 일하는 생명, 그리움에 젖어 눈물 흘리는 생명

여기는 역시 다양한 생명의 정류장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고

젊은 잎, 붉은 잎, 시든 잎, 떨어지는 잎

춘하추동 형형색색으로 물들며 시간을 보낸다

여기는 즐겁고 소중한 특별 노인요양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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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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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서][교양과학][과학자] 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는 식물의 성장뿐 아니라, 여성 과학자인 호프 자런의 성장과 사랑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실험실을 사랑했고 그곳에서 자란 소녀는 식물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의 깊은 본능에 토대를 둔 뿌리와 같은 과학자라는 꿈을 품는다.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과학에 매료된 그녀의 복잡하고 인내를 요하는 실험과정, 예산 부족으로 겪어야 할 수밖에 없는 곤경,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느끼는 행복 등의 기쁨, 좌절, 도전을 식물의 삶과 그녀의 삶을 교차하며 이야기해나간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아버지의 영향과 병원 일에 대한 환멸감, 인생의 소울 메이트 빌과의 만남, 그와 함께한 실험 등을 통해 그녀의 뿌리와 이파리는 한층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첫 뿌리가 감수하는 위험만큼 더 두려운 것은 없다.

 그녀의 인생 전체를 쏟아 부은 실험실 안에서의 첫 과학적 발견, 팽나무 대상 연구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 등은 그녀로 하여금 식물들을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연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고, 그녀에게 과학자가 아닌 다른 미래는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재정적인 문제는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지만 식물들에게 빛이 곧 생명이듯, 그녀와 함께하는 동료와 그녀의 과학적 열정은 그녀를 살아있게 만드는 유일한 빛이다. 


 모든 식물은 두 가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나는 위에서 오는 빛,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래서 흐르는 물이다.

 재정적인 문제뿐 아니라, 식물들이 4억 년 전에 고생 끝에 푸르게 만들었던 곳을 딱딱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도시화나 사람들이 자연을 너무나 쉽게 훼손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초록색으로 된 지구의 면적이 얼마나 사라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현재 벌어지는 비극에 누군가가 걱정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 척, 화가 나는 척한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은 그녀를 서서히 잠식시켜 광기를 불러일으키고, 그녀가 겪어야 하는―나라의 예산에서 그녀의 연구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지만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 연구자금을 얻어야 하는 여성 과학자로서―수많은 문제들은 빌과의 우정을 견고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녀를 지치고, 눈물 흘리게 하면서도 다시 도전하게 만든다.


 이 우주의 불덩이가 몸속을 지나며 눈을 뜨게 해주는 동안 나는 깨달은 것을 기록해야 할 긴박한 욕구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단단해지고 많은 이파리를 만들어낸 과학자로서의 성장만이 아닌, 여성으로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클린트와의 결혼, 행복하지만 상실감을 느끼는 그녀의 임신은 그녀에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동시에 자궁에 가려 보이지 않는 아이의 선명한 빛을 보지 못하게 한다.


 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꽃가루 단 한 톨이다. 씨 하나가 한 그루로 자랄 수 있다. 나무 하나는 매년 수십만 송이의 꽃을 피운다. 꽃 한 송이는 수십만 개의 꽃가루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녀는 아들을 통해 풍요로운 사랑을 모두 표현할 능력이 없어 행복한 무력감을 느끼고, 아들이야말로 그녀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정말로 기쁨으로 거두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나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식물의 성장과 같은 그녀의 삶은 이파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매순간 전투적인 시간을 보내고, 꽃을 피움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매일 마주치는 적과 죽음의 위협을 마주하며 서있는 나무의 삶과 같은 그녀의 삶은 그녀를 괴롭히는 재정문제와 여성 과학자로서의 벽이 그녀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지만, 그녀와 빌에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의 희망과 목표, 식물의 존재, 보존되지 않기에 늘 새로 만들어야 하는 사랑과 삶은 그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동시에 새로 시작된다.


 자유와 사랑이 합쳐져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고 나는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생산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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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서는 안 되는 너무 잔혹한 진실
다치바나 아키라 지음, 박선영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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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서][사회도서] 말해서는 안 되는 너무 잔혹한 진실


 노력은 유전을 이길 수 없고, 미모의 격차가 단순한 외적인 차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아이의 성장에 부모의 교육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저자의 주장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 어떤 근거로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했을까? 그리고 저자의 주장에 반박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주장은 무엇일까?

Ⅰ. 노력은 유전을 이길 수 있는가
 지능의 유전율이라는 측면에서 논리적 추론능력의 유전율은 68%, 일반지능의 유전율은 77%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의존증(알코올 의존증), 조현병, 반사회적 인격 장애(범죄)의 유전율 역시 대단히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체적 특징은 물론이고 지능과 정신질환, 범죄 역시 유전의 영향이 환경적 영향보다 강력하다는 잔인한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강조한다. 
 하지만 부모의 높은 수입과 자녀의 고학력과의 상관관계를 환경적 측면에서 찾는 것을 거짓 관계라고 단정한 채, ‘지능이 높은 부모가 자녀에게 높은 지능을 물려주었고, 그 부모가 수입이 높은 이유는 높은 지능의 결과다’라는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까? 예컨대, 판사나 과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능을 요구하지 않는 직업으로 성공한 부모가 자녀를 높은 교육수준―엄청난 학비―의 학교에 보내고, 하고자 하는 학문이 특화된 나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어 자녀가 그 나라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일이, 높은 지능의 유전자를 타고났지만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란 자녀보다 고학력자가 되는 일이 과연 더 어려울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옛말에 불과하고, ‘금수저’, ‘흙수저’론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매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학생과, 부모의 높은 수입을 바탕으로―그 부모의 직업적 성공이 지능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건 없건 간에―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학생간의 학업 성적, 학력 격차, 지능적 격차의 7~8할이 유전적 차이라고 말한다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될까? 마찬가지 이유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사교육열풍은 지능 격차의 7~8할 이상을 유전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그 결과 학력의 결과 역시 유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저자는 인종 간에도 지능의 격차가 분명히 있으며 이는 특정 스포츠와 음악에 흑인의 타고난 신체적 특성과 재능이 유리하듯, 이것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될 차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지능의 격차는 곧 경제격차로 이어지고, 그것의 결과는 경제의 양극화, 사는 지역, 환경, 행동양식의 양극화, 행복의 양극화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 역시 현실과 괴리감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학력자일수록 직업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높은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위치에 다가간다는 사실은 반박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격차가 곧 지식의 격차’라는 모순은 시대가 요구하는 직업군, 지능과는 무관한 개인의 잠재력, 사회적 상황 모두를 설명하지 못한다. 일례로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높은 지능을 요구하는 직업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능과는 무관한 개인의 재능과 관련 있으며, 과거와 달리 명성과 부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직업으로 청소년의 장래희망 1순위에 꼽히기도 한다. 이는 엄청난 경쟁률 안에서 성공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 직업의 인기를 말해준다. 또한 그의 주장은 변호사, 교수출신의 수많은 자영업자와 많은 지식인들의 경제적 궁핍을 설명할 수도 없을 뿐더러 부의 대물림 현상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저자는 성과 범죄에 관련된 현상 역시 거의 모든 관점을 생물학과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많은 실험과 특정 사건의 분석을 통해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지만, 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 현상의 많은 부분을 제대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Ⅱ. 아주 잔인한 ‘미모 격차’
 생김새는 우리의 일상적인 판단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까. 아마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는 취업면접을 위한 성형수술과 선한 인상의 사람과 험악한 인상의 사람이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다르게 나타나는 반응 등을 통해 쉽게 인정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미모의 중요성, 미모의 격차가 가져오는 결과들을 나열했다. 미모의 경제적 가치를 따졌던 경제학자 대니얼 해머메시의 주장을 언급하는가 하면, 미인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 행복한 인생과 불행한 인생을 사는 원인을 미모의 격차에서 찾는다. 가장 반박할 수밖에 없는 그의 주장은 이것이다. 인상이 나쁜 청년이 모두 범죄자는 아니고 청년의 범죄는 용모와 무관하다는 자료도 있지만, ‘지극히 못생겼다’고 평가되는 일부 청년은 강도나 절도, 폭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그의 주장은 그 속에서 역설을 찾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성공한 CEO 얼굴의 특징을 찾고, 그 특징의 원인이 되는 호르몬의 역할을 분석하는 등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고 영업직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외모 격차가 경제 격차로 이어진다는 내용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얼마 전에 읽었던 <끌림의 과학>의 내용과 동일한 부분도 있었다. 호르몬에 의한 남성과 여성의 뇌의 차이, 여성의 모유수유, 분만과 옥시토신과의 관계―모성애의 과학적 설명―등을 설명하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진정한 남녀평등이 그들의 타고난 차이를 인정하여 따로따로 다루는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할 수 있었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으로 성(性)을 바라본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생물이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복제해서 남길 수 있도록 발달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수컷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암컷과 교미하려 들고, 암컷은 다른 수컷의 새끼를 키워줄 다른 수컷을 찾는다.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동시에 구태여 진화론으로 특정 현상을 설명하려드는 부분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 여성과 남성의 성교 과정에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소리를 지르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은 설득력이 없었고, 인간의 결혼 형태(짝짓기 형태)가 난혼이라는 주장에도 분명한 결점이 있어 보인다.

Ⅲ. 육아와 교육은 아이의 성장과 관계없다
 저자는 노력(환경)과 유전의 영향력 비교를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아이의 성장에 환경의 미미한 영향력과 유전의 막대한 영향력을 다시 언급한다. ‘발달 장애는 키나 몸무게보다 유전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가정환경이 아이의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언어지능 뿐이다’라는 주장은 많은 쌍생아―특히 일란성쌍생아―연구가 뒷받침한다. 
 하지만 다시금 반박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 나온다. ‘아이의 인격과 능력, 재능을 형성하는 데 육아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정이 아이의 성격과 사회적 태도, 성역할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집단 사회화 발달론을 통해 아이의 성장에는 친구 관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아이의 성장기(청소년기)에 주변 친구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부모의 말 대신 친구의 말을 더 따른다는 주장도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육아의 중요성, 가정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모두 부정하는 말은 대단히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전두엽의 차이와 친구와의 관계만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규정지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신체적, 정서적, 성적학대는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칠까? 가정교육,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 부모의 가치관, 말과 행동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칠까? 이는 오직 운명론만을 신봉하는 사람만큼이나 무책임하며 위험하다. 

 분명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인 동시에 과학적 근거를 갖춘 주장이다. 이런 잔혹한 진실이야말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극적인 대비를 위해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제도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오류나 치우친 주장도 종종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사례와 실험, 학자들의 주장과 가설을 통해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 있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미 알고 있지만 말하기 꺼렸던 부분들을 건드렸다는 부분에서, 그리고 반박과 공감을 동시에 품으며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유전적 영향의 위대함을 알 수 있었다. 유전적 요인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많은 부분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환경적 요인의 위대함 또한 알 수 있었다. 진실은 그 모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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